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 하되 사람 은 미워 하지 말라 |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상위 22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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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블로그에는 캡쳐본과 텍본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지만 혹여 영상이 아닌 캡쳐본으로 보고 싶으신분은 방문해 주세요~
https://teriousmy.tistory.com/

항상 제 영상을 봐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대부분 영상이 노란마크가 붙어
수익창출이 낮은건 아쉽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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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 나무위키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용서할 수가 없다? 그 죄의 경중을 가리고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저지른 죄를 그냥 묵살하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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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1/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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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 벗님글방 – 한겨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기에 그리 한 것이지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는 사람들이 구원받으려면 ‘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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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3/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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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2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레위기 19장 …

바람난 사람이 자기가 피는 바람은 로멘스라고 생각하고, 남이 바람 피면 불륜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즉 자기의 죄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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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9/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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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하는가?

지은 죄는 미워하면서도 그 죄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 요한일서 4:8-9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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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tquestions.org

Date Published: 8/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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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기독교방송 설교 :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유다서 1장 17-25절. 방송일 : 2018-03-25; 조회 : 3367.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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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ts.tv

Date Published: 8/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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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 법률신문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전주혜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2013-07-03 오후 4:28:04. 가. 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을 하게 된 지 어느덧 4개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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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lawtimes.co.kr

Date Published: 5/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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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곧 우리가 가진 상처와 분노, 좌절과 고통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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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2/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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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6: 미워하고, 사랑하라 (고후2:6-8) – 썹목사

생명길교회 청소년부 주일 설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죄인은 미워하지 않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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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sub2.tistory.com

Date Published: 10/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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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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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죄는 미워 하되 사람 은 미워 하지 말라

  • Author: 테리우스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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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4. 1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PYkHc23LpM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사진 픽사베이

며칠 전 TV 뉴스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보도하면서 같은 영상을 여러차례 되풀이해서 보여 주었습니다. 젊은 여성 교사가 큰 스폰지 베개를 들어 옆으로 돌리더니 서너살 아이를 힘껏 후려치는 거였습니다. 아이는 나동그라졌지요. 저 선생 입장에서는 아이가 뭔가 문제를 일으켰기에 그랬겠지만, 참으로 동정심 없는 행동입니다. 동정심(同情心), 상대방의 마음(情)에 같이 하는(同) 마음. 동정심을 뜻하는 영어‘sympathy’도‘같이 한다’는 뜻의‘sym’과‘정(情)’이란 뜻의 ‘pathos’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저 선생님이 아이의 마음, 입장, 정(情)에 같이(同)했더라면 차마 저리하지는 못하였겠지요.

뉴스 다음 장면은 그 교사가 아동학대죄로 구속적부심을 받는 법정 앞에서 피해 어머니들이 울면서 엄벌을 호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 손주가 어린이집에서 저런 학대를 당했다면 나도 당연히 분개했을 겁니다. 하지만 악인을 변호하는 직업의식의 발로인지 나는 저 장면에서 어쩐지 마음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악행에 대한 벌은 법의 몫으로 맡겨 두고 그 과정을 지켜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죄를 미워하는 걸 넘어서서 사람까지 미워하다 보면 자신 역시 동정심을 잃게 되어 그 악인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고.

저 뉴스 보도도 그렇습니다. 교사가 아이를 후려치는 장면을 저리도 되풀이해서 보여 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시청자들에게 자극적인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 주어 시청률을 올리려는 이기적인 의도로 읽혀졌습니다. 이기심(利己心)은 동정심의 반대이지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다른 사람 잘못을 들추어내 집단적으로 매도하고 단죄하는 데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우리는 아무 흠이 없나? ‘한 오백년’이란 노래 가사는 이제 내 탄식이 되었습니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동정심 없어서 나는 못 살겠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으면서 바로 잡아주지 못하고, 사회가 선생의 어린 짓에 대해 엄벌만을 외쳐대고, 매스컴이 이를 자기 장사에 이용하는 식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

우리는 성인을 떠받들고 악인을 욕합니다. 하지만 어디 성인이나 악인이나 제 선택으로 그런 성품을 타고난 건가요. 조상들로부터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은 거고, 세상에 나온 후 교육과 주변 환경이 여기에 더해져서 성인과 악인의 길을 간 거지요. 누군가를 성인이라 떠받들고 악인이라고 저주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잠시 동안 그를 만들어낸 조상들의 ‘유전자’와 그를 둘러싼 ‘환경’이겠지요.

