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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선순례 새 시즌을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신실한 순례자들의 성지 이야기
바울의 길을 따라 터키와 그리스를 순례하는 랜선순례 시즌 2 새롭게 시작합니다.
신실한 순례자들의 안내서 \”기도하며 함께 걷는 바울의 길\”을
순례 교과서로 사용하여 진행합니다.
\”기도하며 함께 걷는 바울의 길\”의 저자인 강신덕 목사와
토비아선교회 대표 김덕진 목사가 안내하는 랜선순례!!
랜선순례 시즌 2 에피소드 1편
바울의 고향: \”다소\”편입니다.
지리와 역사, 성경의 이야기와 묵상으로 구성되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런 분들이 보시면 좋습니다.
1. 성지순례를 준비하고 계신 분들
2. 성지순례를 다녀오셨지만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들
3. 성경공부에 지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신 분들
4. 신앙생활은 오래하셨지만 성경의 지명은 잘 모르시는 분들
5. 성경의 지명을 중심으로 말씀과 신앙콘텐츠를 준비 중이신 사역자 분들!!
랜선순례가 은혜가 되셨다면 토비아선교회 유튜브 채널에
좋아요, 구독, 그리고 알림설정까지 부탁드립니다.
#터키 #그리스 #랜선순례 #성지순례 #바울의길 #토비아 #토비아선교회 #샬롬교회 #강신덕 #김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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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혹은 잃어버린 세월 – 미주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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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순례 Season 2 Episode 1 - 바울의 고향 다소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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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바울 다소 10년

  • Author: 토비아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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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최초 공개: 2021. 8. 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utrCtaD6J8c

무화과 열매가 풍성한동네

아라비아와 다소에서의 바울

1. 바울의 초기 행적에 대한 성경의 증거

회심 이후 자신의 행적에 대해 바울은 갈1:17-18에서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라고 설명한다. 더글라스 레드포드의 정리에 따르면, 다메섹에서 일어난 바울의 회심은 AD 34년이고 그가 아라비아로부터 예루살렘에 방문한 때는 AD 37년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가 바울의 아라비아에서의 행적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회심 후 3년만에 이뤄진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 대해 행9:26-30은 바울이 그가 핍박하던 복음의 변호자가 되었으나 예루살렘 제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으며, 더 나아가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 살해위협을 받았음을 알려준다. 행9:30은 “형제들이…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고 기록한다. 이 후 AD 46년, 바나바에 의해 사울이 다소로부터 안디옥으로 부름받을 때까지(행11:25) 훗날 바울이라 이름하는 이 사울은 약 10년간 그의 고향 다소(행22:3)에 머물렀다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합치된 견해다.

그로부터 약 12년 후인 AD 58년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음을 상기한다면, 회심 후 체포까지의 그의 행적은 약 13년(아라비아 3년, 다소 10년)의 준비와, 약 12년의 본격적 사역으로 크게 나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아라비아와 다소의 행적들 사이 예루살렘에 방문했던 일은 보다 사려깊은 관찰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바울은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 그의 사역에 있어 충분한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바울의 다소행은 그의 자의라기보다 타의에 의한 도피에 가까운 것으로 행9:29-30이 기록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서도 그는 그 특유의 성품대로 담대했다.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변론에 대해 누가는 두 번이나 “담대히(παρρησία)”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행9:27, 29) 이는 3년 전 사울이 다메섹에서 회심 직후 “힘을 더 얻어”(행9:22)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명한 것과 확신이나 방식에 있어 유사함을 보인다. 아라비아에서의 3년은, 그리고 예루살렘 방문 이후 다소에서의 10년은 이 후의 사역에서 보이는 바울의 신학적, 사역적 확신과 완성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이 분명하다.

2. 아라비아의 위치와 바울의 행적

아라비아는 건조한 사막으로 불리던 곳이다. 바울이 당시 ‘아라비아’라고 이름하는 지역에 머물던 시기에 그 곳은 나바테아 왕국의 지배 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바테아 왕국의 중심지는 나바투(훗날의 페트라)였고 아라비아 반도 북동부에서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아울러 시리아(수리아)의 다메섹까지를 포함하는 영토를 사실상 정치적으로 지배했다. 주후 105년 로마황제 트라야누스가 나바테아 왕국을 로마제국에 편입시키기까지 나바테아는 로마의 인접왕국으로서 건재했다. 한 편, 고후11:32에서 ‘아레다 왕’으로 간단히 언급되듯이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의 나바테아 왕은 사료에서 발견되는 대로 아레타스 4세(9BC~40AD)였을 것이다.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라는 숨은 시간(hidden time)에 대해 아직까지 합치된 견해는 없다. 다만 바울의 아라비아 행적에 대해 크게 4가지의 의견이 있을 뿐이다. 첫째, 그가 3년간 아라비아에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지며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Moo) 이 주장에 따르면 바울은 아마도 이 곳에서 ‘갈라디아서’에서 드러나는 ‘이신칭의’ 교리를 정교화했을 것이다. 둘째, 그가 아라비아에 교회를 개척하러 갔을 것이라는 주장이다.(Hengel and Schwemer) 그렇다면 이 시기는 바울의 진정한 1차 선교가 된다. 셋째, 그가 앞으로의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Timothy George) 이 견해는 첫째와 둘째 견해를 아우르는 듯 하고 설득력 또한 크다. 어떠한 모양으로든 그의 3년간의 시간은 장래 사역을 위한 준비가 되었을테니 말이다. 넷째, 바울이 3년이라는 시간 대부분을 실제로는 다메섹 전도에 매진했고 아라비아에는 단지 얼마간 내려갔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행9:19-25을 연대기적으로 해석한다. 특히 행9:23의 “여러 날(ἡμέραι ἱκαναί)”을 “많은 날” 혹은 “충분한 날”로 직역하여 이 시간이 바로 3년을 뜻하는 것이며 본문의 문맥에 따르면 이 시기동안 바울이 다메섹에서 전도활동에 매진했다고 한다. 요컨대, 이 마지막 견해는 바울의 3년을 다메섹에서의 3년으로 보는 것이다.

바울의 숨은 3년에 대한 성경본문들과 또 이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비교해볼 때 위에서 다룬 셋째 견해, 즉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앞으로의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있어 보인다. 우선 아라비아를 다메섹으로 축소하여 해석한다면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아라비아를 언급하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 된다. 또한 그가 만일 아라비아에 교회를 개척하러 갔다면 사도행전이나 이 후의 어떤 서신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이 재차 언급되었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단순히 중세 수도사들처럼 기도와 묵상에만 매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회심 직후 그가 다메섹에서 즉시 전파했던 모습(행9:20)이나 3년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 전파한 모습(행9:29)은 매우 활발하여 수도원적 모습과는 상이하기 때문이다.

3. 다소의 위치와 바울의 행적

척박한 아라비아와 달리 길리기아 다소(Tarsus)는 헬라철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길리기아는 시리아에서 북서쪽에 위치했으며 다소는 그 곳의 큰 성이었는데 그 곳은 아덴 다음으로 이름난 학문의 도시였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이 곳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성장했다(행22:3). 그러나 그는 다소 사람이라 불리웠다(행9:11). 바울의 학문은 위정자들에게도 유명했다(행26:24). 훗날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헬라문화(신화나 철학)에 매우 익숙한 유대인이었다. 다소는 큰 성이었으므로 그 곳에도 분명 유대인의 회당이 존재했을 것이다. 바울은 매우 당연한 듯이 거점도시마다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자신만의 규례를 갖고 있었다.

