예수님 의 탄생 | 예수의 탄생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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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성신의 권능으로 잉태함 – 하늘의 사자가 베들레헴에서 예수께서 탄생할 것을 선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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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 네이버 블로그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사복음서 중 마태복음 1-2장과 누가복음 1-2 장에만 나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복음서 중 가장 먼저 씌어진 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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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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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예수 탄생: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6가지 | ㅍㅍㅅㅅ

예수의 생일을 25일로 정한 것은 신학자 로마의 히폴리토가 204년에 쓴 글에 따른 것이다. 히폴리토는 200년대 이후 예수가 사망한 날짜로 인정되는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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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 예수 그리스도는 팔레스타인 북부에 위치한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시골 출신이었으므로 그 출생에 관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드물다. · 마태 복음서 · 루카복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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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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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교리] 동정녀 잉태와 예수님의 탄생 – 우리들의 신앙생활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통해서 복음사가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기적적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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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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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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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예수 그리스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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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5. 8. 2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HV0e2c7mrQ8

예수의 탄생 기록들, 왜 이토록 다른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기록은 네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동정녀 탄생은 사도신경에서도 언급될 만큼 아주 중요한 교리인데도 불구하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다. 특히 공관복음이라고 부르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관한 기록이 비슷하다고 말하는데, 왜 동정녀 탄생이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가지 예수님의 탄생기록이 아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성서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두 복음서에 기록된 동정녀 탄생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출생 연대가 서로 다르다고 한다. 예수님이 헤롯 왕 시대에 태어난 것으로 언급된 마태복음에서는 헤롯이 기원전 4년에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구례뇨가 기원후 6년에 총독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모가 구례뇨 총독의 호구조사 명에 따라 베들레헴에 올라갔다고 하는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기원후 6년 이후에 출생했다. 일반 독자들이 이 출생 연대의 차이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가지 예수님의 출생기록에는 독자들이 쉽게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많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수님을 처음 경배한 사람들의 차이다.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예수님이 출생했다는 천사들의 노래를 듣고 아기를 경배하러 왔다. 동방박사들은 아기에게 경배하고 세 가지 귀한 예물을 드렸지만, 목자들은 빈 손으로 와서 출생한 아기가 구주라는 천사들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 곳과 아기가 출생한 장소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집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의 부모가 나사렛 사람들인데, 호구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에 갔다가 거기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아서 말구유에 눕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한 직후 두 복음서에 기록된 요셉과 마리아의 행적이 전혀 다르다. 마태복음에는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이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헤롯이 죽은 다음에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의 눈을 피해서 그들이 살던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나사렛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헤롯의 적의가 언급되어 있지 않고, 예수님의 부모가 정결예식을 위해서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이 중심 역할을 하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중심에 있다. 마태는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 잉태할 것이라고,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돌아간 후 다시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해서 애굽으로 피하라고 말하고, 헤롯이 죽은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요셉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리고 마리아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린다. 목자들이 아기를 경배하러 와서 천사들이 구주가 나셨다고 한 말을 전할 때, 그 말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마리아다.

두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이토록 서로 다른 것을 보면, 이 두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탄생 기록과 결부시켜서 두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수님 가문의 족보가 나오는 자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맨 첫머리에 족보가 언급되어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장면 직후에 나온다. 그러나 족보가 나오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족보의 나열 순서도 두 복음서의 기록이 각각 다르다. 마태복음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식으로 맨 위의 조상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예수님이 언급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역순으로 아래서부터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로 시작해서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끝난다. 이렇게 순서가 반대로 기록된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주 이상한 것은 족보에 언급된 많은 인물의 이름이 다르다는 점이다. 마태복음에는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로 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에 언급된 예수님의 조부, 증조부 등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조부, 증조부 등과 다르다. 그 두 가지 족보에 아브라함, 야곱, 이삭, 다윗, 요셉 등 주요 인물들은 공통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사람들의 이름이 대부분 같지 않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른 두 가지 족보를 작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다른 족보의 작성자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두 복음서에 나오는 탄생 기록의 문체가 다르다. 마태복음에서는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간결하게 기록하면서 천사가 요셉에게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알려준다. 그리고 마태는 42대에 걸친 족보를 14대씩 세 부분으로 질서 정연하게 나누었다. 여기서 그의 문체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산문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태어날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해줄 뿐 아니라, 마리아의 찬가, 천사의 찬송, 시므온의 찬송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구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다.

사람마다 문체가 다르기 때문에, 두 글의 문체가 다르면 그 글들은 각각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고 판단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문체가 다른 것을 보면 두 복음서의 기록자가 다른 것이 분명하다.

이제 마리아가 구주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왜 마태와 누가가 이렇게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좀 더 분명한 답을 찾아야 할 차례다. 우리는 지금까지 두 사람이 그 사건을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소위 공관복음이라는 범주에 드는 복음서들이다. 공관복음이라는 단어는 그 두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관점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두 사람이 기록했더라도 그들의 관점이 같다면, 두 복음서가 같게, 혹시 다르더라도 아주 비슷하게 기록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실상 예수님에 대한 마태와 누가의 관점은 아주 다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부각시키려 했고, 누가는 소외된 자의 편에 선 예수님을 나타내려 했다. 위대한 왕으로서의 예수님과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서의 예수님을 부각시키려는 그 두 기록자의 노력이 동정녀 탄생에 관한 두 복음서의 기록 곳곳에서 발견된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마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구성된 족보를 열거했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 오신 예수님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누가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구성된 족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권위 있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고 믿은 마태는 요셉이 수태고지를 받은 것으로 기록함으로써, 사회적 강자인 남성을 중심에 세웠다. 그러나 예수님이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섰던 분이라고 믿은 누가는 약자인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은 것으로 기록했다.

마태는 유식하고 부유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를 찾아와서 값비싼 예물을 드렸다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무식하고 가난한 목자들이 빈 손으로 와서 천사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는 아기가 베들렘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마구간에서 출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 장소를 마구간으로 설정함으로써 누가는 예수님이 소외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자 헤롯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왕과 왕의 대결로 그려지고 있다. 이 대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러나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를 시골 마을 나사렛에서 산 사람들로 설정해서 그들이 소외된 자들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기록자가 각각 자기가 생각하는 예수님 상에 맞게 인물, 장소, 사건을 설정한 것을 보게 된다. 따라서 복음서들이 객관적인 역사적 기록이 아니고 기록자들의 주관이 반영된 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즘 신학자들이 성경을 문학작품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 기록이 아주 다르다는 것과 두 복음서의 기록이 다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예수님의 두 가지 탄생 기록이 이토록 다른 것은 두 사람이 그 복음서들을 기록했기 때문이고, 특히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관점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복음서들을 기록한 사람들이 동정녀 탄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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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 에게도 매우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크리스마스가 서양 문화에서 가장 큰 명절이고 이것이 비그리스도교 세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성탄절 이야기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강의나 설교를 하러가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어느 어느 복음서에 나오느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된 답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물쭈물 대답을 얼버무리는 사람도 있고 당연히 사복음서에 다 나오지 않느냐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사복음서 중 마태복음 1-2장과 누가복음 1-2 장에만 나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복음서 중 가장 먼저 씌어진 마가복음에도, 가장 늦게 씌어진 요한복음에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약성서의 최초의 저자인 바울도 그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성탄절 이야기는 마태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자와 요한복음의 기록자를 포함한 신약성서의 다른 기자들이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왜 언급하지 않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이 기록자들이 예수님의 특별한 출생에 관한 전승을 몰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알았더라도 특별히 언급을 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예수님의 출생을 언급하지 않고도 복음서를 기록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유일한 두 전승인 마태복음의 이야기와 누가복음의 이야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이 두 얘기를 적당히 짜깁기한 것인데, 사실 두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조화시킬 수 없는 상이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나사렛에서 살다가 (자신의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서 받으라고 하는) 인구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으로 가서 출산하고 다시 본향인 나사렛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이 원래 베들레헴에 사는 것처럼 나타나고 출산 후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도피했다가 꿈에 지시하심을 받고 나사렛으로 이주 합니다. 마태에서의 출산 후 도피와는 반대로 누가에서는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대로 정결의식을 행하러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히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수님의 출생 당시에 고향으로 돌아가 받으라고 하는 인구조사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며 논쟁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한 인구조사가 있었든 없었든 두 복음서 사이의 상이점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원래 거주지와 이집트로의 도피, 예루살렘에서의 정결예식 등에 관한 두 복음서의 조화시킬 수 없는 상이한 진술에 비하면, 출산 당시의 에피소드들에 관한 두 복음서의 서로 다른 진술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에서는 동방에서 박사들이 특별한 별을 따라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을 방문하지만, 누가에서는 천사들의 노래를 들은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와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크리스마스 연극에서는 보통 이 두 에피소드를 하나로 이어서 공연합니다.

