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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째, 종교, 종교성은 사회적 연대의 역할을 담당한다.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둘째, 종교, 종교성은 사회 집단, 공동체의 목표를 명확히 한다. 목표는 가치와의 연결됨으로 써 목적합리성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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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알쓸신잡3 (2018)
: ‘알아두면 쓸데없는’ 수다계의 판도를 뒤집을 새로운 잡학박사들이 나타났다! ‘도시계획 X 역사 X 문학 X 물리학’ 신입 박사들과 함께 돌아온 [알쓸신잡] 시즌3. 차원이 다른 TMI(Too Much Information)의 대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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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구:[#알쓸신잡2] 보러가기 :앞쪽_화살표: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gbB1gJhmG7BW2B6lZ4NFGLlzZTBjzf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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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두면 쓸데없는’ 수다계의 판도를 뒤집을 새로운 잡학박사들이 나타났다! ‘도시계획 X 역사 X 문학 X 물리학’ 신입 박사들과 함께 돌아온 [알쓸신잡] 시즌3. 차원이 다른 TMI(Too Much Information)의 대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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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_안테나:[#알쓸신잡1] 보러가기 :앞쪽_화살표: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gbB1gJhmG7B9Qd9-oukgLg2hO5n_CVpr
:수정구:[#알쓸신잡2] 보러가기 :앞쪽_화살표: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gbB1gJhmG7BW2B6lZ4NFGLlzZTBjzf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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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인식되는 종교의 역할 – 한국교육신문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인간 세상의 문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도 인간이 창조해 낸 대상이다. 현대는 중세의 종교적 도그마가 지배하는 삶으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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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gyo.com

Date Published: 7/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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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 문화/생활 < 기사본문

본능에 따른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가치중심적 삶’을 살도록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종교의 역할.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사진>이 19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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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eekly.chosun.com

Date Published: 10/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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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속에서 종교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요? – 바하이

다만 분명한 것은 인간사회가 변해왔고, 변해야 하고, 또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하느님으로부터 새로이 부름을 받은 예언자는 자신의 추종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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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ahai.or.kr

Date Published: 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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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종교의 이해와 종교의 기능과 목적

종교는 옳고 그름의 원칙에 대한 요구를 결정하는 역할을합니다. 종교는 나중에 신념을 형성하는 데 지침으로 사용될 수 있거나 인간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형성 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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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ltitudetvm.com

Date Published: 5/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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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사람] – 아트인사이트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가치에 가장 의미를 두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답을 찾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 역할을 종교가 해준다고 생각한다. 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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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rtinsight.co.kr

Date Published: 10/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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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나무위키

일본에서 religion의 번역어로 ‘종교’라는 단어를 채택하였고, … 기본적으로 인간은 불확정적이고 불안한 상태의 사회를 규합하고 안정화하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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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8/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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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긍정적인면과 부정적인 기능 – 네이버 블로그

종교의 기능. 1)긍정적 기능. 1.개인적 기능 ​. ㄱ.삶의 의미와 방향 제시 : 종교는 바른 삶의 방향을 세지해 주고 인간은 그것을따르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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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5/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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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3] 과학박사이자 무신론자 김상욱이 생각하는 종교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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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인간의 삶에서 종교의 역할

  • Author: tvN
  • Views: 조회수 5,219,895회
  • Likes: 좋아요 37,776개
  • Date Published: 2018. 11. 3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asGKOTRTobE

‘우리의 삶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바람직한 종교는 어떤 모습인가?’ ‘주일 종교 활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진정한 목회자와 성직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신앙은 인간의 삶보다 우위에 있는 특별한 가치인가?’ 요즘처럼 힘겨운 코로나19와의 싸움을 견뎌내며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사면서 혼자 있는 시간에 사색에 잠기는 경우가 많다. 그 속에서 마음속의 질문은 꼬리를 물며 답을 구하고자 애를 쓸 것이다. 이미 보편화된 질문으로 이론화되었거나 도그마로 정착이 되었지만 특수한 현실에 부딪히며 다시금 재고해 볼 문제이다. 종교의 역할에 대하여 실생활과의 연계 속에서 깨달음(계시)을 얻는다면 이 또한 신의 의도일 것이다.