아라비아에서의 행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과 달리 다소에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가 있다. 사도행전이나 다른 서신서에 등장하지 않지만 이 곳에서 그가 사역을 감당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바나바가 그를 찾기 위해 다소를 방문하기까지(행11:25) 바울은 무명의 사역자로 활동했다. 다소에서 행한 그의 사역이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이 시기까지 예루살렘 교회가 그를 인정치 않았기 때문이다.(행9:26) 그는 악명높은 핍박자에서 이제 막 기적적으로 회심한 신자였다. 교회는 여전히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둘째, 사도행전의 기록은 기본적으로 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끝의 성취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땅끝을 겨냥한 안디옥교회의 선교를 설명함에 있어서 바울의 다소 사역은 주목받을 이유가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4. 바울의 시간표: 아라비아 이후와 다소 이후

바울은 분명히 회심 이후 곧장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노라고 말한다.(갈1:16) 아라비아에서의 3년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갈1:17-8) 그 곳에서 바나바는 “그[바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행9:27)을 말하며 그를 변호했다. 바나바가 이로부터 10년 뒤 또다시 바울을 찾으러 길리기아 다소에 갔던 것(행11:25)은 그가 오랜 세월 바울의 충실한 변호자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바울은 이미 회심 직후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행9:22)시켰었다. 이는 구약에 능통했던 그에게는 직가 거리에서의 며칠이 구약의 예언과 그리스도의 성취를 연관짓기에 충분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성취에 대한 그의 신학적 토대는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 아니라 다메섹에서 곧장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면 아라비아 3년은 그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또 그 다음 다소 10년은 그의 사역에 어떠한 발판이 되었는가?

아라비아 3년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본래 사도들에게 전해듣지 않고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마주했던 바울이었다. 바울은 왜 예루살렘에 올라갔는가? 이에 대해 바울은 “게바를 심방하려고”(갈1:18)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게바를 심방하려 한 것인가? 아마도 바울은 게바나 야고보 처럼 자신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갈1:17)을 만나서 함께 사역하기 원했을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갈1:22)했다는 표현에서 짙게 나타난다. 그는 그때까지도 사도성은 고사하고 회심의 진정성조차 의심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예루살렘에서 자신과 같은 배경을 가진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했고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행9:29)는 바람에 고향인 다소로 보내지게 되었던 것이다.

다소 10년은 바울이 계획했던 시간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는 아라비아 3년 이후 자신의 사역을 본격화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앞서 다룬대로 예루살렘과 유대의 교회들이 그를 인정치 않았기 때문이다. 회심으로부터 14년이 지난 후 바울은 또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이를 다룬 갈2:8에서 바울은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고 말한다. 이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역적 역할분담을 위한 것이었다. 왜 이러한 사역적 역할분담이 필요했을까? 갈2:2에서 바울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다소에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그리스도의 도를 유대교의 보완이나 개혁 정도로 여겼던 소위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세력은 그 때까지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헤롯의 핍박으로 인해 유대교와의 간격이 더욱 벌어지던 이 시기(행12장) 이방인 또는 헬라파 유대인들에 대한 바울의 선교적 열심은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고립되어 가던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인정된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화를 짊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바울]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갈2:9) 하게 되었다.

5. 나의 시간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로부터 자신의 소명을 인정받고자 했던 14년간의 바울의 노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룩한 공교회의 인정을 받고 함께하는 것은 사역의 정통성과 안정성, 그리고 장래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참으로 전도와 선교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중한 사명이라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지상대명령 아래에서 각기 다른 영역과 모양으로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교회들과 “교제의 악수를”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생명 살리는 신학으로 정진하는 많은 신학도들과 더불어 여러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의 달음질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을 또 하나의 사명으로 새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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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바울평전』, 다소에서 침묵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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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한국기독공보 길리기아 다소에서의 10여 년은 바울에게 훗날 눈부시게 전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신적 활력이 키워졌고, 강하고 굳센 신앙이 자란 시기였다.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한국기독공보 길리기아 다소에서의 10여 년은 바울에게 훗날 눈부시게 전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신적 활력이 키워졌고, 강하고 굳센 신앙이 자란 시기였다. 뉴스, 기획·특집, 가정예배, 칼럼·제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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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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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생애(2) 회심에서 안디옥 교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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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바울의 생애(2) 회심에서 안디옥 교사까지 고후 11:23-27을 근거로 다소에 있는 동안 몇 가지의 일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불분명하다. F. F. 부르스는 약 10년으로 추정하고, 11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바울의 생애(2) 회심에서 안디옥 교사까지 고후 11:23-27을 근거로 다소에 있는 동안 몇 가지의 일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불분명하다. F. F. 부르스는 약 10년으로 추정하고, 11 … 바울의 생애(2) 회심에서 안디옥 교사까지 회심 바울의 회심은 AD34년으로 보인다.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려는 도중(途中)에 일어난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그는 자신의 신앙에 크나큰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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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생애(2) 회심에서 안디옥 교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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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다소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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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바울 다소 10년 그러나 고향 다소에서의 생활은 10년이나 이어졌다.1) 청년의 혈기를 억누르고 복음의 뜻을 펼치지 못한 채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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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다소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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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에서의 10년 후, 바울은 사도가 되다 | 제자훈련을 마치며 – 디사이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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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다소에서의 10년 후, 바울은 사도가 되다 | 제자훈련을 마치며 – 디사이플 다소에서의 10년 후, 바울은 사도가 되다 | 제자훈련을 마치며. 2006년 12월 안종천 집사 _ 사랑의교회. INTRO 유난히 삶의 고민이 많았던 사월 오일, 하루 종일 침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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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에서의 10년 후 바울은 사도가 되다 제자훈련을 마치며

Vol98 2006년 12월호

(사)사랑플러스

다소에서의 10년 후, 바울은 사도가 되다 | 제자훈련을 마치며 – 디사이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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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아라비아에서 보낸 삼 년은 기도와 묵상의 기간? : 기고 : 미주 종교신문1위 : 기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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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바울의 아라비아에서 보낸 삼 년은 기도와 묵상의 기간? : 기고 : 미주 종교신문1위 : 기독일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고, 거기서 3년 동안 체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자신이 회심한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바울의 아라비아에서 보낸 삼 년은 기도와 묵상의 기간? : 기고 : 미주 종교신문1위 : 기독일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고, 거기서 3년 동안 체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자신이 회심한 …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고, 거기서 3년 동안 체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자신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고 분명히 진술합니다. 그러나 아라비아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거기서 조용히 칩거하면서 깊은 기도와 묵상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최근에 어느 주석학자는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모든 인간적인 접촉을 끊고 하나님과 홀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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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아라비아에서 보낸 삼 년은 기도와 묵상의 기간? : 기고 : 미주 종교신문1위 : 기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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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열매가 풍성한동네

