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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박한 임현수 목사. 북한 군인의 ‘앉아, 일어서’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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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무기형 복역하다 31개월 만에 풀려난 임현수 목사 – 신동아
임 목사는 오래전부터 ‘북한 선교의 큰손’으로 통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1986년 캐나다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州) 미시소거 …
Source: shindonga.donga.com
Date Published: 6/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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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수 목사 “수년 내 갑자기 통일 올 것… 심판 머지 않아”
제2회 글로벌 복음통일 전문 선교대회가 9일(현지 시간)부터 미국 하와이 코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회장인 임현수 목사(토론토큰빛교회 원로) …
Source: www.christiandaily.co.kr
Date Published: 5/6/2021
View: 3204
북한 억류 ‘949일’ 임현수 목사 “내게는 오직 주님 밖에”
한편, 임현수 목사는 대한신학교(현 안양대학교) 졸업 후 CCC 간사로 전임사역을 하다 1985년 캐나다 토론토대학 녹스칼리지(Knox college)에서 대학원을 …
Source: www.ecumenicalpress.co.kr
Date Published: 7/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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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토론토 목사의 감옥살이 이야기 – 월드코리안뉴스
임현수(61) 목사는 북한 평양 감옥에 1년 이상 구속돼 있고, … 한국에 연락해 전 목사의 학력 등을 확인해보니 그는 진주 학창 시절 성적이 뛰어난 …
Source: www.worldkorean.net
Date Published: 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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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수 목사는 순교를 각오하고 끝까지 버텼어야 했나?
김병로 교수의 발제를 놓고 성훈경 목사(TWR 북방선교방송 대표)가 토론했다. 정종기 목사는 “임현수 목사가 61세라는 나이에 무기노동교화형을 얼마나 …
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5/23/2022
View: 7611
임현수 목사에게 침묵을 허하라 – NEWS M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임현수 목사(토론토 큰빛 교회)가 7개월 여 만에 모습을 보인 기자회견장과 평양 봉수교회에서 ‘참회’를 했다. 임 목사는 “내가 …
Source: www.newsm.com
Date Published: 2/24/2022
View: 3383
임현수 목사는 왜 북한에 억류되었나 – 뉴스앤조이
1996년도부터 북한에 드나들며 대북 지원 사업을 벌였던 임현수 목사. 그는 지난 1월 31일 평양 방문 후 소식이 끊겼다. 6개월 후 임 목사는 다시 …
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1/2/2022
View: 6763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마침 저는 토론토 큰빛교회 노희송 목사님으로부터 2017년 가을 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임현수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중이어서 주님께서 ‘가라’고 …
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5/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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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임현수 목사 학력
- Author: Cowork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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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6. 1.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Wh0edDFWYKE
北 무기형 복역하다 31개월 만에 풀려난 임현수 목사
[지호영 기자]北 실상 모르는 남한 사람들
20년 동안 550억 규모 대북 지원
북한 학생들이 백두산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모습.
임현수 목사가 캐나다 교회를 통해 세운 함흥의 선봉연유판매소.
김정일, 무사증까지 내주며 인도적 지원 적극 지지
北 요청으로 방북했다 구치소에 감금
새옷을 입은 탁아소 고아들. 왼쪽 남성이 임현수 목사다.
북한의 요청으로 짓고 있는 대형 목욕탕. 한 번에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CIA·국정원 아는 사람 이름 대라”
캐나다 총리 전용기에 수술 장비 실어 보내
싸움과 타협 혼동하면 비핵화는 물 건너가
“남북대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국적 억류자에 대한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나오지 않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5월 4일 서울 서초구 남산감리교회를 찾은 캐나다 ‘큰빛교회’ 원로 임현수(64)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임 목사는 2015년 1월 북한에 억류됐다가 31개월 만인 2017년 8월 극적으로 풀려난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지난 4월 강연 차 한국을 방문했다. 임 목사는 이날 열린 기독교통일포럼에서 “한국 교회가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들의 석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북한은 외부 여론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임 목사는 오래전부터 ‘북한 선교의 큰손’으로 통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1986년 캐나다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州) 미시소거의 큰빛교회에서 2대 담임목사로 34년 동안 시무(始務)했다. 캐나다 시민권 취득 후인 1997년부터는 북한을 150여 차례 이상 드나들며 인도적 대북 지원에 힘써왔다. 한때 북한에서는 임 목사를 ‘VVIP’로 대하기도 했다.2015년 1월 27일 방북 목적으로 출국한 임 목사는 나선에서 평양으로 이동하던 중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같은 해 12월 국가 전복 음모 혐의로 무기노동 교화형을 선고받고 억류생활을 하다가 31개월 만에 북한의 병보석 조치로 풀려났다. 외국인으로는 가장 오랜 기간 억류당했다.임 목사는 석방 이후 강연을 위해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언론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발언이 자칫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될까 조심스러웠던 탓이다. 이번에도 임 목사는 몇 번에 걸친 인터뷰 요청에 고사 의사를 밝히다, 고심 끝에 만남을 수락했다. 석방 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 5월 9일 인천의 모처에서 만난 임 목사는 억류 당시 고혈압, 관절염, 위장병 등으로 고생했던 것에 비해 현재 건강 상태는 “좋다”고 밝혔다. 임 목사는 “5월 말 출국 예정”이라고 했다.“북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주로 얘기한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해야 국론 분열 없이 올바른 대북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서울, 경기, 제주도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억류됐던 경험을 되짚으며 북한의 실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에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대화 재개로 한반도에 훈풍이 불었지만 올해는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남북관계의 앞날도 불투명해졌으니 말이다. 