지금 전국의 사찰이나 성당, 교회는 집단 활동으로 인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일정 기간 종교행사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반드시 주일 종교행사를 지켜야 한다며 강행하는 종교 단체도 있다. 어느 목회자는 특정 종교모임에 참석하면 있던 병도 나을 수 있고 치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그 기저에는 현 정부에 대한 배척을 주장하며 극우 보수 정권의 정치적 성향을 노골화하기에 순수한 종교행사로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연 종교인은 이런 위기의 시기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숙고의 여지를 남긴다.

지금은 인간 세상에서 인간이 유발한 감염병으로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사후약방문 조치라도 해야 한다는 것은 ‘실수는 인간이고 용서는 신이 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종교는 인간의 집단지성과는 달리 ‘주일을 거룩하게’, ‘안식일을 지켜라’는 계명을 예외 없이 고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인간답게 살려는 사람들의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총체적인 인간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인간 세상의 문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도 인간이 창조해 낸 대상이다. 현대는 중세의 종교적 도그마가 지배하는 삶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인간이 거룩한 신을 닮고자 하는 것은 피조물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이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신을 닮을 수 없기에 종교는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하려는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초월하여 특별한 지위를 강제로 행사한다면 인간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과거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철학자나 ‘종교는 아편이다’는 국가적 주장이 난무했던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이 인간에게 전혀 무의미한 주장이었던가?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세속적인 명제도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나름의 교훈이 아니던가?

달라이라마가 말하는 ‘종교의 역할’을 살펴보자. 《보살핌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달라이라마는 말한다. “제가 승려로서 몰두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서로 다른 종교 전통 간에 진정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대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에 이르기까지 주요 종교가 전하는 똑같은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려면 인내, 용서, 섬김을 실천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가 이를 실천하고 있으며, 이 모두가 조화를 이루는 토대입니다.”

그렇다. 달라이라마의 말처럼 모든 종교의 메시지는 하나, ‘사랑’이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전 인류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 전 우주적인 것이다. 그걸 놓치거나 잃으면 그 종교는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하물며 미움과 걱정과 사회적 재앙의 근원지가 된다면 자기 역할에서 벗어난 것이다. 종교는 일치와 화합을 추구하는 역할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 인간은 결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하고 죄를 범한다. 이를 성찰하여 보다 겸허하고 자기 내면을 충실히 하며 인류 공동체를 일치와 화합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현시대의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라 믿는다.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1987년 사망 전, 정의채 신부(서강대 석좌교수)에게 존재 진리에 대한 24가지 궁금증을 물었다. 그는 병세가 급속히 악화돼 정의채 신부로부터 답을 들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지난해 차동엽 신부가 책을 내고 이 회장의 질문에 대한 뒤늦은 답을 시도했다. 철학자 김용규씨가 이 회장이 가졌던 의문을 다시 자신의 인문학으로 풀어낸다.

“존 레넌의 노랫말처럼 ‘상상해 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런던폭탄테러도, 십자군도, 마녀사냥도, 화약음모사건(1605년 영국 가톨릭교도가 계획한 제임스 1세 암살미수 사건)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대량학살도, 유대인을 ‘예수 살인자’라고 박해하는 것도, 북아일랜드 ‘분쟁’도, 명예살인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번들거리는 양복을 빼입은 채 텔레비전에 나와 순진한 사람들의 돈을 우려먹는 복음 전도사(‘신은 당신이 거덜 날 때까지 기부하기를 원합니다’)도 없다고 상상해 보라.”

요컨대 종교가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지겠느냐는 뜻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 글은 옥스퍼드대학 석좌교수이자 세계적 과학대중서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가 쓴 ‘만들어진 신’의 서문 가운데 한 부분이다. 어떤가? 이 글을 보면 종교만큼 나쁜 것도 세상에 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이 글을 다시 살펴보면 그 안에는 위선적 기만과 폭력적 선동이 교묘히 숨어있다. 왜냐고? 그것은 ‘상상해 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이라는 문장에서 ‘종교’ 대신 다른 명사를 대입해 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예컨대 ‘상상해 보라, 정부 없는 세상을’ 내지 ‘상상해 보라, 남자가 없는 세상을’ 또는 ‘상상해 보라, 이성이 없는 세상을’ 등과 같이 말이다. 정부가 없으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군에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남자가 없으면 성차별도, 성폭행도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이성이 없었으면 아우슈비츠, 굴락, 히로시마로 상징되는 근대적 이성의 폭력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없다면, 남성이 없다면, 인간에게 이성이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지겠느냐는 식의 발언이 가능한가?