아라비아와 다소에서의 바울 1. 바울의 초기 행적에 대한 성경의 증거 회심 이후 자신의 행적에 대해 바울은 갈1:17-18에서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라고 설명한다. 더글라스 레드포드의 정리에 따르면, 다메섹에서 일어난 바울의 회심은 AD 34년이고 그가 아라비아로부터 예루살렘에 방문한 때는 AD 37년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가 바울의 아라비아에서의 행적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회심 후 3년만에 이뤄진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 대해 행9:26-30은 바울이 그가 핍박하던 복음의 변호자가 되었으나 예루살렘 제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으며, 더 나아가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 살해위협을 받았음을 알려준다. 행9:30은 “형제들이…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고 기록한다. 이 후 AD 46년, 바나바에 의해 사울이 다소로부터 안디옥으로 부름받을 때까지(행11:25) 훗날 바울이라 이름하는 이 사울은 약 10년간 그의 고향 다소(행22:3)에 머물렀다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합치된 견해다. 그로부터 약 12년 후인 AD 58년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음을 상기한다면, 회심 후 체포까지의 그의 행적은 약 13년(아라비아 3년, 다소 10년)의 준비와, 약 12년의 본격적 사역으로 크게 나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아라비아와 다소의 행적들 사이 예루살렘에 방문했던 일은 보다 사려깊은 관찰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바울은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 그의 사역에 있어 충분한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바울의 다소행은 그의 자의라기보다 타의에 의한 도피에 가까운 것으로 행9:29-30이 기록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서도 그는 그 특유의 성품대로 담대했다.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변론에 대해 누가는 두 번이나 “담대히(παρρησία)”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행9:27, 29) 이는 3년 전 사울이 다메섹에서 회심 직후 “힘을 더 얻어”(행9:22)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명한 것과 확신이나 방식에 있어 유사함을 보인다. 아라비아에서의 3년은, 그리고 예루살렘 방문 이후 다소에서의 10년은 이 후의 사역에서 보이는 바울의 신학적, 사역적 확신과 완성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이 분명하다. 2. 아라비아의 위치와 바울의 행적 아라비아는 건조한 사막으로 불리던 곳이다. 바울이 당시 ‘아라비아’라고 이름하는 지역에 머물던 시기에 그 곳은 나바테아 왕국의 지배 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바테아 왕국의 중심지는 나바투(훗날의 페트라)였고 아라비아 반도 북동부에서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아울러 시리아(수리아)의 다메섹까지를 포함하는 영토를 사실상 정치적으로 지배했다. 주후 105년 로마황제 트라야누스가 나바테아 왕국을 로마제국에 편입시키기까지 나바테아는 로마의 인접왕국으로서 건재했다. 한 편, 고후11:32에서 ‘아레다 왕’으로 간단히 언급되듯이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의 나바테아 왕은 사료에서 발견되는 대로 아레타스 4세(9BC~40AD)였을 것이다.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라는 숨은 시간(hidden time)에 대해 아직까지 합치된 견해는 없다. 다만 바울의 아라비아 행적에 대해 크게 4가지의 의견이 있을 뿐이다. 첫째, 그가 3년간 아라비아에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지며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Moo) 이 주장에 따르면 바울은 아마도 이 곳에서 ‘갈라디아서’에서 드러나는 ‘이신칭의’ 교리를 정교화했을 것이다. 둘째, 그가 아라비아에 교회를 개척하러 갔을 것이라는 주장이다.(Hengel and Schwemer) 그렇다면 이 시기는 바울의 진정한 1차 선교가 된다. 셋째, 그가 앞으로의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Timothy George) 이 견해는 첫째와 둘째 견해를 아우르는 듯 하고 설득력 또한 크다. 어떠한 모양으로든 그의 3년간의 시간은 장래 사역을 위한 준비가 되었을테니 말이다. 넷째, 바울이 3년이라는 시간 대부분을 실제로는 다메섹 전도에 매진했고 아라비아에는 단지 얼마간 내려갔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행9:19-25을 연대기적으로 해석한다. 특히 행9:23의 “여러 날(ἡμέραι ἱκαναί)”을 “많은 날” 혹은 “충분한 날”로 직역하여 이 시간이 바로 3년을 뜻하는 것이며 본문의 문맥에 따르면 이 시기동안 바울이 다메섹에서 전도활동에 매진했다고 한다. 요컨대, 이 마지막 견해는 바울의 3년을 다메섹에서의 3년으로 보는 것이다. 바울의 숨은 3년에 대한 성경본문들과 또 이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비교해볼 때 위에서 다룬 셋째 견해, 즉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앞으로의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있어 보인다. 우선 아라비아를 다메섹으로 축소하여 해석한다면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아라비아를 언급하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 된다. 또한 그가 만일 아라비아에 교회를 개척하러 갔다면 사도행전이나 이 후의 어떤 서신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이 재차 언급되었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단순히 중세 수도사들처럼 기도와 묵상에만 매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회심 직후 그가 다메섹에서 즉시 전파했던 모습(행9:20)이나 3년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 전파한 모습(행9:29)은 매우 활발하여 수도원적 모습과는 상이하기 때문이다. 3. 다소의 위치와 바울의 행적 척박한 아라비아와 달리 길리기아 다소(Tarsus)는 헬라철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길리기아는 시리아에서 북서쪽에 위치했으며 다소는 그 곳의 큰 성이었는데 그 곳은 아덴 다음으로 이름난 학문의 도시였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이 곳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성장했다(행22:3). 그러나 그는 다소 사람이라 불리웠다(행9:11). 바울의 학문은 위정자들에게도 유명했다(행26:24). 훗날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헬라문화(신화나 철학)에 매우 익숙한 유대인이었다. 다소는 큰 성이었으므로 그 곳에도 분명 유대인의 회당이 존재했을 것이다. 바울은 매우 당연한 듯이 거점도시마다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자신만의 규례를 갖고 있었다. 아라비아에서의 행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과 달리 다소에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가 있다. 사도행전이나 다른 서신서에 등장하지 않지만 이 곳에서 그가 사역을 감당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바나바가 그를 찾기 위해 다소를 방문하기까지(행11:25) 바울은 무명의 사역자로 활동했다. 다소에서 행한 그의 사역이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이 시기까지 예루살렘 교회가 그를 인정치 않았기 때문이다.(행9:26) 그는 악명높은 핍박자에서 이제 막 기적적으로 회심한 신자였다. 교회는 여전히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둘째, 사도행전의 기록은 기본적으로 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끝의 성취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땅끝을 겨냥한 안디옥교회의 선교를 설명함에 있어서 바울의 다소 사역은 주목받을 이유가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4. 바울의 시간표: 아라비아 이후와 다소 이후 바울은 분명히 회심 이후 곧장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노라고 말한다.(갈1:16) 아라비아에서의 3년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갈1:17-8) 그 곳에서 바나바는 “그[바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행9:27)을 말하며 그를 변호했다. 바나바가 이로부터 10년 뒤 또다시 바울을 찾으러 길리기아 다소에 갔던 것(행11:25)은 그가 오랜 세월 바울의 충실한 변호자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바울은 이미 회심 직후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행9:22)시켰었다. 이는 구약에 능통했던 그에게는 직가 거리에서의 며칠이 구약의 예언과 그리스도의 성취를 연관짓기에 충분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성취에 대한 그의 신학적 토대는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 아니라 다메섹에서 곧장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면 아라비아 3년은 그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또 그 다음 다소 10년은 그의 사역에 어떠한 발판이 되었는가? 아라비아 3년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본래 사도들에게 전해듣지 않고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마주했던 바울이었다. 바울은 왜 예루살렘에 올라갔는가? 이에 대해 바울은 “게바를 심방하려고”(갈1:18)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게바를 심방하려 한 것인가? 아마도 바울은 게바나 야고보 처럼 자신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갈1:17)을 만나서 함께 사역하기 원했을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갈1:22)했다는 표현에서 짙게 나타난다. 그는 그때까지도 사도성은 고사하고 회심의 진정성조차 의심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예루살렘에서 자신과 같은 배경을 가진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했고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행9:29)는 바람에 고향인 다소로 보내지게 되었던 것이다. 다소 10년은 바울이 계획했던 시간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는 아라비아 3년 이후 자신의 사역을 본격화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앞서 다룬대로 예루살렘과 유대의 교회들이 그를 인정치 않았기 때문이다. 회심으로부터 14년이 지난 후 바울은 또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이를 다룬 갈2:8에서 바울은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고 말한다. 이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역적 역할분담을 위한 것이었다. 왜 이러한 사역적 역할분담이 필요했을까? 갈2:2에서 바울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다소에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그리스도의 도를 유대교의 보완이나 개혁 정도로 여겼던 소위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세력은 그 때까지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헤롯의 핍박으로 인해 유대교와의 간격이 더욱 벌어지던 이 시기(행12장) 이방인 또는 헬라파 유대인들에 대한 바울의 선교적 열심은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고립되어 가던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인정된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화를 짊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바울]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갈2:9) 하게 되었다. 5. 나의 시간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로부터 자신의 소명을 인정받고자 했던 14년간의 바울의 노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룩한 공교회의 인정을 받고 함께하는 것은 사역의 정통성과 안정성, 그리고 장래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참으로 전도와 선교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중한 사명이라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지상대명령 아래에서 각기 다른 영역과 모양으로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교회들과 “교제의 악수를”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생명 살리는 신학으로 정진하는 많은 신학도들과 더불어 여러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의 달음질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을 또 하나의 사명으로 새겨야 하겠다.