2년 전 끔찍한 살인범을 대리해서 사형제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른바 명문대를 나온 젊은이였는데 여러 망상에 시달리다가‘내면에서 들려오는 어떤 명령’에 따라 어머니를 잔인하게 죽이고, 도망가는 아버지도 안방까지 쫓아가서 죽였습니다.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이 패륜아를 저주하는 대신, 또 다른 살인인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이 헌법재판을 시작한 겁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기에 그리 한 것이지요.

힌두교 경전 는 사람들이 구원받으려면 ‘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길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흠 많고 유한한 우리가 사실은 흠 없는‘절대’의 변전(變轉)이라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성인이건 악인이건 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잘 알아 깨닫는‘지혜’의 길. 행위의 결과를 얻으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저 행위 자체를 하는‘내버림’의 길. 신과 이웃에게 철저히 자신을 바치는‘헌신’의 길.

이제 우리는‘나’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서 사회 전체가 서서히 빠져들고 있는 미움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인이나 성인이나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는 걸 참으로 깨달아 알 일이요, 그래서 죄는 미워해도 죄인은 미워하지 않는 동정심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글 김형태/변호사 & 발행인

***이 시리즈는 격월간 과 함께합니다.

20181002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레위기 19장 17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http://thececc.com/wp-content/uploads/2018/10/20181002.m4a 지난 6월 러시아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 가운데 축구 종가 잉글랜드와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를 상대로 16강전 경기가 열렸습니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이 났고, 월드컵 8강에 올라갈 나라를 결정짓기 위해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졌습니다. 초반 승부자기에서 3대2로 승기를 잡은 콜롬비아는 아쉽게도 축구 선수 ‘우리베’와 ‘바카’의 실책으로 결국 잉글랜드에게 3대 4로 패배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제는 경기가 끝나고 일어났습니다. 승부차기를 실책한 콜럼비아 축구선수 ‘우리베’와 ‘바카’의 SNS 게시판에 “네가 죽기를 바란다.” “범죄조직에서 처리할 것이다.”라는 위협적인 살해 협박의 글들이 가득 넘쳐 났습니다. 콜럼비아 국민들이 이 사건을 웃어 넘길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지난 1994년도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라는 이름의 콜롭비아 선수가 귀국 후 총에 맞아 사망했던 비극적인 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경기라는 것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패널트킥 한 번 실축 했다고 살해 위협까지 받는 콜롬비아 축구선수들은 참으로 측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만일 패널트킥을 실책 한 축구선수가 자기 형이나 동생, 혹은 자기 아버지나 아들이였다면 그렇게까지 강하게 책망하고, 살해 협박까지 했을까요? 저는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집에 돌아온 선수의 등을 토닥여 주며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에 잘 하면 되지.” 하고 격려와 위로를 해주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가혹할 정도로 타인의 실수에 냉정합니다. 앞서 언급한 콜롬비아 축구 선수들은 경기 전에는 국민의 영웅처럼 여겨지던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수를 용납해주지 못하고 이처럼 비난과 살해 협박까지 주어진 것이죠.

