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삼 목사 가족 | 유명 목사님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낸 방법ㅣ만나교회 김병삼 목사ㅣ잘잘법 Ep.89 75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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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거죠
내가 원하는 자리에
내가 없었기 때문에
내 인생이
늘 실패한 거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만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굉장히
중요한 태도 가운데 하나는
내가 원했던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보다는
내가 원하지 않던 일들을
내 삶에서 어떻게 해석해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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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목사 “저는 장애를 가진 딸의 아빠로 살았습니다” : 목회

장애인 딸을 둔 아버지이자 목회자로서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가 최근 CBS ‘잘 먹고 잘 사는 법(잘잘법)’에 출연해 장애인 자녀로 고통 받는 이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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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한곳 바라보며 동역… 목사·사모에서 영적 동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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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고의 명예, ‘만나교회 담임목사’” – 기독교포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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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목사님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낸 방법ㅣ만나교회 김병삼 목사ㅣ잘잘법 E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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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최초 공개: 202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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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목사 “저는 장애를 가진 딸의 아빠로 살았습니다”

[email protected]) 기독일보 김재건 기자

트윗하기 장애인 딸을 둔 아버지이자 목회자로서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가 최근 CBS ‘잘 먹고 잘 사는 법(잘잘법)’에 출연해 장애인 자녀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했다. 김 목사는 “우리 삶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가만히 보면, 어그러진 일들을 경험하는 일이 훨씬 많다”며 “인생을 대하는 굉장히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원했던 일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보다 원하지 않던 일을 어떻게 해석해내는가에 있다. 사실은 사건보다 해석이 훨씬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제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나요?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요?’ 이런 신앙적 물음이 있지 않느냐”며 “제일 힘든 게 자녀 문제다. 저는 수십 년 동안 장애를 가진 딸의 아빠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저보다 집사람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장애로 태어났다면 조금 더 받아들이기 괜찮았겠지만,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살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그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이 살려주셨다. 그런데 그 감사보다, 1년 후 딸에게 찾아온 장애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김 목사는 덧붙였다. 장애인 자녀를 키운 목회자로서 겪은 어려움도 나눴다. 김 목사는 “가장 친한 사람들이 ‘너 그런 딸 데리고 어떻게 목회할래? 기도해야지’, 가슴이 무너지는 이야기였다. 부모보다 더 딸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이 너무 쉽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며 “고쳐달라고 참 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고쳐주시지 않더라. 그래서 왜 하는 물음이 생겼다”고 했다. 또 김 목사는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30년 전 미국 사회는 당시 한국과 달리 장애를 가진 아이도 잘 돌봐줄 수 있었다. 그래서 딸은 그 5년 유학 동안 진짜 행복하게 살았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많이 힘들어졌다. 제일 힘든 건 장애로 인해 부모도 모르게 왕따를 당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아울러 김 목사는 “나중에 이를 알게 됐을 때, 저는 이 사회를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내게’ 하고 질문하는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며 “저도 딸의 장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장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바꿔가시는 일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사람은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이것이 제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런데 딸에게 후천적 약물 부작용으로 지적 장애가 왔다. 그래서 너무 억울했다”며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구나’였다. 특히 딸은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고 특별한 관심을 보여줘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전까지의 목회는 엘리트 중심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이렇게 잘 돼야 해요. 노력하면 돼요’였다. 그런데 딸을 통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교회가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또 장애를 가진 딸이 겪는 고통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심경도 고백했다. 그는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딸이 당하는 고통, 아픔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였다. 이 부분에는 답이 없었다”며 “그런데 33년을 지나오면서, 우리 부부의 큰 걱정은 ‘딸보다 우리가 먼저 죽을텐데, 우리 딸 어떡하나’였다. 그런데 진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몇 년 전 딸이 결혼한 것이다. 아무도 결혼하리라 생각을 안 했는데, 사위를 만나고 짧은 과정 후 둘이 결혼하겠다고 하고 시댁의 허락을 받아 결혼을 했다. 여기까지는 해피 엔딩”이라고 전했다. 김 목사는 “저는 딸이 결혼하고 행복해지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사위가 장애를 가진 딸과 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때부터 또 어려움이 시작됐다”며 “‘하나님, 이쯤이면 될 줄 알았는데 왜…’ 하게 됐다. 다시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그 과정이 지나가고 요즘은 둘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어 “우리 삶에는 이해할 수 없고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을 비극이라 이야기할 때가 많다. 하지만 사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인생을 비극이라고 한다면, 우리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일 것”이라며 “그런 아픔을 가지고 힘겹게 사는 분들에게 딱 맞는 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내 인생에 대한 계획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고, 힘겹지만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때가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아울러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그렇지도 않더라.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의 시간들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목사로서 딸로 인해 이런 목회 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며 “그럼에도 딸이 그렇게 힘들어했던 시간들은 무엇인가. 아직까지 제겐 답이 없다. 딸이 요즘도 ‘하나님 저 낫게 해주세요. 깨끗하게 해주세요 고쳐주세요’ 기도하는데, 들을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김병삼 목사는 그러나 고통의 시간을 겪는 과정에서 생긴 장애인 딸의 신앙에 주목하기도 했다. 그는 “감사한 것 중 하나는 ‘딸이 기도하고 있구나, 소망을 가지고 있구나’.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요즘 딸이 창세기부터 성경을 필사하고 있다”며 “우리 딸은 지적 장애도 있고, 손도 잘 움직여지지 않아 글씨 쓰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창세기부터 출애굽기까지 써서 채팅방에 올려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어떤 분들은 우리 딸보다 심할 수도, 덜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이 여전히 많지만,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대면하고 답을 얻고,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아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 아닐까”라고 했다. 그는 “그 인생의 여정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 더 험한 길도, 더 편안한 길도 있을 것이다. 저는 그런 분들께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이 문제를 놓고 마주 설 용기가 필요하지 않는가 권면한다”며 “용기는 삶을 직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용기 없는 사람은 삶을 회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그러나 “여전히 제 속에선 딸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해결이 안 된다. 하지만 그 부분은 딸의 몫, 하나님의 몫일 것”이라며 “목사로 살면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답을 해줄 수 있다거나 내 인생에 모든 답을 얻을 수 있었다면, 저는 하나님을 안 믿을 것 같다. 끊임없이 부족하고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에, 여전히 제게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래서 사도 바울이 ‘약함이 곧 강함’이라고 고백했다. 만약 그에게 육신의 가시와 연약함이 없었다면,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마지막에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인생에서 이해할 수 없는 약한 부분들과 고민들이 곧 강함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것들이 사실 우리를 믿음의 끈으로 이어주고, 우리를 하나님께 붙들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믿음의 역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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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한곳 바라보며 동역… 목사·사모에서 영적 동지로