톰 라이트,『바울평전』, 다소에서 침묵의 10년

Tom Wright, Paul: A Biography, HarperCollins, 2018 톰 라이트,『바울평전』, 박규태 옮김, 비아토르, 2020 1. 열심 이갈 아미르, 이스라엘 라빈 총리 암살 (1995) 사울시대에 ‘열심’을 가장 강조한 텍스트 가운데 하나였던 마카베오 1서에서는 아브라함과 비느하스를 다룬 두 본문이 가까이 붙어 등장한다.하나님과 율법을 열렬히 따르던 이 소년은 이 모든 본문을 장래에 참조하려고 고이 간직했으리라. 그는 하나님과 토라를 열렬히 앙망하게 된다… 다소의 길거리에서 다른 민족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아주 똑똑히 알았던 이 소년이 다른 민족과 같은 행동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생각에 역겨움과 매력을 동시에 느꼈다가, 비느하스의 열심히 보여주는 생각에 흥분을 느낌과 동시에 자극을 받았으리라고 상상한다… 비느하스와 엘리야를 함께 묶어 보면, 바울이 나중에 고백한 일 곧 그가 폭력을 쓰면서까지 열심을 보였던 하다한 사례가 설명된다. (65-66) 가말리엘은, 적어도 사도행전이 묘사한 모습을 보면, ‘서로 상관 말고, 각자 좋은대로 살아가자’는 정책을 지지했다. 예수라는 사람을 따르길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모든 증거를 보면, 가말리엘 문하의 영특한 다소 출신 학생은 이런 접근법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열심 때문에 반대 학파에 들어가 힐렐의 경쟁자인 샴마이를 따랐을 것이다. (71) 그 예언자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봄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모독한 사기꾼임을 단번에 분명히 밝혔다.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다니? 그런 메시아는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스데반은 성 밖으로 끌려나가 비 오듯 쏟아지는 돌에 맞아 온몸이 깨지고 부서진 채 죽고 말았다. 사울은 이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것이 토라가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열심’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야했다… 바울은 새 비느하스, 새 엘리야로 나섰다. (74-76) 2. 다메섹 카라바조, 바울의 회심 (1600-1601) / 1월 25일 바울 회심 축일로 기념하는 서구 교회들 다마스쿠스의 곧은 길을 찾으면, 바브 샤르키를 만날 것이다. 이 거리는 옛 도시 중심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고대 로마 도로의 일부다. 바브샤르키는 이제 더 긴 도로의 동반부이며, 이 도로 남족에는 유대인 구역이 있다. 다소의 사울은 완전히 눈이 먼 채 이 구역 어딘가에 있는 숙소로 이끌려 갔다. (101) 3. 아바리아와 다소 1세기에 ‘아라비아’는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말이었다. 당시 아라비아는 시리아 동부로 조금 들어간 지역에서 남쪽으로 오늘날 요르단 지역을 가로질러 저 멀리 시나이 반도까지 아우르던 고대 나바테아 왕국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이 이곳을 유일하게 달리 언급한 곳 가운데 하나 (갈라디아서)는 훨씬 더 자세한 위치를 우리에게 일러 준다… 시내산은 하나님이 불 가운데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토라를 주신 곳이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엄숙히 비준한 곳이기도 했다. 아바리아의 위대한 산 시내산은 그런 의미에서 시작의 장소였다… 시나이는… 엘리야가 들어간 곳이었다. 시나이는 다소의 사울도 같은 이유로 간 곳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아라비아로 떠났다가” 역시 엘리야가 그렸던 것처럼, “그 후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114-115) 바울은 갈라디아서 1-2장에서 그의 복음이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거쳐 간접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받은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는 이전에 받았던 사명을 넘겨주고 이제 새 사명을 받고자 아라비아로 갔다…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다가 되돌아 온 기간을 포함하여 그가 다메섹에서 보낸 시간은 3년이었을 것이며, 기원후 33년부터 36년까지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118-119) 바울은 뒤이어 예루살렘으로 간다. 기원후 36년이나 37년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바울은 10년이 더 지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신이 베드로(아람어식 이름 게바)와 두 주를 함께 보냈으며, 다른 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야고보만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이 만남은 바나바가 주선했다. (120) 그 뒤, 대략 36년부터 46년까지 10년 남짓 침묵이 이어진다… 사울이 가업에 종사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유대 사회의 교사는 누군가를 가르쳐 생계를 꾸려 갈 기대를 아예 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일은 고된 육체 노동이었다… 사울은 침묵하며 10년을 보냈다. 이 세월동안 그는 성경 성찰이라는 우물을 더 깊이 파고 들었고, 나중에 이 우물에서 그에게 필요한 물을 길어 올리게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메시아에 관하여 그가 알게 된 ‘새 사실’로부터 거꾸로 되짚어 생각했으며, 거기서 다시 그 사실에 비추어 이스라엘이 간직해 온 성경과 전통의 세계, 그 진짜 종착지를 한번 보지도 못한 채 그 지점까지 더듬더듬 기어오고 있던 길고 어두운 그리고 종종 뒤틀린 이스라엘의 내러티브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는 창세기를 다시 읽었다. 출애굽기를 다시 읽었다. 토라 전체와 예언서, 특히 이사야서를 다시 읽었으며 시편으로 기도하기를 계속했다. (121-126) 그는 나중에 자신이 모든 생각을 포로로 사로잡아 메시아께 순종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쓰는데. 이런 확신은 십중팔구 다소에서 보낸 침묵의 10년 동안에 갖게 된 것 같다. (134) 다소에 이미 예수 공동체가 있었는지, 사울도 이런 공동체 지체였는지, 그가 조금밖에 안 되었을 다른 지채들과 꾸준히 만나 예수의 이름으로 빵을 떼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 세월 내내 사울이 홀로 외로이 예수를 믿은 사람이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실마리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136) 나는 성숙한 바울이 ‘그의 혈육 친척’을 보면서 그 마음에 늘 품었던 슬픔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믿지 않는 유대인’ 대중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격심한 고통을 안겨 준 그 사람들의 이름을 안다… 슬픔에 찬 얼굴로 고개를 젓는 그들의 모습을 본다. 그의 어머니요 그의 아버지다. 그 부모가 자신에게 가르쳐 주었던 바로 그 기도 쉐마로 기도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의 부모, 그의 형제, 그의 친족은… 지극히 독실했던 아들이요 형제이며 조카인 사울이 어쩌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이단이 되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40)

