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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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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유재하 여자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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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사망이유(사망원인), 유재하 여자친구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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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사망이유(사망원인), 유재하 여자친구 러브스토리

라디오스타 유재하 특집이 방송되면서 유재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재하 라디오스타 특집은 <유재하이기 때문에...>로 꾸며졌는데요. 작곡가 장기호, 피아니스트 김광민, 조규찬, 박원이 등이 게스트로 출연을 했습니다. 이날 출연한 게스트들은 유재하와 관련된 인물들로 유재하와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유재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재하 프로필

유재하 생몰 1962년 6월 6일 ~ 1987년 11월 1일(유재하 기일) 유재하 나이 향년 26세일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재하 학력은 한양대학교 작곡가인데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꿈을 다 펼쳐보기도 전에 생을 거두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유재하는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로 1987년 2집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요. 유재하의 유작이 된 이 작품은 훗날 영향과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가요계의 전설로 남아 있는 가수이자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유재하가 안타깝게 사망을 했기 때문에 그의 음반이 더 주목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그가 만약에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정말로 더 좋은 앨범, 더 좋은 노래를 만들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유재하 집안과 유재하 아버지

유재하 고향은 경상북도 안동시입니다. 3남 3녀 중에서 다섯째로 태어났는데요. 1981년 대일고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 진학을 했지요. 유재하는 음악 천재라고 불릴만큼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 그리고 편곡 그리고 다양한 악기에 능통을 했습니다.

장기호에 따르면 유재하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술을 마시다 돈이 떨어지면 집에서 돈을 가져와 더 마실 정도로 애주가였다>라고 말을 했지요. 유재하 집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요. 유재하의 보이는 이미지는 그렇게 부유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을 했는데, 유재하 집안이 사업을 해서 부유했다고 하면서, 유재하 집안이 재벌에 가까웠다고 말을 했습니다. 장기호 曰 <내가 알기론 아버님이 탄광을 하셨다고 알고 있다. 집에 한 번 초대를 받아 갔더니 다 수입 가구였다. 우리나라에도 저런게 있냐고 물었더니 스페인에서 온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유복한 친구가 검소하게 하고 다니는구나 싶어 놀랐다>고 고백을 했지요. 유재하 삼천리 자전거라는 말도 있는데요. 그 이유는 삼천리가 자전거 회사이고, 창업주가 유씨라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재하 아버지 또한 자전거 사업도 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지요.

유재하 아버지는 유재하가 사망한 후 아들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음반수익과 성금을 기탁하여 <유재하 음악장학회>를 설립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조규찬, 유희열, 고찬용, 김연우, 정지찬, 나원주>등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유재하 집안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유재하 여자친구 러브스토리, 한 여자만 사랑한 낭만적인 남자

유재하 여자친구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요. <유재하의 모든 곡은 한 여자를 위한 노래라고 합니다.> 김광민이 이에 대해서 말을 해주었지요. <유재하 노래에 등장하는 여인은 단 한명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녀는 유재하의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플루트를 하시는 분이었다. 유재하의 1집 플루트 연주를 하신 분이 바로 그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유재하에게 사랑은 오직 그 뿐이었다. 유재하의 여자는 단 한 명이다. 진짜 엄청 좋아하더라>라고 유재하의 진솔함을 전했습니다. 유재하가 만약 지금까지 살았있다면, 유재하 여자친구였던 그 분과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 같습니다. 유재하가 음악으로 표현한 사랑 이야기는 그녀를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유재하는 정말 낭만적인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재하 사망이유(유재하 사망원인)