국민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강연이 끝나면 많은 사람이 나에게 ‘북한을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느냐’라고 묻는다. 현재 한국 국민 대부분이 북한의 실상을 잘 모른다. 그러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임 목사는 1995년 북한을 휩쓴 대홍수 사건을 계기로 대북 지원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북한은 홍수로 식량이 부족해졌고 수교국가인 캐나다 정부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청했다. 1997년 종교계 인사 신분으로 북한 평안북도 구장군 탄광지대를 방문한 임 목사는 그곳에서 수많은 주민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후 20여 년간 북한에 교회 명의로 한화 550억 원 규모의 대북 지원을 펼쳤다.임 목사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식량 지원, 의료 지원, 농업 개발까지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지원 규모도 웬만한 국제기구를 능가한다. ▲대동강 즉석국수 공장 설립 ▲함흥의 선봉연유 판매소 지원 ▲2000명 수용 가능한 대형 공중목욕탕 설립은 물론 ▲‘동해바다 살리기’ 프로젝트로 대형 어선 2척과 소형 어선 50척을 제공해 수산물 수출을 지원했다. 또한 평양교원강습소를 설립해 북한의 영어교사 200명에게 영어와 컴퓨터 교육을 제공했고, 북한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경북도 내 큰 호수를 논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굶주림을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초창기엔 옥수수를 심어줬고, 나중에는 북한 자유항인 나진과 선봉 지역에 땅을 제공받아 블루베리 묘목 70만 주를 심었다. 또한 계약을 맺은 북한의 ‘하나농업회사’는 백두산 인근에 총 50만 주를 심되, 모두 유기농법으로 재배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 많은 묘목을 어떻게 구하나 고민하던 중 ‘백두산에 야생 블루베리가 많다’는 얘길 들었다. ‘설마’하는 심정으로 백두산에 갔는데, 정말 눈앞에 블루베리가 펼쳐져 있었다. 북한 주민들이 야생 블루베리의 효용성과 귀함을 잘 알지 못할 때였다.”“하루 최다 2000여 명을 동원해 백두산 블루베리를 수확해 팔았다. 일꾼들 상당수가 해산 지역 학교 학생이었다. 이들을 먹이고 재우기 위해 대형 천막을 쳤다. 그렇게 채집한 북한산 블루베리를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주스로 만들거나 원액으로 한국에서 판매했다. 나머지는 북한 주민들이 먹었다.”이처럼 인도적 활동은 북한 내 대규모 고용을 창출했을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식량 보충에도 보탬이 됐다. 그는 “북한 주민은 물론 관료들도 우리를 환대했다”고 말했다.“미국의 어느 독지가가 북한 수재민을 위해 거액의 성금을 보냈는데, 그 돈으로 중국에서 라면 수백만 개를 구입해 트럭 500대에 실어 북한에 전달한 적이 있다. 북한 군인에게 ‘신라면’을 줬는데, 두어 번 맛보더니 ‘남조선 인민들은 이런 걸 매일 먹느냐’며 부러워하더라. 남한에 대해 적개심 가득하던 눈빛이 한순간 동경으로 바뀌었다.”“굶주릴 대로 굶주리다 보면 결국 악만 남게 된다. 소유권보다 생존권이 먼저 아니겠나. 사람을 살리는 일은 민족과 종교, 지역과 이념을 초월한다. 나는 대북 인사들에게 북한에 구호 물품을 지원할 때 북한에 가서 주민들을 직접 만나라고 강조한다. 북한 당국에 전달하면 ‘수령님의 하사품’으로 둔갑해버리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은 교회가 아닌 수령님’이라고 착각한다. 지난 20여 년간 교회가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인도적 활동을 펼친 덕분에 이제는 북한 주민 대부분이 교회의 성과를 어느 정도 안다. 북한 사람이 탈북 후에 교회를 가장 먼저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렇다. 목사여도 선교활동을 하지 않고 인도적 활동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북한 관료들은 우리의 활동을 김정일한테 일일이 보고했다. 어느 날은 김정일이 무사증(無査證·무비자 입국제도)을 보내왔다. 그 덕에 평양을 통해 언제든 북한을 들어가고 나올 수 있었다. 또 무사증과 함께 편지도 보내왔는데 편지에는 우리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고 평양 봉수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하기도 했다. 교회 안에서는 십자가를 그리고 성경 구절을 적어도 그 누구도 제재하지 않았다.”“2015년 1월 초, 북한이 중국에 거주하는 선교사를 통해 나에게 급히 연락을 해왔다. ‘의논할 게 있으니 북한에 와달라’는 얘기였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무역과 관광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해당 부서들이 하나로 통합됐는데, 통합된 부서장(우리나라 장관급)이 나를 만나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는 거였다. 목회 활동이 바빠 하루 만에 북한을 다녀와야 했는데 1월 30일 나진으로 갔더니 담당자가 하루 더 묵고 다음 날 평양에 가서 부서장을 만나자고 간청해 수락했다. 그래서 같이 간 선교사는 중국으로 보내고 아무 의심 없이 나만 평양으로 갔다. 다음 날 오후 평양에 도착했는데 부서장이 오늘 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만나자고 해서 호텔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호텔로 북한 사람들이 방역 담당자를 대동하고 호텔로 들이닥쳤다. 에볼라 바이러스 유입을 막는다며 외국인 입국자를 3주간 국경지역에서 격리한다는 거였다. 조사를 해야 한대서 따라간 곳이 평양 근처 구치소였다.”“그렇다. 조사실 책상 위에는 자료 한 뭉치가 놓여 있었는데, 내가 예전에 해외에서 강연하며 했던 발언들이 적혀 있었다. 북한 조사관은 나의 발언이 ‘특대형 국가 전복 음모죄이자 최고 존엄 모독죄 등에 해당한다’고 했다.”북한의 인터넷 대외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당시 임 목사 선고 소식을 전하며 임 목사가 했던 강연 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영상에서 임 목사는 2013년 10월 열린 세계선교동역네트워크(KIMNET)의 미주 기도성회에서 “정권을 잡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은 악(惡) 그 자체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평양의 모습은 다 ‘쇼’다. 진실은 10%도 안 된다. 북한의 공포정치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빨리 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담긴 영상을 행사 주최 측이 유튜브에 올린 게 화근이 됐다.북한이 방북 인사의 해외 발언까지 문제 삼아 억류하고 재판한 사례는 처음이었다. 해외 인터넷 사이트까지 샅샅이 뒤져 방북 인사의 과거 행적과 발언을 조사한다는 얘기인 셈. 임 목사는 “북한 간부들이 나에게 죄명을 씌우기 위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나의 강연과 설교 영상을 확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알 수 없다. 20여 년간 북한을 오가면서 늘 조심했고 최선을 다했다. 조선노동당 산하기구 통일전선부(통전부)가 해외동포 관리업무를 관장하는데, 나를 초청해 관리하는 곳도 바로 통전부다. 평소 통전부 사람들과 관계도 좋았고, 우리의 활동이 북한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득이 결코 작지 않기에 그들이 나를 정치적 흥정물로 삼았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다만 북한의 적군와해공작국(적공국) 같은 조직에서 나의 해외 강연 발언을 문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 적공국은 전시에는 적군와해공작을 하고 평상시에는 대남 삐라를 살포하거나 대남방송을 맡는다. 통전부가 적공국과의 정치적 힘겨루기에서 밀렸고, ‘수령님을 모독하는 걸 두고 봐야 하느냐’는 적공국의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내가 표적이 된 것 같다.”