바울을 키운 비밀의 세월

[영화로 만나는 사도 바울] 페인티드 베일 다마스커스에서 삶의 방향을 전환한 바울은 유대교 회당에서 그의 경험을 전하면서 자칭 사도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바울은 그때까지 예수께서 행했던 이적이나 선포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강렬했던 경험으로부터 예수가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선포할 수 있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사도행전 9:20~22)라는 선포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결국 바울은 아라비아로 도망치듯 떠났다가 약 3년 뒤에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온다. (갈라디아 1:17) 그러나 다마스커스의 냉냉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바울은 이번에는 예루살렘을 찾는다. 그곳에서 사도들과 사귀려 했지만 사도들은 열정만 가득해 보이는 바울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바나바의 중재로 어렵사리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기는 했지만 (갈라디아 1:18-19) 베드로와 15일 정도 함께 지낸 것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바울은 고향인 다소로 다시 돌아간다. (사도행전 9:30) 이후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로 부임하면서 바울을 데리고 간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체류한 뒤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한다. 전도 여행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는데, 여기서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역할이 분담된다. 예루살렘의 첫번째 방문 당시의 어색함을 기억한다면 약 14년으로 추정되는 바울의 비밀의 세월은 1차 전도 여행 기간과 함께 바울과 베드로의 어깨를 나란히 만드는 시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14년의 기간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바울이 갈라디아 1:15-16에서 소명경험을 이야기할 때 이사야 49:1,9 예레미야 1:5와 같은 소명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갈라디아 1:24, 2:2 에서도 각각 이사야 49:3~4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샌드니스(Karl O. Sandness)의 주장이고 장로회 신학대학의 김철홍 교수도 이 관점을 지지하고 있다. 김철홍 교수는 아라비아는 로마 행정국역 나바티안 왕국(Nabatean)의 사막지역이고 이사야 42:11의 예언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아, 게달 사람들이 사는 부락들아, 소리를 높여라. 셀라의 주민들아, 기쁜 노래를 불러라. 산 꼭대기에서 크게 외쳐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은 회심때부터 선지자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바티안 왕국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첫번째 예루살렘 방문뒤의 다소 생활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14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아라비아 생활 3년을 포함한 세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다. 3년의 포함 여부는 제쳐 놓고라도 다마스커스 회심 이후 무려 14년에서 17년 사이에 바울의 행적이 모호하다(1차 전도 여행기간이 있기는 하지만). 샌드니스나 김철용 같은 학자들이 비밀의 세월을 찾아낸 것은 예언과 성취라는 성서의 맥을 놓치지 않으려는 학문적 수고의 결과다. 하지만 성서에서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설득력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이러한 수고는 다마스커스에서 경험한 바울의 회심을 유일한 즉 그 자체로 완성도를 지닌 사건으로 명토박아 두기 위해서이다. 사도바울은 그때부터 이미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14년은 비밀의 세월이 아니라 성서에만 나오지 않았을뿐 나름 선교활동을 했다고 봄으로서 다마스커스 회심 부터 바울의 사도적 역할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기록없이 비밀의 시간으로 남겨 두었을까? 이방인의 사도라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공식 결정이 있고서야 그가 지역 교회에 편지를 쓰기 시작할만큼 바울이 사도들의 권위를 존경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바울은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2:6) 바울은 구원파가 아니야 바울은 이 기간 동안 회심 이후 다마스커스에서 쫓기듯 나온 경험을 반추하며 명상했을 것이다. 아라비아라는 척박한 땅에서 율법도 복음도 모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 즉 낮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예수의 전도 방법을 터득하며 아직 그에게 남아 있는 배설물과 같은 옛것들과 씨름했을 것이다. 3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인정받으려는 시도를 하지만 시큰둥한 대접을 받자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바울은 이제는 고향 다소로 가서 기초부터 차근 차근 짚어 나간다. 그리고 또 긴 세월이 흐른 뒤에 바나바의 부름을 받고, 안디옥 사역과 이후 전도여행을 마친 뒤 베드로 앞에 자신있게, 아니 그를 키운 바나바의 문제점을 지적할 정도로 당당한 사도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가 비밀의 세월 동안 선교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구약에서 예언된 것들을 성취하는 과정을 겪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마스커스에서 경험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명상과 수행, 수많은 번민과 기도의 시간으로 채워졌던 비밀의 세월이 다마스커스 구원 체험을 깎아내리는 것이라면 한 번의 구원체험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구원파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마스커스 사건은 그것 대로 의미가 있고 이후 바울에게도 성화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 산골마을에서 생활하면서 부부는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 영화의 한 장면. 페인티드 베일(존커란 감독, 2007년) 키티(나오미 왓츠 분)에게 첫 눈에 반한 월터(에드워드 노튼 분)의 청혼으로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지만 가족으로부터의 탈출구로 결혼을 택한 키티에게 결혼 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다. 세균학자인 월터는 연구차 런던에서 상해로 이주하고 낯선 땅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 진다. 영국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던 키티는 연구에 빠진 월터가 못마땅하고 월터 역시 사랑도 연구처럼 격식을 차려 한다. 결혼생활을 따분해 하던 키티는 사교모임에서 만난 영국 외교관과 사랑에 빠지고, 아내의 외도를 눈치챈 월터는 배신한 아내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산골마을의 근무를 자청한다. 런던 출신의 그들에게는 상해도 낙후한 곳인데 중국에서도 오지인 메이탄푸에서 키티는 남편의 무관심 속에 유배와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월터 역시 선의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지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 속죄하듯이 다가간다. 키티의 속죄가 불륜에 대한 것이었다면 월터의 속죄는 ‘사랑할 줄 모름과 용서할 줄 모름’이었다. 처음에 낯선 백인의 헌신을 의심하던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자 아내에 대한 월터의 마음도 차츰 열리고, 자기 밖에 모르던 키티도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돌본다. 조금씩 서로를 향해 열어가던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기는데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데서 키티도 월터도 진정한 용서를 배워나간다. 원작 (Painted Veil)은 서머세트 모옴의 장편소설을 영화로 한 것인데 2007년 작품은 같은 원작으로 만든 세번째 영화다. 키티와 월터는 광야같은 곳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동시에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를 치유한다. 하지만 월터는 마을에 창궐한 콜레라로 목숨을 잃고 키티는 런던으로 돌아온다. 영화 도입부에서 화려하게 수놓였던 꽃들은 영화 말미에서 꽃은 1주일이면 시들고 말것이라는 키티의 말을 통해 이 땅에 영원한 것이 없음을 시사한다. 5년만에 옛 내연남과 우연히 조우한 키티는 그 남자의 아이일 수도 있는 아들에게 저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중국 오지에서의 경험이 키티와 월터를 성숙시켰다. 그들은 사랑과 참회, 용서를 배웠다. 부부에게 오지 마을은 복수의 장소로 택하거나 강요된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은 그들의 사랑이 확인되고 성숙한 훈련의 장소였다. 월터의 죽음으로 안타까운 결말을 맞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늙은 부부와 같아 마을의 수녀는 키티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부관계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늙은 부부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간에 신뢰가 있어 상대방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관계라고 말이다. 화려한 수식어도, 짜릿한 표현도, 사랑을 매순간 확인하려는 과정이 없어도 사랑은 얼마든지 진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화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조율이 덜 된 것처럼 투박하다. 하나의 건반을 누르면 세 개의 줄이 건드려지는데 세 줄(저음에서는 두 줄)의 소리를 같게 만드는 것이 조율이다. 그러나 영화음악은 세 개의 줄이 맞지 않아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는 듯이 투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전한다. 우리는 똑같아 질 필요가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조금 서툴게 이해하도 아름답고, 우리의 서툰 모습에도 하나님은 미소 지을 것이다. 오히려 다 안다고 나서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율법에 빠져들게 된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핍박하던 때의 열정이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에도 바울에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인생관을 변화시킬 만큼 경험은 강렬했지만 한 순간에 정말 모든 것이 변했다면 회심의 진정성은 더 없지 않을까? 그는 14년(17년) 세월동안 섣불리 선교하지 않고 마음과 신념, 사람과의 관계가 모두 아픈 것을 참아냈다. 다마스커스 체험이 진실한 것이었는가를 매순간 물으면서 동시에 자꾸 솟아 오르는 의심에 대해 번민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늙은 부부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수식과 덧칠해진 가면(페인티트 베일)을 내려 놓았을 때 그에게 자신감이 생겨났다. 미개하고 무지하다고 봤던 중국 오지의 사람들에게 감동되어 가던 월터와 키티처럼 예수를 따르던 이들을 무지하다고 봤던 바울 역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척박한 광야에서는 3층천 경험까지 하게 된다. 바울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예수를 구주로 고백함으로써 ‘신학적’으로 죄 용서를 받았다고 죄없다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속죄와 구원이라는 신학적 개념에 묻혀 안하무인으로 생활하기에 오늘 기독교인은 여전히 사회의 해악처럼 취급받는다. 이란의 영화감독이지 시인인 압바스 키아로스 타미는 아주 짦은 시를 통해 죄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잊어 주기를, 그러나 나도 다 잊을 만큼 깨끗이는 말고” 죄는 용서받았지만 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 조차 잊거나 여전히 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잊으면 그것은 속죄가 아니다. 사도바울에게 비밀의 세월이 있었기에 일정에 쫓기는 전도 여행 중에도 신학적인 편지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비밀의 세월 동안 바울을 훈련시키고 공부시키고 색다른 체험의 기회를 주었다. 비밀의 세월을 통해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유롭게 된다. 바울이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 곧장 사도로 나섰다면 바울의 열정은 많은 적대자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고 그날의 경험은 개인의 회심으로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필요없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를 대신 세웠을 터이니까. 결국 바울에게 있어서 비밀의 세월은 그의 열정을 다스리는 훈련의 기간이었고 훈련을 통해 바울은 그날의 경험이 개인의 신비적 체험이 아닌 로마 제국과 맞서는 논리를 다져나가는 보편의 체험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비밀의 시간을 가지라! 영화에서 부부는 오지 유배의 생활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배워나간다. 부부사이에도 이처럼 서로를 알기 위해 모진 세월이 필요한데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잘 안다고 설치고 외치고 다녔는가를 자문해 본다면 누구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광야의 경험, 비밀의 세월 또는 공간이 필요하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죄이지만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더 큰 죄일게다. 하나님이 인간의 성숙을 위해 준비한 비밀스런 과정을 무시하고 우리는 빨리 뛰쳐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바울같은 대가도 14년이나 잡아 두었는데 그릇도 안되면서 편의점처럼 지점을 내기 위해 안달인 목사들, 선교라는 미명아래 광기에 사로잡힌 전투적 선교단체들, 욕망과 성공에 목맨 것을 신앙의 축복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모두 부탁하건데 제발 비밀의 시간을 가지라! 김기대 목사 / LA 평화의 교회 저작권자 © NEWS 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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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바울평전』, 다소에서 침묵의 10년