음악 천재 유재하의 사망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음반 발표 해인 1987년 활동을 열심히 하려던 차에 이런 사고를 당했는데요. 1987년 11월 1일 새벽 3시 27분 경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강변북로 근처에서 술에 취한 친구 성모씨가 몰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마주오덕 택시와 정면 출동을 하여 사망을 했습니다. 유재하는 차밖으로 튕겨져 나가 즉사할 정도로 대형 사고였다고 하는데요. 유재하 교통사고 사망원인이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유재하가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애주가였는데, 이날도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셨다고 알려져 있지요. 결국 술 때문에 이렇게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재하는 젊은 나이에 단 한 장의 앨범을 남겼지만, 그 앨범은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 유재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음악이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지요. 유재하의 노래는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해서 부르며 아직까지도 대중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유재하의 유작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2007년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목록에서 2위를 차지 할 정도로 훗날 큰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요. 과연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고 한다면 또 얼마나 좋은 노래, 좋은 음악을 들려줬을까? 하는 생각에 故유재하의 사망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하늘나라에서 아직도 자신의 노래가 대중들에게 불리고, 명곡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너무나도 기뻐하고,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재하 노래가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들려지고, 사랑 받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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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여자친구 그리고 사망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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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라는 가수를 많이 들어보셨을 껍니다. 얼마전 무도 에서 유희열씨가 언급하시기도 하였지요

10대 여러분중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스치면서라도 들어 보셨을 분이 바로 가수 유재하

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가수 몇분이 계시지요, 김광석, 유재하, 김현식 이렇게 3분이 계십니다.

가을쯤, 이맘때쯤이면 거리를 걷다보면 종종 이분들의 노래가 들리기도 합니다.

이 3분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쉽게도 단명하신거구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로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계시며 그들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다는 겁니다.

오늘은 그들중 유재하 씨 대하여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간략하게 프로필을 기재해 보겠습니다.

이름 : 유재하

생년월일 : 1962년 6월6일 ~ 1987년 11월1일 (향년25세) 호랑이띠, 쌍둥이자리

학력 : 한양대학교

유재하씨는 1987년 11월1일에 자신의 첫앨범을 발매한지 석달만에 새벽녘 서울의 강변도로에서

교통사고로 향년 25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아직 명확하게 알려진 이야기는 없지만,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운전을 했던분이 유재하 씨가 아니라

술을 좋아했던 자신의 친구가 핸들을 잡고 음주운전을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망원인은, 사고 당시의 유리파편이 사망원이라고 하네요, 아마도 지금 처럼 기술의 발전이

안된시기이기도 하고 2중접착식 유리가 아니라서 사고시 유리파편이 인체에 결정적인 데미지를

입힐수 있는 요건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요즘에 출시되는 차량은 차량의 유리가 충격으로 파괴되었을때 인체에 데미지를 입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유리와 유리사이에 필름같은게 들어있어서 날카로운 면으로 파괴 되는게 아니라 작은 모래알

처럼 파괴가 되는데, 그때 시절의 차량은 어땠는지 알수가 없네요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셨던 분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떠나실줄 누가 알았을까요?! 살아계셨다면

지금도 그를 존경하는 후배들과 팬을 위해서 더 많은 노래를 남겨 주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직도 그의 헌정앨범은 후배들이 그를 기리면서 발표하듯이 그가 남겼던 노래가 가슴에 남아 있네요

유재하시가 돌아가신후 그의 여자친구였던 애란씨 는 그를떠난 슬픔에 한국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떠난곳에서 1년이 되는날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그리운 마음에 강변가를 거닐다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유재하씨의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절실한 마음에 하늘에 계신 유재하씨가 들려주신 노래가 아닐까 싶네요

사랑은 그런거 같습니다. 그리움에서 시작되서 다시 그리움으로 남는거요…!!

11월1일 유재하 씨 을 사랑했던 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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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형이 말하는 故유재하…”애주가에 음악 자존심 강했죠”

유재하 사망 30주기…”볼에 뽀뽀하고 나간게 마지막…30년 흘러도 애통” “연인 떠올려 만든 1집…장르는 크로스오버라고 했죠”

유재하 사망 30주기…”볼에 뽀뽀하고 나간게 마지막…30년 흘러도 애통”

“연인 떠올려 만든 1집…장르는 크로스오버라고 했죠”

세상을 떠난 지 30년된 ‘비운의 천재’ 유재하 [엠넷닷컴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싱어송라이터 고(故) 유재하의 2살 터울 형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1987년 10월 31일 오후 5시 30분께, 어둑해질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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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잠시 나갔다 올게. 가수 됐다고 동창이 찾아왔는데 빨리해치우고 올게~.”