한편 마태와 누가는 각기 예수님의 족보를 보도하고 있는데 이 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는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이라고 말하는데 누가는 요셉의 아버지가 헬리라고 말합니다. 마태에 따르면 예수는 다윗의 27대손이 되지만 누가에 따르면 다윗의 42대손이 됩니다.

마태의 것은 요셉 쪽의 족보이고, 누가의 것은 마리아 쪽의 족보라는 근본주의자들의 오랜 주장이 있는데, 그렇다면 손자로는 다윗의 27대손이 되는 예수님이 외손자로는 다윗의 42대손이라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다윗의 26대손인 요셉이 41대손인 마리아를 맞아 예수님을 양자로 들였다는 것인데, 동일한 조상의 두 후손이 15대나 서로 차이가 나는데 같은 시기에 만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면 두 사람은 450년의 차이가 있고, (말은 안 되지만) 한 세대를 10년이라고 해도 두 사람 사이에는 150년이란 간격이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태의 족보에는 많은 생략이 있었다는 설명이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윗에서 바벨론 유수까지, 바벨론 유수에서 그리스도까지를 각기 열네 대씩이라고 못 박은 마태의 설명이 틀린 것이 되고 맙니다. (마태복음에 바벨론 유수에서 그리스도까지 실제로는 열세 대만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불일치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헤롯에 의한 유아살해가 정말로 있었는지, 갈릴리 지역에 살던 마리아가 임신한 몸으로 유대 지역에 살던 엘리사벳을 마치 옆 동네 가는 것처럼 가서 만날 수 있었는지 등 여러 의문점에 관해 이런저런 논쟁들이 있지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 것은 역사적 예수 연구를 소개하기에 앞서 학자들이 왜 복음서들을 역사 그대로의 보도로 보지 않는가를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열심만을 가지고 좌충우돌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왜 성경을 ‘말씀대로’ 믿지 못하느냐고 열을 올리며 많은 신약학자들을 ‘믿음이 없는’ 자유주의자들로 매도하는 한심한 현실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앞의 글에서 강조한 것처럼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생애를 역사 다큐멘터리와 같이 서술한 것이 아니라 각 기록자의 신학적 해석을 거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소개한 문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이 실제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가 어떠했는지를 추적해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음 글로 이어 가겠습니다.

성경 속 예수 탄생: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6가지

※ cracked의 「6 Things People Get Wrong About the Bible’s Christmas Story」를 번역한 글입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다들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가 말라빠진 소나무와 줄줄이 매달린 작은 전등과 쓰지도 않을 프랜차이즈 카페 기프트카드에 파묻혀간다고 소리 높여 불평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상업주의라는 괴물이 예수의 탄생이라는 크리스마스 본래의 의미를 먹어 치웠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의 탄생에 얽힌 제대로 된 이야기 자체를 모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6. 베들레헴에 여관은 없었으며 예수는 부엌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방 있는 모텔을 찾기가 참으로 힘든 것처럼, 성서 시대의 베들레헴도 예수가 태어났을 즈음에는 여관에 방을 찾기가 힘들었던가 보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결국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은 것이 아닐까?

잠깐,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뱃속에 밴 체로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긴 거리를 온 이유는 베들레헴이 요셉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고향까지 왔는데 방 하룻밤 정도 빌려줄 친척이 없었겠는가? 그렇다면 왜 굳이 여관에 묵겠는가? 답은 간단하다. 베들레헴에는 여관이라는 것이 없었다. 여관은 큰 길이 통하는 곳에만 있으며 베들레헴은 요즘으로 치면 트럭 기사들이 지나는 농촌 마을 정도 크기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여관이 여기에 끼어 들어왔는가? ‘카탈루마(kataluma)’라는 그리스어 단어를 ‘여관’이라고 잘못 해석한 것이 그 이유이다. ‘카탈루마’의 원래 뜻은 ‘손님이 묵을 방’이다.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카탈루마’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 한 번 더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진 방을 마가복음에서는 ‘가구를 잘 갖춘 위층의 큰 방’이라고 묘사하는데, 그때 사용된 단어가 ‘카탈루마’이다.

그래서 ‘카탈루마’에 요셉과 마리아가 묵을 수 없었다는 것, 아기 예수를 구유에 뉘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한 가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구유는 마구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에는 집의 아래층이라고 하면 보통 큰 부엌이나 다름없었으며 밤에는 동물들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부엌으로 들이기도 하였다.

‘카탈루마’에 ‘위층의 큰 방’이라는 의미가 있었음을 기억하자. 그렇기 때문에 집의 아래층에도 구유가 있었던 것이다. 요즘처럼 커플들이 여관방을 다 잡아버려서 요셉과 마리아가 묵을 곳이 없었던 것이 절대 아니다. 요즘으로 치면 요셉과 마리아는 애완동물이 있는 친척집 마루의 소파에서 하룻밤 지냈던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5. 성경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하룻밤이 아닌 몇 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예수 탄생에 얽힌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들 잘 알 것이다. 신혼부부인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양수가 터져 예수를 낳아 구유에 뉘었다가, 헤롯 왕의 병사들이 아기들을 죽이기 전에 이집트로 도망가 있으라는 천사의 계시를 받아 베들레헴을 떠났다는 것이 그 이야기이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데리고 나라를 떠나자 헤롯 왕은 아기들을 몰살한다.

알아둘 것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룻밤 새에 다 일어난 것은 아니다. 성경에는 이 사건들이 일어나는 동안의 정확한 시간 경과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복음서들을 보면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오자마자 바로 예수를 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누가복음 2:6)라는 말을 보면 베들레헴에 도착한 지 몇 주가 아니라면 적어도 며칠은 지나서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도 태어나자마자 바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예수는 태어난 지 8일이 지나고 할례를 받았으며 마리아의 몸이 정화되는 기간이 지난 후에야 교회당으로 갈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레위기의 율법에 따르면 여성은 아들을 낳은 후 40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제식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정결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딸을 낳으면 이 기간이 80일로 늘어난다.