한 교회에서 시무하는 세 커플의 부부 사역자들이 오랜만에 뭉쳤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성남 만나교회 앞에서 활짝 미소짓고 있다. 왼쪽부터 양미영 임영광 목사 부부, 이은영 전도사와 박상원 목사 부부, 이용주 문지희 목사 부부. 성남=송지수 인턴기자

양미영 목사가 지난 1월 교회 영아부 예배에서 축도하고 있다. 만나교회 제공

이은영 전도사가 2017년 일본의 한 집회에서 반주하고 있다. 만나교회 제공

문지희 목사가 지난달 교회 수요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다. 만나교회 제공

전통교회에서는 부부 사역자가 함께 일하기 쉽지 않다. 남성은 목회자, 여성은 사모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통용돼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교회에서는 남편 목회자를 내조하는 사모의 역할을 기대하는 경우가 허다해 부부 목회자를 청빙하는 일은 흔치 않다.경기도 성남 양현로 만나교회(김병삼 목사)에는 세 커플의 부부 사역자가 있다. 이 교회가 부부 목회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는 “한국교회에 여성 사역자들의 길을 열어준다는 측면에서 부부 사역을 권장하고 있다”면서 “한국사회에서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는데 경제적 측면도 고려했다. 교회가 사모 혹은 여성 사역자의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좋은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9일 교회 비전룸에서 세 커플을 만났다.임영광(43) 양미영(42) 목사는 전도사 시절 이곳에서 만난 인연으로 2004년 결혼에 골인했다. 김 목사가 오작교 역할을 했다. 평소 양 목사를 마음에 품었던 임 목사는 김 목사에게 이메일을 통해 양 목사가 어떤 사람이냐고 슬며시 물어봤다. 그의 진심을 단번에 파악한 김 목사는 그 설명에 답하는 대신 “둘이 사귀라”고 조언했다. 임 목사 부부는 결혼 후 5년간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9년부터 이 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다.전도사에서 사모로 역할이 바뀐 양 목사는 남편 사역에 중보기도 등으로 내조하고 3명의 자녀 양육에 온 힘을 쏟았다. 2015년 목사 안수를 받았으나 사실상 목사로서는 경력이 단절된 셈이다. 그러다 지난해 12월부터 교회 영아부 담당 교역자로 섬기고 있다. 만나교회 목사부부 1호이다.부부 사역자의 장점은 어떤 것일까. 임 목사는 “아내가 그동안 엄마와 사모로서 좋은 역할을 했는데 사역자로서 정체성을 갖고 더 큰 비전을 꿈꾸니 좋다”며 “이전엔 동떨어진 환경에 있어서 퇴근 후 가정에서 대화하는 게 어려웠다. 지금은 이야기의 맥락을 잘 알고 있으니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양 목사는 목회 복귀와 관련해 “사모의 시간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사명은 여자와 가정을 세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부가 같이 일하다 보니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때도 있지만 가정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남편과 함께하니 든든하다”고 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에는 사모로 돌아가 ‘만나사모선교회 기도회’에 참석한다.임 목사는 “이전보다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으니 간섭권 터치를 받기도 한다”며 껄껄 웃었다. 부부는 “성도들이 기대해주는 만큼 좋은 모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박상원(43) 목사와 이은영(41) 전도사 부부는 2015년 1월에 부임했다. 그동안 사모로 내조하던 이 전도사는 지난해 3월부터 묵상집 편집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12월부턴 청년부 담당 교역자로 섬기고 있다.이 전도사는 사모와 교역자로 섬기는 차이가 크지 않다고 했다. 그는 “사람을 기르고 하나님과 가깝게 하도록 하는 멘토 역할은 사모 때도 하던 사역”이라며 “다만 청년부에서 직함을 갖다 보니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커졌다”고 했다. 이어 “이전엔 가정에서 집안일 등을 주로 했지만 지금은 잘 안 된다”고 말했다.박 목사는 “전엔 집에서 쉬려고 했지만 이젠 설거지를 해야 한다”며 웃었다. 또 “내가 국장으로 사역하는 국 안에 아내 부서가 소속돼 있어 아내를 관리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했다. 아쉬운 점에 대해선 “영성훈련원 사역 등에서 30~40대 여성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아내가 많이 도와줬다”며 “남편 사역보다 지금은 본인의 사역이 있으니 이전만큼 협업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하나님이 아내에게 주신 은사로 교회에서 동역하면 좋겠다”고 말했다.자녀들도 엄마가 사역하는 것에 찬성한다. 이 전도사는 “스스로 목회 임지를 찾는다면 (여러 요건 때문에)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회를 주셔서 현장에 나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이용주(40) 문지희(39) 목사 부부는 지난 1월 부임했다. 김 목사가 이 목사를 면접했는데 같이 제출해야 하는 사모의 이력서를 본 뒤 함께 사역할 것을 제안했다.이 목사는 “이전엔 각자 다른 교회에서 따로 사역했는데 사역의 공통분모가 없다 보니 서로의 힘든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지금은 그것과 반대다. 24시간 같이 보내고 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이야깃거리가 많고 서로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 집에 있으면 아내인가 동역자인가 헷갈린다. 생각보다 불편한 점은 없다”고 덧붙였다.문 목사도 “한 교회 안에서 한 말씀을 듣다 보니 영적으로도 같은 흐름이고 부딪침이 거의 없다”며 “성도들도 부부 사역의 긍정적 요소를 알고 응원해준다”고 했다.현재 만나교회엔 여 목사가 7명이나 된다. 여성 목회자들은 교육과 전문사역 등에서 달란트를 발휘하고 있다. 김 목사는 “우리 교회 이야기가 다른 교회에서 부부 사역자 혹은 여성 사역자들이 활동하는 데 좋은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성남=김아영 기자 [email protected]