그래서 드러난 사실이 하나 있다. 이처럼 ‘상상해 보라, ~이 없는 세상을’이라는 어법은 그 자체가 기만적이고 선동적이기 쉽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세상사 대부분은 양면적이라서 어떤 것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가진 긍정적 기능들을 모두 무시한 채 간단히 없애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한번 상상해 보라, ‘과학’이 없는 세상을! 왜냐고? 인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 당시 최첨단 무기로 전쟁과 테러를 자행해 왔다. 그리고 그 첨단 무기들의 생산에는 항상 그 당시의 첨단 과학이 이용되었다. 그것이 돌도끼든, 칼이든, 총이든, 원자폭탄이든, 생화학무기든 불문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과학을 없애버려야 할까? 또 과학이 없어진다고 해서 전쟁과 테러도 함께 없어질까? 아마 아닐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도킨스의 발언은 필경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발상에서 나왔거나, 아니면 노회한 정치가같이 교묘한 기만과 선동을 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그가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학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 후자가 옳을 것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라는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도킨스의 발언을 우선 짚고 넘어가는 까닭은 오늘날 대중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만들어낸 기만적이고 선동적인 망상(이 용어는 도킨스가 종교에 대해 사용한 용어이기도 하다), 곧 종교가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지겠느냐는 그릇된 생각을 미리 떨쳐버리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종교란 무엇인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BC 106~43)는 그의 ‘신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종교를 뜻하는 라틴어 ‘렐리기오(religio)’가 ‘어떤 것에 마음을 집중한다’ ‘무엇을 세심하게 고려한다’라는 의미를 가진 ‘렐레게레(relegere)’로부터 파생된 단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종교를 ‘신들에게(또는 그들의 말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로부터 약 350년 후 초기 기독교 신학자였던 락탄티우스(240~320)는 ‘렐리기오’가 ‘결합하다’ ‘단단히 묶다’라는 뜻을 가진 ‘렐리가레(religare)’에서 나왔기 때문에 종교란 ‘신과 결합하는 것, 즉 신과 단절된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정의를 수용함으로써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의 의미로 굳어졌다.

하지만 현대 종교학자들은 락탄티우스의 정의가 기독교 이외의 다양한 종교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오늘날 사전에서는 종교를 보통 ‘궁극적 실체 또는 초자연적 원리들과의 관계를 함축하는 의례와 믿음의 체계’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매우 다양한 설명과 해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종교는 사상이라기보다 체험이고, 종교적 활동을 수행하는 주체가 지성이라기보다 인격이며, 그 결과는 지성의 확장이라기보다 삶의 변화라는 것이다. 종교학의 시조로 불리는 독일의 사상가 막스 뮐러(1823~1900)가 그의 ‘삶과 종교’에서 “진정한 종교, 즉 실천하고 행동하며 생동하는 종교는 논리적 또는 형이상학적 천착과는 거의 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종교는 삶, 새로운 삶, 신 앞에서의 삶이다. 그러한 삶은 재생(거듭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한 것이 일례다.

그런데 종교가 이끄는 ‘새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종교의 본질은 한마디로 ‘가치체험’과 ‘가치생활’이다. 따라서 종교가 이끄는 새로운 삶은 인간이 전보다 더 높은 단계의 가치를 체험하고 그럼으로써 전보다 더 가치 있게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종교의 종류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가 조금씩 다르긴 하다. 그럼에도 고급종교들이 지향하는 가치들은 진·선·미·사랑·자비·인자함 등과 같이 인류 보편적 가치들인데, 이 가치들의 최고의 형태를 보통 ‘신성’ 또는 ‘성스러움’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종교란 ‘성스러운 가치를 체험하게 하고 그 가치에 의해 생활하게 하는 의례와 믿음의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회장의 다음 질문이 종교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인데 이와 연관해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은 흥미롭고 유익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종교적 사고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기인이자 20세기를 풍미한 천재 철학자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 남긴 종교적 사유들이다.