“내 발언은 모두 북한 당국의 강요에 의한 것이다. 촬영을 두 번 했는데, 하나는 미국 CNN 방송용이고 또 하나는 기자회견용이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미국 CNN 기자가 있었는데, 북한 조사관이 나에게 미국 기자와 영어로 대화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오로지 한국말을 사용하도록 했다. 기자회견 직전에는 북한 조사관이 무슨 돈으로 대북 인도적 활동을 했는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정원에서 돈을 받았는지 집중 추궁했다. CIA와 국정원에 아는 사람 이름과 알고 지내는 국내외 목사의 이름을 쓰라고 했다. ‘평양에 오면 위험하다’는 사인을 보내기 위해 목사님 몇 분 이름을 열거했다.”임 목사는 다른 재소자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평안북도 소재 외국인 특별 교화소 독방에 감금됐다. 감시카메라가 방에 2대, 화장실에 1대, 그 외 바깥 공간에 수십 대가 설치됐다. 그를 감시하던 간수 50명 중 40명이 권총을 소지했다. 간수들의 언어폭력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석 달 동안 설사를 계속했다. 임 목사는 수감된 지 두 달 만에 체중이 20㎏이나 빠졌다.일주일에 6일, 하루 8시간씩 하루도 예외 없이 강제 노동이 시작됐다.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땅을 깨고 구덩이를 파는 작업을 했다. 상체는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은 동상에 걸렸다. 몸이 혹사당한 탓에 2~3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로움이었다고 한다. 임 목사는 “그동안 항상 베푸는 자로 살아서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잘 몰랐다. 교화소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2001년 캐나다는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가 북핵 문제로 수교를 끊었다. 내가 수감돼 있어도 캐나다 정부는 북한과 연락할 채널이 없어 중립국인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북한과 협의를 시도했다. 스웨덴 대사가 두 번이나 면회를 와서 캐나다 정부의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석방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특사단이 방북한 직후 이뤄졌다. 캐나다 정부가 나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총리 전용 비행기 2대에 특사 14명을 파견했다. 건강 상태가 위급할 경우 비행기 안에서 수술할 수 있게끔 현역 외과 여의사와 수술 장비 2대를 함께 보냈다.”극적으로 북한에서 석방된 임 목사는 “선교사, 탈북자를 포함해 국군포로와 납북어민 등 현재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 국적자가 수십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 국적 선교사 6명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들 중 김국기 선교사와 최춘길 선교사는 벌써 4년째 북한에 억류돼 있다. 이 중 3명은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들로, 선교 목적으로 북한에 다시 들어갔다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임 목사는 “한국 정부가 억류자 송환 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두 가지 시선을 가져야 한다. 하나는 북한 주민이 우리 형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의 97%가 우리 동족이고 골육이고 형제다. 그들은 그 땅에 태어난 죄밖에 없다. 볼모로 잡혀 있는 것이다. 나머지 2~3%에 해당하는 정권 수호자들은 ‘악’을 떠받드는, 우리가 대적해야 할 대상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룬다는 차원에서도 싸워야 할 대상이지 타협 대상이 아니다. 이를 혼동하면 북·미 대화는 물론 비핵화 가능성도 사라진다.”“지난 4월 서울에서 ‘통일전문가 연합네트워크’ 첫 모임을 가졌다. 나에게 이 활동은 북한 구호 및 선교 활동을 통해 통일운동에 본격 나선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통일운동에 나서면서 내가 한국 교회에 강조하는 메시지가 있다. ‘회개 운동에 나서자’는 것이다.”
임현수 목사 “수년 내 갑자기 통일 올 것… 심판 머지 않아”
[email protected]) 기독일보 하와이=김대원 기자
트윗하기 제2회 글로벌 복음통일 전문 선교대회가 9일(현지 시간)부터 미국 하와이 코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회장인 임현수 목사(토론토큰빛교회 원로)가 첫날 저녁집회를 통해 북한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불현듯 임할 것임을 강조하면서 북한 동포들의 해방의 날을 위해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간절히 기도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도 수년 내 부흥하게 하소서’(하박국 2:3)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임 목사는 북한의 지난 70년 간의 만행과 도발에 대해 “수 십 차례의 도발을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면서 “북한도 회개하지 않으면 일본이 망한 것처럼 한 순간에 망할 것이다. 비록 더딜지라도 하나님 심판의 시간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임 목사는 통일의 주관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면서 “수 년 내에 하나님은 통일을 주실 것이고 우리 나라를 회복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에 통일을 주시고 북한의 백성들이 모두 해방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면서 “북한 백성들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동방의 예루살렘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했다. 임 목사는 앞서 8.15 광복절을 앞두고 우리 민족의 해방과 관련,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일이었다. 우리 스스로 민족 해방을 위해 한 일이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연이 없고,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있다”면서 “광복이란 말은 빛을 다시 찾는다는 의미이다. 흑암의 백성과 사망의 그늘에 빛이 비추인 것이다. 저녁에는 구름이 있을지라도 아침에는 밝은 빛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해방 전 우리 민족이 처했던 상황에 대해 “갑자기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지배를 했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을 사용하던 자기 말을 빼앗겼다. 일본 사람들의 글을 배워 써야 했고, 젊은 청년들은 강제로 징용에 끌려갔고 젊은 여성들은 위안부로 끌려갔다. 육체적으로 성적으로 착취를 당했다”면서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세워 조선을 수탈했다. 나라의 각종 보물들을 빼앗는 것은 물론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가정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고 언어 등 각 영역에서 민족 말살정책을 폈다”고 설명했다. 이에 임 목사는 “우리 뇌리의 반일감정은 우연이 아니다. 7-80년이 지나도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져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은 역사적으로 700번 이상 우리나라를 공격했다. 일본에 한이 맺힌 민족”이라면서 “탄압은 결국 신사참배 강요를 통해서 절정에 이르렀다. 태평양전기 말기에 가서 패색이 짙었던 일본은 조선총독부 1945년 8월 18일에 수 많은 기독교인들을 사형시키려고 했다”고 밝혔다. 임 목사는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투하가 바로 이 학살 전에 일어났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일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났다”면서 “이렇게 노예처럼 살던 36년이 흐르던 시간 동안 민족해방을 꿈꿀 수 없었지만 갑자기 해방이 왔다. 