요즘 한국에는 ‘내로남불’이란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의 줄임말입니다. 바람난 사람이 자기가 피는 바람은 로멘스라고 생각하고, 남이 바람 피면 불륜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즉 자기의 죄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고,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여지 없이 죄인으로 낙인 찍어 버리고 비난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타인이 지은 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 해야 하는 것일까요? 물론 죄의 종류에 따라, 상대방의 성숙함에 따라, 신앙의 수준에 따라, 성별, 나이, 문화, 타자의 상황에 따라 다루는 방법이 달라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은 이에 대하여 가져야할 공통적인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 레위기 19장 1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레 19: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먼저 오늘 본문을 두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관용과 책망입니다. 먼저 관용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 부분이 바로 관용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세상에 넘어지지 않고 걸음걸이를 배운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라도 실수하는 법입니다. 사람 치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고, 죄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관용’은 단순히 “나도 죄인이고 저 사람도 죄인이다. 그러니 용서하자”는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상대방의 범죄나, 실수나, 악한 일로 인하여서 그를 마음 속으로 증오하는 것은 곧 살인하는 죄를 짓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증오심을 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집에 찾아오면, 마실 물 내주고, 과일 깎아주고, 그를 선대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과실을 용서해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정신 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관용’의 정신입니다. 일만 달란트의 평생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았기 때문에, 백 데나리온 빚을 진 형제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무조건 ‘관용’의 자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미워하지 않아도 죄에 대해서는 단호 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죄는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하반절을 보니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책선’이란 말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책망의 기본적인 의미입니다. 단순히 남의 실수에 대하여 ‘비난’하는 것은 상대방을 헐뜯고 모함하여 손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망’은 상대방의 실수를 교정하여 결과적으로는 선을 도모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책망’하십니다. 우리의 범죄와 잘못을 교정하여 선으로 향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결코 불의한 것과 타협하거나 죄를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책망으로 이웃과 형제가 선한 길로 나올 수 있도록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을 권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17절 말씀에는 ‘관용’과 ‘책망’의 정신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언뜻 보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없을 것 같고 서로 정반대의 사상 같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바로 이 두가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시되 자기 몸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를 미워 하셔서 십자가에서 죄의 머리까지 부서 버리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관용과 책망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죄인에 대해서는 관용의 정신을 즉, 저들이 구원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형상을 지난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죄에 대해서는 용납함 없이 미워해야 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관용과 책망의 정신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하는가?

질문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하는가?

답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인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죄는 미워하십시오” 라는 오래된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말들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다서 1: 22-23에 비슷한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이 구절에 따르면, 우리의 전도는 죄인을 향한 자비로 특징 지워져야 하고, 또한 죄와 그 결과에 대한 건강한 미움으로 특징 지워져야 합니다.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신 사실을 기억하며,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또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세우기 위한 노력의 일부로서, 우리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27). 그러나 또한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인 것과 사랑함과 미워함에 있어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는 광대한 차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도 완전하게 사랑할 수 없으며, 또한 완전하게 미워할 수 없습니다 (즉, 악의 없이).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죄스러운 의도도 없이 미워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죄와 죄인을 완벽하고 거룩한 방법으로 미워하실 수 있으며, 죄인이 회개하고 믿는 순간에 여전히 그 죄인을 사랑으로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말라기 1:3; 요한계시록 2:6; 베드로후서 3:9).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요한일서 4:8-9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신비스럽지만 참된 사실은, 하나님은 동시에 한 사람을 완전하게 사랑하고 완전하게 미워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분이 직접 창조하고 구속할 수 있는 자로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불신앙과 죄 많은 생활 방식 때문에 그를 미워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을 사랑하되 죄를 미워하라”는 것을 늘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이 일이 정확히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는 죄의 본질이 어떠한가를 인식함으로, 그것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함으로,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정죄함으로써 죄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죄는 미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변명을 대거나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죄인들에게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줌으로 (베드로전서 2:17),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디모데전서 2:1),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죄인들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의 삶의 방식과 죄스러운 선택을 승인하지는 않더라도, 존중과 친절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이 참된 사랑의 행위입니다.어떤 사람이 죄에 빠져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죄 가운데 있다고 말해 주는 것은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정확히 그 반대가 사실입니다. 죄는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야고보서 1:15).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써, 죄인을 사랑합니다 (에베소서 4:15). 우리는 죄를 묵과하거나 무시하거나 죄에 대하여 변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죄를 미워합니다.