왜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가

빌라도 앞의 예수 그리스도. 미하이 문카치(1844~1900) 작품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비트겐슈타인은 20대 후반에 쓴 짤막한 저서 ‘논고’ 하나로 20세기 철학에 거센 폭풍을 일으켰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 책의 말미를 장식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경구를 통해 그는 그때까지 행해지던 모든 형이상학적 또는 종교적 진술들의 입을 꽁꽁 틀어막았다. 그런데 유고로 출판된 저서 ‘문화와 가치’나 ‘철학적 소견’ 등을 보면, 비트겐슈타인은 친구이자 의사였던 모리스 드루리와 나눈 대화에서 스스로 세운 금언을 깨고 종교에 대한 심오한 통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종교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당신과 나)는 종교에 대해서 수많은 말을 해도 좋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나 “내가 믿기로는 기독교가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모든 훌륭한 가르침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또는 삶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등이 그것들 가운데 일부다.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적 사유에서 두드러진 것은 그가 ‘종교적 가르침’보다 ‘삶의 변화’를 종교의 본질이자 임무로 파악했다는 사실이다. 드루리는 이때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변화가 “자만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무슨 소린지 조금 의아하다. 그런데 잠깐! 당신은 이 같은 말을 어디에서 한번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지난호에 소개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훈에서 이미 들어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자연과 은총에 관하여’에서 “모든 죄의 시작은 자만이다. 그리고 자만의 시작은 사람이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라면서 자만이 모든 죄의 기원이라는 것과 자만을 버리고 신에게로 다시 돌아서서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을 밝혔다. 멸망받을 죄인과 구원받을 의인의 차이가 그의 삶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의 차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비트겐슈타인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종교의 임무는 ‘삶의 방향 전환’이다! 그런데 그 일은 ‘교훈’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도덕이 아닌 종교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말을 “훌륭한 가르침이 사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가르침을 마치 의사의 처방처럼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히고, 방향 전환이 되어야만 한다”라고 했다. 그렇다! 종교가 하는 일은 결국 신앙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아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타고난 본성을 따라 사는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가치를 좇아 사는 ‘가치중심적 삶(기독교적 용어로는 ‘신중심적 삶’이라 한다)’을 살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로써 이 회장의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났다. 그런데 여기에서 필히 풀고 가고 싶은 의문이 하나 있다. 종교가 하는 일이 그리 바람직하다면, 종교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과 거부감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겼을까 하는 것이다.

종교에 대한 반감은 어디에서 왔나

종교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의 역사는 짧지 않다. 예수 이전에 살았던 로마의 철학시인 루크레티우스(BC 94?~55?)의 오래된 격언, 즉 “종교는 우리에게 해악을 끼치는데 그것이 너무나 위력적이다”가 그것을 증명한다. 루크레티우스에서 도킨스에 이르기까지 2000년을 이어오는 종교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은 대부분 종교 자체에서 나왔다기보다 그것을 신봉하는 종교인들의 과오에서 나왔다. 도킨스가 위에서 열거한 전쟁과 테러 그리고 폭력적 사건들이 그 가운데 일부다. 그런데 종교를 빌미 삼아 배척과 분쟁, 그리고 전쟁과 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그가 유대교인이든 기독교도든 이슬람교도든)은 사실상 그들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이데올로기의 추종자일 뿐이다. 그들이 배척과 분쟁을 일으키는 근본 동력은 사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조건이거나 이기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들을 교묘히 감춘 채 종교적으로 이데올로기화된 이슈들을 내세워 추종자들을 기만하고 선동하여 전쟁과 테러 그리고 폭력을 자행한다.