‘만나교회 출신’이라 교차 세습한 목사, 부임 직후 김병삼 목사 설교 표절

*기사 내용 추가: 2022년 5월 10일 10시 30분 현재 두 설교의 유사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 본문 중간에 ‘베드로’를 언급한 직접 인용 부분과 예화를 설명하는 일부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최근 <뉴스앤조이>가 기사화한 교차 세습 교회의 목사가 설교를 표절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대형 교회 출신이라서’ 친구네 교회도 환영했다고 했는데, 정작 그렇게 부임한 아들 목사는 자신이 몸담았던 대형 교회 담임목사의 설교를 5주째 거의 반복하고 있었다.

대전 ㅅ교회는 지난 3월 20일 오후 A 담임목사 취임 예배를 열었다. A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에 소속된 만나교회(김병삼 목사) 부목사 출신이다. 교인들은 좋은 분이 왔다며 기대를 걸었다. 이날 예배에는 김병삼 목사도 직접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취임 예배가 열린 3월 20일 오전 예배부터, 강 목사는 ‘제자입니까’라는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시작했다. 이날 주일예배 본문은 마태복음 1:21, 제목은 ‘예수+변화=혁명’이었다. 그런데 이 설교는 김병삼 목사가 2016년 했던 설교 시리즈와 똑같았다. 김 목사는 2016년 3월 ‘예수님을 아는 것은 혁명입니다'(마 1:21)라는 주제로 설교한 바 있다.

A 목사는 3월 20일부터 4월 24일까지 5주간 시리즈 설교를 이어 갔는데, <뉴스앤조이>가 A 목사와 김병삼 목사의 5주 치 설교를 비교해 본 결과, A 목사가 김병삼 목사의 설교를 표절한 정황이 상당 부분 발견됐다. 다음은 A 목사의 2022년 4월 10일 종려주일 설교 ‘가룟 유다: 사랑을 배신한 사람'(마 26:14-17)과 김병삼 목사의 2016년 3월 20일 종려주일 설교 ‘가룟 유다 – 사랑을 배신한 사람'(마 26:14-16, 47-50 등) 앞 부분을 비교한 것이다.

A 목사 / 사르트르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죽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그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신 12명의 제자 중에 유일하게 비극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 바로 오늘 말씀의 주인공 가룟 유다입니다.

김병삼 목사 /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죽음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그 죽음 앞에서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그 죽음 앞에서 그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12명이었고요. 그중에 유일하게 비극적으로 인생을 맞이한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뉴스앤조이>가 확인한 설교 5편 중 어디에도 이 시리즈가 김병삼 목사 설교 시리즈라는 언급이 없다. 오히려 A 목사 본인이 묵상하며 준비했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하는 부분도 있다.

A 목사 / 베드로를 생각하면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이 가장 많이 생각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말씀을 묵상하고 읽으면서 베드로 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실수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실수를 보면서 많은 위로가 돼요. 왜냐하면 아주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실수들은 인간적인 모습에서 나오는 것들이었습니다.

김병삼 목사 / 베드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의 삶에 많았던 실수입니다. 실수하는 사람을 보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지만 참 인간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A 목사 / 그런데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야고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그런 의문들이 제 안에서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나님에게도 무의미한 존재일까. 사람들이 기억해야지만 하나님 앞에서도 기억되는 사람일까. 아마 사람들이 갖는 가장 큰 오류가 하나 있다면 사람들의 관점에서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김병삼 목사 / 그런데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이 작은 야고보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가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아니하고 성경에 많은 분량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도 무의미한 존재였을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가지는 많은 오류 가운데 하나는 우리들의 관점에서 사람을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예화도 가져다 썼다. A 목사는 “몇 해 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 사이에 바둑으로 인해서 참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었다”고 설교했다. 이 예화는 김병삼 목사 설교에도 똑같이 등장하며, 등장하는 순서도 같다. 김 목사가 이 설교를 한 2016년 당시 알파고와 이세돌이 대국 중이었기 때문이다. 김병삼 목사가 “요즘 이세돌 9단하고 알파고와의 그런 바둑 때문에 우리들이 인공지능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을 A 목사는 “몇 해 전”이라는 말만 넣어 이야기를 이어 나간 것이다.

이 밖에도 A 목사는 김병삼 목사가 “내가 얼마 전 목사님들과의 나눈 대화 내용이다”라고 소개하는 예화를 “우스갯소리로 들은 이야기”라고 설명하거나, 신학 공부 중인 아들이 자신에게 고충을 토로했다는 김병삼 목사의 예화를 “언젠가 한 청년부 전도사가 담임목사님에게 설교가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셨다”고 설명하는 등 예화도 조금씩 바꾸어 사용했다. 한편 김병삼 목사가 대형 교회 목회자들과의 만남이나 교회 장로들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A 목사가 그것을 그대로 소개하기는 어려우므로 그 예화를 생략하기도 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교 5편 중 3편의 첫 7~10분 부분을 비교한 문서를 하단에 첨부했다. 설교 곳곳에서 유사 표현이 반복되고 전개도 똑같다.