역사는 사람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목사는 북한의 만행은 일본보다 더욱 심한 것이었음을 설명하면서 설교를 이어나갔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에게 속아서 김일성이 해방을 가져왔다고 믿지만 김일성과 해방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 “일본은 36년이지만 북한은 지난 70년을 농락했다. 우리는 북한 공산화를 잊어서는 안 된다. 1950년 남침해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다. 무장공비 사건, 아웅산 폭탄테러, 대한항공 폭파사건, 천안함 침몰,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는 끝도 없다. 그럼에도 북한은 수십 차례의 도발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임 목사는 “71년 동안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 왔다. 하나님의 시간이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대사를 행하실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동포들을 향해서는 긍휼한 마음으로 아픔을 함께 느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임 목사는 “요즘 왜 통일이 필요한지, 또 왜 북한주민을 도와야 하냐고 질문하는 청년들이 있다”면서 “오늘도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를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옥수수 죽조차 먹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을 보며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는 안된다. 설탕이 없어 뇌 손상을 입는 어린아이들이 보이지 않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임 목사는 “우리에게는 사명이 남아있다. 2천만 동포들의 해방”이라면서 “아직도 북한 주민들은 노예와 같이 살고 있다. 8.15 광복을 맞은 이후에도 우리 민족은 아직도 포로로 잡혀있다. 지금까지도 악한 반기독교세력에 의해서 독재자의 종이 되어버렸다. 북녘은 아직도 2천만이 포로로 잡혀있는 곳”이라고 통탄했다. 또 임 목사는 “평양의 어린아이들은 아리랑공연 연습을 하느라 하루 종일 운동장에 서있는 것을 보면서도 가엽지 않는가”라며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북한 동포를 보며 안타까움이 없는가? 이들이 바로 돌아와야 할 우리의 포로들”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영적 상황에 대해서도 “지금은 마치 6.25전쟁 직전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저마다 정신적인 우상을 끌어안고 산다”면서 “공산주의가 발도 붙이지 못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아직도 북한에 포로로 잡혀있는 우리 동포들의 해방의 날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기독교인들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통일에 대해 임 목사는 “여호와께서 과거에 우리나라에 놀라운 은총을 주셨지만 이제는 북한 땅에 주님의 일을 행하실 것이다. 통일 시대가 열리면 축복도 열리게 된다. 이제부터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아야 한다”면서 “통일의 주역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 나라의 꿈은 복음을 들음으로 성령의 역사가 각 사람에게 임할 때 이뤄진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이 선포될 때 세상이 변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임 목사는 “통일을 말하지만 통일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복음전도에 최선을 다하자”면서 “지금까지 많이 기다렸는데 더디더라도 기다리라고 하신다. 갑자기 통일이 올 것이다. 그날을 준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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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출판 기념예배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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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잃어버린 북녘 땅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임현수 목사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 원로그가 최근 자신의 북한 선교 일생을 담은 책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를 출간해 교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가난한 아픔이 삶의 숨소리마저 옥죄는 곳, 자유와 인권을 빼앗긴 채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바로 그 곳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차디찬 감옥에 갇혀야 했던 임 목사. 턱 끝에 겨눠진 죽음의 위협 속에서 그가 기댄 것은 오직 믿음이었다.
모두가 포기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그 분의 방법으로 그 곳에서 자신을 이끌어 내실 것이라 확신했다. 그 결과 임 목사는 949일간의 지옥 같은 시간을 지나, 북한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북한 감옥에서 보낸 949일간의 옥중 삶은 물론이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그가 석방될 수 있었던 뒷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부르짖었던 임 목사의 진실된 신앙이 눈물겹게 그려지고 있다.
“고난을 통해 명품이 된 임현수 목사”
특별히 지난 7월 11일 서울 효창동 만리현성결교회(담임 이형로 목사)에서는 임현수 목사의 책 출판을 기념하는 감사예배가 열렸다. 용산교구협의회(회장 이길원 목사)와 캐나다 큰빛교회, GAP(Global Assistance Partner)가 주관한 이날 출판기념감사예배(준비위원장 장상욱 목사)는 오후 7시라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약 7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두려움 없는 믿음에 대한 깊은 감격을 공유했다.
1부 감사예배는 이형로 목사의 사회로 이길원 목사의 대표기도와 복음성가 가수 손영진씨의 은혜로운 찬양에 이어 박종순 목사(한기총 증경대표회장)가 ‘광야 훈련소’란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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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목사는 시련을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며임현수 목사의 지난 삶의 여정이 모두 하나님의 역사와 계획 속에 있었음을 확신했다
박 목사는 “아무런 고난 없이 순풍에 자란 사람은 명품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고통과 좌절을 통해 명품으로 깎아 나가신다”면서 “하나님은 임 목사를 북한으로 보내셨다. 임 목사는 엄청난 고난을 견뎌내고 오늘 명품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의 크신 뜻을 헤아려야 한다. 고난으로 우리를 성장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40년이라는 광야 훈련소를 기억하라. 날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
제2부 기념행사는 개그우먼 조혜련 씨의 사회로, 축하의 시간이 이어졌다.
축사를 전한 이동휘 목사(전주 안디옥교회 원로)는 “임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북한을 위해 일하신 분 중 임 목사님 같은 분은 없었다”면서 “어쩌면 감옥에 계셨던 949일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살았던 그 시간이 아닐까 싶다. 임 목사님의 모습 속에 예수님이 보인다”고 말했다.