3인의 동방박사가 도착하기까지는 또 시간이 2년 정도 더 걸린다는 것 또한 유추할 수 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시점에 예수는 이미 아기가 아닌 ‘어린아이’였고, 요셉과 마리아는 더 이상 친척 집의 부엌이 아니라 자기들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동방박사들로부터 예수의 나이에 대해 들은 헤롯 왕이 생후 2년까지의 아이들을 모두 몰살한 것으로 보면 신빙성이 더해진다. 갓난아기들까지 죽인 것은 그냥 헤롯 왕이 그냥 나쁜 놈이라서 그런 것 같다.

#4. 동방박사 3인은 박사가 아니라 그냥 수상쩍은 남자 삼인방이었을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가 있다. 여기에 예수를 방문한 3인의 동방박사들이 빠질 수가 없겠다. 이 동방박사들은 누구인가? 여기서 박사란 점성술과 마술에 정통한 사제들과 현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권위와는 달리 성경의 묘사에 따르면 이러한 부류의 사람은 협잡꾼이나 잡상인 혹은 야바위꾼과 같이 수상쩍은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황금, 유향, 몰약과 같은 진귀한 선물들을 가져온 것으로 봐서 예수를 방문한 사람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협잡꾼 수준의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구약 성서와 비교해서 본다면 이 동방박사들은 높은 신분의 귀족들일 수도 있지만 상인들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교회에서는 동방박사의 정체가 상인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겠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사업가들에게는 나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예수를 방문한 사람들이 3명의 잡상인이었다고 하면 모양이 안 살기는 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가져왔다는 진귀한 선물들을 뜯어보면 그보다도 한술 더 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 구절 이곳저곳을 보면 유향과 몰약을 최음제로 언급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음제 외판원들이 아기 예수님을 방문했다고 하는 것 역시 모양이 안 살아도 너무 심하게 안 사는 것 같다만……

중세 시대에 접어들면 이 동방박사들을 동방의 왕이라고 묘사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는 메시아의 강림에 관한 구약 성서의 예언들과 신약 성서의 내용을 더 잘 짜 맞추기 위한 것이다. 솔직히 ‘최음제 외판원’보다는 ‘왕’이 더 그럴듯하기도 하고.

#3. 무염시태는 예수의 탄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보통 무염시태라고 하면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을 통해 아기를 잉태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무염시태란 예수의 탄생이 아닌 마리아 자신의 탄생을 일컫는 말이다.

예전의 신학자들은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고 가정했을 때 모순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했다. 원죄의 교리에 따르면 선악과를 따먹어 죄를 저지른 아담과 이브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죄를 지은 것이며 이를 원죄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그것은 마리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마리아 역시 원죄를 짓고 태어난 인간일진대 어떻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마리아가 잉태된 순간 신은 마리아를 찾아서 마리아의 원죄를 사하여 준 것이다. 이 해결책은 1세기부터 제시되어오긴 했지만 공식적인 교리로 인정받은 것은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인정한다고 선언한 직후이다. 비오 9세의 이러한 행보는 두 가지 이유로부터 기인한다.

첫 번째는 비오 9세가 성모 마리아의 은총으로 인해 자신의 간질병이 나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성모 마리아 신앙을 중요시하는 기독교 분파를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19세기 초중반부터 성모 마리아의 출현 목격담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2.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동물들이 모인 것은 사실이 아니다

대부분 예수 탄생 장면을 생각하면 마구간을 떠올리기 때문에 당나귀, 소, 양,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타고 온 낙타 등의 동물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들에서 노닐던 양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들은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늘날 아기 예수의 주변에 동물들이 있는 장면을 상상하는 이유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 탄생에 상징성을 지닌 동물들을 끼워 넣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할 때 대사에 자신이 없는 아이들은 동물 역할을 하면 되니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초기 기독교에 있어 예수가 탄생하는 장면의 가장 중요한 동물은 소와 당나귀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둘은 이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동물은 2세기 신학자 오리게네스가 처음 언급한 이래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아 초기에 예수 탄생 장면을 묘사할 때는 요셉과 마리아는 등장하지 않아도 소와 당나귀는 반드시 등장하였다.

앞서 말한 과정을 거쳐 동방박사 3인이 왕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처럼 이 동물들 역시 구약 성서의 메시아 출현 예언을 반영하여 추가된 것이다. 구약 성서에 나타난 정결한 소와 불결한 당나귀의 이미지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각각 메시아를 숭배하는 것을 상징한다. 물론 한쪽에 불결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은 종교적 단합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기는 하지만.

13세기에 이르면 소와 당나귀에 대한 현실적인 설명도 부가된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소와 당나귀를 가져온 이유는 당나귀에 짐을 싣고 소를 팔아 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낙타에 대해서도 비슷한 설명이 붙었다. 이사야의 예언에는 왕뿐 아니라 낙타들 또한 함께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오리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엄청나게 많은 낙타 되겠다.

그다음부터는 재미가 붙었는지 이 동물 저 동물 다 끌어들이다가 15세기에 이르면 마치 아기 예수 주변에 동물원이 형성될 지경에 이른다. 게다가 화가들은 동방박사들의 부유하고 이국적인 이미지에 맞추어 이국적인 동물들을 추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의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를 보면 매, 표범, 그레이하운드 사냥개, 그리고 심지어는 원숭이까지 나온다.

#1. 크리스마스는 이교도 명절을 베낀 것이 아니다

무신론자들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가 사실은 동지(冬至)에 있었던 이교도 축제를 베낀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크리스마스는 이교도 종교 행사로부터 기원한 것인가?

이 주장의 핵심이 되는 근거는 크리스마스의 날짜가 양력 12월 25일로 동지와 매우 가까우며 주요 이교도 축제인 고대 로마의 농신제가 동지 즈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농신제는 정확히 12월 25일이 아닌 12월 17~23일 즈음이었으며, 25일 즈음에는 농신제 기간 동안에 마신 술 때문에 숙취에 시달리거나,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신년 축제(기원전 153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의 생일을 25일로 정한 것은 신학자 로마의 히폴리토가 204년에 쓴 글에 따른 것이다. 히폴리토는 200년대 이후 예수가 사망한 날짜로 인정되는 3월 25일로부터 계산하기 시작했다. 유대 탈무드 전승에 따르면 모든 의로운 인간은 자신이 잉태된 날에 맞춰 죽기 때문에 예수도 마찬가지로 3월 25일에 잉태되었다고 보았다. 잉태에서 출산까지 9개월이 걸리므로, 예수의 탄생일은 12월 25일로 정해진 것이다.