A 목사의 2022년 4월 17일 부활주일 설교 ‘베드로: 반석이 된 사람'(마 16:13-20)과 김병삼 목사의 2016년 3월 27일 부활주일 설교 ‘베드로 – 반석이 된 사람'(마 16:13-25)의 초반 10여 분 설교 전개는 이렇게 이어진다.

A 목사 / 베드로 삶의 패턴 →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 → 미켈란젤로 모세상 예화 → 베드로의 투박함을 예수님이 다듬으심 → 베드로 하면 생각나는 단어 ‘실수’ → 알파고 예화

김병삼 목사 / 베드로 삶의 패턴 →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 → 미켈란젤로 모세상 예화 → 베드로를 예수님이 다듬으심 → 베드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실수’ → 알파고 예화

A 목사 “교인들도 감사해한다

세상에 독창적인 설교가 얼마나 있겠나” 반문

A 목사는 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설교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김병삼 목사님 밑에서 부목사로 있지 않았나. 내가 은혜받은 내용을 같이 나누겠다고 교인들에게 말씀드렸다. 나는 나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교인들도 만나교회에서 받은 은혜를 함께 공유하는 것들에 대해 참 감사해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 설교를 시작하면서 목사님의 ‘제자입니까’ 시리즈로 한다고 (교인들에게) 말씀을 드렸고, 내가 만나교회 부목사 출신이기 때문에 김 목사님께 은혜받은 부분을 같이 나눈다고도 말씀드렸다. 그게 문제가 될 게 있는지 모르겠다. 은혜받은 것을 나누는데 당연히 유사할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자입니까’ 시리즈 첫 설교 영상에서, A 목사가 만나교회와 김병삼 목사를 언급하는 부분은 없었다.

김병삼 목사의 설교를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라고 했다.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마다 본문과 내용, 대지를 다 들으면서 기록했다. 예화 같은 건 여러 가지 자료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남의 설교문을 가져와서 허락이나 허가 없이 사용하는 걸 표절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김병삼 목사님은 부목사들이 나가서 (자기 설교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표절이다 아니다’ 얘기하신 적도 없으며, 사용하지 말라고 하신 적도 없다”고 했다.

아무리 김 목사 설교가 좋아도 예화까지 똑같이 쓰는 건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나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수정을 8~10시간씩 한다. 본문과 대지가 같으니 어쩔 수 없는 거다. 예화도 내가 직접 책에서 찾아서 집어넣는다. 유튜브에서 목사님 영상 틀어 놓고 그걸 언제 녹취하고 있겠나. 표절 시비가 붙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A 목사는 “세상에 수많은 설교가 있는데 독창적인 설교라는 게 얼마나 되겠나. 도대체 독창적인 설교가 의미하는 게 뭔가. 이 부분은 기사에 꼭 넣어 달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A 목사와 김병삼 목사의 설교 3편의 첫 10분 정도를 서로 비교한 것이다.

“내 최고의 명예, ‘만나교회 담임목사’”

[신년 인터뷰] 김병삼 목사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

▲ 최고의 명예는 ‘만나교회 담임목사’라고 강조하는 김병삼 목사(사진 Look&Link 김한수 PD)

김병삼 목사(53, 만나교회)는 천상 목회자다. 이름은 불꽃 병(炳)에 석 삼(三)자를 쓴다. 김병삼 목사의 ‘삼자’에는 차남이 평생 목회자로서 삼위일체되신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갈망했던 아버지 김우영 목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부친의 염원대로 김 목사는 경기도 분당에서 불꽃처럼 자신을 사르며 목회하고 있었다. 기자(기독교포털뉴스)는 2016년 1월 22일(금) 만나교회 7층 목양실에서 김 목사를 만났다. 그는 진회색 콤비와 체크 무늬 셔츠를 입고 기자를 맞았다. 김 목사와의 대화는 한편의 감동적인 강연을 듣는 거 같았다. 때론 웃었고, 때론 울었다. 아직 소장파에 속하는 목회자이지만, 소위 ‘목회 세습’을 했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그였지만 12년째 만나교회를 담임하며 쌓은 목회의 내공은 만만찮아 보였다.

‘세습목회’라는 꼬리표와 공황 장애

김병삼 목사의 선친, 김우영 목사도 천상 목회자였다. 김우영 목사는 2002년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다가 2004년 별세했다. 당시 3천여명이 출석하는 교회였지만 선친은 이렇다 할 재산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교회의 빚만 100억원을 상회했다. 아버지의 통장에는 잔액 2만 4천원 밖에 없었다.

▲ 만나교회 교인들에게 선물하는 나무 십자가(사진 Look&Link 김한수 PD)

김병삼 목사는 선친의 장례식 조의금으로 들어온 1억원을 교회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강원도 원주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놓은 토지가 하나 있었다. 그것을 팔자 2억 5천만원이 됐다. 그 돈은 전교인들 가정에 달아 놓을 십자가를 제작해 선물했다. 십자가는 검은색 나무로 정갈하게 만들었다. 만나교회 성도들 집에 가면 이 십자가가 달려 있다. 김 목사의 사택은 만나교회내에 있다. 교인 1만여명에 육박하는 대형교회지만 김 목사는 사택을 교회 안에 뒀다. 그는 아버지처럼 살려고 노력한다.

김 목사가 어떤 철학을 갖고 목회를 하든, 사람들은 그에게 ‘꼬리표’ 하나를 붙여 준다. ‘교회 세습’이다. 그러나 만나교회 성도들의 생각은 다르다. 만나교회에서 인사구역위원회(감리사가 와서 사회를 진행하는 가운데 개교회 목회자의 이·취임을 진행하는 위원회)가 있었다. 감리사가 ‘세습목회’라는 말을 꺼내자 장로 한명이 발언했다. “감리사님, 우리가 세습목회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취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습이 아니라 교인들이 무기명으로 투표를 해서 현 담임목사님을 세운 겁니다!”