전 통일부 장관 김하중 장로는 북한 민간 지원에 앞장섰던 임 목사가 별안간 ‘국가존엄 모독’이라는 내란죄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까지 받게 된 긴박했던 상황을 전하며, 결국은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던 일임을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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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로는목사님의 억류 소식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눈물이 펑펑 나면서 감사가 밀려 올라오더라사모님도 불안함이 없었다모두가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이었기 때문이다면서이는 고난을 가장한 하나님의 축복이다고 확신했다
이어 “목사님은 어느 단체의 도움도 거부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곳을 나오셨다”면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북한에 대한 통찰력을 갖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손기철 장로(헤븐리 터치 미니스트리 대표), 노희송 목사(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 여나 마틴 의원(캐나다 상원의원) 등 캐나다 지인들이 영상을 통해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임현수 목사 “복음은 북한을 변화케 한다”
사실 임현수 목사는 감옥 억류 949일 동안에 1,300여장에 이르는 옥중일기를 썼다. 감옥에서의 생활은 물론이고, 북한 주민에 대한 염려와 자신의 신앙 고백을 담은 옥중일기는 안타깝게도 출옥할 때 압수를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빼앗기지 않은 것이 있으니, 성경책 사이에 끼워두었던 종이 한 장이었다. 그곳에는 감옥에서 정리한 자신의 강의안 700여개의 제목 이니셜 만을 따놓은 메모였다.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반대로 임 목사는 자신의 남은 생의 사역을 담은 모든 것을 들고 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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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목사는그 일은 내게 너무도 기적이었다지금 내가 하는 사역은 모두 그곳에 들어있다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한 장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면서물론 당시 옥중일기를 빼앗긴 것에는 너무도 억울함이 있었지만하나님은 미래의 나를 위한 필요한 전부를 주셨다고 고백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너무도 슬프고 안타깝지만,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확신했다. 임 목사는 “북한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아프고, 한 없이 슬퍼진다. 너무 기가 막혀 울고 싶다. 지난 70년 분단의 비극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하지만 이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북한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어 “나는 곧 통일의 시대가 열릴 줄로 믿는다. 그 날이 오면 2,000만 북녘 동포들에게는 8.15 해방과 같은 기쁨이 임하고, 대한민국은 반만년 역사상 가장 영광스런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면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진리의 말씀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나라는 곧 세계를 축복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고 재차 확신했다.
이날 출판감사예배를 총괄 준비한 준비위원장 장상욱 목사(용산교구협 증경회장)는 “임 목사님의 놀라운 헌신과 처절한 고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의 출판기념회를 우리 용산교구협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면서 “이 책이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 회복은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나침반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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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임현수 목사는 대한신학교현 안양대학교졸업 후간사로 전임사역을 하다년 캐나다 토론토대학 녹스칼리지에서 대학원을 마치고틴데일신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년부터 큰빛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며 뉴욕 신학대학에서년간 가르쳤고신학원을 만들었다
2017년 말에 원로목사로 은퇴하고, 큰빛교회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GAP(세계협력선교회) 이사장, KWMC(세계선교협의회) 의장, 중국 가나안 농군학교 이사장이며, GYKM(세계청년 선교대회)을 창설했다. 북한 선교에 앞장섰으며, 중앙아시아 선교를 개척하여 10년간 사역했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선교 개척, 인도와 서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미전도 지역 선교에 집중하고 있다.
TMTC(Total Mission Training Center)를 통한 100만 선교사 시대를 여는 운동과 전 세계적인 교회 지도자들의 회개운동과 GTS(Golden age, Twilight age, Silver age)를 통한 시니어 선교사 개발과 통대연(통일대축제범민족연합) 운동을 통한 복음화된 통일 조국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일에 남은 생애를 걸고 헌신하고 있다.
두 토론토 목사의 감옥살이 이야기
캐나다 정부는 加시민권자 임현수 목사(평양 감옥) 위해 적극 구명운동 전개 한국 정부는 한국적 전대근 목사(몬트리올 감옥)에 방관적 태도
토론토에 사는 두 한인 목사가 감옥에 갇혀 있다. 임현수(61) 목사는 북한 평양 감옥에 1년 이상 구속돼 있고, 또 한 사람 전대근(47) 목사는 몬트리올 감옥에서 10개월째 구류생활 중이다. 임 목사는 캐나다 시민권자이고, 전 목사는 영주권자로 대한민국 국적이다. 두 목사 모두 토론토 생활이 20년이 넘는다.
지난해 1월 하순과 4월 초 갑작스레 터져나온 두 한인 목사 구속 사건. 사건 자체는 별개 건으로 북한과 캐나다에서 각기 발생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북미, 한국을 비롯한 국제적 주요 TV 방송 보도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발내용으로 동포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의 임 목사에 대한 종신형(장기 노동교화형) 판결 발표는 토론토 동포사회를 진동시켰고, 현재도 임 목사 구명운동 열기가 무척 뜨겁다. 한인 동포사회는 물론 캐나다 정부 및 연방의회도 임 목사 석방운동에 적극 동참해 서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임 목사는 토론토 최대 한인교회의 유명 장로교 목사다. 지난 1997년 북한 고위층을 통해 첫 북한 방문을 시작한 이래 110여차례 평양과 나선(나진-선봉) 지역 등지를 다녀왔다. 북한 곳곳에 공장, 탁아소 등 건물들을 세워 동포애의 선봉에 서서 구호활동을 폈다. 그는 약 20년간 수천만달러 이상 천문학적 액수의 물자를 제공하며 원조활동을 벌이다 불현듯 체포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랫동안 북한을 드나들면서 해외에서 북한 정권을 통렬히 비난했다는 것이 죄다. 임 목사가 북미 지역 교회 강연이나 인터뷰 때 북한을 극히 부정적으로 비판한 것이 화를 자초한 셈이 됐다. 북한은 임 목사 설교 등 인터넷 영상자료를 증거삼아 이를 공개하고, 국가전복죄로 심판해 종신형(장기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왜 임 목사가 북한을 드나들며 ‘북한정부 비난을 절대 삼가하라’는 금기 사항을 거슬렀는지 아연해 한다. 요즘 시대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안팎으로 거의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람 몬트리올 감옥의 전대근 목사. 그의 경우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그는 임 목사와는 달리 무명 목사로, 감리교 신자다. 전 목사는 지난해 봄 국제매춘조직 주범이라는 어마어마한 혐의로 캐나다 연방경찰(RCMP)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경찰은 거물로 취급해선지 토론토에서 몬트리올 감옥까지 차로 5~6시간이면 갈 거리를 헬기까지 동원해 이송했다. 그러나 국제적 보도로 검거 당시에만 떠들썩했지, 1년 남짓 사이 이 불미스런 사건은 동포사회에선 잊혀진 채 과거 속에 파묻혀 버렸다.
전 목사가 갑작스레 구속되면서, 그가 15년간 순조롭게 운영해 오던 캐나다 정식인가(고교과정 인정)의 영어사립학교는 문을 닫게 됐다. 연방경찰로부터 학교 컴퓨터와 서류 등 기재를 압수당해 학교 운영이 거의 불가능해진 탓이다.