Tom Wright, Paul: A Biography, HarperCollins, 2018

톰 라이트,『바울평전』, 박규태 옮김, 비아토르, 2020

1. 열심

이갈 아미르, 이스라엘 라빈 총리 암살 (1995)

사울시대에 ‘열심’을 가장 강조한 텍스트 가운데 하나였던 마카베오 1서에서는 아브라함과 비느하스를 다룬 두 본문이 가까이 붙어 등장한다.하나님과 율법을 열렬히 따르던 이 소년은 이 모든 본문을 장래에 참조하려고 고이 간직했으리라. 그는 하나님과 토라를 열렬히 앙망하게 된다… 다소의 길거리에서 다른 민족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아주 똑똑히 알았던 이 소년이 다른 민족과 같은 행동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생각에 역겨움과 매력을 동시에 느꼈다가, 비느하스의 열심히 보여주는 생각에 흥분을 느낌과 동시에 자극을 받았으리라고 상상한다… 비느하스와 엘리야를 함께 묶어 보면, 바울이 나중에 고백한 일 곧 그가 폭력을 쓰면서까지 열심을 보였던 하다한 사례가 설명된다. (65-66)

가말리엘은, 적어도 사도행전이 묘사한 모습을 보면, ‘서로 상관 말고, 각자 좋은대로 살아가자’는 정책을 지지했다. 예수라는 사람을 따르길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모든 증거를 보면, 가말리엘 문하의 영특한 다소 출신 학생은 이런 접근법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열심 때문에 반대 학파에 들어가 힐렐의 경쟁자인 샴마이를 따랐을 것이다. (71)

그 예언자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봄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모독한 사기꾼임을 단번에 분명히 밝혔다.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다니? 그런 메시아는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스데반은 성 밖으로 끌려나가 비 오듯 쏟아지는 돌에 맞아 온몸이 깨지고 부서진 채 죽고 말았다. 사울은 이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것이 토라가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열심’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야했다… 바울은 새 비느하스, 새 엘리야로 나섰다. (74-76)

2. 다메섹

카라바조, 바울의 회심 (1600-1601) / 1월 25일 바울 회심 축일로 기념하는 서구 교회들

다마스쿠스의 곧은 길을 찾으면, 바브 샤르키를 만날 것이다. 이 거리는 옛 도시 중심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고대 로마 도로의 일부다. 바브샤르키는 이제 더 긴 도로의 동반부이며, 이 도로 남족에는 유대인 구역이 있다. 다소의 사울은 완전히 눈이 먼 채 이 구역 어딘가에 있는 숙소로 이끌려 갔다. (101)

3. 아바리아와 다소

1세기에 ‘아라비아’는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말이었다. 당시 아라비아는 시리아 동부로 조금 들어간 지역에서 남쪽으로 오늘날 요르단 지역을 가로질러 저 멀리 시나이 반도까지 아우르던 고대 나바테아 왕국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이 이곳을 유일하게 달리 언급한 곳 가운데 하나 (갈라디아서)는 훨씬 더 자세한 위치를 우리에게 일러 준다… 시내산은 하나님이 불 가운데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토라를 주신 곳이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엄숙히 비준한 곳이기도 했다. 아바리아의 위대한 산 시내산은 그런 의미에서 시작의 장소였다… 시나이는… 엘리야가 들어간 곳이었다. 시나이는 다소의 사울도 같은 이유로 간 곳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아라비아로 떠났다가” 역시 엘리야가 그렸던 것처럼, “그 후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114-115)

바울은 갈라디아서 1-2장에서 그의 복음이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거쳐 간접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받은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는 이전에 받았던 사명을 넘겨주고 이제 새 사명을 받고자 아라비아로 갔다…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다가 되돌아 온 기간을 포함하여 그가 다메섹에서 보낸 시간은 3년이었을 것이며, 기원후 33년부터 36년까지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118-119)

바울은 뒤이어 예루살렘으로 간다. 기원후 36년이나 37년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바울은 10년이 더 지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신이 베드로(아람어식 이름 게바)와 두 주를 함께 보냈으며, 다른 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야고보만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이 만남은 바나바가 주선했다. (120)

그 뒤, 대략 36년부터 46년까지 10년 남짓 침묵이 이어진다… 사울이 가업에 종사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유대 사회의 교사는 누군가를 가르쳐 생계를 꾸려 갈 기대를 아예 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일은 고된 육체 노동이었다… 사울은 침묵하며 10년을 보냈다. 이 세월동안 그는 성경 성찰이라는 우물을 더 깊이 파고 들었고, 나중에 이 우물에서 그에게 필요한 물을 길어 올리게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메시아에 관하여 그가 알게 된 ‘새 사실’로부터 거꾸로 되짚어 생각했으며, 거기서 다시 그 사실에 비추어 이스라엘이 간직해 온 성경과 전통의 세계, 그 진짜 종착지를 한번 보지도 못한 채 그 지점까지 더듬더듬 기어오고 있던 길고 어두운 그리고 종종 뒤틀린 이스라엘의 내러티브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는 창세기를 다시 읽었다. 출애굽기를 다시 읽었다. 토라 전체와 예언서, 특히 이사야서를 다시 읽었으며 시편으로 기도하기를 계속했다. (121-126)

그는 나중에 자신이 모든 생각을 포로로 사로잡아 메시아께 순종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쓰는데. 이런 확신은 십중팔구 다소에서 보낸 침묵의 10년 동안에 갖게 된 것 같다. (134)

다소에 이미 예수 공동체가 있었는지, 사울도 이런 공동체 지체였는지, 그가 조금밖에 안 되었을 다른 지채들과 꾸준히 만나 예수의 이름으로 빵을 떼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 세월 내내 사울이 홀로 외로이 예수를 믿은 사람이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실마리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136)

나는 성숙한 바울이 ‘그의 혈육 친척’을 보면서 그 마음에 늘 품었던 슬픔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믿지 않는 유대인’ 대중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격심한 고통을 안겨 준 그 사람들의 이름을 안다… 슬픔에 찬 얼굴로 고개를 젓는 그들의 모습을 본다. 그의 어머니요 그의 아버지다. 그 부모가 자신에게 가르쳐 주었던 바로 그 기도 쉐마로 기도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의 부모, 그의 형제, 그의 친족은… 지극히 독실했던 아들이요 형제이며 조카인 사울이 어쩌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이단이 되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40)

바울을 키운 비밀의 세월

[영화로 만나는 사도 바울] 페인티드 베일

다마스커스에서 삶의 방향을 전환한 바울은 유대교 회당에서 그의 경험을 전하면서 자칭 사도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바울은 그때까지 예수께서 행했던 이적이나 선포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강렬했던 경험으로부터 예수가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선포할 수 있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사도행전 9:20~22)라는 선포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결국 바울은 아라비아로 도망치듯 떠났다가 약 3년 뒤에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온다. (갈라디아 1:17)

그러나 다마스커스의 냉냉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바울은 이번에는 예루살렘을 찾는다. 그곳에서 사도들과 사귀려 했지만 사도들은 열정만 가득해 보이는 바울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바나바의 중재로 어렵사리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기는 했지만 (갈라디아 1:18-19) 베드로와 15일 정도 함께 지낸 것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바울은 고향인 다소로 다시 돌아간다. (사도행전 9:30)

이후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로 부임하면서 바울을 데리고 간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체류한 뒤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한다. 전도 여행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는데, 여기서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역할이 분담된다. 예루살렘의 첫번째 방문 당시의 어색함을 기억한다면 약 14년으로 추정되는 바울의 비밀의 세월은 1차 전도 여행 기간과 함께 바울과 베드로의 어깨를 나란히 만드는 시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14년의 기간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바울이 갈라디아 1:15-16에서 소명경험을 이야기할 때 이사야 49:1,9 예레미야 1:5와 같은 소명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갈라디아 1:24, 2:2 에서도 각각 이사야 49:3~4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샌드니스(Karl O. Sandness)의 주장이고 장로회 신학대학의 김철홍 교수도 이 관점을 지지하고 있다.