평소에도 다정다감했던 동생은 수술을 받고서 칩거하던 형의 볼에 뽀뽀하고 문밖을 나섰다. 그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유재하는 이튿날인 11월 1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단 한 장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낸 지 약 3개월 만이었다.

그렇게 그가 떠난 것이 벌써 30년 전.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죠. 여전히 애통하고요. 가족들은 당시 화장도 못하겠어서 동생을 천주교 용인 공원묘지에 묻었어요. 세월이 흐르고 재하의 목소리가 담긴 앨범 한 장만 남았는데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리마인드를 해요. 재하와의 기억을 통해 힘을 얻고요.”

형 유 모(57) 씨는 부친이 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음반 수익과 성금을 기탁해 설립한 ‘유재하 음악장학 재단’의 실무를 맡고 있다. 1989년부터 시작된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도 물밑에서 묵묵히 돕고 있다.

유 씨는 3일 전화 인터뷰에서 “30년이 흐르는 동안 동생을 기억하고 조명해준 많은 분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애통함에 비영리 재단까지 만든 부친이 동생이 떠난 지 2년도 채 안 돼 돌아가셔서 사실 집안이 풍비박산 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하지만 좋은 평가를 들을 때마다 아흔 살 노모와 가족은 동생이 기특합니다. 죽어서도 착한 아이입니다.”

유재하는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바로 위에 형이 유 씨였다. 둘은 ‘쿵 짝’이 잘 맞았다. 서울 삼성교 인근 한옥에 살 때도 둘이서만 사랑채를 썼고, 대학로 양옥집으로 이사했을 때도 함께 2층에 살았다.

유 씨는 “내 바로 위에 형과 14살 차이가 나 둘이 친했다”며 “동생은 순진하고 어수룩한 구석이 있어서 몸이 아픈 내게도 잘 의지하는 귀염둥이였다. 사랑스럽고 늘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스물다섯 나이에 명반 한장 남기고 떠난 유재하 [씨엔엘뮤직 제공=연합뉴스]

동생과의 살가웠던 시간은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라고도 했다.

형과 달리 동생은 애주가였다.

“선친이 약주를 좋아하셨는데 집안 내력인지 제가 동생에게 ‘술을 366일 먹느냐’고 잔소리를 하곤 했죠. 재하는 싸고 독한 40도짜리 쥬니버 드라이진을 좋아했어요. 전 한잔도 못 하겠던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1시간 반이면 700㎜짜리 한 병을 다 비웠죠. 그것도 ‘스트레이트’로요.”

유 씨는 “칵테일처럼 섞어 먹으라고 토닉워터나 주스를 사다 주곤 했다”며 “재하가 세상을 떠나고 유품을 정리하는데 옷장에서 한 병도 따지 않은 채 나오더라. 내가 섭섭할까 봐 ‘왜 이런 쓸데없는 걸 사오냐’고 하지 않고 ‘고마워, 형’이라고는 옷장 속에 넣어둔 것이다. 배려하는 마음이 컸다”고 기억했다.

음악적인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초등학교 때 아코디언과 첼로를 연주했고 5학년 때부터 기타를 붙잡고 살더니 중학생이 되자 형 눈에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잘 치더라”고 했다. 집안에 음악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 2등을 했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

“사실 전 음악 소양이 부족해서 잘 몰라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다니던 경희대 캠퍼스에서 동생을 우연히 만났죠. 음악 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왔다길래 따라가 보니 재하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돼 있더군요. 그래서 ‘잘하나 보다’ 했어요.”

한양대 작곡과 출신인 유재하는 대학생이던 1984년 조용필의 밴드인 ‘위대한 탄생’ 키보드 주자로 활약했다. 1986년 그룹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객원 멤버로도 활동했다.

1987년 발매된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 재킷

꿈도 가수가 아닌 프로듀서였다. 20대 초반, 그는 30년이 흘러서까지 명곡으로 조명되는 곡들을 만들었다. 형은 ‘그대 내 품에’는 20~21살, ‘사랑하기 때문에’는 22~23살, 이문세의 3집 곡인 ‘그대와 영원히’도 그 언저리에 만든 노래라고 기억했다.