12월 25일에 동지를 기리기 위한 솔 인빅투스(정복되지 않은 태양)라는 이름의 작은 이교도 축제가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솔 인빅투스는 274년(앞서 언급한 히폴리토의 글이 발표된 것보다도 한참 이후라는 것에 주목)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만든 것이다. 게다가 솔 인빅투스는 사실 성탄절에 상응할 만한 대안적인 이교도 축제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 반대가 아닌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신 기독교인 및 천주교인 여러분은 앞으로 성탄절이 이교도 축제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면 되겠다. 모두 종교와 상관없이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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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히브리어: יֵשׁוּע 예슈 , 히브리어: יֵשׁוּעַ 예슈아 , 고대 그리스어: Ἰησοῦς 예수스[*] , 기원전 4년경[참고 1] ~ 기원후 33년경[참고 2]) 나사렛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는 서기 1세기 갈릴리의 나사렛 출신 유대인 설교자이며 종교 지도자로서 기독교 창시자이며 신앙의 대상이다.[11] 기독교인 대부분은 예수를 성육신한 성자 하나님인 동시에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라고 믿는다.[13]

오늘날 대부분의 고대 역사학자들은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인정한다.[14][15] 하지만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복음서 이외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복음서의 역사적 신뢰성과 더불어 성경에 묘사된 예수가 역사적 예수를 적절히 반영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약간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18]

예수의 권위 [ 편집 ]

유대교의 랍비 [ 편집 ]

예수는 갈릴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11] 선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20]를 받고 자신만의 공생애를 시작했다. 예수는 구전 복음을 전했으며[21] “랍비”라고 자주 불렸다.[22] 예수는 신을 청종하는 방법에 대해 유대인들과 토론했고 비화를 가르쳤으며 지지자들을 모았다.[24] 예수는 산헤드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로마 정부에 인도되어 유대인 군중이 거세게 압박하는 가운데 유대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명령으로 십자가형을 당했다. 예수의 죽음 이후 예수의 지지자들은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믿었고 지지자들이 형성한 공동체는 초기 기독교가 되었다.

기독교계 하나님의 신격 [ 편집 ]

기독교는 “예수는 성자 하나님이자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고, 기적을 행하는 동시에 교회를 창립해 인간을 구원하며, 인간을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다가 부활해서 천국으로 간 뒤 언젠가 재림할 것”을 교리로 삼고 있다. 니케아 신경은 예수가 살아있을 때나 죽은 이후에도 삶과 죽음을 판단한다고 단언하고 있다.[28] 기독교는 예수를 신이자 인간인 동시에 신의 아들인 존재로 숭배하며 삼위일체 중 제2위인 성자로 보고 있다.

서구권 달력의 기원 [ 편집 ]

예수의 탄생일은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으나 에보디우스나 알렉산드로스,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기독교의 초기 주교들이 예수의 탄생일로 언급한 12월 25일을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로 기념하고 있으며, 예수의 희생은 성금요일로, 예수의 부활은 부활절로 기린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연호인 서력기원은 예수가 태어난 해로 추정되는 시점을 기원으로 하며,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은 기원전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1962년 1월 1일부터 서력기원을 사용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예언자 [ 편집 ]

예수는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교 속 예수는 이사 이븐 마리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신의 중요한 예언자이자 메시아로 여겨진다.[29][30][31] 무슬림도 예수가 처녀로부터 태어났다고 보지만 신이나 신의 아들로 여기지는 않는다. 쿠란에서는 예수가 신성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음을 기록했다.[32]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것을 믿지 않지만, 예수의 육체가 신에 의해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믿는다. 대조적으로 유대교에서는 예수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믿음을 거부하며 메시아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여기고, 그의 신성성이나 부활 또한 믿지 않는다.[33]

어원 [ 편집 ]

맨 위 왼쪽부터 차례로 아람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로 적은 예수의 이름.

헬라어 이름인 예수스는 히브리어 여호수아(히브리어: יהושוע, Jehoshua)의 축약형인 예슈아(히브리어: יושוע, Jeshua)를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말이다.[34] 여호수아(Jehoshua)의 어원은 접두어 여(Je-)(히브리어: יהוה, JHVH/YHWH:Jahveh 야훼 , 하나님)와 호세아(히브리어: הושע, hoshea, 구원, 구세를 의미)를 덧붙여 이루어진 이름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 예수를 가리킬 때에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가 자란 고장의 이름을 덧붙여서 “나사렛(Nazareth) 예수”로 부른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부모의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요셉의 아들 예수”(누가 복음서 2:21), 나사렛의 예수(요한 복음서 1:45) 또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마가 복음서 6:3, 마태 복음서 13:55) 중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름에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가므로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아들 예수'(ישוע בן יוסף | 예수아 벤 요세프)은 정식 성명이다. 쿠란에 기록된 예수의 아랍어식 이름은 ‘이사 빈 요세프’이다.

예수에게 따라 붙는 그리스도라는 낱말은 “기름을 부은”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 에서 유래한 것이다. 크리스토스는 흔히 ‘메시아’로 표기하는 “히브리어: מָשִׁיהַ 마쉬아흐 “를 번역한 것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은 유대인의 종교적 예법에 따르면 드높은 사람, 다시 말해 왕이나 예언자, 사제, 메시아에게 주어지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메시아 예수라고 풀 수 있다. 성경과 여러 기록에 따르면 그 뒤로 예수는 많은 성도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이적을 보이며, 로마 제국의 십자가에 못 박혀 사망한 뒤 사흘 만에 부활한다.

출생 시기와 장소 [ 편집 ]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 마리아에게 예수를 낳을 것임을 알리는 장면, 성모영보 를 그린 그림

출생 시기 [ 편집 ]

‘기원후’의 의미로 사용하는 ‘A.D.(Anno Domini)’는 예수 출생 이후 시대를 의미한다. ‘B.C.’와 ‘A.D.’ 구분은 6세기 경 신학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가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면서 사용한 방법이 이후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에 반영된 것으로, 이때에 계산한 예수 그리스도 탄생 연대 기준이 오늘날까지 쓰이지만, 예수가 태어난 해는 기원후 1년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전반적인 입장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팔레스타인 북부에 위치한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시골 출신이었으므로 그 출생에 관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드물다. 오늘날 복음서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일과 태어난 장소를 미루어 짐작하고 있으며, 학자들은 대체로 예수가 기원전 2년에서 4년 경에 태어났다고 추정한다.

마태 복음서 2장 1절부터 16절에는 예수가 태어난 해에 하늘에 ‘동방의 별’이 나타나고 헤로데 왕이 2세 미만의 갓난 사내아이들을 살해하도록 명을 내려 그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내용이, 누가 복음서 2장 1절과 2절에는 아우구스투스가 호적을 명하여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을 찾는 내용이 실려 있다.

루카복음에 언급된 인구 조사는 기원전 4년 경에 이루어졌다는 견해와 기원후 6년 경에 이루어졌다는 견해가 상존한다. 누가는 누가 복음서 2장 1절부터 7절에서 예수의 탄생 시점에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시리아 지방의 총독이 퀴리니우스(퀴리뇨, Quirinius)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퀴리니우스는 1764년에 로마에서 발견된 비문에 기원전의 퀴리니우스 총독을 언급한 것을 근거로 볼 때 기원전 4년 경 총독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견해가 존재한다.[35][36] 따라서 대체적으로 예수는 기원전 2년에서 4년 경에 출생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집트 피난 장면

‘동방의 별’은 이후 ‘베들레헴의 별’로 알려졌다.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를 800년 주기로 목성과 토성이 분점에 대해 같은 위치에 놓이는 현상과 연관된 것으로 주장하였고, 이로부터 그 시기를 기원전 7년으로 추측하였다.[37]

한편, 예수의 탄생설화를 상징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마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설화에 나오는 유아 학살과 이집트 피난 전승은 유대 기독교인인 마태와 마태교회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에게 익숙한 인물인 모세와 같은 권위를 가진 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썼다고 보는 성서학자도 극소수 존재한다.[38]

출생 장소 [ 편집 ]

신약성경 시대의 팔레스타인 지방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지는 누가 복음서과 마태 복음서에 기록된 바와 같이 베들레헴이지만,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성장하였다. 마르코 복음서과 요한 복음서에 언급된 바와 같이 당시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로 불리었던 이유는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 있을 때 임신했으며, 베들레헴에서 출생후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하고 생활했기 때문이다.