만나교회 내부적으로 김병삼 목사의 담임 승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외부에서의 지적과 시선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김 목사의 부친이 갑작스레 쓰러졌을 당시 김병삼 목사는 만나교회에서 기획목사로 사역했다. 이때부터 1년간 김 목사는 설교를 담당했고 2004년, 부친이 별세한 후 담임목사가 된다. 그후로 김 목사의 마음에는 늘 개척해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세습’이란 딱지를 김 목사 스스로 떼어내고 싶었다. 2004년, 3천명이던 교인들은 1년마다 1천명씩 늘었다. 3년이 지나자 3천명이 더 증가하며 급성장을 했다. 그 때 김 목사의 마음엔 ‘이제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007년, 덜컥 공황장애가 왔다. 힘들고 아팠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휴가 한번 가지 못하고 하얗게 태우듯 모든 걸 걸고 목회를 해왔다. 교회 개척이 눈 앞에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나 아프면서 모든 걸 접게 됐다. 그때 비로소 김 목사는 마음으로 깊게 자문했다. ‘너는 왜 개척을 하려는가?’ ‘나는 아버지가 아니어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교회 개척을 계획하면서도 참된 목자로서 주님의 양들을 목양하겠다는 생각이 먼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아니어도 잘할 수 있다는 자만심,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내가 목자인데, 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교회를 개척하려 했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때 정말 많이 회개했습니다.”

공황 장애가 오기전까지 그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부담이 있었다. ‘목회를 잘 해야 한다’, ‘내분이 없어야 한다’, ‘잡음없이 부흥시켜야 한다’는 갖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 한가지는 죄책감이었다. 선친도 김 목사도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부친과 김 목사간에는 목회적 갈등이 있었다. 예를 들면 고전적인 형태의 강단을 현대적으로 다 뜯어 고치는 등의 행동이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그 때 김병삼 목사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라는 책을 냈다. 출판사에서 “담임목사면 모르겠는데 부목사가 이런 책을 내면 교회에서 짤린다”고 염려했다. 김 목사는 교회를 나갈 생각으로 책 출판을 강행했다. 그러는 과정에 김우영 목사가 소천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너무 소신껏 밀어붙이기만 했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떠나지 않는 죄책감에 김 목사의 마음이 무거웠다.

공황장애를 벗어나기까지 5년여의 세월이 필요했다. 지금도 그는 건강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일주일에 4일 정도는 7km 정도를 걷고,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한의사가 ‘산보다는 바다를 보며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는 게 좋다’고 해서 바닷길 걷기를 참 좋아하게 됐다. 그는 “정말 바닷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치유를 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몸이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아프고 나니까 걷기가 좋다는 게 정말 느껴집니다.”

그의 가장 기쁜 일은 선친이 임명한 장로의 아들이 신앙의 대를 이어 만나교회에서 장로로 세움 받았을 때다. 마찬가지로 선친이 주례해서 결혼한 성도의 자제가 김병삼 목사의 주례로 또 결혼할 때다. 그는 이를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부의 세습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김 목사는 아버지에 이어 담임목사가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믿음과 영성을 유산으로 이어받아 목회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4대, 5대가 지속적으로 목회자로 헌신하는 가정이 있다는 건,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중의 하나로 보는 또다른 시각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을 교단에서 법으로 막아 놓는다는 건 사회의 편협성과 폐쇄성이라고 지적했다.

▲ 김병삼 목사(사진 Look&Link 김한수 PD)

“‘우리 목사님’으로 기억하면 된다”

김병삼 목사는 자신을 순종형이었다고 소개한다. 목회자가 되기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신학교에 갔고 목회자가 됐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많은 방황을 했다. 그가 목사 아들, 게다가 유명한 부흥사의 아들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았다.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모범생이었지만 뒤에서는 신나게 놀았다. 신학대생 1학년 때 이미 당구가 300이었다. 내기 당구를 좋아해 ‘노름’에도 빠져 있었다. 신학교 3학년 때까지 그룹 사운드에 소속해 기타치며 노래를 불렀다. 소명이 없었음에도 군목시험을 봐서 만 25살에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군목 2년차가 돼서야 일주일간 기도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비로소 갖게 됐다. 그 이후로는 공부에 전념해 미국 시카고의 Garrett신학교에서 M.Div와 United신학 연구원에서 박사 과정까지 5년만에 마쳤다.

김 목사는 자신이 ‘딴따라’를 했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의 목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 목사는 “‘놀았던 경험’이 없었다면 내 목회는 바리새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열린 마음은 아들(웅기)을 향해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아들이 중 2때였다. 소위 ‘중2병’으로 유명한 시기다. 갑자기 말했다. “아빠, 나 공부하기 싫어!” 서울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아들을 데리고 갔다. 종로 낙원상가쪽에 포장마차가 즐비했다. 그곳을 지나며 “공부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놀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줬다. 이후 상위권을 달리던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김 목사는 염려치 않았다. 담임선생님에게 아들이 불려갔다. 그러나 아들도 당당히 말했다. “우리 아빠가 놀아도 괜찮다고 했어요!” 김 목사는 말한다. “저도 놀다가 사명 받았어요. 아이들이 방황하는 거, 노는 거에 조바심 내지 않아요. 저도 소명 받으면서 뭐든지 해냈는데, 우리 아이들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공부가 인생의 전부도 아니구요.”

그는 어떤 목사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교인들이 나를 ‘우리 목사님’으로 기억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 말은 짧지만 강렬했다. 끝까지, 교인들을 품고 사랑하는 목자,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목자여야 한다는 생각이 진하게 우러나왔다. 김 목사는 자신의 최고의 명예는 ‘만나교회 담임목사’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김 목사는 종종 10년 전에 했던 설교를 들춰본다. 처음 담임목회를 했던 때의 마음과 결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처음 목회자가 됐을 때 품었던 그 마음, 10년이 지나도 20년을 목회해도 동일한 그 마음을 품겠다는 것이다.

