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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고 홍두영 명예회장이 창업한 남양유업은 국내 최초의 아기용 분유 생산으로 시작해 이른바 ‘우유 재벌’로까지 성장한 기업입니다. 한동안 가장 우량한 기업으로 꼽히며 탄탄대로를 달렸던 남양유업은 그러나, 갑질사태와 여러 논란 이후 이미지 회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쇄신을 하겠다던 창업자 일가가 지분을 팔고 끝내 회사를 떠나버린, 남양유업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남양유업 #한앤컴퍼니 #소비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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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가계도 손녀 황하나가 또? – 인터넷 찬스

대기업 남양유업의 외손녀 황하나가 언론에 언급되면서 회사 가계도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많이 생기셨습니다. 故홍두영 회장이 떠나면서 회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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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review.tistory.com

Date Published: 1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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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가계도 총정리 – 주식하는 김나무

남양유업의 가계도 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마약 혐의의 황하나씨는 남양유업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이셨던 홍두엽 회장님의 막내딸의 첫째 손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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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saf8442.tistory.com

Date Published: 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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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가계도 20탄(남양유업,삼양) – 뚱이 블로그

남양유업 가계도,삼양그룹 가계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故 홍두영(남양유업 창업주겸 명예회장)과 아내인 지송속(남양유업 전 감사)사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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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geleunah79.tistory.com

Date Published: 6/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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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남양유업 홍두영 명예회장家

남양유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자사의 우유와 유제품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창업주에 대해 더 많이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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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eoul.co.kr

Date Published: 3/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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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팔고 사라진 재벌.. 끝나버린 분유왕의 꿈, 남양유업 / 소비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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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남양 유업 가계도

  • Author: 소비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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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6.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1t9VZvVqkM

남양유업 창업주 가계도

남양유업 창업주 가계도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이며 영국 웨일스 개발청 한국 사무소장 황재필과, 남양유업의 막내 딸인 홍영혜의 장녀인 황하나가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 되어 구속되면서 남양유업 창업주 가계도 및 남양 불매 운동 이유 등에 대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은 현재 주가 611,000 으로 시총순위 305위이며 시가총액 4,399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의 홍원식 회장은 황하나씨의 외삼촌으로, 남양유업측은 황하나씨와 그 일가족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지분도 없다며 황씨를 고인이 되신 창업주의 외손녀라는 이유로 남양유업과 연관지어 보도해 회사의 임직원, 대리점주, 낙농가 및 그 가족분들까지 많은 분들이 피해를 입고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황하나씨의 마약투약 의혹과 남양유업 오너일가 봐주기 논란이 확대되자 선긋기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나 한 언론은 황씨가 지인에게 우리 외삼촌(홍원식 회장)과 아빠는 경찰청장이랑 개베프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재 남양유업 지분은 홍두영 명예회장의 아들 셋이 나눠서 보유중이며 딸 둘은 지분이 없다고 합니다. 남양유업은 홍원식 회장의 장남인 홍진석 남양유업 상무와 홈범석 남양유업 차장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는 몇해 전 JYJ 박유천과 결혼설이 있었으나, 이내 결별하여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남양유업 가계도 손녀 황하나가 또?

대기업 남양유업의 외손녀 황하나가 언론에 언급되면서 회사 가계도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많이 생기셨습니다.

故홍두영 회장이 떠나면서 회사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요? 그리고 황하나는 무슨행동을 했기에 매번 언급되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남양유업 가계도

남양유업 가계도

우선 남양유업의 역사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964년에 홍두영 창업주가 설립해 분유사업으로 1970년애에 ‘우량아 선발대회’로 인지도가 급상승했습니다. 영양실조가 흔했던 그당시엔 대단한것이였죠, 그 뒤로 튼튼한 육아 관련 캠페인을 펼쳐 유가공 업계에서 독보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불매운동이 시작됐죠..

가계도를 살펴보면 故홍두영(남양유업 창업주)과 아내 지송죽(전 감사)의 첫째 아들인 홍원식과 며느리인 이유경 사이에 태어난 손자 홍진석의 증손자, 증손녀 홍범석, 홍승의가 생산전략 부문장 자리에 있습니다. 남양유업은 유제품과 커피 및 음료 등의 제품을 생산,가공,판매 하는 한국의 3대 유제품 업체입니다. 현재는 혹원식 일가족이 사업을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손녀 황하나가 또?

대기업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가 또 다시 화제의 인물로 언급되었습니다. 안그래도 최근 집행유예 기간에 마약 혐의로경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 투약 사실이 확인된 음성 파일이 공개된적 있었죠. 이에 황하나는 마약 사실을 인정했으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황하나와 얽혀있던 남모씨는 지난달 17일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다 중태에 빠졌다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통해 남양유업 가계도에 많이 관심이 가셨을 것 같습니다.

남양유업 창업주 가계도

남양유업의 김웅 대표와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

남양유업이 사옥까지 건립한 이유는 유제품업계 1위로 더욱더 매진하기 위해서다.

남양유업의 대표이사 3명 가운데 한 명인 창업주 홍두영 회장은 1919년 1월7일생이다.

●영변 지주의 장남

홍두영 명예회장은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면 서부동에서 홍재영씨와 최점숙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영변에서 손꼽히던 지주여서 어린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홍 명예회장은 일제시대인 1944년 일본 와세다 제1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와세다대에 진학, 불어불문학과를 마쳤다.

홍 명예회장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어릴적 행적이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일본에서 귀국한 27세의 청년 홍두영은 어수선하던 광복 정국에서 고향 영변의 숭덕여자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을 하던 1947년 5월 같은 영변 출신의 열살 아래인 지송죽(77)씨와 결혼,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김일성 정권이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엘리트 가정을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홍 명예회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가족과 홍선태(작고) 전 남양산업 대표 등 동생을 데리고 월남했다.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지만 62년에 화폐개혁이란 뜻밖의 복병을 만나 8년만에 모든 재산을 날려버렸다.