유재하의 대표곡인 ‘사랑하기 때문에’도 조용필의 7집(1985년), ‘가리워진 길’도 김현식의 3집(1986년)에 먼저 실렸다. 그러나 다른 자작곡들이 이들 가수의 음악 스타일과 달라 반영되지 않자 그는 직접 불러 발표하기로 했다.

9곡 전곡을 작사·작곡·편곡한 1집은 발매 당시 반응이 시들했다. 클래식 작법이 접목되고 팝과 록이 가미된 사운드, 리듬과 엇박자인 보컬, 바이브레이션 없이 담백한 음색때문에 ‘음정이 불안정하다’, ‘음악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 씨는 “재하가 송창식 씨처럼 가창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스스로는 대중성을 고려해 만들었지만 어렵게 들리는 탓에 반응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제가 재하에게 ‘장르가 뭐야?’라고 물으니 ‘음악에 장르가 어딨어. 뭐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크로스오버랄까’라고 하더군요. 그런 ‘장르도 있니?’라고 하자 ‘나 같은 장르’라며 웃었어요. 음악적인 자존심이 무척 강했죠.”

1집의 모든 곡은 당시 교제하던 여자 친구를 떠올려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에겐 약혼식은 안 했지만 양가 집안이 인정하는 음대생 연인이 있었다.

유 씨는 “저한테는 말 안 했지만 아마 (여자 친구를 생각하며 만든 곡들이) 맞을 것”이라며 “그 시절에는 남자들이 여자 친구한테 몰입하는 걸 가족에게 잘 얘기 못 하는 촌스러운 정서가 있었다. 재하가 앨범에 ‘그대와 영원히’를 넣지 않았는데 아마 콘셉트대로 풀어나갈 때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리마스터링 앨범 재킷

그러나 그의 사후 이 앨범은 가요사에서 팝 발라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칭송을 받으며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신승훈, 유영석, 김광진, 김동률 등 수많은 뮤지션이 그의 영향을 받아 데뷔하거나 음악 기법에 존경을 표시했다.

지난해 27회까지 열린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는 조규찬, 유희열, 김연우, 루시드폴, 스윗소로우 등 300여 명의 걸출한 뮤지션이 배출됐다. 그리고 그에게는 ‘비운의 천재’, ‘싱어송라이터의 대명사’란 수식어가 붙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미발표곡은 남아있지 않다.

유 씨는 “동생이 대략 5년간 11곡을 썼다”며 “안타까운 건 뮤지션들이 보통 서른 살이 넘으면 음악에 대한 통찰력이 생겨 좋은 곡들을 많이 쓴다던데 너무 일찍 떠났다. 살아있었더라도 자존심이 강해 완성도에 못 미치면 절대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30주기를 추모하는 움직임은 이미 첫발을 뗐다.

매월 열리는 ‘유재하 30주기 추모 릴레이 동문 음악회 공연’이 지난달부터 시작됐고, 추모 앨범과 유재하 동문회 구성원들이 총출동하는 합동 공연도 준비 중이다.

유 씨는 “뮤지션 등 많은 분에게 인정받은 동생이 대견하고 추모에 동참해주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를 매년 열면서 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나이인 출전자들을 보면 이런 소망을 갖게 된다. 이 대회를 통해 정말 뛰어난 뮤지션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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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유재하와 김애란 필연 갑경정축

-유재하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의 노래실력이 아닌 그때 당시 뽕짝 노래 틀을 깨고 클래식과 섞어냈다는 거지요 오히려 노래실력은 가창력이 부족하다고 방송에 못나올뻔 했다고 들었습니다

-단 한장의 앨범..단 한번의 방송출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래들은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그의 이름을 딴 음악제가 생기고 30년이 지나도 11월만 되면 그가 생각나는건 ..그가 얼마나 위대하고 천재적인 싱어송라이터였음을 알수있다..