▲ 설교하는 김병삼 목사(사진 만나교회 제공)

2005년 만나교회를 담임한 지 1년이 지나던 해 송구영신 예배였다. 김 목사는 성도들에게 가정의 기도제목과 가족 사진을 함께 제출하라고 했다. 교인이 3천명 이상이 되자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 김 목사는 교인들의 가족 사진을 보며 기도하고 싶었다. 당시 “개인사를 공개하기 싫어하는 가정들이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렸다. 그러나 김 목사는 실천에 옮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교인 1천여명이 가족 사진을 제출했다. 다음 해부터 김 목사는 기도제목을 제출한 1천 가정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일일이 자필로 답장을 보냈다. 답장을 보내는 데만 9개월이 걸렸다. 김 목사는 이를 계기로 성도들이 자신을 진정한 목자로 생각하게 된 거 같다고 평가했다.

또 한가지 귀중한 경험도 한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과일 나누기를 시작했다. 교인들이 과일 박스를 갖고 오면 그 과일을 지역 사회의 독거 노인이나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는 행사다. 이것을 하면서 지역 가게들에 과일이 동나는 일도 생겼고 교회 현관앞에 과일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도 있었다. 이게 만나교회의 전통이 되면서 2015년 추수감사절에 모인 과일 박스만 800박스였다. 김 목사는 “교인들이 모두 개인적인 생활에 바쁘다고는 한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동기부여만 제대로 시켜 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성도들에겐 몸으로 실천하는 저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교회의 목적은 ‘크리스천 만들기’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개혁과제를 말하며 급진적인 제안을 한다. 인터뷰를 하며 ‘교단이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까지 했다. 교단의 존재 이유는 선교와 개교회를 돕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은 교단이 개교회를 돕는다기 보다 개교회들이 교단을 돕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교권 싸움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교단이 권력 기구가 되면서 부패가 생겨났다”며 “한국교회에 교단과 교권이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단이 예전엔 힘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교단에 권력과 돈이 생겼다. 돈과 권력이 생기면 타락한다. 그래서 돈과 권력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많이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전통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교단이 하나님은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크리스천을 만드는 것이지 감리교인을 만드는 건 아니다. 교단이 싸우고 서로 비난하고··· 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인가.”

세상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로 가고 있다. 대통령도 권위가 잃은 탈 권위의 시대다. 그런데 교회는 전근대적 권위주의에 빠져 교권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답답하다고 한다. 교단에서 정치싸움하는 사람들 보면 가슴이 터질 듯 아프고, ‘지금 저런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가 ‘개독교’라는 말을 듣기까지 20~3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그기간 동안 끊임없이 한국교회가 사회속에서 가치를 잃어왔다는 것이다. 회복하려면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아들 웅기가 목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펼쳤다. 김 목사는 말했다고 한다. “너 잘 생각해 봐라. 네가 목사돼서 은퇴할 때까지 너는 정말 힘든 시간을 지낼 것이고, 그 시간을 잘 지내면 너의 다음 세대가 혜택을 볼 거다.”

▲ 김병삼 목사와 인터뷰하는 정윤석 대표기자((사진 Look&Link 김한수 PD)

김 목사의 세대는 전 세대의 공로와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으로 혜택을 보는 세대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살아간다.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라는 설명이다. 기독교가 회복하기 위해 많은 헌신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가난했을 때는 영향력이 컸는데, 오히려 많은 것을 가진 뒤에는 영향력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김 목사는 교회의 잘못된 것이 눈에 띌 때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다’는 생각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김 목사가 감리교신학대학을 다니던 시절 읽었던 책이 있다. 이현주 목사의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며 김 목사는 생각했다고 한다. ‘교회는 어머니 같은 존재구나!’ 우리의 삶의 가장 고달픈 곳에서 생각나는, 그래서 결국은 돌아가고 싶은 곳, 아무리 못나고, 누군가 욕해도 나의 어머니라 내가 감싸야 하는 곳. 언제부터인가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 곳이 되어 마음이 아프지만,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곳. 부족함으로 가득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곳···.

문제를 덮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크리스천이라면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고 건전한 비판으로 교회를 다시 회복하고 세워가는 바른 지향점을 잃지 말자는 의견이었다. 안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하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밖에서만큼은 극단적으로 교회 문제를 드러내놓고 폭로하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만나교회

만나교회는?

1981년 10월 4일 김병삼 목사의 선친 김우영 목사가 잠실의 천막건물에서 개척하며 1993년에 경기도 분당으로 이사했다. 1998년 IMF가 터지면서 교회를 짓고 나서 탈진한 김우영 목사를 도와 김병삼 목사가 기획 목사로 부임한다. 이때 김 목사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주로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2002년에 한동대 교수로 가기 위해 교회에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갑자기 부친이 쓰러졌고 2004년에 별세한다. 이후 담임목사직을 승계한 김병삼 목사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라는 주제로 12주씩 설교하며 워크숍을 열고 교회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해 간다.

지금 만나교회 1층 현관 앞에는 흡연실이 있다. 지역 사회에도 열려 있음을, 어떤 신자들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교회라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실제로 이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방송 예배를 드리던 유명 개그맨과 가수도 영성훈련까지 마치게 돼 화제가 됐다. 교회 1층 현관을 들어서면 ‘M. KIDZ’라는 어린이 놀이 공간과 카페 ‘파구스’가 보인다. 모두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요즘 김병삼 목사의 관심은 미디어처치에 꽂혀 있다. 작년 10월 교회 설립 기념일에 미디어처치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미디어팀에만 18명의 풀타임 직원을 배치했다. 사람들은 교회에 상처를 받거나 희망을 갖지 못하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가나안 성도’(교회를 안 나가는 성도를 일컫는 신조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시대다. 김 목사는 이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우선 미디어처치를 만들고 온라인 상에서 교인으로 등록하도록 했다. 이미 온라인으로 설교 방송으로 접속해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숫자가 실제 예배참석 숫자보다 많다고 한다. 한주에 5만명에 이른다고.