일각에서는 당시의 충격이 너무 심해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소심증과 같은 마음의 병이 생겼다는 말도 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 명예회장은 신문이나 TV를 통해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꺼린다.”며 “경기단체 회장직 제의도 많았지만 다 물리쳤다.”고 말했다.

첫 사업 실패 이후 홍 명예회장의 보수적 경영이 시작됐으며, 큰 아들 홍원식(56) 회장에 대한 경영수업이 다른 기업보다 일찍 시작됐다.

●배고픈 아이들 때문에 유업에 손대

굿모닝미디어에 따르면 1954년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은 부산에서 비료를 수입하는 남양상사를 설립해 운영했지만 경험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홍 명예회장이 사업 재기를 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분유였다.

비료 수입업에 종사하던 그는 1963년 선진 외국 출장길에서 분유사업을 눈여겨 봐뒀던 것.

분유를 마음껏 먹고 있던 외국 아기의 모습을 본 그에게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고국의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국으로 돌아온 홍 명예회장은 64년 3월 13일 남양유업을 설립했다.

홍 회장이 비료 수입을 위해 해외를 다니면서 유제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남양유업의 창업 계기였다.

남양유업이라는 이름은 홍 회장 성의 본관(남양 홍씨)에서 따온 것이다.

남양유업은 1965년 충남 천안에 공장을 완공했다.

1967년 국내 최초의 국산 조제분유인 남양분유를 출시했다.

1971년 튼튼하고 건강한 아기의 대명사인 ‘전국우량아 선발대회’를 열기 시작했다.

당시 이 대회는 자라나는 2세의 건강과 체격 향상을 일깨워주기 위해 마련된 사회 공헌 행사였으나, 전국에서 아기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1984년 제13회 대회까지 계속됐다.

회사가 커지면서 가족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장남 홍원식 회장이 회사일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73년부터 종종 회사에 나와 가업을 도왔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회사에 달려와 입출금 전표를 끊는 등 경리업무를 봤다.

74년 기획실 부장을 시작으로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77년 이사,79년 상무,80년 전무,88년 부사장을 거쳐 지난 90년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가 2003년 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는 90년대에는 불가리스, 아인슈타인우유, 아기사랑秀,E-5, 위풍당당 동충하초 등을 내놓으며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리게 했다.

회사가 성장 엔진을 필요로 하던 80년 9월 둘째 아들 홍우식(53) 서울광고기획 사장도 남양유업에 합류했다.

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80년대 초반 큰아들 홍원식 회장과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모두 힘을 합쳤다.

홍 명예회장의 부인 지송죽씨도 한때 남양유업의 감사로 근무했다.

남양유업이 최근 곧잘 내세우는 ‘친인척 경영 참여 금지’는 그 당시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남양유업 지배구조, 가계도 (+경영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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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모펀드 중 하나인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획득해서 한동안 이슈였습니다. 이에 남양유업의 주가는 단기간에 급등했으며, 현재는 조정이 진행 중입니다. 향후 남양유업의 주가와 함께 남양유업의 일가가 경영권을 포기한 배경 등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제 포스팅들을 살펴보면, 늘 지배구조 혹은 경영권과 관련된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제 스스로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오너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너가 올바르고 능력 있다면, 업황과 관계없이 주가는 상승합니다. 업황이 좋을 때는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주가를 부양시키고, 업황이 안좋을 때는 신성장 사업으로 매출확대의 돌파구를 찾아냅니다. 즉, 어떻게든 매출과 주가를 우상향 시킨다는 것입니다.

오너가 도덕적이라면, 이른바 오너리스크로 부터 자유롭습니다. 가끔 투자한 회사의 오너나 오너일가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때면 정말 주주입장에서 피꺼솟 할 정도의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오너 리스크가 있는 대표적인 회사로 남양유업은 늘 첫손에 꼽힙니다. 그동안 워낙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탓에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해도, 대리점 갑질, 창업주 외손녀인 황하나 씨의 일탈, 불가리스 사태 정도인데, 하나하나 희대의 병크들인지라 정말 주주들의 속이 말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문득 예전에 밈처럼 떠돌던 한화 팬들처럼 남양유업의 주주들 역시 부처님이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처님 같은 한화팬

그래서 최근에는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투자라고 해서,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선결되야 하는 조건이라 할 수 있는 ① 환경보호, ② 사회적인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공헌활동, ③ 경영활동 간에 법질서를 잘 지키는 윤리적인 기업에 투자비중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유명 자산운용사들이 이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발표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이러한 트랜드를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투자업계의 거인으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를 꼽고 싶습니다.

한앤컴퍼니는 쌍용C&E(쌍용양회)를 투자하는 와중에 접하게 됐는데, 이후에 종종 투자의 맥이 막힐 때면 그냥 한앤컴퍼니가 경영권을 확보한 회사들에 맹목적인 투자를 하곤 했습니다. 한앤컴퍼니는 문제가 있는 기업들을 인수해서 리빌딩(rebuilding)하는 과정을 거쳐 경영권에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과정 간에 주가상승은 물론, 고배당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단 한번 투자하면 장기간 보유하는 편입니다. 다만, 현재 남양유업의 주가가 이미 한차례 크게 상승한 상태이기 때문에, 진입시기를 잘 판단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슈 1 : 오너리스크 해소?!

오너리스크가 해소된 남양유업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많은 투자자들이 잊을만 하면 돌발적으로 발생하던 오너리스크 때문에 남양유업을 투자리스트에서 제외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걷어놓고 보면, 남양유업의 건실한 재무상황과 늘 기대 이상의 실적을 보여주던 마케팅 역량이 눈에 띕니다.