전 목사는 지금 몬트리올구치소에서는 해당 혐의자들 중 유일하게 잡혀있는 신세다. 4촌 이내 가족 외엔 면회도 전면 금지돼 있다. 그는 10개월 구류기간 중 단 한차례의 재판도 받지 못했으며 두차례 신청한 보석조차 기각당했다. 몬트리올은 불어권이라 구치소 생활도 언어문제로 불편을 겪고 있다.
문제는 선진국 캐나다에서 혐의만으로 이렇게 재판 한번 없이 10개월 이상 구류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 목사는 처음부터 100% 결백함과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 순전히 경찰이 학교의 학생 비자 관련 사항을 오해한 데서 빚어진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해 정말 날벼락을 맞은 거나 다름없다”고 황당해 한다.
전 목사의 제임스 도슨 변호사 역시 “검찰이 지난 10개월간 학교 서류 등을 면밀히 조사했으나 나타난 증거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전했다. 검찰 측은 그동안 두번 담당이 바뀌면서 몬트리올 법정에 계속 조사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2월 초까지 연기됐던 재판이 검사, 변호사, 판사 합의로 다시 5월로 연기됐다.
전 목사 경우를 결코 일반 상식이나 정서적으로 판단할 차원은 아니지만, 그와 국제매춘조직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무직자도 아닌 생활이 안정돼 있는 학교 책임자로, 또 유학생들을 위한 현재 성직자로 성매매여성 관련 혐의는 너무 동떨어진 얘기다.
한국에 연락해 전 목사의 학력 등을 확인해보니 그는 진주 학창 시절 성적이 뛰어난 학생으로 연세대 졸업 후 감리교 신학대학원을 나와 목사가 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임현수와 전대근, 이 두 목사 사건은 캐나다와 한국, 두 나라의 자국민에 대한 관심과 보호의식 등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 정부와 연방의회는 북한 정부를 비판하면서 정상적 방법으론 구출 가망성이 없는 자국민(임현수)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범죄 연루 혐의만으로 단 한번 재판 없이 구치소에 10개월 이상 구류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자국민(전대근)에 대해 거의 방관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목사 사건에 대해 한국 공관(토론토 및 몬트리올총영사관)은 사태 추이와 동향에만 관심을 가질뿐, 캐나다 정부에 대해선 단 한번 항의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아마 전 목사를 지레 외국에서 흔히 보는 성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한들 캐나다 당국에 불구속 수사 원칙을 촉구하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토론토 영사관의 교민영사는 전 목사 건을 경찰영사 소관이라고 발뺌하고, 경찰영사는 몬트리올 교민영사와 정보를 공유해 관련 소식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몬트리올 교민 담당 영사는 ‘전 목사가 구치소에서 편히 지낸다’는 식의 불성실한 정보를 토론토의 한 교포신문에 전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한국공관에서 할 수 있는 능력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큰 기대는 말아야 된다는 여운을 남기면서.
필자소개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 재외동포언론인협회 고문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관훈클럽 국제보도상 수상, 한국신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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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수 목사에게 침묵을 허하라
임목사, 신목사, 로드리고 신부를 보면서 우리도 침묵해야
임현수 목사의 석방 소식에 2015년 8월 15일 기사를 다시 올립니다. (편집자 주)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임현수 목사(토론토 큰빛 교회)가 7개월 여 만에 모습을 보인 기자회견장과 평양 봉수교회에서 ‘참회’를 했다. 임 목사는 “내가 저지른 가장 엄중한 범죄는 공화국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심히 중상모독하고 국가전복음모행위를 감행한 것”이라면서 캐나다, 미국, 일본, 브라질, 한국 등 교회에서의 ‘사역보고’ 중에 북한을 비난했다고 말했다. 특히 임 목사는 자신이 해온 대북 인도적 지원도 결국은 “미국과 남조선당국의 반공화국 압살정책에 편승하여 북의 체제를 뒤집어 엎고 종교국가를 세우기 위한 거점을 꾸리기 위한 데 있었다”고도 했다.
임목사의 발언은 ‘사역보고를 통한 북한 비난’과 ‘북의 체제전복 음모’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7개월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이 ‘참회’가 본인의 의지에 의해 쓰여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 단체의 북한 지원 사업은 임목사의 두 가지 ‘참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역보고는 선교비 모금과 동의어고 선교비 모금은 피선교지의 상황을 악화시키면 시킬수록 두둑해진다. 피선교지의 척박함과 선교비 증액, 이 두 변수가 함께 가는 일은 북한 뿐 아니라 다른 선교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임현수 목사가 봉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최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에 함께 했던 이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은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 졌고 풍요로워 졌다고 한다. 물론 미국이나 한국이 누리는 개인적 자유에 비교할 수야 없겠지만 그 사회도 확실히 변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선교에는 적신호거나 판단 착오를 가져오기 쉽다. 판단 착오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북한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믿고 더 가열차게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랫동안 북한에 공을 들여온 임현수 목사의 헌신적인 노력은 모두가 인정해 온 부분이다. 따라서 북한 측의 처사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번 사건은 임목사 역시 북한을 잘 몰랐던 데서 나온 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통일운동가에 따르면 임목사의 사역보고 중에 나온 북한 세습체제 비판 발언이 북한 측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북한 체제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분명 낯설지만 그 사회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지도체제는 특히 민감한데 북한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그 부분을 오히려 북한 비판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기대’와 달리 북한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피선교지의 체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니카과라의 기억
피선교지 상황에 대한 분석력이 미흡했던 선교보고의 기억이 있다. 몇 해 전 주로 백인들로 이루어진 PCUSA 목회자들과 함께 니카과라 선교여행을 갔었다. 흔히 말하는 단기 선교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선교여행이었는데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현지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당시 니카과라는 포악했던 독재자 소모사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쳤던 반군 산디니스타 출신의 오르테가가 대통령에 다시 당선되었을 때였다.
오르테가는 1979년 33세의 나이로 40년 이상 철권을 휘두르던 소모사를 몰아내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오르테가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소모사 잔존세력인 콘트라 반군에게 뒷돈을 대었고 그 결과 니카라과는 끝없는 내전과 혼란으로 돌입했다. 지금 뉴욕시를 잘 이끌고 있는 더블라지오 시장은 20대 때부터 산디니스타 후원을 위한 미국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뉴욕 시장은 ‘빨갱이 시장’이다.