작은교회 세우기도 그의 관심 영역의 하나다. MMP(Manna Mission Plan)를 통해 개척교회들을 20교회씩 선발해서 매달 100만원씩을 후원하고 만나교회의 모든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오픈하며 2년씩 돕는다. 물질 후원뿐 아니라 교인들까지 파송해 돕는다. MMP의 후원을 받은 미자립교회들이 2년이 지나면 70~80%는 자립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에겐 아픔, 그리고 간증거리가 하나 있다. 딸 예진이다. 딸은 태어나면서부터 아팠다. 약을 먹고 나서 생긴 부작용으로 지적장애를 얻었다. 김 목사는 딸 때문에 NGO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대표로 있는 월드휴먼브리지는 아프리카 우물파기, 미혼모 돕기 등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3천만원으로 시작했지만 2014년에 이미 50억원의 후원금을 운용할 정도로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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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교회 김병삼 목사

먼저, 목사님은 어떻게 목회의 길을 가기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나 사건이 있으셨으면 소개해주세요.

저희 아버지가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기까지 자의가 아닌 가정적인 분위기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신학교를 가서도 목회를 그만두려고 많이 생각했었고 저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군목 1년 차일 때까지만 해도 많이 방황하면서 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신학교의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다닐 때만 해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열심히 했고 또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당구 치고 밴드 같은 것도 만들어서 노래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군목 2년 차 일 때 군목단을 위한 수련회에 가서 많은 은혜를 받고 목회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몇 년 전에 교회에 흡연실을 만들어 교계에서는 이단, 혹은 획기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셨습니다. 흡연실을 만든 이유와 흡연실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흡연실을 만든 목적에 상응하는 좋은 열매가 있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흡연실도 벌써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가 흡연실을 만든 것 때문에 화제가 된 건 벌써 15년 정도 전의 이야기라 이미 알려진 부분도 많습니다. 저는 선교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흡연실뿐만 아니라 제 목회의 많은 부분은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이해가 될 것입니다. 선교라는 것이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기존 교회들을 보면 교회의 틀을 만들어 놓고 “이 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저는 이것을 교회 중심적인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교적인 사고는 앞서 말했듯이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 교회 교인들 중에 담배를 끊지 못해서 예배에 들어오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들만 교회 앞에 내려주고 예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아버지들을 보면서 ‘그래, 저 사람도 담배를 피우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담배를 권장하는 게 아닙니다. 이는 믿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끊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흡연실만 만든 것이 아니라, 흡연실 안에서 예배가 생중계되고 그걸 보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개그맨이나 가수들이 이렇게 흡연실에서 예배드리다가 본당으로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그 중에는 영성훈련까지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일단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만나교회 흡연실에는 교회가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면서 우리 교회에 흡연실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저희 교인들은 ‘아멘’ 하며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오히려 외부에서 저희의 이야기가 부풀려진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결정하시기가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체질을 기존의 교회 틀을 벗어나 바꿔 나가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 1층에 만들어진 카페 역시 동일합니다. 카페의 출입문이 교회의 출입문과 구별되도록 벽을 뚫어서 따로 문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외부 사람과 교회가 부담스럽지 않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다수의 교회는 교인들만을 위한, 교회 중심적인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목적을 다시금 돌아보니 그런 틀들을 바꿀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토요예배의 시작은 어떻게 결정하셨는지? 지금은 많은 교회가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곳도 있고, 펜데믹으로 토요예배를 적절히 활용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토요예배가 예배자의 수를 늘렸는지요?

이것도 간단한 선교적인 시각입니다. 우리 교회가 토요예배를 처음 시작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회가 다원화가 되고 여러 가지 직종들이 생기면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분당 지역에는 대형병원들이 있다 보니 의사나 간호사들이 꽤 많습니다. 간호사는 3교대를 하는 직종입니다. 또한 교회 주변 아파트에서 경비를 서는 분들은 2교대를 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자신이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안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토요예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교회는 종교 부지에 지어졌기 때문에 살 수 있는 땅이 한 평도 없습니다. 만약 교회를 옮긴다면 다른 곳으로 나가서 또 교회를 지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재정이 너무 천문학적인 숫자여서 교인들에게 선포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이렇다면 이곳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흩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꼭 우리 교회에 모여야만 교회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주변 <용인, 수지, 광주, 성남>에 있는 100여 개 교회 목록을 나눠주고 주일에 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며 섬겼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잘 듣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내 교회인데 어떻게 다른 교회로 갑니까?’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파송 예배를 드리게 된 것 입니다. 주일에 다른 교회로 섬기러 갈 사람들을 모아서 파송 예배드리고, 주일에는 섬김이 필요한 다른 교회로 가서 주일 성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미자립교회 지원 프로그램인 MMP(Manna Mission Plan)가 있습니다. 2년 단위로 심사를 통해 아직은 미자립이지만 자립 의지가 높은 교회들을 선정하여 다양한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두 달에 한 번씩 만나서 강의도 하고 교회 사역을 전수하기도 합니다. 만나교회 교구와 1:1 결연을 맺어서 매주 교인들이 MMP 교회로 갑니다. 그렇게 가서 그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교인들이 토요일에는 만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일에는 다른 교회로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 토요예배는 선교 지향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예배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우리 교인들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또 외부에서 부정적으로 부풀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토요예배는 교인을 늘리기 위한 예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만나교회는 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예배를 조정하였습니다. 교회가 교회 중심적으로 사람을 모으는 데 집중하지 않기 위한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예배를 줄이는 것입니다.