실제로 남양유업의 창업주, 홍두영 1대회장이 현직에서 경영을 맡고 있을 당시만 해도, 무차입 경영은 물론 우량아 선발대회와 같은 각종 기발한 마케팅으로 인해, 주가가 100만원을 뛰어넘는 황제주와 같은 위상이 있었는데, 창업주 사후 아들인 홍원식 2대회장 체제에 들어서면서 사세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불가리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홍원식 회장을 포함한 오너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모두 매각했으니, 이제 이들이 남양유업의 경영에 다시금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매각이 진짜 제대로 된 캐시아웃(cash out) 목적의 구주매각이 아니라 추후에 재매수를 위해 우선매수권 등과 같은 조건이 추가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만, 한앤컴퍼니 측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위와 같은 조건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니 안심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너가가 우량회사를 전격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지라 각종 음모론이 난무했는데, 결국 지난 7월 30일 임시주주총회 때 홍원식 회장이 불참하면서 현재는 계약이 연기된 상황입니다.)

남양유업 가계도

남양유업은 지난 1964년에 홍두영 1대회장이 설립한 유제품 가공회사이며, 현재 시가총액 약 4,248억원(기준: 6월 15일 종가)으로 대한민국 대표 중견기업 중 하나입니다. 홍두영 회장은 슬하에 3남 2녀의 자식을 두고 있는데, 그중에 장남인 홍원식 2대회장이 가업을 이었으며, 손자들이 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차남인 홍우식 서울광고기획 대표와 삼남인 홍명식 사까나야(음식 프랜차이즈) 대표는 남양유업과 지분관계가 크게 얽혀있진 않지만, 뉴스에 일감몰아주기 이슈로 간간히 등장하곤 합니다.

남양유업 가계도

사실 남양유업의 일가는 창업주의 손녀인 황하나 씨로 인해 대중들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황하나 씨가 사고(?)를 칠 때마다 매번 회사 측에서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발표하곤 했는데, 실제로 살펴보니 주식을 보유했다거나 직책을 맡았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조사하는 와중에 황하나 씨의 어머니이자 창업주의 막내딸인 홍영혜 씨에게 많은 관심이 갔는데, 공식적인 보도자료가 제한적이어서 생략합니다. (참고로 재혼한 남편이 아모레퍼시픽 관계사 중에 하나인 태신인팩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양유업 지배구조

남양유업은 인지도에 비해 의외로 계열사가 거의 없는 단촐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홍원식 2대회장을 포함한 오너일가가 남양유업의 주식 53.08%를 보유함으로써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었으며, 이 남양유업을 통해 비상장 자회사인 금양흥업(부동산임대업)과 건강한사람들(식음료제조업)을 간접지배합니다.

남양유업 지배구조

금양흥업은 부동산 취득 및 임대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건강한사람들은 남양유업이 종합식품회사로의 도약을 염두에 두고 기존 남양F&B의 사명을 변경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명분에 불과하며, 남양유업 측이 남양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전혀 색다른 회사명으로 런칭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슈 2 : 한앤컴퍼니가 매입한 남양유업의 주가는?

남양유업은 지난 5월 27일(목),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전량을 모두 한앤컴퍼니에 매각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매각되는 주식은 총 378,938주로, 홍원식 회장(372,107주), 아내 이운경(6,400주), 손자 홍승의(431주)입니다. (즉, 막내동생인 홍명식 대표의 주식 3,208주는 공식적으로 이번 매각에서 제외됐습니다.) 계약금액은 총 310,729,160,000원이며, 평균단가는 무려 820,000원입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남양유업의 주가가 400,000원이 체 되지 않았을 시점에 매각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한앤컴퍼니는 경영권 프리미엄으로만 무려 100% 가까이를 추가지불한 셈입니다.

여기서 3가지 의문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① 홍원식 회장은 왜 막내동생인 홍명식 대표의 주식물량을 제외한 상태로 매각을 진행했을까? ② 오너일가가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포기한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③ 반대로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의 무엇을 보고, (오너일가마저 포기한)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취득하게 됐을까? 입니다.

① 막내동생인 홍명식 대표는 왜 본인의 물량을 매각하지 않았을까?

표면적으로 한앤컴퍼니는 홍명식 대표가 보유한 물량 0.45%를 추가적으로 확보하지 않아도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가져오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매입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그다지 납득되지는 않습니다. 사실 홍원식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51.68%만 가져와도 경영권 확보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아마 홍명식 대표 스스로가 본인의 물량을 매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홍명식 대표의 지난 커리어를 살펴보면, 정말 만만치가 않습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중 하나인 JP모건에서 12년 동안 재직했으며, 유명 인터넷서점 중 하나인 YES24(예스24)를 창업한 뒤 한세실업에 매각한 바가 있습니다. 현재는 초밥 프랜차이즈, 사까나야를 런칭해서 성황리에 운영 중입니다. 아마 한앤컴퍼니가 제시한 평균단가 820,000원 이상의 주가상승 혹은 배당수익 등을 예상했을 수 있습니다.

② 오너일가가 남양유업을 포기한 이유는?

왜 오너가 일가는 보유하고 있던 주식 모두를 매각하고, 황금알을 낳고 있던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포기하게 됐을까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부정적으로 돌아서버린 기업 이미지도 문제지만, 저는 승계문제가 훨씬 컸다고 생각합니다. 추후에 3대회장으로 가업을 이어가게 될 홍원식 2대회장의 장남인 홍진석 본부장이 남양유업의 주식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을 주식을 일부 매각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30억원 초과되는 금액부터는 증여세율이 50%에 달하기 때문에, 세금이 천문학적 수준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궁금하기도 해서 간단하게 계산해봤습니다. 홍진석 본부장이 홍원식 회장의 주식 372,107주를 물려받을 경우입니다. 남양유업이 최대주주의 보유주식 매각과 관련된 공시를 올린 것은 지난 5월 27일 장마감 이후이며, 이날 종가는 439,000원 입니다. (개인적으로 5월 25일부터 27일 사이에 해당 정보를 활용해서 선취매한 세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를 계산해보면, 무려 163,354,973,000원으로, 대략 1,634억원입니다. 증여세의 경우, 30억 이상의 구간은 50%를 적용하므로 대충 계산해봐도 증여세만 최소 800억원 이상이 됩니다.