CTS기독교방송 설교 :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유다서 (1장 : 17절 ~ 25절)

1: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1: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1: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고린도후서6: 미워하고, 사랑하라 (고후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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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길교회 청소년부 주일 설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죄인은 미워하지 않으면서 죄만 미워하는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폰을 새로 샀는데 내가 잠깐 구경하다가 떨어뜨려서 액정을 깨트렸다고 생각해 보라. 물론 서비스센터에 맡겨서 깔끔하게 수리를 해주긴 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도 그 순간 말끔해지는가? 뭐 그렇다고 한다면 다행이지만 아마 아닐 것이다. 아주 사소하게라도 앙금 같은게 남을 것이다.

“목사님은 하여튼 조심성도 없어…”, “다음부터는 내 폰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해야지”, “혹시 청소년부 물품 중에 고장 난 것도 알고 보면 다 목사님이 한거 아니야?” 등등. 이건 분명히 죄도 미워하고 사람도 미워하는 것이다. 죄만 미워하고 죄를 지은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죄가 미우면 미울 수록 그 사람도 미워지기 마련이다. 내가 가벼운 예를 들어서 그렇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잘못이나 죄를 예로 들었다면 분명 내 말에 동의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 어려운걸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후 2:5-7, 쉬운성경)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나를 아프게 했다기보다 어느 정도는 여러분 모두를 아프게 한 것입니다. 내가 어느 정도라고 말한 것은 너무 심하게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서 그 사람이 받은 처벌은 이미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이제는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여 그 사람이 너무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

몇 차례 얘기했던 것 처럼 고린도 교회 안에는 많은 문제거리가 있었다. 교회 안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결국 성도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고린도 교회에는 ‘문제아’들이 많았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차마 있는 그대로 다 말하지는 못하겠고, 수위를 좀 조절해서 대략적으로 말하도록 하겠다.

성적인 문제도 있었고, 금전적인 문제, 관계의 문제, 이단(우상 숭배)의 문제 등, 온갖 문제란 문제는 다 일어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몇몇 사람들은 바울은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면서 바울의 사도성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 바로 고린도 교회였다.

이런 고린도 교회의 상태를 생각할 때 바울의 마음은 어땠을까?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속이 상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의분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러지 않았을까? 좋다. 감정적인 문제는 그렇다 치고, 그러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비록 심각한 죄를 짓긴 했지만 그래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어떻게든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으니까, 그게 어디냐’ 하면서 성도들의 죄를 그저 못 본 척, 모르는 척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그래도 명색이 성도라면, 교회라면 적어도 그런 죄는 짓지 말아야지” 하면서 엄중하게 심판해야 할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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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자.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죄를 생각한다면, 분명 호되게 꾸짖어야 한다. 죄를 미워해야 한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 차마 매를 들 수가 없다. 자칫하면 그 매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못을 꾸짖는 이유는 결국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만약 그 꾸짖음으로 인해서 오히려 더 어긋나게 된다면, 그때는 기껏 꾸짖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던 계획까지 변경한 것이다.

(고후2:1, 쉬운성경) 나는 이번처럼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는 방문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어떤가? 바울의 심정이 좀 이해가 되는가? 문제투성이의 고린도 교회. 매를 들자니 감당하지 못할까봐 걱정되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자니 정신을 못 차릴까봐 그것도 걱정되고. 만약 여러분이 바울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바울은 원칙대로 하기로 했다. 바울이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란 무엇인가?

첫째,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사랑해야 한다.

거룩하다는 것은 죄를 멀리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죄를 심판하고 바로 잡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심각한 죄를 범한 성도를 징계하라고 고린도 교회에 명령했다(고전5:1). 바울이 내린 징계는 그 성도를 교회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출교)이었다. 동시에 바울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 전체를 엄하게 꾸짖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 사람이 심각한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뻔히 다 알면서도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몸에 암세포가 퍼지고 있는데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과 같고, 전염병 환자가 온 동네를 활개치고 다니는데도 그냥 방치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건 사실상 ‘예수 믿어도 방탕하게 살아도 괜찮다’라고 허용해 주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엄하게 꾸짖으면서 지금 당장 그 사람을 내쫓으라고 명령한 것이다.