꿈꾸는듯한 몽환적? 환상적인 느낌이 나지 않나요? 첫 부분 듣자마자 노란 개나리꽃이랑 유채꽃으로 둘러쌓인 꽃밭에서 나비가 날아오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목소리에 꾸밈없고 진솔한 감정과 절절한 애정이 느껴져서 너무 좋아하는 명곡이죠.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고요^^

초딩 소꼽친구 출신이고 당시 지금처럼 공학학교가 거의없어서 중고등은 갈라지고 대학에서 다시만났습니다. 그이후는 작성자님 말 그대로… 전연인분도 아주 잘살고 계십니다. 가사에” 다시 돌아온 그댈위해” 파트가 대학에서 몇년만에 다시만난 감회를 표현한거라고 들었네요. 너무 아름다운노래~^^

유재하의 인생은 그야말로 영화인데요 유재하는 플롯을 담당하는 김애란이라는 분과 사귀었는데요 대학교때 반해 사귀었는데요 여성분이 유학을 가는등 균열도있었지만 무려4년이나 만났고 유재하의 명곡들은 이여성분 한분만을 위한곡이라고 하네요 이분도 남자친구를 위해 주변인을 통해 홍보도 열심히했지만 이관계는 어처구니 없이 끝나는데요 바로 유재하가 25살이라는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했기 때문입니다.그후 여성분은 충격을 받아 은둔생활을 하는등 울기만했는데 여성분의 부모님이 여행이라도 가라며 추천 스위스로 여행을 갔는데 바로 이노래인 사랑하기때문에 가 나왔다고하네요 마치 고마웠어 나같은남자를 4년이나 사랑해줘서 그리고 미안해 먼저떠나서 하지만 이제 나를 잊고 너의삶을 살아줘 그럴거라고 약속할수있지 와 같았다고 하네요 평론가는 유재하가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ㅜ남아있는 비결은 그의능력 아픈사랑 그리고 한여자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면이라고 하네요

유재하의 러브스토리를.Araboja

유재하의 여자친구는 서울대에서 플룻을 전공하였고

연인은 음대 연합 동아리같은 곳에서 만났고

유재하가 혼자 여자를 많이 좋아했어. 그래서 노래도 만들고

피아노가 있는 카페에서 <그대 내품에>를 부르며 프로포즈도했어

한번 들어봐 이노랜 도입부가 너무좋은것같아 

음반 안의 모든 곡들이 사귀면서 만든 곡들이야

<우울한 편지>같은 곡은 기사에도 났지만,그녀가 보내준 편지를 받고 다시 곡으로 쓴것이고

개인적으로 이노래가 제일좋은것같아 우울하고 노래가사도 너무좋고 플룻소리가 가슴을 울리는것같아

<가리워진 길>은 故김현식 먼저 부르셨는데,재하님이 그곡을 주시면서 요구한게있는데먼저 몇소절은 좀 냉정한듯 불러달라

그 노래를 김현식씨가 녹음하던때가 헤어지고

너무 보고싶어 미국까지 갔다. 뉴욕에서 건 전화에 그 분이 직접 받았으면서도 그런

사람 없다 한걸로 들었어 그후로 솔로음반 준비를 하셨고,<가리워진 길>을 직접 불렀어

정말 앞의 몇소절은 약혼녀에 대한 원망어리게 부르듯이 느껴지기도해

하나는,

유재하 음반에서 플룻을 연주한 김애란氏이 약혼녀였단 것이야

유재하와 봉준호, 두 천재가 만난 아련한 순간

피아노를 잘 치던 남자, 그에겐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음대 연합 동아리에서 만난 여자였는데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녀를 떠올리며 노래를 만들었다. 그 노래로 사랑을 고백했다. 완곡한 거절의 답변이 돌아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백하고 또 고백했다.

2년이 지나 그는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답장을 받았다. 떨리는 가슴으로 천천히 봉투를 뜯었다. 우울한 편지였다. 남자는 여자와 꿈에 그리던 연인이 됐다. 하지만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다 여자는 끝내 그의 곁을 떠났다. 멀리 유학을 떠난 것이다. 술과 눈물을 삼키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고통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곳은 군대뿐이었다. 제대하고 떠나간 연인을 만나겠다며 비행기에 올라도 봤지만 결국 그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썼던 곡들로 앨범을 내기로 했다. 누군가 그의 소원을 들었을까.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노래하는 그의 옆에서 플루트를 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낙담의 나날이 이어졌다.