예컨대 중세 십자군 원정의 동력은 성직자의 종교적 타락, 황제와 왕의 정치적 야심, 귀족과 상인의 경제적 탐욕, 그리고 평민의 전리품들을 바라는 기대와 같이 저급하고 세속적인 욕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지 탈환을 “신의 뜻이다”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포장했기 때문에 이 원정에 참여한 병사들은 자신들을 ‘순례자’ 또는 ‘십자가로 서명한 사람들’이라고 불렀고, 숱한 살인·강간·약탈·방화를 자행하면서도 자신들의 원정이 신성한 과업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1980년 이후 발생한 모든 자살폭탄테러를 면밀히 연구한 시카고대학의 로버트 페이프 교수의 연구결과를 보면 오늘날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 자살폭탄테러의 실상 또한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종교가 반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다른 원인 가운데 근대 이후 특히 부각된 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가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와 다르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종교적 진리는 미신 또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말인데, 바로 이것이 대부분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종교를 꺼리는 이유이다. 근래에는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난이 거세다. 도킨스를 비롯한 16명의 저명한 현대과학자들이 공동저서 ‘종교는 왜 과학이 되려 하는가’에서 펼친 신랄한 공격이 그 한 예다. 가히 ‘진리 투쟁’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이 싸움에는 정통 기독교에서 줄곧 부인해온 ‘지적설계론’을 고집하며 과학자와 맞서고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과오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다툼은 원초적으로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와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는 그 내용과 목적에 있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진리라는 용어를 같이 사용할 뿐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종교적 진리 vs 과학적 진리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거나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참이다”라고 정의한 바로 그 진리다. 그래서 ‘사실적 진리’라고도 한다. 하지만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와 삶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길(道)에 대한 진술이다. 그래서 ‘삶의 진리’라고도 한다. 독일의 철학자 미카엘 란트만은 그의 저서 ‘근원의 형상과 창조자의 행위’에서 이 두 진리의 차이를 ‘거울’과 ‘반석’에 비유해 설명했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다. 과학적 진리(또는 사실적 진리)는 마치 거울이 사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듯이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뜻이다. ‘종교적 진리’(또는 삶의 진리)는 ‘흔들리지 않는 지속성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허용되는 것이고,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반석과 같다는 의미다. 예컨대 예수가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마태복음 7:24)라며 교훈한 것이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복음 14:6)라며 가르친 바로 그 진리다.

지면이 부족하니 하나만 예로 들자. 구약성서 창세기 서두에는 신이 오직 말만으로 우주 만물을 ‘무(無)로부터 창조’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정통 기독교 신학에 의하면 이것은 그 어떤 자연과학적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가 설명하고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전능성’이다. 즉 신이 세계의 모든 것을 오직 자기 의지대로 생성·소멸·인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다를 가르고, 태양을 멈추며, 처녀를 잉태하게 하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일이 신에게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니 하물며 당신이 지금 마주한 절망과 파국, 슬픔과 고통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에서 당신을 구하는 일이 신에게는 여반장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종교적 진리는 언제나 인간의 삶, 바로 당신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빌라도는 왜 예수를 내어주었나

신약성서 요한복음 18장에는 마지막 날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는 장면이 있다. 빌라도는 자신이 ‘진리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에게 매우 의아한 듯 “진리가 무엇인가?”(요한복음 18:38)라고 물었다. 예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빌라도가 아는 진리와 예수가 말하는 진리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로마 총독 빌라도가 알고 있었던 진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사실적 진리’였고, 예수가 가르친 진리는 유대인이 조상 대대로 믿는 신이 내려준 ‘삶의 진리’였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고, 결국 예수는 침묵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 묻자! 사실적 진리만을 추종하는 현대의 빌라도(과학자)들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수가 말하는 종교적 진리가 무엇인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말인가? 그래서 종교를 ‘망상’이라고 몰아붙인단 말인가?

인간의 삶에서 종교의 이해와 종교의 기능과 목적

종교 이해

일반적으로 종교 이해하기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항하여 행할 예배를 조절할 수있는 방법들, 또한 종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관리 할 수있는 절차이며, 또한 사람은 환경과 함께 하나님의 피조물이기도합니다.

많은 종류의 종교와 신념도 있습니다그것은 상징, 이야기와 성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삶의 모든 종류의 의미를 설명 할 수 있고 우주의 생명의 기원을 설명 할 수있는 것과 같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개념은 사람들을 향한 좋은 목표와 목표를 향한 규칙의 집합으로 해석 될 수도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에 따르면 종교에 대한 이해

종교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려면 아래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하십시오.

1. Luckmann에 따르면

Luckmann은 종교의 의미가그것은 자연의 객관적인 영역을 형성하고 도덕적 유대를 가짐으로써 생물학에서 자연을 끌어 올릴 수있게하는 인간의 능력입니다.