(고전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고전5: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 쫓으라

결국 그 사람은 고린도 교회에서 추방되었다. 이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거 아닌가? 그게 또 그렇지 않다. 징계의 목적이 무엇인가?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서 심각한 죄를 범한 성도를 출교시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바울의 최종 목적은 징계(출교)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한 그 성도를 바로 잡는 것이었다. 그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 사람이 출교라는 중징계를 당함으로써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죄의 사슬을 끊고, 이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길 바랬다. 그런 목적에서 징계를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요구대로 이제 그 사람을 출교시켰으니 모든게 다 끝났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했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그 사람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그가 진정으로 돌이키길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궁극적으로 원하는 일이었고, 바울이 지키고자 했던 두 번째 원칙(교회는 사랑해야 한다)이었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바울의 이러한 태도와 결정이 좀처럼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아니, 무슨 병 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쫓아내라고 하지를 말든가, 실컷 쫓아내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이제는 그 사람을 살펴보고 기도해 주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성도를 교회에서 추방하는게 어떻게 그 성도를 바로 잡는 일이 될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시간에 모든 걸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이번 주 화요일(5월23일) 새벽예배에 나오면 된다.

그렇다고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 잠깐 예를 들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자녀를 키우다보면 어쩔 수 없이 자녀에게 벌을 줘야 할 때가 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녀에게 벌을 내리면서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정말 말 그대로 가슴이 찢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눈물을 머금고 벌을 줄땐 따끔하게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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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아내가 딸이 밥을 너무 안먹는다면서 너무 속상해 하고 있었다. 아무리 맛있는 걸 해줘도 몇 숟가락 뜨다가 말고, 밥은 안 먹고 자꾸 간식 같은 것만 달라고 떼를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굶기라고 했다. 몇 끼 굶어도 안 죽으니까 밥 달라는 소리 나올 때까지 굶기라고 했다. 내 말을 듣고 아내는 “그래도 어떻게 그러냐, 뭐라도 먹여야지” 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어차피 줘도 안 먹는데, 뭘 그렇게 안달복달 하느냐, 배고프면 밥 달라는 소리가 나오게 되어있다. 다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하루는 큰 맘 먹고 딸을 굶겼다. 그날 아침에도 몇 숟가락 뜨고 말 길래, 이제 밥 달라고 할 때까지, 밥 잘 먹을 때까지 먹을거 하나도 안 줄거니까 그런 줄 알라고 엄포를 놨다. 그래서 점심을 굶겼다. 솔직히 말해서 딸보다 우리가 더 조마조마 했다. 여러분도 부모가 되어보면 내 심정을 알 것이다. 고작 한 끼 굶었을 뿐인데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러다가 성장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거 아닐까’, ‘혹시 거식증이라도 생기면 어떻하지’ 등등.

그런데 이 독한 녀석이 저녁 식사 시간이 다됐는데도 밥 달라는 소리를 안 하는 것이다. 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허기를 못 느끼는 체질인가?’, ‘혹시 조금만 먹어도 몇 일 버틸 수 있는 그런 몸인가?’ 그러다가 한 9시쯤 되니까 밥 달라고 하더라. 주니까 잘 먹더라.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더 달라고 하더라. 그럼 그렇지. 배고픈데 장사 없다.

자, 내가 딸을 왜 굶겼는가? 굶겨 죽이려고 그랬는가? 아니다. 정 반대다. 밥을 먹이려고 굶겼다. 그러니까 굶기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굶기면서도 언제 밥을 달라고 할까 지켜봤던 것이다. 마찬가지다. 바울이 심각한 죄를 저지른 성도를 출교 시키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죽이기 위해서였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 딸이 늦게나마 밥을 달라고 했던 것 처럼, 출교 당했던 그 성도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돌이켰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딸에게 밥을 준 것처럼, 고린도 교회(성도들)도 그 성도를 다시 받아줘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징계가 너무 약했다면서, 더 강도 높은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건 뭐하고 같냐하면 딸이 이제 배고프니 밥 좀 달라고 하는데도, “아니다. 넌 정신 차리려면 한참 멀었다. 더 혼쭐이 나야 된다”고 하면서 일주일 넘게 굶기는 것과 같다. 이건 이미 징계의 목적이 뒤틀려 버린 것이다.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 순전히 징계를 위한 징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징계의 목적이 어긋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당연히 결과도 어긋나게 된다. 징계를 받은 사람이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포기하고 완전히 어긋난 길로 가게 된다. 쉽게 말해서 밥을 먹이려고 밥을 굶기는 것인데, 이 목적을 망각하고 계속 밥을 안주는 바람에 굶겨 죽이는 것과 같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그 사람은 이미 충분히 징계를 받았고, 징계로 인해 회개했으니, 이제 그 사람을 다시 받아 주라”고 요청한 것이다.