문제는 홍진석 본부장이 현재 보유하고 주식이 전혀 없는 관계로, 배당 등의 방식으로 돈을 대규모로 준비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남양유업이 승계준비가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아마도 사업매각은 이미 예전부터 사전에 계획되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왜냐하면 승계의 정석으로 보고 있던 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방법이 법조항 개정으로 인해 올해가 막차였기 때문입니다. (자사주 마법과 관련된 부분은 따로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③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의 주가를 부양시키기 위한 전략

한앤컴퍼니 입장에서는 당장에 경영권을 취득한 회사를 급하게 되팔 생각은 없을 것이며, 인수했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이 발생했을 때 엑시트 할 것입니다. 일단, 주주들에게 지급되는 ⓐ 배당금은 당장 올해부터라도 매우 급격하게 향상될 확률이 높습니다. 한앤컴퍼니는 더 많은 배당금을 주기 위해 회사를 쥐어짜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발 빠른 투자자금 회수를 위해 ⓑ 반기배당과 분기배당을 함께 실시할 것입니다. 심지어 혁신을 좋아하므로 업계 최초로 월배당을 실시하는 회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액면분할은 당연할 절차입니다. 현시점에도 이미 600,000원에 육박하는 대형주이기 때문에, 솔직히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단 한주를 보유하기도 살짝 부담되는 가격이긴 합니다. 물론 액면분할 자체가 기업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한 유통물량을 늘려서 접근성을 높이는데 확실한 도움이 됩니다. 남양유업과 남양유업 우선주 모두 액면가가 5000원이므로, 산술적으로 100원까지 줄일 수 있으므로 1/50까지 분할이 가능합니다.

추가적으로 정확한 기업가치 평가를 위해 ⓓ 남양유업 우선주를 상장폐지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주는 유통물량 자체가 워낙 적기 때문에 특정세력에 의해 주가가 널뛰기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최근에는 재무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상폐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관례상 회사가 주가의 연고점을 기준으로 매집해주므로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사업방향을 드라마틱하게 바꿔 회사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꿀 확률이 높습니다. 유제품 가공업체라는 올드한 산업군으로는 높은 밸류를 평가받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장주에 높은 PER를 적용한다는 점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던 CSR를 선도하는 업체 등으로 아예 탈바꿈시킬 것입니다. 이제 곧 매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한온시스템은 자동차 부품주로 최근에 높은 PER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쌍용양회는 쌍용C&E (Cement & Environment)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까지 환경과 관련된 업체임을 강조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와 맞물려 당장에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혐오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 남양유업이라는 브랜드 자체는 폐기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이지만, 이는 각종 직간접적인 비용을 유발시키기 때문에, 아마도 많은 고민 뒤에 진행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앤컴퍼니는 현재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서 회사의 속 깊은 사정을 파악하면서, 장악하는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당연히 고강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며, 유상증자를 통해 초반에 여유있는 자금을 확보할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유상증자가 끝난 이후가 좋은 진입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남양유업은 자의든 타의든 변화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추가 업데이트

역시는 역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퇴장하는 마지막까지 오너일가의 꼬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무려 한앤컴퍼니마저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클래스에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문득 고객들을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대했을지 절로 이해됩니다.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할 때마다, 오너일가는 얼마나 같잖게 봤을까요?) 지난 7월 30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한앤컴퍼니는 계약된 주식대금을 지불하고, 경영권을 인수할 예정이었지만, 대주주인 홍원식 회장이 파트너인 한앤컴퍼니와 어떠한 상의도 없이 걍(?) 불참하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회사 측은 임시주총을 9월 14일까지 연기하는 것을 공시했습니다.

참고로 한앤컴퍼니와 대주주인 홍원식 회장 간에는 공식적으로 주식매매계약(Share Purchase Agreement)이 체결된 상태입니다. 당연히 강제력이 동반된 계약이기 때문에, 만약 홍원식 회장이 최종적으로 매각에 응하지 않는다면, 대략 계약대금의 10% 정도인 310억원을 위약금으로 지불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위약금에도 불구하고, 홍원식 회장이 거래를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략 2가지 정도를 유추해봤습니다. ① 막상 회사를 팔자니 아쉬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막말로 홍원식 회장이야 이제 나이가 많으니 회사를 통해 취할 수 있는 배당이나 급여가 제한적이지만, 아들인 홍진석, 홍범석 본부장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앞길이 보장됐던 왕국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 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승계준비를 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입니다.

② 오너일가 입장에서는 남양유업의 주가가 단기간에 반등하는 것을 보면서, 혹시라도 싼 가격에 경영권을 넘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위약금을 포함해서 한앤컴퍼니보다 더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입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는다면, 위약금을 내고서라도 그냥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매각실패, 향후 남양유업 주가는 어떻게 될까?

충격적입니다. 결국 남양유업이 한앤컴퍼니와의 주식매매계약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일단, 홍원식 회장은 재매각을 위해 다른 파트너를 찾겠다는 입장이며, 이에 한앤컴퍼니는 매각을 마무리짓기 위한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홍회장은 여기저기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불거질 당시에는 회사를 팔고 떠나고 싶었지만, 막상 가진 것들을 포기하려니 쉽지 않았나 봅니다.