내가 선교여행을 갈 그 무렵 권좌에서 물러났던 오르테가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어 정치를 하고 있었다. 선교 여행에 함께 한 동료 목회자들은 내전이 끝나고 오르테가 정권 하에서 안정 상태에 돌입한 니카라과를 위해 기도하고 다시는 소모사와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소망했다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우연의 일치처럼 니카과라에 있는 한국 선교사의 선교후원 요청 편지가 교회로 배달되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니카라과는 다시 공산당이 정권을 잡아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습니다.” 이 편지는 정세 분석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나를 실망시켰다. 당시 니카라과 정국을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로 분석한 PCUSA 목회자들과 공산화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어려워졌다고 말하는 한인 선교사의 태도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북한 사회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
이 구호품 뒤에는 교회가 있다고 꼭 생색을 내야 하는가? 왜 받는 이들의 자존심은 고려하지 않는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개인의 선행에만 적용되는 익명성의 원칙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성경을 건네주는 행위는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함인가? 선교보고용 이벤트인가? 북한 지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존중하지만 이러한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 북한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은 대한성서공회가 무료로 <공동번역> 인쇄 원판을 넘겨주어 일부 용어만 북한에서 고쳐 인쇄한 것이다. 이렇게 합법적인 성경 전달 사실을 북한 구호 활동가들은 왜 외면하는가?
임현수 목사가 기자회견에서 보도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북한측이 임목사 근황을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연 것을 보면 캐나다 시민권자인 임목사를 곧 석방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지난 번 종신 노동형을 받은 두 명의 ‘선교사’들 처럼 형량이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임목사의 기자회견을 본 사람들은 북한측의 공작 또는 고문을 의심하면서 ‘배신’ ‘뒤통수’의 용어를 써 가며 북한을 비판하고 있다.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이 시점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일은 임목사 석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목사가 석방된다면 돌아와서가 더 문제다. 그가 공포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고 할지라도 한국 보수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금기어인 ‘위대한 수령님, 장군님’을 입에 담고 자신의 선교할동을 공작으로 인정한 점은 ‘배교’로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순교’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임목사의 ‘참회’는 살기 위한 행동으로 비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의혹은 제쳐두고 임현수 목사가 석방되어 돌아왔을 때 그에게 침묵의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보수적인 언론이나 북한 선교단체들은 뒷이야기를 듣고 싶겠지만 어떤 내용이건 간에 임목사 또는 향후 비슷한 일을 하는 단체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현수 목사에 대한 기억
오랜 전 토론토에서 목회하는 해외한인 장로회 소속 목사들의 모임 자리에서 임현수 목사가 그 때 막 시작한 북한 사역에 대해 보고를 한 적이 있다. 보고가 끝나자 “우리가 보내는 구호품이 북한 군인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냐”는 목사들의 단골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그 때 임현수 목사는 “군인들도 우리 동포가 아닌가? 쌀 밀가루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들도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했다. 나는 초면이었던 그의 대답에 상당히 큰 감명을 받았다. 보수적인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런 말을 하기 쉬운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소견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은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순수한 사람이었기에 이번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 20여 년의 긴 세월이 그에게 타성 혹은 지나친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은 아닌지 그것이 이번 사달의 원인이 된 것 같아 아쉽다.
나는 임목사가 속히 귀환하기를 기도한다. 동시에 돌아와서 사람들 앞에서 침묵하리라 믿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사역의 정당성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 ‘참회’가 강요 때문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대중 앞에서 새로운 ‘참회’를 한다면 그도, 한국 교회도, 통일 사역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비슷한 일로 북한에 억류되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를 보면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로드리고 신부와 김은국의 소설<순교자>에 나오는 신목사의 생각이 났다. 일본 선교에 나섰던 포르투갈 신부의 배교 소식을 듣고 진상 조사차 일본에 온 로드리고 신부도 잡히고 만다. 선배 신부들의 배교를 믿을 수 없었던 로드리고는 자신을 배교시키기 위해 신자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것을 보고 마침내 교인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의 성화를 밟는다. 로드리고 신부가 고난의 현장을 외면하는 하나님의 침묵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 순간 ‘나를 밟아야 한다. 너희들을 위해 밟히러 왔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배교하게 된 것이다. 그는 형식적으로는 배교했지만 그의 배교 행위는 많은 신자들을 살렸다.
이북지역을 점령한 한국군 정보대 장교가 ‘열 네 명의 목사가 심문을 받았지만 젊은 목사 한 명은 실성하고 신 목사만이 살아 나온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되는 일로 시작하는 소설이 <순교자>다. 12명을 순교자로 추대하면서 반공의 선전도구로 사용하려는 의도에서 조사를 시작했지만 밝혀진 것은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살아 나온 신목사를 향해 배교자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실은 신목사만이 유일하게 공산군의 위협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었다. 순교자로 추대받은 12명의 목사들은 모두 목숨을 구걸하다가 죽어갔고 신목사만이 당당했다. 이는 훗날 당시 현장에 있던 북한군 소좌가 체포됨에 따라 밝혀진 사실이었다. 물론 신목사의 석방 이유가 신앙고백이 아니라는 사실이 소설의 주요한 모티브이기는 하지만 신목사와 로드리고 신부는 언젠가 임현수 목사가 귀환하면 참고로 해야 할 인물들이다.