(고후 2:6-8, 우리말성경) 그러한 사람에게 여러분은 이미 충분한 벌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가 더 큰 근심에 잠기지 않도록 오히려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기를 권면합니다.

이것은 결코 바울이 병 주고 약주는 변덕스러운 일을 한게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 제법 쓴 약을 처방한 것이고, 병이 나았기 때문에, 이제 약을 끊어도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 정도 쓴 약으로는 안 된다. 더 쓴 약을 먹여야 된다’고 하면서 아무런 효과도 없는데, 그저 쓰기만 한 그런 약을 입에 쏟아 부으려고 했다. 그래서 바울이 이제 그만 먹이라고 말린 것이다.

여기서 뭘 알 수 있는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바울의 사랑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분명 그 성도가 저지른 죄를 미워했다. 그런 죄 때문에 교회와 성도의 명예가 실추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 지는 것에 대해서 거룩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교회에서 추방시키는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바울은 그 사람을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죄를 미워했을 뿐이고, 그의 영혼은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바울이 내린 징계의 초점은 그 사람의 영혼(믿음)이 회복되는데 맞춰져 있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징계를 받은 이후에 회개하고 돌이켰다. 그래서 바울은 발 벗고 나서서 그 사람을 감싸 안아 주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자세다.

하지만 우리는 좀처럼 이렇게 하지 않는다. 죄도 미워하고 사람도 미워하거나, 아니면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대신 죄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져 버린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한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완전히 매장시켜 버리거나, 반대로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그저 쉬쉬하면서 넘어가 버린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사탄의 속임수다(고후2:11). 무슨 말이냐? 사단은 우리를 교묘하게 속여서 우리가 죄를 미워해서 죄를 바로 잡으려고 하다가 사람까지 잡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해서 죄를 용서해 주려고 하다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죄까지 그냥 묵인하고 넘어가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바울이 지킨 두 가지 원칙, 교회의 거룩성과 사랑이 깨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바울은 사단에게 속지 말라고 신신 당부 했다.

(고후1: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사단에게 속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거룩성과 사랑을 동시에 지켜야 한다.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서 6절 말씀에 기록된 것 처럼 누군가가 죄를 범했을 때는 마땅히 벌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8절 말씀처럼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그래야 잘못을 바로 잡고 범죄한 영혼을 건질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서 오셨고, 영혼이 병든 자를 위해 오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죄인을 그냥 내버려 두고, 병든 자를 그냥 방치했던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셨고(다르게 표현하면 바로 잡으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다(쓴 약을 먹이 셨다). 예수님은 몸소 거룩성과 사랑의 원칙을 지키셨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으셨다.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해야 한다.

잊지 말라. 잘못된 징계도, 잘못된 사랑도 영혼을 망친다. 우리는 바르게 징계하고 또 바르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의 징계와 사랑은 항상 영혼을 살리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고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가 예배시간에 자꾸 졸거나 다른 짓(옆 친구랑 얘기, 스마트폰 포기)을 하고 있으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정중하게 주의를 줘야 한다. 서로서로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그냥 못 본 척, 모르는 척 넘어 가는게 더 잔인한 짓이다. 다만, 그 친구가 충고를 받고 자세를 고쳤을 때에는 예배 후에 인사를 나누라. “아까 혹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그래도 내 얘길 들어줘서 고맙다” 이게 거룩성과 사랑을 동시에 지키는 길이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일이다.

이렇게 죄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징계하고,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어주는 이 두 가지를 몸소 실천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부가 거룩과 사랑을 동시에 함께 지켜 나가는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 고린도후서GBS3: 미워하고 사랑하라 (고후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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