혹은 애초에 매각 자체가 계획적인 쇼였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홍회장은 실제로 한앤컴퍼니와 계약을 맺기 하루 전날에 장남인 홍진석 본부장을 복직시켰고, 차남인 홍범석 상무는 외식사업본부장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자신의 아들들을 주요 요직에 포진시켜, 회사 내부사정이 한앤컴퍼니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으면서, 되레 당장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활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한앤컴퍼니가 이렇게 당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앞으로의 주가흐름은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급을 살펴보면, 다행히도 세력이 진입한 흔적이 있기 때문에, 당장에는 주가가 급락(하한가)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앤컴퍼니와의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재매각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점진적 우하향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심지어 법원에서는 홍회장이 지분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가처분 명령까지 내린 상태입니다.) 남양유업에 관심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는 홍회장을 신뢰하기가 어려울뿐더러 무조건 한앤컴퍼니가 매수가로 제시한 금액 이상으로 제안해야 된다는 리스크마저 있습니다. 역시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슈 3 : 남양유업의 포트폴리오는 식품주로서 매력이 있을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앤컴퍼니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운영하겠지만, 결국 주가는 앞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에 관한 청사진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에는 전반적인 곡물가격 향상 등으로 인해 식품주의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식품주가 매력적인지에 관한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남양유업의 대표제품은 바로 프리미엄 분유입니다. 정부가 지난 1960년대 낙농진흥정책을 실시하면서 젖소를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시기에 맞춰 남양유업은 국내 최초로 분유가공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6·25전쟁이 막 끝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베이비붐이 발생하면서 아이들이 늘어가는데, 어머니들은 영양부족으로 인해 모유를 먹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분유는 엄청난 메가히트를 치면서, 현재의 남양유업으로의 성장발판을 만들었습니다. 저출산 국면에 들어선 현상황에서는 당연히 국내매출보다 해외매출의 향상 추이에 따라 PER가 향상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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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가계도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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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참고)

남양유업…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을까요… 갑질에서부터 마약까지… 논란에 논란이네요..다시 예전의 1위 자리를 찾을수 있을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궁금합니다.

남양유업의 가계도 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마약 혐의의 황하나씨는 남양유업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이셨던 홍두엽 회장님의 막내딸의 첫째 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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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가계도 20탄(남양유업,삼양)

남양유업 가계도,삼양그룹 가계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故 홍두영(남양유업 창업주겸 명예회장)과 아내인 지송속(남양유업 전 감사)사이에서 첫째 홍원식(남양유업 회장)과 며느리인 이유경(이학철 고려해운창업주 장녀)사이에서 태어난 손자 홍진석(남양유업 경영기획본부 상무)의 증손녀.증손자인 홍승의, 홍범석(남양유업 생산전략 부문장)이 있읍니다

둘째인 홍우식(서울광고기획 대표)와 며느리인 최수진 사이에서는 손자.손녀 홍인석,홍서현 있읍니다. 세째 홍영성과 사위인 이교현(미국거주 개인사업)사이에서는 손자.손녀 이수경,이수영,이정호가 잇읍니다.

넷째인 홍명식(사까나야 사장)과 며느리인 김현정(블루피치 대표)사이에서는 손자.손녀 홍효정,홍희정,홍동근이 있읍니다. 다섯째인 홍영혜와 사위인 황재필(영국 웨일스 개발청 한국사무소장)사이에서는 손자.손녀인 황하나,황승현이 있읍니다.

2013년 당시에 남양유업은 악덕기업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었읍니다. 이유는 남양유업의 폭언과 밀어내기 때문이었읍니다. 자신들의 불공정한 영업행위로 인해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빚을 진채로 피해 대리점주들과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않고서,대국민 사과를 늦게하는등의 사건.사고가 있었읍니다.

남양유업 최대주주 등 주식 소유 현황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홍원식 회장이 51.68%인 37만 2107주, 이운경(회장의 처)가 0.89%인 6400주, 홍우식(회장의 동생.0.77%인 5568주),홍명식(회장의 동생,0.45%인 3208주),홍승의(회장의 손자.0.06%인 431주)로 최대주주 및 친인척 지분율 총합계가 53.85%로 38만 7714주였읍니다.

그리고 국민연금이 6.03%로 4만 3381주,아카시아 파트너가 5.58%로 4만 9472주,퍼스트 이글이 5.65%로 5만 133주입니다.

삼양그룹 가계도

故김수영(삼양그룹 창업주)와 아내인 故박하진 사이에서 첫째인 故김상준(전 삼양영업사 회장)과 며느리인 구연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손자인 김정원과 손주며느리인 김선휘(삼양영업사 회장)이 있읍니다.

둘째아들 김병휘(한양대학교 명예교수)와 손주며느리인 전용숙이 있읍니다. 셋째손녀인 김정희와 손녀사위인 김준기(동부그룹 회장)이 있읍니다. 넷째손녀인 김정림과 손녀사위인 윤대근(동부CN 회장),그리고 다섯째인 故 김범이 있읍니다.

둘째아들인 故김상협(전 국무총리)와 며느리인 김인숙 사이에서 첫째딸인 김명신과 손녀사위인 송상현이 있읍니다. 둘째손녀인 김영신과 손녀사위인 정성진이 있읍니다. 세째손녀인 김양순과 손녀사위인 이양팔이 있읍니다. 네째아들인 김한(JB금융지주 회장)과 손녀며느리인 김영란이 있읍니다.

셋째인 故김상홍(삼양그룹 명예회장)과 며느리인 故차부영 사이에서 첫째손녀인 김유주와 손녀사위인 윤영섭(계원학원 이사장)이 있읍니다. 둘째손자인 김윤과 손녀며느리 김유희(김종규 전 서울신문 사장딸)이 있으며 거기서 태어난 증손자는 김건호,김남호가 잇읍니다.셋째인 김량(삼양홀딩스 부회장)과 손녀며느리인 장영은(장자량 전 공군 참모총장 딸)사이에서 증손자.증손녀인 김믽,김태호가 있으며, 넷째는 김영주가 있읍니다.

넷째아들인 故김상돈(전 삼양영업사 회장)과 며느리인 김용옥 사이에서 첫째손자인 김병진과 손자며느리인 한혜승이 잇읍니다. 둘째 손자인 김영로와 손자며느리인 김희진이 있읍니다.

다섯째 아들인 김상하(삼양그룹 그룹회장)과 며느리인 박상례 사이에 태어난 첫째손자인 김원(삼양홀딩스 부회장)과 며느리인 배주연(배영화 전 경의어망회장 딸)이 있으며 그 사이에 손자.손녀로 김남희,김주희,김율희가 있읍니다.