김철홍 교수는 아라비아는 로마 행정국역 나바티안 왕국(Nabatean)의 사막지역이고 이사야 42:11의 예언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아, 게달 사람들이 사는 부락들아, 소리를 높여라. 셀라의 주민들아, 기쁜 노래를 불러라. 산 꼭대기에서 크게 외쳐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은 회심때부터 선지자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바티안 왕국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첫번째 예루살렘 방문뒤의 다소 생활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14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아라비아 생활 3년을 포함한 세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다. 3년의 포함 여부는 제쳐 놓고라도 다마스커스 회심 이후 무려 14년에서 17년 사이에 바울의 행적이 모호하다(1차 전도 여행기간이 있기는 하지만). 샌드니스나 김철용 같은 학자들이 비밀의 세월을 찾아낸 것은 예언과 성취라는 성서의 맥을 놓치지 않으려는 학문적 수고의 결과다. 하지만 성서에서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설득력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이러한 수고는 다마스커스에서 경험한 바울의 회심을 유일한 즉 그 자체로 완성도를 지닌 사건으로 명토박아 두기 위해서이다. 사도바울은 그때부터 이미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14년은 비밀의 세월이 아니라 성서에만 나오지 않았을뿐 나름 선교활동을 했다고 봄으로서 다마스커스 회심 부터 바울의 사도적 역할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기록없이 비밀의 시간으로 남겨 두었을까? 이방인의 사도라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공식 결정이 있고서야 그가 지역 교회에 편지를 쓰기 시작할만큼 바울이 사도들의 권위를 존경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바울은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2:6)

바울은 구원파가 아니야

바울은 이 기간 동안 회심 이후 다마스커스에서 쫓기듯 나온 경험을 반추하며 명상했을 것이다. 아라비아라는 척박한 땅에서 율법도 복음도 모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 즉 낮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예수의 전도 방법을 터득하며 아직 그에게 남아 있는 배설물과 같은 옛것들과 씨름했을 것이다. 3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인정받으려는 시도를 하지만 시큰둥한 대접을 받자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바울은 이제는 고향 다소로 가서 기초부터 차근 차근 짚어 나간다. 그리고 또 긴 세월이 흐른 뒤에 바나바의 부름을 받고, 안디옥 사역과 이후 전도여행을 마친 뒤 베드로 앞에 자신있게, 아니 그를 키운 바나바의 문제점을 지적할 정도로 당당한 사도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가 비밀의 세월 동안 선교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구약에서 예언된 것들을 성취하는 과정을 겪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마스커스에서 경험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명상과 수행, 수많은 번민과 기도의 시간으로 채워졌던 비밀의 세월이 다마스커스 구원 체험을 깎아내리는 것이라면 한 번의 구원체험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구원파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마스커스 사건은 그것 대로 의미가 있고 이후 바울에게도 성화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 산골마을에서 생활하면서 부부는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 영화의 한 장면.

페인티드 베일(존커란 감독, 2007년)

키티(나오미 왓츠 분)에게 첫 눈에 반한 월터(에드워드 노튼 분)의 청혼으로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지만 가족으로부터의 탈출구로 결혼을 택한 키티에게 결혼 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다. 세균학자인 월터는 연구차 런던에서 상해로 이주하고 낯선 땅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 진다. 영국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던 키티는 연구에 빠진 월터가 못마땅하고 월터 역시 사랑도 연구처럼 격식을 차려 한다. 결혼생활을 따분해 하던 키티는 사교모임에서 만난 영국 외교관과 사랑에 빠지고, 아내의 외도를 눈치챈 월터는 배신한 아내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산골마을의 근무를 자청한다.

런던 출신의 그들에게는 상해도 낙후한 곳인데 중국에서도 오지인 메이탄푸에서 키티는 남편의 무관심 속에 유배와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월터 역시 선의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지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 속죄하듯이 다가간다. 키티의 속죄가 불륜에 대한 것이었다면 월터의 속죄는 ‘사랑할 줄 모름과 용서할 줄 모름’이었다. 처음에 낯선 백인의 헌신을 의심하던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자 아내에 대한 월터의 마음도 차츰 열리고, 자기 밖에 모르던 키티도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돌본다. 조금씩 서로를 향해 열어가던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기는데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데서 키티도 월터도 진정한 용서를 배워나간다.

원작 <페인티드 베일>(Painted Veil)은 서머세트 모옴의 장편소설을 영화로 한 것인데 2007년 작품은 같은 원작으로 만든 세번째 영화다. 키티와 월터는 광야같은 곳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동시에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를 치유한다.

하지만 월터는 마을에 창궐한 콜레라로 목숨을 잃고 키티는 런던으로 돌아온다. 영화 도입부에서 화려하게 수놓였던 꽃들은 영화 말미에서 꽃은 1주일이면 시들고 말것이라는 키티의 말을 통해 이 땅에 영원한 것이 없음을 시사한다. 5년만에 옛 내연남과 우연히 조우한 키티는 그 남자의 아이일 수도 있는 아들에게 저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중국 오지에서의 경험이 키티와 월터를 성숙시켰다. 그들은 사랑과 참회, 용서를 배웠다. 부부에게 오지 마을은 복수의 장소로 택하거나 강요된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은 그들의 사랑이 확인되고 성숙한 훈련의 장소였다. 월터의 죽음으로 안타까운 결말을 맞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늙은 부부와 같아

마을의 수녀는 키티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부관계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늙은 부부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간에 신뢰가 있어 상대방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관계라고 말이다. 화려한 수식어도, 짜릿한 표현도, 사랑을 매순간 확인하려는 과정이 없어도 사랑은 얼마든지 진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화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조율이 덜 된 것처럼 투박하다. 하나의 건반을 누르면 세 개의 줄이 건드려지는데 세 줄(저음에서는 두 줄)의 소리를 같게 만드는 것이 조율이다. 그러나 영화음악은 세 개의 줄이 맞지 않아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는 듯이 투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전한다. 우리는 똑같아 질 필요가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조금 서툴게 이해하도 아름답고, 우리의 서툰 모습에도 하나님은 미소 지을 것이다. 오히려 다 안다고 나서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율법에 빠져들게 된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핍박하던 때의 열정이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에도 바울에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인생관을 변화시킬 만큼 경험은 강렬했지만 한 순간에 정말 모든 것이 변했다면 회심의 진정성은 더 없지 않을까? 그는 14년(17년) 세월동안 섣불리 선교하지 않고 마음과 신념, 사람과의 관계가 모두 아픈 것을 참아냈다. 다마스커스 체험이 진실한 것이었는가를 매순간 물으면서 동시에 자꾸 솟아 오르는 의심에 대해 번민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늙은 부부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수식과 덧칠해진 가면(페인티트 베일)을 내려 놓았을 때 그에게 자신감이 생겨났다. 미개하고 무지하다고 봤던 중국 오지의 사람들에게 감동되어 가던 월터와 키티처럼 예수를 따르던 이들을 무지하다고 봤던 바울 역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척박한 광야에서는 3층천 경험까지 하게 된다.

바울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예수를 구주로 고백함으로써 ‘신학적’으로 죄 용서를 받았다고 죄없다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속죄와 구원이라는 신학적 개념에 묻혀 안하무인으로 생활하기에 오늘 기독교인은 여전히 사회의 해악처럼 취급받는다. 이란의 영화감독이지 시인인 압바스 키아로스 타미는 아주 짦은 시를 통해 죄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잊어 주기를, 그러나 나도 다 잊을 만큼 깨끗이는 말고”

죄는 용서받았지만 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 조차 잊거나 여전히 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잊으면 그것은 속죄가 아니다.

사도바울에게 비밀의 세월이 있었기에 일정에 쫓기는 전도 여행 중에도 신학적인 편지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비밀의 세월 동안 바울을 훈련시키고 공부시키고 색다른 체험의 기회를 주었다. 비밀의 세월을 통해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유롭게 된다.

바울이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 곧장 사도로 나섰다면 바울의 열정은 많은 적대자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고 그날의 경험은 개인의 회심으로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필요없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를 대신 세웠을 터이니까. 결국 바울에게 있어서 비밀의 세월은 그의 열정을 다스리는 훈련의 기간이었고 훈련을 통해 바울은 그날의 경험이 개인의 신비적 체험이 아닌 로마 제국과 맞서는 논리를 다져나가는 보편의 체험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비밀의 시간을 가지라!