구유에서의 출생 이야기는 오로지 누가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는데,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예수가 태어나게 된 이유를 누가는 인구조사 때문에 예수의 가족이 고향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마을을 떠나 팔레스타인의 남쪽 지방인 유다의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베들레헴으로 갔다고 말하고 있다. 그 까닭은 나사렛의 요셉과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다윗 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호구 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마태는 메시아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미가서와 이사야서의 예언대로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이며, 이후 예수의 가족은 헤로데스 1세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가서 살다가 흔히 헤로데 대왕이라고 부르는 헤로데 1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으로 돌아와 그 곳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어떻게 베들레헴에 가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설명한 것이고, 마태는 그것이 바로 예언의 성취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추가 설명을 한 것이므로 모두 일치된 기록이라는 해석이 보편적이다.

생애 [ 편집 ]

공생애 이전 [ 편집 ]

1850년 그림, 예수와 그분의 가족들

가계 [ 편집 ]

예수 가계에 관한 기록은 마태 복음서와 누가 복음서에 남아 있다. 두 복음서 기록에 따르면, 예수는 나사렛의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세례자 요한, 엘리사벳, 예수, 성모마리아의 모습

가계도로 보면, 예수의 아버지인 나사렛의 요셉은 목수였으며,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라 부르는 나사렛의 마리아였다. 누가복음서 기록에 따르면, 마리아는 세례자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과 친족 관계였다.(누가 복음서 1:36) 예수의 잉태 및 탄생과 관련된 성서 기록을 보면,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아이를 낳을 것을 고지받았다.(누가 복음서 1:26-38) 이에 마리아는 약혼자 요셉에게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가 잉태된 사실을 고백하였다. 요셉은 신앙심 깊은 인물이었으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요셉은 꿈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게 되고, 마리아와 결혼하게 된다. 그 후 마리아는 예수를 출산하였다.(마태 복음서 1:18-25)

마태 복음서과 누가 복음서는 예수의 육신적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요셉은 다윗 왕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 복음서는 요셉의 선조를 아브라함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반면, 누가 복음서는 심지어 아담까지 족보를 까마득히 펼치고 있다. 두 복음서는 여기서 약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마태는 다윗에서 요셉까지 28대를 손꼽고 있는 반면 누가는 요셉이 다윗의 42대 자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학자들에 의하면, 두 족보가 다른 이유는 마태와 누가의 복음사가가 각각 요셉과 마리아의 가계도를 취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 하기도 한다. 고대교회의 신학을 형성한 교부들도 마리아가 다윗의 후손이라 말하였고 교회의 전승 또한 이와 일치한다.

가족 [ 편집 ]

예수에게 성모 마리아와 요셉 이외에 다른 가족이 어떤 형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 신학적 차이가 존재한다.

현대의 개신교 신약성서학에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부정하는 추세로, 예수의 형제들을 예수의 탄생 이후에 마리아와 요셉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예수의 친동생들이라 해석한다. 그 근거는 누가 복음서 2장 7절에 있는 “그녀의 맏아들”이라는 기록이나 마태 복음서 1장 25절에 “그녀가 맏아들을 낳을 때까지 요셉이 그녀를 알지 아니하였다”는 기록, 마태 복음서 13장 55절과 56절에서 예수 형제들의 이름과 예수의 누이들의 존재가 거론되는 장면이다.

반면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믿는 동방 정교회와 천주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형제들을 친척형제 또는 사촌 형제들이라 해석한다. 왜냐하면 오늘날까지도 중동 지역에서 형제라 함은 사촌 형제를 아우르는 말로 쓰이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가 그의 홀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맡기는 장면을 떠올려 봐도 예수의 형제들을 ‘친형제들’로 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독교 초기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었던 ‘주님의 형제’ 야고보나 요셉, 시몬, 유다가 예수의 친동생들로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예수 이외의 친자녀가 더 있었다면, 요한복음서에서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가 친족들 앞에서 그의 육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길 까닭이 없다. 예수의 어머니에게 예수 외에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가 사랑한 제자에게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부탁한 것이란 해석은 자연스럽다.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예수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복음사가 누가의 신학적인 의도가 들어 있는 누가 복음서의 몇 구절이 조금이나마 예수의 어린 시절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예수의 12세 때 유대인들의 해방 기념일인 과월절을 지키려고 부모와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배를 마치고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물렀지만 부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룻길을 갔다가, 방황하면서 아이를 찾았다고 한다. 예수를 찾은 지 사흘 뒤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만났을 때, 예수는 유대교의 랍비, 곧 율법교사들과 율법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가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다고 했다.[39] 이에 부모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자, 예수는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답했는데, 이는 예수가 자신과 온 인류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누가 복음서 2:41-51)

그 뒤에 계속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는 요셉의 직업을 이어 목수 일을 배우며 자랐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엔도 슈사쿠는 복음서에서 말하는 목수는 떠돌아다니면서 일하는 노동자였을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예수가 자신의 고향 갈릴리 나사렛에서의 회당예배때에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여 자신이 고난받는 민중들과 연대하는 메시아로서 살아갈 것임을 알리는 설교를 하자, 고향사람들이 지혜에는 감탄했지만 ‘저 사람은 (목수인) 요셉의 아들 아닌가.’라며 예수가 변변치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임을 지적하였다는 누가 복음서의 보도(누가 복음서 4:16-22)는 목수라는 직업이 변변치 않은 직업이었을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예수의 유년시절에 대해 누가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고 (누가 복음서 2:52) 간단하게 적고 있다.

세례자 요한 [ 편집 ]

예수는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나사렛을 떠나 출가하였다. 그 이후에 당시 먼저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먼저 광야로 나가 세례를 베풀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에게로 나아갔다.[40] 예수를 본 세례자 요한은 오히려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왜 받으러 오셨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를 통하여 모든 의를 이루기를 바라셨고 마침내 세례를 받았다. 물 속에서 세례를 받은 뒤에 물에서 올라오자마자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셨고, 하늘에서 한 소리가 있어 말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하였다.[41] 예수의 세례 장면에 대한 성서의 언급을 선지자 요한을 추종하는 종교와 기독교 사이의 투쟁에서의 우위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수의 신학자들도 있지만, 교회력을 신앙 전통으로 지키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아 공적인 생애를 시작한 날을 ‘주님의 세례주일’로 기념한다.[42]

고행과 유혹 [ 편집 ]

예수를 세례하는 요한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뒤에 홀로 광야로 들어가 40일 동안 금식한 뒤 높은 곳에 올라가 마귀에게서 세 가지의 유혹을 받았다고 전해진다.[43]

첫 번째 시험 : 돌들을 빵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하여 예수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는 성경 말씀으로 대적하였다.

: 돌들을 빵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하여 예수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는 성경 말씀으로 대적하였다. 두 번째 시험 :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게 유혹하는 것이었다. 사탄은 이번에는 특이하게 “하나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는 시편의 구절을 들어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예수는 “주님이신 너의 하나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로 사탄의 유혹을 꺾었다.