둘째손자인 김정(삼양사 사장)과 손자며느리인 최윤아 사이에서 손자,손녀 김희원,김주형, 김주성이 있읍니다. 셋째손녀인 故김영난과 손녀사위인 송하철(주식회사 항소 사장)이 있읍니다.

여섯째째딸인 故김상경의 자녀로는 조서봉과 조서만이 잇읍니다.

일곱째딸인 김상민과 며느리인 故이두종 사이에서는 첫째손자 이규정과 손자며느리 최성윤이 있읍니다. 둘째손자인 이규화와 손주며느리인 김기혜가 있읍니다. 셋째손녀인 이정현과 손녀사위 백완기가 있읍니다. ▶여섯째딸인 김정애와 사위인 故조석이 있으며 첫째 손자인 김주완과 손현숙이 있읍니다. 둘째손녀인 김원경과 손녀사위인 한정수가 있으며 셋째아들 김창완이 있읍니다.

여덟째딸인 김영숙과 사위인 스테푸친 사이에서 손자.손녀 페기,프랭크가 있읍니다.

아홉째아들인 故김상철과 며느리인 우정명 사이에서 손녀 김의선,손자 김형석이 있읍니다.

열째 딸인 김희경과 사위인 김성완(美 유타대학교 석좌교수)사이에서 손자인 김석원과 손녀인 김소연이 잇읍니다. 열번째 아들인 故 김상용과 며느리인 권명자 사이에서 손자 손녀인 김유정,김유림,김훈, 김동현,김승현이 있읍니다.

삼양그룹의 계열사로는 삼양홀딩스,삼양사,삼양바이오팜,삼남석유화학,삼양화성,삼양데이타시스템,삼양이노켐,삼양에프앤비,삼양공정소료(상해) 유한공사,삼양 EP헝가리,삼양패키징,삼양화인테크놀로지,진황도삼양사식품 유한공사가 있읍니다.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남양유업 홍두영 명예회장家