로드리고 신부의 배교는 신자들의 목숨을 구했다. 자신의 성화가 짓밟히는 순간에도 예수는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마찬가지로 임목사의 굴욕적인 ‘참회’가 이후 북한 주민 지원사업이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복음전도나 체제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방향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임목사는 자신의 명예나 신앙의 순수성 보다 북한 주민을 사랑하는 마음에 더 비중을 둔 사람이라고 믿는다. <순교자>의 신목사 경우처럼 우리는 지금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알 뿐’이기 때문에 지난 7개월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돌아오면 궁금해 하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일단 침묵하자. 그래야 그도 침묵할 수 있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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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도부터 북한 선교를 했던 임현수 목사는 현재 억류된 상태다. (우리민족끼리TV 영상 갈무리)
1996년도부터 북한에 드나들며 대북 지원 사업을 벌였던 임현수 목사. 그는 지난 1월 31일 평양 방문 후 소식이 끊겼다. 6개월 후 임 목사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7월 30일 공개한 기자회견 영상에 등장한 것이다. 그는 “공화국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중상 모독하고 국가 전복 행위를 감행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관련 기사: 북한, 억류 중인 임현수 목사 기자회견 공개)
임 목사는 8월 2일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에도 나타났다. 북한 우리민족끼리TV는 임 목사가 일요 예배에서 속죄했다면서 다음 날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도 임 목사는 “저는 커 가면서 민족 복음화와 예수 민족화라는 극단적인 신앙관으로 세뇌되었고, 고난의 행군 시절에 목격한 북한의 참상이 지도부의 잘못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비판을 했습니다. (중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령님은 정말 소박하고 겸손하고 인간적인 풍모를 지닌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현재는 억류되어 있지만, 임현수 목사는 북한 선교의 ‘큰손’으로 통했다. 평소 임 목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대북 지원에 재정을 아끼지 않은 결과 북한 당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고 했다. 주 활동 무대는 나진·선봉 경제특구(나선특구)였다. 그가 사역했던 토론토 큰빛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2013년 8월 목회 칼럼을 보면 임 목사의 대북 지원 사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전략) 북한 일정을 잘 마쳤습니다. 끝없는 발걸음이 이어져야 할 땅입니다. 3차 양로원 건립은 멋지게 완성되어서 금년 11월 입주 예정입니다. 목욕탕도 반은 우리 교회가 짓고 반은 나진시에서 짓는 어려움 속에서, 일단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 10월 개장 예정입니다. 4계절 비닐하우스 3동을 짓고, 자연 농법 양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드 쇼(일종의 마케팅 전시회 – 기자 주)를 통해 사무실 장비들과 자동차를 구입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 선교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 목사는 나선특구를 넘어 평양을 비롯한 북한 곳곳에도 지원 사업을 벌였다. 극동방송은 3월 9일 뉴스에서 임 목사의 장기 억류는 북한에도 좋지 않다며, 그가 평양에 대규모 영어·컴퓨터 강습소와 500명 규모의 가발 공장을 세운 사실을 강조했다. 식품업·어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부와 체제를 비판했던 임 목사의
교계 전문가들, ‘북한 붕괴설’에 입각한 임현수 목사의 선교관 지적
대북 지원 사업을 하면서 북한 당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임현수 목사이기에, 그의 억류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지난 3월 채널A도 “북한에서 VVIP로 대접받던 임현수 목사를 당국이 갑자기 억류한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의외로 간단하고 일관되게 답변했다. 북한 정부와 체제를 비판했던 그의 발언들이 문제가 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임 목사가 인도한 집회나 작성한 칼럼을 보면, 그의 평소 대북관이 담긴 발언이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임 목사의 기자회견 후, 국내 언론들이 주목한 건 2013년 11월 미국 휴스턴의 한 교회 부흥회에서 그가 했던 발언이었다. 당시 집회에서 임 목사는, ‘김정은의 폭력과 공포정치에 신음하는 동포들을 구원하자’, ‘북한은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곧 붕괴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월 토론토 큰빛교회 홈페이지에 게시한 ‘잊혀진 통일의 꿈 되살리자’라는 칼럼에서는, 북한 주민들을 “가난한 심령들이고, 평생을 속아 살아 온 허망한 마음을 메꿀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임 목사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으면서도 김정은 정권에는 비판을 감추지 않았다.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임현수 목사의 체제 비판 발언들을 주목해 왔을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하나누리 대표 방인성 목사는, “거대한 지원 사업을 통해 북한에 영향을 끼쳤던 임 목사라도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면 북한 내 활동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신중치 못한 비판은 사역의 진정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북측은 임 목사가 숨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던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한반도평화연구원 윤환철 연구위원도 공권력의 필연적 반응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고 말했다. “임현수 목사의 선교 사역이 아무리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진행된다 하더라도, 북한 정부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인물을 좌시할 수 없다. 북한이 자신들만의 법 체제를 구축한 주권 국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임 목사의 발언들에서 보수 기독교의 북한 선교관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북한 체제와 정부를 부정하는 ‘북한 붕괴론’과 북한 주민의 개종을 염두에 둔 ‘복음 통일’이다.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게 재원을 쏟아부으면서 정부의 호의나 개인 회심 등의 열매를 바라는 선교 방식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선교 방식은 북한의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고 일종의 기독교식 정복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이 둘을 결합하면 마치 기독교 국가를 세우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니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달가워할 리 없다.
그러나 역시, 북한이 과한 처사를 내린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 주도홍 교수는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을 벌이면서 북한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한 임 목사에게 북한이 너무 엄한 처우를 했다.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 사역을 보고하고 후원금을 받는 과정에서 북한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북 사업하는 모든 사람이 공산주의자가 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남북통일을 위해서라도 기준을 정해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북한은 시장경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하면서 변화하는 중이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북한 시장경제 점진적 증가…국가 통제 수단으로 이용했을 수도
임현수 목사의 억류와 기자회견은 단지 임 목사의 발언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부가 체제·정권 유지를 위해 임 목사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현재 북한에 점진적으로 도입되는 시장경제가 체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시장경제가 활성화하고 대외적으로 개방이 일어나면 주민들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변한다. 이런 시국에 정부가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정권 유지는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경제는 상당 부분 변하고 있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은 8월호 커버스토리에서, 북한 경제에 등장한 신흥 자본가 ‘돈주’를 소개하며 북한 경제의 변화를 짚었다. 돈주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을 뜻한다. 북한 경제가 어렵던 90년대 중반, 북한의 국가 경제가 공급하지 못하는 생필품을 개인이 공급하는 (자유) 시장이 생겨나면서 돈주들은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에는 국가 경제가 미치지 못하는 산업 부분에 개인 기업들이 생겨났으며, 이 기업들을 기반으로 돈주는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개념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북한이 시장을 확장하고 대외에 개방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외부 투자자들을 통제할 의도로 임 목사를 본보기 삼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한 교계 북한 전문가는, “많은 사업을 유치하려면 대외 인사들과 사업가들을 초청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 정권에 불리하게 발언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체제 유지에 좋지 않다. 이를 위해 북한이 임 목사를 하나의 비즈니스적 표본으로 삼은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임현수 목사의 가족들과 토론토 큰빛교회는 그의 조속한 송환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7월 30일 임 목사 가족들의 성명 내용을 보도했다. 큰빛교회의 리사 박 대변인은 가족들을 대신해, 북한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의 지원 사업을 한 임 목사의 송환을 요청했다. 그는 동정심이 많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면서, 임 목사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임현수 목사에 대한 한국교회의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가 캐나다 시민권자라 국내 기독교인들이 섣불리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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