영화에서 부부는 오지 유배의 생활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배워나간다. 부부사이에도 이처럼 서로를 알기 위해 모진 세월이 필요한데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잘 안다고 설치고 외치고 다녔는가를 자문해 본다면 누구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광야의 경험, 비밀의 세월 또는 공간이 필요하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죄이지만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더 큰 죄일게다. 하나님이 인간의 성숙을 위해 준비한 비밀스런 과정을 무시하고 우리는 빨리 뛰쳐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바울같은 대가도 14년이나 잡아 두었는데 그릇도 안되면서 편의점처럼 지점을 내기 위해 안달인 목사들, 선교라는 미명아래 광기에 사로잡힌 전투적 선교단체들, 욕망과 성공에 목맨 것을 신앙의 축복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모두 부탁하건데 제발 비밀의 시간을 가지라!

김기대 목사 / LA 평화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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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생애(2) 회심에서 안디옥 교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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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생애(2) 회심에서 안디옥 교사까지

회심

바울의 회심은 AD34년으로 보인다.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려는 도중(途中)에 일어난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그는 자신의 신앙에 크나큰 혼란에 빠지고, 수일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 못함으로 살아온 삶과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본다. 아나니아를 통해 세례를 받고 진정한 회심에 이른다. 회심이후, 사울(바울)이 아라비아 광야로 들어가 기도했다는 설교를 종종 듣는다. 근거 없는 이야기다. 성경은 사도바울이 회심한 이후 곧바로 전도에 나섰다고 일러준다. 사도행전 9:20을 보면 바울은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다. 유대인들은 사울의 회심에 당황하다가 그를 죽이려 든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파한다. 이곳에서 역시 사울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다. 결국 형제들은 그를 사울의 고향인 다소로 되돌려 보낸다. 사울은 이곳에서 바나바가 부르기까지 약 13년 정도를 머물게 된다.

낙향

예루살렘에서 살기를 느낀 형제들은 바울을 고향인 다소로 되돌려 보낸다. 그 후, 사울은 무엇을 했을까? 바나바가 다소에 내려가 사울을 데려오기까지는 약 13년의 시간이 비어있다. 로버트 E. 피키릴리는 13보다 훨씬 짧은 6년에서 8년쯤으로 본다. 고후 11:23-27을 근거로 다소에 있는 동안 몇 가지의 일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불분명하다. F. F. 부르스는 약 10년으로 추정하고, 11:23-27을 근거로 ‘바울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맺은 시기’로 상정한다. 이러한 추측은 사도행전에는 그러한 중한 핍박을 받은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다면 바울은 다소에서도 여전히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했고, 이로 인해 큰 핍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안디옥 교회의 교사

베드로의 환상과 바나바의 등장으로 인해 예루살렘교회는 신학적 합의에 이른다. 이방인들에게도 세례를 주고, 할례나 여타 유대인들이 짊어져야할 율법의 짐을 지우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에 대한 합의다. 바로 이 부분이 기존의 유대교 안에 머물던 기독교가 전혀 다른 종교로의 불가피한 분리가 일어난다. 기독교는 유대교 안의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다른 종류였다.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제자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고 안디옥 교회는 급격한 성장을 이룬다. 일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내려간다.(행 11:25) 일 년 동안 큰 무리를 가르쳤고, 예루살렘이 기근으로 어렵게 되자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다녀온다. 안디옥에서 교사로 말씀을 가르치던 사울은 성령의 지도로 선교사로 부름을 받는다. 그 때가 AD 47년쯤이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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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다소로 보내신 하나님

2020년 1월호 기쁜소식

이 달의 설교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 1:17)

2000년대에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복음의 역사들

2020년을 맞이했다. 나는 전에 2000년 시대를 살 것이라고 상상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2000년 시대에 들어선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복음의 역사들이 많이 일어났다. 세계 여기저기에서 놀라운 역사들이 이어졌다. 특별히 CLF(Christian Leaders Fellowship)를 통해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구원받는 꿈같은 역사가 일어났다.

첫 번째 CLF 모임이었던 2017년 3월 뉴욕에서, 2017년 가을 홍콩에서 각각 700여 명과 1,000여 명의 목회자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있었다. 2019년을 맞이하면서는, 우간다에서 10만 명이 스타디움에 모여 가진 송구영신 모임인 ‘패스오버 페스티벌’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복음의 장이 열려서 너무나 감사했다. 이후에도 케냐에서, 코트디부아르에서, 멕시코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구원받았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계속 일어났다.

사도 바울이 다소에 있었던 시간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하였고, 1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 1:15~17)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거듭난 뒤 바로 그곳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여 다메섹을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갔고, 예루살렘에서도 예수님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여 성도들이 바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로 보냈다. 그 후 바나바가 다소로 찾아가서 바울을 만나 함께 안디옥으로 왔고, 안디옥에서 복음의 큰 역사가 일어났다. 사도 바울이 구원받고 다메섹이나 예루살렘에 있지 못하고 길리기아 다소에 가서 지내다가 바나바에 의해서 안디옥으로 갔는데, 바울이 다소에 있었던 시간은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시간이었다.

나도 압곡동에서, 장팔리에서, 군대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다

어느 날 성경에서 이 내용을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날들이 생각되었다. 선교학교를 마친 뒤, 다른 학생들은 와 달라고 하는 교회들이 있어서 각기 청함을 받은 교회에 가서 목회를 시작했지만 나는 아무 교회에서도 오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남 합천에 있는 압곡동이라는 산골 마을에서 지내다가 거창에 있는 장팔리로 옮겨 가서 복음을 전했고, 1965년에 입대해 군대에서 복음을 전했다. 세월이 흐른 후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압곡동에서 지냈던 시절이나 장팔리에서 지냈던 시절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 시간들이 내 삶에서 귀한 시간이었다.

압곡동에서는 1963년 7월부터 1964년 3월까지 9개월을, 장팔리에서는 1964년 4월부터 1965년 10월까지 18개월을 지냈는데, 그 기간에 나는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았다. 내 주위에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말씀을 읽는 법과 기도하는 법 등을 배웠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웠다. 1965년에 입대해 1968년에 제대하기까지 군대에서 보낸 28개월 동안도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앞일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렇게 보낸 시절에 하나님은 나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제대한 후 1969년에 김천으로 가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복음 전도를 시작했고, 김천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다.

우리에게는 교회도 있고, 하나님의 종도 있고, 형제 자매들도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교회도 있고, 주위에 하나님의 종도 있고 형제 자매들도 있다. 그런데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 가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았다. 그 후 바나바에 의해 안디옥으로 가서 교회에서 함께 복음의 일을 했다(행 11:25~26). 하나님은 바울이 구원받은 후 그를 다소로 보내셔서 홀로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셔서, 이후에 바나바에 의해 안디옥 교회에 가서 지내는 동안에도 다소에서 배운 대로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나도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보내셔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살게 하셨다. 하나님과 단둘이 지내면서 물질을 쓰는 법 등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셨다. 내가 압곡동이나 장팔리에서 지낼 때에는 내 주위에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었기에 모든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에 의해서 삶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보냈다.

한 번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삶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한 대로, 바울은 어떤 사람의 영향도 받지 않는 곳에 가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이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교회가 있고 형제 자매들이 있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도나 도움을 받고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정말 좋다. 그런데 한 번쯤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사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래 마음이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를 보면, 모두 인간의 본성을 버린 상태에서 밝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지 못했다. 노아 홍수 때 하나님께서 비가 내려 홍수로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노아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들의 생각을 믿었다. 아브라함도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라’라 해라. 내가 그로 하여금 너에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니…’라는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자기 고향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갔다. 그리고 24년이 흘러 99세가 되었는데 여전히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나중에 믿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의 생각이 우리 마음에 많이 살아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도 인간의 생각으로 받을 때가 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고 내 생각도 아닌 애매한 삶을 살 때가 많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생각이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에 서서히 타락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어린데도 인도자인 하나님의 종이나 먼저 된 형제 자매들보다 자신이 훨씬 신령하고 바르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고는 온갖 더러운 죄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가 마음에 온전히 세워지길 바란다

2020년 새해에는 모든 성도가 더 밝고 맑은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따르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가 마음에 온전히 세워지길 바란다. 자신이 가진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서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로마서 4장 18절에서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에 가서 하나님을 믿었고, 이삭을 얻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사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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