2. Hendro Puspito에 따르면

Hendro Puspito는종교는 인간과 우주 사이의 관계를 조절할 수있는 가치 체계이며 또한 신념의 존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3. 파슨스와 벨라에 따르면

파슨스와 벨라는 종교의 개념이 인간 문화의 가장 높은 수준이자 가장 보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4. H. Moenawar Chalil

H. Moenawar Chalil은 종교의 개념은 그의 인식의 결과 인 초자연적 힘과 직접 관련된 인간의 행동 인 참여라고 가정합니다.

5. Sutan Takdir Alisyahbana에 따르면

Sutan Takdir Alisyahbana는 시스템입니다행동과 또한 권력의 비밀과 무한한 폭과의 인간 관계 사이의 핵심 인 행동과 인간 관계로부터 그의 삶과 그것을 둘러싼 우주에 의미를 줄 수 있습니다.

종교 기능

이 세상에 종교의 존재가 특정한 기능이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에서 종교의 존재에 대한 몇 가지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교는 나중에 인간이 소유하고 믿게 될 공감대를 제공 할 수있게합니다.

종교는 모든 사람에게 세계관을 제공 할 수있는 기능을하며 인간 문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종교는 사회적 역할에서 역할을 제공 할 수있는 기능을한다. 즉, 종교는 그것을 준수하는 모든 사람을위한 파리스 윤리 강령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대답 할 수없는 모든 종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 할 수있는 기능을합니다.

종교는 나중에 인생의 인도의 원천으로 사용될 수있는 것을 제공 할 수 있도록 기능합니다.

종교는 옳고 그름의 원칙에 대한 요구를 결정하는 역할을합니다.

종교는 나중에 신념을 형성하는 데 지침으로 사용될 수 있거나 인간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형성 할 수있는 것을 제공 할 수있는 기능을합니다.

종교는 모든 인간에게 정체성을 줄 수있는 기능을합니다. 그것은 종교의 기능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줄 수있는 종교 기능나중에 인간과 신의 관계, 동료 생활과의 관계 및 삶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규칙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종교는 나중에 공생을 표현할 수있는 지침으로 사용할 수있는 것을 제공 할 수있게합니다.

종교는 아름다움의 형태로 표현할 수있는 기능을하며 창조하거나 접대하는 데 지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줄 수있는 종교 기능이것은 나중에 신념을 형성하는 데 지침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일부 가치를 형성 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의 목적

종교에는 목적이 있습니다인생의 질서로 사용하거나 규칙으로 언급 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또한 모든 인간이 합당한 사람이되도록 인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종교는 또한 노력할 수있을뿐만 아니라세상과 내세에서 더 나은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필멸의 영역에서 후기 단계에서 발견 된 조항이기도합니다.

종교에는 또 다른 목표가 있습니다모든 지지자들에게 가르침을 제공하여 나중에 그들이 유용하고 공동체와 자신을 위해 행복을 얻을 수있는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조직 할 수 있도록.

속편 인 종교의 목적, 즉종교는 누군가가 그를 창조주, 즉 그들이 죽을 때 전능하신 하느님 께 데려 갈 수있는 개방적인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의 이해에 관한 토론기능과 목적과 함께. 위 기사의 설명이 종교에 대한 당신의 시야를 넓힐 수 있고 종교의 기능과 목적에 대한 이해에 관한 당신의 임무에 대한 참조가되기를 바랍니다.

[Opinion] 나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사람]

나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가져 본적도 없기 때문이다. 또 종교활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더 나아가 종교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종교학과’임을 부정하고, 부끄러워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계속하여 종교학을 공부하며 이 생각들이 많이 변화하게 되었다. 종교는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모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의 삶에서 종교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종교가 나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이전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종교에 관한 여러 권의 책과 영화들을 감상하며 간접적으로 종교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 속의 주인공이 가지는 종교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볼 기회를 가졌다.