: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게 유혹하는 것이었다. 사탄은 이번에는 특이하게 “하나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는 시편의 구절을 들어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예수는 “주님이신 너의 하나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로 사탄의 유혹을 꺾었다. 세 번째 시험: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들을 네게 주겠다”고 한 것이었는데, 예수는 “주님이신 너희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라”는 성경 구절을 들며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사탄은 떠났고 천사들이 날아와 그를 도왔지만 사탄의 유혹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어서 사탄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신약성경 학자들은 유혹을 고난의 그리스도가 아닌 영광의 그리스도의 길을 가라는 유혹으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 유혹의 내용들이 모두 명예욕을 채울 수 있는 조건들이었기에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는 그리스도의 길을 가라는 유혹으로 해석하는 것이다.[44]

공생애 [ 편집 ]

기적 [ 편집 ]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처음 행한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 혼인 잔치에 갔다가 예수와 제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가 생겼다. 이를 안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아들인 예수에게 이에 대해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일렀고, 예수는 하인들에게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붓게 했다. 하인들이 시키는 대로 모든 물을 가져오자, 예수는 잔치를 맡은 이에게 그대로 갖다 주게 했는데,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바뀌어 있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된다.(요한 2:1-11)

마리아가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할 때, 예수는 아직 자신의 때가 아니라고 말하였다. 기독교에서 포도주는 예수의 보혈을 상징하는데, 예수가 말한 “때”와 “포도주”의 관계는 예수 자신이 십자가에 제물로 희생될 때 흘린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로 풀이한다.

산상수훈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팔복 및 이 부분의 본문은 산상수훈 주의기도 입니다.

예수께서는 초기에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모이자,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산 위에서 이들에게 설교하였다. 이 산은 갈릴레아 호수 북쪽 타브가와 가파르나움 사이에 있는 한 야산이었다고 전해져 온다. 이를 담은 내용이 마태 복음서 5장부터 7장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설교 내용은 마태 복음서 5:3-12, 즉 팔복 부분으로,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45][46]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 — 누가 복음서 6장 20-26절, 공동번역성서

이 밖에도 원수를 사랑하고 은밀히 구제하며 비판받지 아니하거늘 비판하지 말라는 등 파격적인 내용과 더불어 현재까지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인 주님의 기도가 소개된다.

비유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예수의 비유 입니다.

예수는 청중들이 알기 쉬운 비유를 통해서 가르침을 행했다. 이를테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르코 복음서 4:3-20)는 밭을 갈지 않고 그대로 뿌리던 이스라엘 농부들의 농사 방법을 소재로 하고 있다.

기적 [ 편집 ]

복음서에는 예수가 수많은 병을 고쳤다는 기적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까닭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변증하고자 하는 복음서 저자들의 신학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병들을 고친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명한 자기 증명인 것이다. 일례로 예수가 병을 고치는 그 깊이는 다른 의사들의 차원, 심지어는 인간의 차원이 아니어서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하혈병으로 고통받은 부인을 고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부인이 12년 간 병으로 고통받았지만 의사들이 고치지 못했다고 말한다.

“ 그런데 군중 속에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앓고 있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여러 의사에게 보이느라고 고생만 하고 가산마저 탕진했는데도 아무 효험도 없이 오히려 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군중 속에 끼여 따라가다가 뒤에서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손을 대자마자 그 여자는 과연 출혈이 그치고 병이 나은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돌아서서 군중을 둘러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 — 마르코 복음서 5:25-30 공동번역성서

또한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로마제국의 제국주의적 통치 즉, 로마 제국이 팍스 로마나의 유지를 위해 식민지에서 실시한 폭력적인 통치와 경제적 착취로 인해 정신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쳤다는 이야기들을 보도함으로써 예수를 정신병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치유자로도 묘사한다.

“ 그들[47]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48] 지방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셨을 때에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오다가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매어둘 수가 없었다. 쇠사슬도 소용이 없었다. 여러 번 쇠고랑을 채우고 쇠사슬로 묶어두었지만 그는 번번이 쇠사슬을 끊고 쇠고랑도 부수어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묘지와 산을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짓찧곤 하였다. 그는 멀찍이서 예수를 보자 곧 달려가 그 앞에 엎드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왜 저를 간섭하십니까? 제발 저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것은 예수께서 악령을 보시기만 하면 “더러운 악령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 하고 명령하시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군대[49]라고 합니다. 수효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을 그 지방에서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애걸하였다. 마침 그 곳 산기슭에는 놓아 기르는 돼지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악령들은 예수께 “저희를 저 돼지들에게 보내어 그 속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더러운 악령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을 내리달려 물 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사람들은 읍내와 촌락으로 달려가서 이 일을 알렸다. 동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러 나왔다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바로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이 일을 지켜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나았으며 돼지떼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동네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그들은 예수께 그 지방을 떠나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예수를 따라다니게 해달라고 애원하였지만,예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너에게 얼마나 큰일을 해주셨는지 집에 가서 가족에게 알려라.” 하고 이르셨다. ” — 마르코 복음서 5:1-19 공동번역성서

율법학자들과의 논쟁 [ 편집 ]

복음사가 누가에 의하면 예수는 이미 12살 적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그리스도는 율법학자와 토론을 벌였는데,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전승도 율법학자와의 토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느 율법학자가 그리스도에게 “진짜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는 예시를 들어 “강도를 만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를 보고도 지나쳤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간호하고 여관에 맡겨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돌보아달라고 부탁하여 보살폈다”는 비유를 말한다. 그러면서 누가 참된 이웃이냐고 묻자 율법학자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사로를 살리다 [ 편집 ]

예수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와 친분이 있었는데, 이들의 오빠가 나사로였다. 나사로가 세상을 떠나자 예수는 나사로의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무덤에 장사된지 나흘이 지난 그를 살려내서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

예루살렘 입성과 마지막 만찬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최후의 만찬 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50]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는 민중들의 환대를 받는데, 이는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로 생각해서였다. 실제로 성경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 놓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아 놓기도 하였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나뭇가지는 당시 유대교 종교 권력의 횡포로 소작농으로 전락한 이들이 재배하던 종려나무의 가지였다.[51][52]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죽음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이들의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떼어 감사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죽음이 뜻하는 바를 설명하였다.[53] 이를 그리스도의 성체제정이라고 하는데, 성공회, 정교회,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체성사, 성찬례, 성체성혈성사, 개신교에서는 성만찬이라고 부르는 성사를 성직자가 집전하여 예수의 희생적인 죽음을 기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 편집 ]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인 예수를 위험 인물로 본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은 이스카리옷 유다와 결탁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예수는 가리옷 사람 유다가 자신을 유다의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겼다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한 내막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 때 자신의 제자들 중 한 명이 자신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었다. 체포된 예수는 유대인들의 자치기구인 산헤드린 의회에서의 재판을 거쳐 본티오 빌라도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서 누가 복음서는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여 풀어주고자 하였으나, 유대인들의 압력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누가 23:14-25)

하지만, 빌라도의 총독으로서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예수를 그의 의지에 따라 십자가형에 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례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의 십자가에는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민족 지도자를 뜻하는 ‘유대인의 왕(INRI)’라는 죄패가 달렸으며 예수를 처형한 세력은 로마 제국의 공권력이었다. 더구나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환호를 받을 만큼 민중들에게 지지받는 명사였으므로 빌라도에게 그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누가는 교회가 로마 제국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지지했으나 마지 못해 십자가형에 처한 것처럼 묘사한 것으로 해석하는 일부 시각도 있다.[54] 반면에 빌라도에 대한 마이어의 연구를 보면, 당시 본디오 빌라도의 보호자 즉 후원자는 세야누스 였는데, 그는 황제에 대한 반역 음모를 꾸미다가 A.D. 31년 권력에서 물러났다. 그리하여 빌라도의 지위는 A.D. 33년 경에는 매우 약화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 시기는 바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가능성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당시의 유대인을 분노케 함으로써 황제와의 관계가 더 이상 곤경에 빠지지 않길 원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복음서의 묘사가 가장 정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55]