평소 가지 않던 동창회에 들른 남자는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가 운전하던 차에 올라탔다. 차가 흔들거리더니 중앙선을 넘어섰다. 맞은 편에서 택시가 달려오고 있었다. 남자와 미래를 꿈꿨던 여자는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매년 11월 1일이면 우리는 유재하(1962~1987)가 남긴 노래를 꼬박꼬박 듣는다. 데뷔 앨범이자 유작인 ‘사랑하기 때문에’(1987)에 담긴 아홉 곡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의 음악이 위대할 예술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출중한 재능보다 용암보다 뜨거운 사랑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가 살아 있었어도 그보다 훌륭한 곡은 만들었겠지. 그렇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곡을 다시 쓰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첫사랑의 강렬한 감정처럼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한번 지나가고 나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실제로 그가 남긴 아홉 곡은 모두 한 여인에 대해 쓴 것들이다. 6년여에 걸친 절절한 사랑이 불멸의 걸작을 만든 셈이다. 유재하의 노래를 사운드트랙으로 쓴 영화를 찾긴 쉽지 않은데 ‘살인의 추억’(2003)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뻔한 재능의 감독이었다면 유재하의 노래를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장면에나 끼워 넣었을 테지만 봉준호 감독은 달랐다. 그는 무시무시하게도 연쇄살인의 주제가로 ‘우울한 편지’를 사용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됐던 곡이라니. 엽서에 쓰인 글귀는 이렇다. ‘태령읍에서 외로운 남자가 보냅니다. 비 오는 밤 꼭 틀어주세요.’

늦은 밤 달빛밖에 없는 산 속 무덤가에서 단아하게 처량한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땐 소름이 돋는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도 굉장히 기묘하면서 탁월한 선곡이라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경이롭다. 유재하가 연인에게서 처음 편지를 받고 그 때의 심정을 담아 쓴 재즈풍의 이 노래는 편지의 실제 주인공이 연주하는 플루트 소리로 시작해 유재하의 재즈 피아노로 이어진다.

‘일부러 그랬는지 / 잊어버렸는지 / 가방 안 깊숙이 / 넣어 두었다가 / 헤어지려고 할 때 / 그제서야 / 내게 주려고 쓴 편질 꺼냈네 / 집으로 돌아와서 / 천천히 펴보니 / 예쁜 종이 위에 / 써 내려간 글씨 / 한 줄 한 줄 또 한 줄 / 새기면서 나의 거짓 없는 맘을 띄웠네 / 나를 바라볼 때 눈물 짓나요 / 마주친 두 눈이 눈물 겹나요 /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 서로를 믿어요’

장조와 단조를 오가는 독특한 형식에 재즈에서나 쓰는 코드 진행인데도 매우 편하고 자연스럽게 들리는 오묘한 곡이다. 작은 몸집인데도 가벼운 손동작 하나로 적을 쓰러트리는 무림의 고수가 떠오른다. 원작인 연극 ‘날 보러와요’에서 나오는 모차르트 레퀴엠 대신 이 곡을 고른 건 봉 감독이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1980년대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난 가수의 음악을 써야 더 아련한 느낌이 나지 않을까 싶었고 알 듯 말 듯 대중적이지 않은 노래를 써야 노래를 신청한 박해일 캐릭터에 잘 맞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우울한 편지’ 외에 장현의 ‘빗속의 여인’,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 등도 나오는데 그 노래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울한 편지’만큼 비 오는 밤의 스산한 풍경에 잘 어울리는 곡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 덕에 ‘우울한 편지’는 ‘지난 날’과 ‘사랑하기 때문에’에 필적하는 인기를 얻게 됐다. 영화도 유재하의 음악에 적잖은 덕을 봤다. 유재하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봉 감독은 이 영화에 다른 음악을 썼겠지. 그랬더라도 그 장면이 지금처럼 소름을 끼치도록 할 수 있었을까.

고경석기자 [email protected]

☞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 듣기

☞ 유재하의 유일한 방송 출연 모습으로 KBS ‘젊음의 행진’에서 부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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