우선 김은국 작가의 ‘순교자’라는 책이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한 없이 나약해진다. 그리고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 목숨조차 더 이상 의미 없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에게 자신의 존재를 맡기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종교는 ‘나약한 인간들이 의지할 수 있는 매개체’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나약하고 힘이 들 때, 더 이상 본인의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함을 깨달았을 때가 있다. 이런 순간들마다 나의 어려움을 대신 해결 해 줄 수 있는 신, 즉 초월적 존재를 믿고 의지한다.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 지금의 세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신을 믿고 따른다. 바로 이 이유가 비슷한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른 종교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주인공은 사랑받기를 두려워하며, 믿음에 확신이 없다. 따라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가 부질없음을 말한다. 더 나아가 죽음을 마주했을 때, 신부가 종교의 힘을 믿으며 기도하자고 제안하지만 거절한다. 신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인간 스스로가 본인의 인생을 가꾸어 나가야 하고 그래야지만 의미가 있고 완성된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죽음의 앞에서도, 아무도 본인의 말을 믿지 않는 나약한 상황임에도 종교의 힘을 외면하는 것이다. ‘순교자’의 내용처럼 항상 나약한 인간은 종교에 의지한다고 믿었던 나에게는 새로운 충격을 주었고, 종교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살다(1952)’도 종교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종교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만, 죽음과 자아성찰의 내용을 다루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쳇바퀴같은 인생의 마지막 쯤에 본인의 시한부 여생을 자각한다. 그리고 별로 남지 않은 인생을 잘 살아 내기 위해 노력한다. 어떻게 살아가하고, 또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어떤 방법을 택했을 때 자신의 인생이 보다 가치 있게 마무리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나는 죽음에 관련한 책을 많이 읽었고 ‘제대로 죽는 법’을 배워야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을 깨닫았었다. 모든 주인공들은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본인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만약 죽음을 마주하지 않고도 그런 필요성을 느끼고 고민의 기회를 갖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 그 보다 잘 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의 역할을 종교가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심지어는 사후 세계까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과거를 성찰하고 반성하며 이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된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돕는다. 본인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데, 의미를 끊임없이 성찰하게 하는데에 종교의 의미를 둘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나에게 종교란 ‘잘 살아낼 수 있게 해주는 성찰 과정’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불교의 가르침과도 비슷하다. 불교에서는 본인 안에서의 가르침, 깨달음을 얻는 것을 강조한다. 석가모니가 진리를 찾기 위해 고행을 하고 명상을 하듯 여러 노력을 하지만 결국 진정한 진리는 ‘지혜를 얻음’으로써 찾게 된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인간은 끊임없이 번뇌를 하고 업에 대해 생각하며 개인화의 과정을 얻어야 한다고 한다. 개개인 안에 의지할 존재가 필요하기에 ‘도’나 ‘삶에 대한 깨달음’ 등등의 개인화의 과정을 가지고 어려움을 이겨낼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등의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어떻게 인간이 생겨나고 사라지는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욕망은 어떻게 움직이고 고통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는지, 모든 문제의 근원적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과 같이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죽어야 할지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수 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가치에 가장 의미를 두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답을 찾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 역할을 종교가 해준다고 생각한다. 꼭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종교에 대해 공부를 하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다. 실제로도 고민을 하게 해준 것 같다.

아직 완벽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지금으로써 나는 ‘선한 영향력’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려고 한다. 나의 능력을 키우고, 그것을 나누며 개개인에게, 또 사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 구체적인 것에 대해서는 계획 중에 있다. 나 자신이 멋진 사람이 되고, 조금이라도 가진 것이 있다면 나누며, 후회없이 사랑하고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아무리 험한 땅이라도 붓다의 발자국이 지나면 아름다워지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종교는 나에게 나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나의 미래를 꾸밀 수 있게 도와주었다.

종교의 긍정적인면과 부정적인 기능

종교의 기능

1)긍정적 기능

1.개인적 기능 ​

ㄱ.삶의 의미와 방향 제시 : 종교는 바른 삶의 방향을 세지해 주고 인간은 그것을따르려고 노력한다

ㄴ.심리적 안정 제공 : 어려움이 닥쳤을 때 종교는 위로가 되며 심리적으로 안정되게 해 준다

2.사회적 기능

ㄱ.사회 통합에 도움 :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밀접한 유대감을 가지며, 나라 전체가 같은종교(국교)를 믿기도 한다

예.영국의 성공회, 이스라엘의 유대교, 중동국가의 이슬람교 등

ㄴ.문화 발전에 도움 : 종교를 표현하는 건축물, 그림 등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은 것들이 많다

예. 팔만대장경, 석굴암, 대성당 건축물 등

ㄷ.봉사와 사회 정의 실현 : 종교의 선한 방향을 신천하여 봉사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을 위해 모인 종교지도자들 , 마더 테레사의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삶, 흑인 인권 운동을 지도한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2)부정적 기능

1.종교 간의 인류 전체에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예. 종교전쟁

2.종교를 명분으로 인권을 침해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예.이슬람교의 여성에 대한 엄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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