▲ 남양유업 창업주 홍두영(앞줄 오른쪽 두번째) 명예회장이 지난 1971년 자사 주최로 처음 열린 전국우량아선발대회에서 수상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남양유업의 성장과 함께 한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13년 동안 진행되다가 92년부터는 임신육아교실 사회공헌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설명회에 전혀 관심이 없는 회사, 돌다리를 몇 번씩 두들겨보고도 건너지않는 보수적 경영, 창업주 얼굴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회사….남양유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자사의 우유와 유제품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창업주에 대해 더 많이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 회사의 창업주는 ‘크렘린’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다.남양유업을 창업한 홍두영(87) 명예회장은 한국 낙농업의 대부로 통한다. 홍 명예회장은 40여년간 한국 낙농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 위한 외길을 걸어왔다.홍 명예회장은 지난달 2일 타계한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과 곧잘 비교된다. 두 기업 창업주는 나이가 비슷하고 이북 출신이라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짠돌이’ 경영도 닮았다. 우유·조제분유·발효유·치즈·음료 등의 제품군도 상당히 겹치면서 ‘모방과 카피’ 논란도 많다. 연 매출액도 8000억원대로 엇비슷하다. 여러면에서 두 회사는 ‘물고 물리는’ 숙명적인 관계다.남양유업의 대표이사 3명 가운데 한 명인 창업주 홍 명예회장은 국내 최고령 최고경영자(CEO)이다.1919년 1월7일생이다. 남양유업이 창립된 1964년 이후 43년째 대표이사와 사장, 회장, 명예회장 직위를 줄곧 지키고 있다.홍두영 명예회장은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면 서부동에서 홍재영씨와 최점숙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영변에서 손꼽히던 지주여서 어린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홍 명예회장은 일제시대인 1944년 일본 와세다 제1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와세다대에 진학, 불어불문학과를 마쳤다. 홍 명예회장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어릴적 행적이 거의 알려진 게 없다.일본에서 귀국한 27세의 청년 홍두영은 어수선하던 광복 정국에서 고향 영변의 숭덕여자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을 하던 1947년 5월 같은 영변 출신의 열살 아래인 지송죽(77)씨와 결혼,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김일성 정권이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엘리트 가정을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홍 명예회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가족과 홍선태(작고) 전 남양산업 대표 등 동생을 데리고 월남했다.홍 명예회장의 첫 사업은 경험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종전 이듬해인 1954년 부산에서 비료를 수입하는 ‘남양상사’를 일으켰다.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지만 62년에 화폐개혁이란 뜻밖의 복병을 만나 8년만에 모든 재산을 날려버렸다.일각에서는 당시의 충격이 너무 심해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소심증과 같은 마음의 병이 생겼다는 말도 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 명예회장은 신문이나 TV를 통해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꺼린다.”며 “경기단체 회장직 제의도 많았지만 다 물리쳤다.”고 말했다. 첫 사업 실패 이후 홍 명예회장의 보수적 경영이 시작됐으며, 큰 아들 홍원식(56) 회장에 대한 경영수업이 다른 기업보다 일찍 시작됐다.홍 명예회장이 사업 재기를 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분유였다. 비료 수입업에 종사하던 그는 1963년 선진 외국 출장길에서 분유사업을 눈여겨 봐뒀던 것. 분유를 마음껏 먹고 있던 외국 아기의 모습을 본 그에게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고국의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던 것으로 짐작된다.고국으로 돌아온 홍 명예회장은 64년 3월 13일 남양유업을 설립했다. 당시 정부는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농민들의 소득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낙농사업에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홍 명예회장은 영변의 지주 아들이어서 낙농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1965년 11월 충남 천안에 제1공장을 짓고 자가생산 체제에 들어갔다.충남 천안 공장부지가 금광터였기 때문이었을까. 지난 67년 1월10일 출시된 유아용 제조 분유인 남양분유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어 77년에는 유산균 발효유인 남양 요구르트를 개발, 히트 브랜드 대열에 합류시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출연료 1억원을 주고 축구선수 차범근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78년 유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고 주식을 상장했다.회사가 커지면서 가족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장남 홍원식 회장이 회사일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73년부터 종종 회사에 나와 가업을 도왔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회사에 달려와 입출금 전표를 끊는 등 경리업무를 봤다.74년 기획실 부장을 시작으로 경영수업에 들어갔다.77년 이사,79년 상무,80년 전무,88년 부사장을 거쳐 지난 90년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가 2003년 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는 90년대에는 불가리스, 아인슈타인우유, 아기사랑秀,E-5, 위풍당당 동충하초 등을 내놓으며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리게 했다.회사가 성장 엔진을 필요로 하던 80년 9월 둘째 아들 홍우식(53) 서울광고기획 사장도 남양유업에 합류했다.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80년대 초반 큰아들 홍원식 회장과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모두 힘을 합쳤다. 홍 명예회장의 부인 지송죽씨도 한때 남양유업의 감사로 근무했다. 남양유업이 최근 곧잘 내세우는 ‘친인척 경영 참여 금지’는 그 당시에는 해당되지 않았다.창업주 홍 명예회장은 당시 90년 4월 회사 최고경영자 자리를 홍원식 회장에게 물려주면서 회사 운영에 관해 두 가지 금기사항을 가르쳤다.‘기업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지 말 것’과 ‘부동산 투기를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고 전한다. 홍 회장뿐만 아니라 기업인이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사항이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홍 회장은 30년 가까이 남양유업에서 근무한 덕분에 누구보다 회사 사정에 밝았다. 홍 회장은 지난 99년 10월 덴마크 왕실로부터 ‘영예로운 메달’을 받았고,2001년 7월 무차입 경영과 축산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제25회 전국경영생산성촉진대회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지난 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위기 당시 대기업마저 자금난에 휘청거릴 때 남양유업은 오히려 20% 이상의 성장을 이뤘다. 대표적인 소매업종으로 불황을 잘 타지 않는 데다 기업 규모보다도 ‘브랜드 파워’가 강한 까닭이다.게다가 98년 11월 그동안 상업·조흥·신한은행에 남아 있었던 180억원의 은행차입금을 모두 갚았다. 부채 비율을 167%에서 0%로 떨어뜨렸다. 회사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무차입(無借入) 경영의 원조’라고 공식 선언했다. 현재는 4700억여원을 확보,1만%의 사내유보율을 자랑한다. 이로 인해 상당한 금융소득도 올리고 있다.이같은 남양유업의 성공은 창업주 홍 명예회장의 독특한 철학인 ‘4무(無)’경영에 바탕을 두고 있다.4무는 돈을 빌려쓰지 않고(무차입), 노사분규가 없으며(무분규), 친인척이 개입하지 않으며(무파벌), 자기 사옥이 없는(무사옥) 경영을 말한다.인사에서의 투명성도 줄곧 강조된다. 오너의 친인척은 회사에 발붙이지 못하며, 파벌 형성 또한 용납되지 않는다. 홍보와 마케팅을 총괄하는 성장경 상무는 “남양유업에는 자연스럽게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사옥도 없다.43년째 남의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다. 현재는 서울 중구 남대문 대일빌딩을 빌려쓰고 있다.1000억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하고 종업원이 3000명이 넘는 기업이지만 임원은 단 9명에 불과하다.43년간 단 한차례도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다.남양유업은 목장주들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품질검사가 깐깐한 회사다. 