결과적으로 예수는 두 명의 강도[56]들과 함께 잔인한 처형 방법인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전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며 구타와 조리돌림을 당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는 십자가 모양의 형틀이 아닌 가로대를 가리킨다. 처형장에 끌려가는 도중 예수가 모진 구타끝에 체력이 다하여 쓰러지자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고 기원하셨다.'[57]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58]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59] ‘세 시쯤 되어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60] ‘예수께서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아시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성서의 예언이 이루어졌다.'[61]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62] ‘예수께서는 큰소리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63]

죽음 이후 [ 편집 ]

예수의 승천

기독교 경전인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되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12제자를 축복하고 많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하고 있으며 아래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부활과 승천에 대한 기록이다.

사료 [ 편집 ]

비기독교계 사료 [ 편집 ]

역사가 타키투스는 110년경에 쓴 《연대기》(Annalia) 15권 44장 2절에서 64년 7월 19일 네로 황제가 로마 시내에 화재가 나자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지목하고 박해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이 내용을 기술하면서 타키투스는 ‘그리스도인'(타키투스는 이를 라틴어: Chrestiani로 기록하였다.)의 이름의 기원을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때 폰티우스 필라투스(본티오 빌라도) 행정관(본티오 빌라도는 흔히 총독이라고 불리지만, 팔레스타인은 총독이 아닌 행정관이 다스리는 속령이었다.)에게 처형된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이 사악한 미신’은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비티니아의 총독으로 재직 중이던 소 플리니우스는 112년경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티니아 지방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신처럼 여기면서 성가를 불렀다는 내용이 존재한다.[64][65]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는 120년경 《황제들의 생애》(De vita caesarum)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의 한 부분인 〈클라우디우스의 생애〉 편에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49년에 크레스투스의 사주로 인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크레스투스가 가리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설이 현재 가장 유력하다. 참고로 수에토니우스가 말한 이야기는 사도행전에도 나오는데, 누가에 의하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고린토로 이주한 유대인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자신들처럼 천막 제작 노동자인 바울과 같이 일했다고 한다. 갈릴리 지방의 유대인 독립군 사령관으로 있다가 전세가 기울자 로마군에 투항한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De bello Judaico)에서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를 돌로 치는 형벌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유대교의 《탈무드》 〈산헤드린〉에는 예수는 마술을 써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배교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66]

기독교계 사료 [ 편집 ]

예수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 기독교계 사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예수의 전승을 해석한 글들인 신약성서이다. 기독교에서는 이중 공관 복음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은 공관 복음서가 예수의 언행을 가장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 다음으로 예수의 정체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담은 요한 복음서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수의 언행은 한 세대 또는 두 세대 동안 구전 과정을 거쳐 기록되었다.[64] 복음서는 단순히 과거의 예수의 역사가 아니며, 그를 구세주로 믿은 고대교회의 신앙고백이 반영되어 있다.[66][67]

이에 같은 사건을 언급해도 복음서마다 다르게 묘사하는데 베드로가 “너희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예수의 질문에 답했다는 이야기의 경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너라는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며 크게 칭찬하셨다고 매우 좋게 묘사하는데, 예수께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셨다는 메시아 비밀 사상을 갖고 있던 복음사가 마르코[68]는 “주님은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아무에게도 이를 말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며 간락하게 묘사한다. 또한 예수께서 하혈병에 걸린 부인을 고쳐주셨다는 기적 이야기도 마태는 부인의 믿음을 강조하는 반면, 마르코는 부인이 얼마나 질병으로 고통받았는지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이렇듯 복음서는 예수의 전승을 그대로 받아적거나, 예수의 행적을 연표처럼 시간 순으로 적거나, 예수의 행적을 직접 보고 쓴 게 아니라, 예수의 전승을 자신들의 신학에 따라 편집한 복음서 저자들의 신학자로서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다.[69] 복음서에는 예수에 관한 전승 그러니까 교회를 통해 내려온 예수의 이야기가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어 있기는 하나, 그것의 내용이 교회의 여러 활동에 적합하도록 형성되어 왔을 가능성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교회의 여러 활동뿐만 아니라 전승 담당자의 사회적 상황이 복음서 형성에 영향을 끼친 일에도 주목하고 있다.[66]

1세기 종교운동 [ 편집 ]

학자들은 1세기초의 종교적 배경을 예수의 삶에 대해 재조명했던것으로 생각한다.

바리새파는 1세기 유대 공동체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이었다. 마태 복음서에 따르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엄격하게 율법을 해석하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2차 성전 건축 이후 성전에서 쫓겨난 레위 지파 후손들로 70년 로마-유대 전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대교 유파로 성전 없는 유대교를 시작하였다.

사두개파는 특히 예루살렘에서 강력했다. 그들은 모세5경만을 인정하였으며, 이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인정되는 사후세계에서의 징벌. 신체의 부활, 천사나 영혼같은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장으로 귀족은 신분을 유지했고, 로마제국에 협력하여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으며, 정치사상에서는 당연히 보수주의자들이었다. 70년 예루살렘 함락으로 성전 파괴 이후 살아남은 이들은 바리새파에 흡수되었다.

에세네파는 2차 성전 건축 이후 쫓겨난 진보적 레위지파 후손이었다. 성전에 바리새파와 경쟁적 과계를 유지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을 타락한 곳으로 여긴 진보적인 유대교 유파었다. 이들은 수도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이들이었다. 금욕적 종말론자들로 신약성서에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으나 젤롯파(열심당)의 소개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젤롯파가 급진적인 에세네파의 공동체였다. 반로마제국 입장으로 인해 70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로마군에 의해 철저히 제거되었다.

연구 및 관점 [ 편집 ]

기독교적 관점 [ 편집 ]

주류 기독교의 그리스도론 [ 편집 ]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교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외아들인 동시에, 피조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며, 마리아에게 혈육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고 믿는다.(니케아 신경/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칼케돈 신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칼케돈 신경과 에페소 신경에서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었다는 네스토리우스의 견해에 반대하여, 예수를 하나님이자 인간으로 고백한다. 결국 기독교의 관점에 따르면 예수는 신이면서 신의 아들이자 인간인 존재인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적 예수론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역사적 예수 입니다.