그러나 원유값 만큼은 현금으로 결제하고, 결제기일도 정확하게 지키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목장주들이 거래하기를 가장 선호하는 회사로 통한다.제품의 다양화는 추진하지만 사업의 다각화는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다. 우유 캔을 만드는 회사나 낙농가를 위한 사료공장 등을 세우자는 내부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전공을 벗어나는 사업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방침이다. 식품 분야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는 절대로 한 눈 팔지 않겠다는 창업주 홍 회장의 경영 철학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홍 회장은 지난 2003년 11월 대표이사 사장에서 물러나고 최대주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홍 명예회장은 박건호 대표이사 부사장, 김승수 대표이사 전무 ‘3두마차’ 경영체제를 확립해 오고 있다.홍 회장은 그러나 경영에 무관심하지는 않다. 회사에 사무실을 두고 거의 매일 출근을 하면서 중요 사항을 직접 결정할 만큼 경영에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명예회장도 가끔씩 회사에 들르곤 한다. 남양유업과 거래하는 회사의 한 관계자는 “남양유업이 1억원 이상의 경비를 지출할 때는 오너가 반드시 결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에 따라 남양유업의 의사 결정이 경쟁 기업에 비해 많이 늦다.”고 말했다.홍 명예회장은 부인 지송죽씨와의 사이에서 3남2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회사 직제상 경영에 참여하는 이는 창업주 홍 명예회장 자신뿐이다. 큰아들 홍원식 회장은 최대 주주로 남아있다.자본금 44억 3300여만원인 남양유업의 지난해의 정확한 매출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2004년의 매출은 7729억 8400만원에 당기순익은 427억 9400만원에 이른다. 홍원식 회장은 19.44%(13만 9964주)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다. 홍 명예회장은 7.63%(5만 4907주)를, 홍원식 회장의 부인 이운경(54)씨는 0.89%(6400주)를 보유하고 있다.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0.63%(4568주), 셋째 아들 홍명식(46) 사까나야 사장은 0.4%(2908주)씩 갖고 있다. 홍두영 명예회장의 처남댁 김정선씨가 이색적으로 0.16%(1168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막내딸 홍영혜(44)씨는 지난해 초 장내에서 2612주를 매도, 지분율이 0.45%(3208주)에서 0.08%(587주)로 낮아진 것이 눈에 띈다. 특히 미국 투자회사 안홀드 앤드 에스 블라이흐뢰더가 15.90%(11만 4448주)를 보유하는 등 외국인들이 눈독을 들이는 회사다.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23.74%에 이른다. 남양유업의 주식 거래가 극히 부진해 한때 상장폐지 위기까지 내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를 무시하며 경영권 방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내년도 매출 목표는 1조원으로 잡고 있다.창업주 홍 명예회장의 자녀 혼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큰 아들 홍원식 회장은 지난 76년 고려해운 창업주 이학철(작고) 회장의 장녀 이운경(54)씨와 화촉을 밝혔던 것이 눈에 띌 정도다. 홍 회장은 이동찬(84) 코오롱그룹 회장 가문과도 연결된다. 이동찬 회장의 셋째딸 이혜숙(54)씨가 고려해운 이 회장의 장남인 이동혁(59) 고려해운 회장과 결혼한 까닭이다.홍원식 회장은 부인 이운경씨와의 사이에서 진석(30), 범석(27)씨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이씨는 사회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통한 남양유업의 3세 승계가 어떻게 이어질지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04년 말 홍 회장은 어머니 지송죽 전 감사로부터 주식 2만 108주(2.79%)를 모두 물려받았다. 이를 두고 형제간에 사이가 소원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둘째 아들 홍우식씨는 남양유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광고회사 서울광고기획 사장을 맡고 있다. 홍 사장은 지난 71년 서울고교와 76년 연세대를 거쳐 83년 미국 산타클라라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해군 중위 출신인 홍 사장은 지난 79년 8월 한국IBM을 거쳐 지난 80년 9월부터 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내에 있던 광고 부문을 들고나와 부친의 우산에서 독립했다.홍 사장은 지난 85년 8월 서울광고기획의 상무,88년 전무,90년 부사장을 거쳐 93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지난 1980년 설립된 서울광고기획은 2004년 총 취급고가 626억원으로 업계 17위였다. 주요 광고주로는 남양유업을 비롯해 태영·보령제약·보령메디앙스·BYC, 씨엠에스 천재교육·하선정종합식품 등이 있다.2005년도의 매출 목표는 900억원이지만 정확한 매출은 알려지지 않았다.홍 사장은 지난 81년 5월 최수진(4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연년생인 자녀 인석(24), 서현(23)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지난 72년 이름을 춘애에서 수진으로 바꾼 최씨 역시 별다른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장녀 영서(52)씨는 이교현(57)씨와 결혼, 수경·수영(25) 쌍둥이와 정호(18)군을 두고 있다. 홍 명예회장의 큰사위 이교현씨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셋째 아들 홍명식(46) 사까나야 사장은 연봉이 1억원을 웃도는 외환 딜러직을 떠나 음식점 8개를 운영하고 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2층에 회전초밥 전문점 사까나야 등 6개의 지점을 두고 있으며, 한정식집 돈후이 등을 운영하는 외식업 사장이다. 홍 사장의 이력은 다채롭다. 용산고와 연세대를 거쳐 지난 87년 미시간대에서 MBA를 땄다.1987년부터 JP모건체이스 은행 등에서 12년동안 근무한 금융통.99년 인터넷서점 ‘예스24’를 공동 창업해 한세실업에 매각되기 전인 2003년 5월까지 부사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6개 사까나야와 돈후이 등의 전체 매출액이 100억원대에 이르는 등 외식재벌 반열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외식업종으로 변경한 홍 사장은 지난해 초 인터넷 의류 쇼핑몰인 블루피치를 운영하는 김현정(40)씨와 결혼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김씨는 고려대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홍 사장은 전처에게서 효정·희정(19) 등 일란성 쌍둥이 자녀를 두고 있다. 홍 사장은 쌍둥이 자녀 외에도 동근(13)군을 두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있다.막내딸 홍영혜씨(44)는 지난 90년 영국 웨일스개발청의 황재필(44) 한국사무소장과 결혼, 하나(17)양과 승현(11)군을 두고 있다. 영혜씨는 경희대 작곡과를 졸업한 재원. 서울 양정고를 마치고 연세대를 다니다가 미국 조지아주립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황씨는 지난 86년 주한 영국대사관 부상무관을 거쳐 89년부터 영국 웨일스개발청 한국사무소장을 맡고 있다. 황씨의 부친은 헌병차감을 지냈던 황태섭(작고)씨다.황씨는 86년 연세대 어학당에서 홍씨와 얼굴을 익혔다. 이들은 홍씨의 올케 소개로 사귀다가 이듬해 결혼에 골인했다.남양의 대표적인 성장 엔진으로는 1971년 시작된 ‘전국우량아 선발대회’를 들 수 있다. 자라나는 2세의 건강과 체격 향상을 일깨워주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사회 공헌 행사였다.첫 대회에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참가했고 아기와 엄마 등 수상자를 청와대에 초청, 오찬을 할 정도로 관심이 깊었다. 변변한 행사나 이벤트가 없던 당시로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으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당시 행사를 기억하고 있다.우량아 선발대회는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기 엄마라면 누구나 자기 아기를 우량아로 키우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서 토실토실한 아기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24개월 미만의 아기들이 지방 예선을 거쳐 결선을 겨뤘다. 제1회 전국 최우량아는 춘천에 사는 한영만 아기(69년 11월생)로 발육상황은 키 85㎝, 몸무게 13㎏, 머리둘레 50㎝, 생후 11개월부터 걷기 시작했으며 모유와 우유를 함께 먹였고 과일즙, 달걀 노른자 반숙 등을 간식으로 먹였다고 한다. 튼튼하고 건강한 아기의 대명사인 우량아 선발대회는 84년 제13회 대회까지 계속됐다.이후 92년부터 임신육아교실로 바꿔 진행되고 있다.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새내기 주부들에게 올바른 출산 정보 전달에 힘쓰고 있다.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전국에서 250회 이상 연다. 특히 산부인과·소아과·피부과·한방 분야의 권위있는 전문의들이 나와 임산부들에게 이해하기 쉽고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숙제를 풀기 위한 남양의 또 다른 사회 공헌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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