근대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예수를 윤리적 모범으로 이해했다. 실례로 토머스 제퍼슨의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인생에서 축귀, 치병, 부활처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부분들은 제외시키고, 산상수훈처럼 도덕적인 가르침들만 담아낸 것이었다. 이는 그들의 도덕적 이상을 예수에게 투영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그리스도론은 예수에게서 모든 기적들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지우고 한 도덕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이 로마 제국의 체제 선전 수단인 황제 숭배에 반대하기 위해서라 주장한다. 로마제국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는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여 황제 숭배에 반대했다는 것이다.[70] 또한 이들은 복음서를 쓴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이 하나님, 그리스도, 메시아, 주님, 복음 등 로마 제국이 체제 선전에 사용하던 말들을 예수에게 결합해 로마 제국이 아닌 예수에 대한 복종을 선언했다고 본다.[71] 또한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반국가 종교로 규정하여 탄압한 것도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급진성 때문이었다고 본다.[72] 이들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시대에 사는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복음서의 정치, 사회적 배경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가 한 말과 행동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지 깨닫지 못한다고 주장한다.[73]

역사적 예수론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그리스도론이라 할 수 있는데, 현대 기독교에서는 성공회 신학자들인 톰 라이트 주교와 존 셸비 스퐁 주교, 마르크스주의를 역사적 예수 연구방법으로 도입한 진보적 신학자 리처드 호슬리, 성공회 신학자 마커스 보그, 로마 가톨릭 신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 등의 신학자들에 의해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의 삶을 복원하려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대교적 관점 [ 편집 ]

유대교적 관점에서는 신은 여호와 뿐이라는 유일신 교리에 따라서, 예수를 하나님의 외아들 또는 하나님으로 보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예언자라고 본다.

이슬람교적 관점 [ 편집 ]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유수아(يوسع) 또는 이사(عيسى)라고 하며, 예수를 하나님(알라) 또는 그의 독생자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들은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고 부르며, 인류에게 내려진 하나님이 보낸 가장 중요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성사(聖使)로서 존경한다.

이슬람교도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라고 믿는 꾸란에는 예수가 신의 명령으로 마리아의 몸을 빌어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예수는 그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허가”를 받아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바와 달리 누구에게도 살해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린 적도 없었고 다만 천국으로 들려 올려졌다고 한다. 이슬람 전통에 의하면 예수는 “심판의 날” 전에 다시 지상에 내려와서 정의를 회복하고 적그리스도를 물리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 40년을 지상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이슬람의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도 한사람의 무슬림으로 여겨져왔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올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사람들에게 설교했다고 한다.

이슬람에서는 “신과의 협동”이라는 개념을 엄격히 금지하고 “유일신”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른바 독생자와 성육신의 기독교 교리를 거부하고, 예수가 다른 예언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신성하게 선택되었던 “사람”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꾸란에서는 처녀잉태를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아담과 하와의 창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꾸란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호칭하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상을 구원할 자”라는 의미의 메시아와는 다르게 “신의 은총을 받은 자”의 의미이지만, 근본적으로 세상을 구원할 때 강림하는 역할은 같다.

힌두교적 관점 [ 편집 ]

예수는 에아사(Easa)라는 이름으로 힌두교 성전에 등장한다. 이 이름은 이슬람교에서의 예수의 이름 중 하나인 이사와 같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칼리 유가가 삼천 살이 되던 때에 후나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예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자로서 신의 아들로 여겨졌다.[출처 필요] 힌두교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에아사 마시하(Easa Maseeha:예수 메시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힌두교에서 예수에 대한 믿음은 다양하다. 크리슈나 의식국제협회에서는 예수를 크리슈나의 사랑을 받은 아들로서 신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여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여긴다. 산트 마트는 예수를 사트구루로 여긴다. 라마크리슈나는 예수를 신이 육화된 것으로 여긴다.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예수를 찬미하고, 그를 힘의 원천과 완벽함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예수를 엘리사의 재육화이며, 엘리야의 재육화인 세례 요한의 학생이었다고 가르친다.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를 그의 주된 스승 중 하나로 여겼으며 예수로부터 비폭력 저항 운동의 영감을 얻었다.

각종 논쟁 [ 편집 ]

외모 [ 편집 ]

외모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현재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전통에 따라 외모의 차이가 있다. 동방교회 지역 성화인 이콘의 예수 모습은 작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정해진 규칙에 따라 그리며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이콘에는 셈족 특성이 남아서 짙은 피부색에 갈색 머리카락, 눈동자 모양, 옷 색상과 모양 등의 기준이 있다.

이와 달리 12세기 이후 서방교회는 이콘 제작 전통을 따랐으나 점차 이콘 화풍에서 벗어나면서 예수의 얼굴은 서유럽인들 특히 라틴 계열 인종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인종 모습이 기준이 되었다. 게르만족이 기독교화하면서 독일, 영국,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인종 모습의 예수상도 나타났다.

예수의 실제 초상화가 전해지지 않아 모습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흔히 서유럽 지역의 그림인 연한 갈색이나 금발을 하고 파란 눈을 그린 예수화는 원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예수의 혈통이 고대 이스라엘 다윗 계열이고 직업이 목수였다는 점에서 샘족 특성을 지녔을 것으로 짐작한다. 검은 색에 가까운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 백인과 흑인 중간의 피부색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존 여부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예수의 역사적 실존 입니다.

예수의 실존 여부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실제로 신의 아들이었느냐는 신학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 혹은 누군가가 예수라는 존재를 허구로 만들어 내었다는 주장은 큰 지지를 받지 못한다.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은 복음서의 특정 일화들과 그에 서술된 연대, 그의 신격에 대해 거론된 신학적 이슈들에 관한 토론을 통해서 검증되어야 한다. 또한 성경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나 그리스 로마의 자료 등 다수의 역사적 비기독교 자료들 또한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관한 분석에 이용된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의 세례와 그의 십자가형을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로버트 반 브루스트(영어판)에 의하면 비기독교파에 의해 제기되어온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 논란이 되어 왔지만, 많은 학자들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하고, 고전 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와 성경학자들 또한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논박하고 있다. Walter P. weaver와 그의 학자들은 예수의 존재를 부인하는 활동들이 기술적인 범주 안에서나 이외의 어떤 식으로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었던 것으로 기술한다.

1세기 로마 역사학자인 요세푸스(Josephus)와 타키투스(Tacitus)를 포함한 비기독교인들의 자료들도 예수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사용된다. 요세푸스(Josephus) 학자인 루이스 펠드만(영어판)은 요세푸스의 ‘역사적 예수의 존재 여부에 관한 언급’에 대해 “소수만이 그 진정성에 관해 의문을 가져왔다(few have doubted the genuiness)”라고 진술하여 오직 소수의 학자들에 의해서만 예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논점이 되었다고 기술했다. 바트 D. 어만은 예수의 존재와 그에게 집행된 로마에 의한 십자가형에 관해 요세푸스와 타키투스를 포함한 다양한 자료에 의해 입증된다고 서술한다.

예수의 역사적 인물로서의 존재 여부는 그의 신성과 인성이나 그의 존재가 사람인지 또는 신인지의 신학적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급진적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특별히 예수의 존재 여부를 초자연적인 힘이 그에게서 나오는지, 또는 기독교 복음이 정확한지는 별개의 문제로 구분하고 있다. 도킨스는 비록 그의 견해가 복음의 문제에 관해 신뢰하지는 않지만, 예수의 존재 여부에 대해 부인하지는 않는다. 또한 비평가인 조지 알버트 웰스(영어판) 역시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한 적 없는 인물이라 주장했지만, 이후에 그는 견해를 바꾸어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를 부정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예수의 존재 여부는 전혀 논점이 아니었고 그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 온 적은 없었다. 초창기 기독교인들 사이에 그리스도 단성설, 그리스도 가현설, 네스토리우스의 교의와 같은 예수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관점의 차이는 존재해 왔지만, 그것은 기독교 교리에 관한 논쟁이지 예수의 존재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 소수의 현대 학자들이 예수가 존재한 적 없는 인물이라 주장하기는 하지만 그 견해는 뚜렷히 비주류이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의 존재를 기독교가 만들어냈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참고 [ 편집 ]

출처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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