만나교회도 사람을 모으는 교회가 되기보다 이렇게 흩어지는 교회가 되는 것을 지향하자 했습니다. 물론 일부 교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드리던 예배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하기에는 목회자들에게 주어지는 부담이 너무 커서 힘들었기에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과 더불어 만나교회는 12~13년 전부터 모든 예배에 대해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또한 주일에 현장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배가 다가가자는 의도에서 시작됐습니다.

목사님의 목회관과 비전을 말씀해주세요.

앞서 제가 다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건물적인 교회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존재함으로써 존재 이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나교회는 건물 외벽에 표어가 크게 쓰여 있는데, 바로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과 함께 교회가 이 땅의 소망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땅에 소망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자문합니다. 우리 교회의 목회 철학은 이 땅에서 교회가 소망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배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배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일이 아닌 그냥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이 사역이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첫째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예배”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제자가 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섬긴다”는 사명선언문 아래, <예배, 훈련, 섬김>의 세 축으로 이 땅에 소망이 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것이 우리 교회의 핵심 가치입니다.

현재 목사님이 대표로 계신 월드휴먼브리지의 성격과 유산기부 운동에 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13년 전 제가 많이 아팠습니다. 사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많이 힘들 때 ‘하나님이 교회에 뭘 원하시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때 세상을 섬기기 위해, 세상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을 내걸지 않고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을 해보자, “월드휴먼브리지”를 통해 브리지, 즉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월드휴먼브리지는 교회 헌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NGO와 똑같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오면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복지 사업들이 교회를 포함한 민간단체와 정부가 통합하여 이루어졌는데, 정부가 민간단체가 하던 일들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이전과 똑같이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들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복지 사업 영역과 교회의 구제 사업이 이제는 충돌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이 일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문기관에 컨설팅을 의뢰했습니다. 교회가 단순히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보다, 더 상위 차원에서 자선에 대한 교육, 철학, 생각을 만들어내고 교육하는 일들을 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내가 돈을 벌어서 부모보다 더 잘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거의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60대, 70대, 80대는 부를 일구어온 세대입니다. 이 돈을 운용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모으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아놓은 재산을 어떻게 잘 쓸 수 있는가 입니다.

유산기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는 거부감을 느낍니다. 자녀들의 관점에서, 나의 부모가 유산을 기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싫어할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에 ‘브리지 소사이어티(Bridge Society)’라고 이름을 붙여 이제 막 오픈식을 했습니다. 유산기부센터 오픈식을 한 것입니다. 이 일을 같이하시는 분은 김경진 목사님(소망교회), 이규현 목사님(수영로교회), 김동호 목사님(피피엘 이사장), 우창록 변호사님(법무법인 율촌 창립자)입니다. 이분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브리지 소사이어티’는 단순히 유산을 기부하는 게 아니라 기독교적인 생각을 가지고 유산을 통해 어떻게 가족이 화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가족 화합’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모가 단순히 유산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소천하기 전까지 자신이 가진 돈을 통해 가족들과 어떻게 화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적정 금액은 자녀에게 물려주며 기부에 대해 자녀들과 함께 논의하며 가족 간의 화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가치는 ‘뷰티풀 라이프’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돈을 죽어서 남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깨고 아름다운 노년으로 살 수 있도록 자산을 설계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창록 변호사님이 계신 법무법인 율촌에서 업무를 지원하고, 하나은행과 함께 법률 지원, 은행 신탁의 일을 합니다. 그 모든 과정 안에서 월드휴먼브리지는 브리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돈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를 파악하고,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와 CBS 같은 언론 등 여러 가지 기부 통로를 열어놓고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조선일보 인터넷 신문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2/02/09/FDGIHD4OT5HCXPGD6YYG5MYITE/

한국의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이유와 해결책을 조언해주세요.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보면서 이기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교회의 공공성에 있어, 우리 지역에, 우리 사회에 교회가 어떤 유익을 끼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공공성의 측면에서 봅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측면에서 봅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파됐을 때 이 사회에 유익이 없다면 교회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인해서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생각할 때, 이 코로나 팬데믹이 교회를 향한 뼈아픈 시각을 마주하게 한 것입니다.

방역 과정에 있어서 교회가 이기적인 집단처럼 비쳤으니 교회는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교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을 넘어, 교회가 존재하는 한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는 제가 생각하는 ‘교회가 이 땅에 소망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예를 들면, 초창기 기독교는 세상에서 굉장히 핍박받는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상에 유익이 되었습니다. 초기 교회 문서를 보면 기독교를 저버렸던 줄리안 황제가 선지자들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기독교를 본받으라는 글을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줄리안 황제는 기독교를 없애려고 하면서도 기독교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도 친절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것이 로마 제국의 기독교가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380년 이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부터 교회가 핍박 가운데 유익을 주는 존재가 아닌 도리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핍박하는 교회가 됩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급속도로 타락합니다. 이를 볼 때 중요한 것은 결국 교회가 이 나라 안에서 얼마나 유익을 챙기고, 얼마나 보호를 받느냐보다 세상에 공공의 유익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PO 74때 엄청난 부흥의 역사는 당시 우리나라 시대정신과 잘 맞물려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와서 ‘우리가 잘 살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번영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흥미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에게는 복음이 그렇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이 세상 속에 어떻게 전해져야 하는가에 대한 공공성을 생각할 필요가 있고, 복음을 전하는 전략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부가 잘하고 있는 사회복지의 영역보다 기후와 환경에 대한 문제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던 세상을 교회가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나교회 또한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을 시작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환경을 살리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의 영역입니다.

목사님께서 좋아하시는 성경 구절과 재미교포 크리스천들에게 신앙의 격려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이 질문을 받고 제가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어떤 성경 구절을 제일 좋아하나 고민했더니, 제가 교인들에게 많이 이야기하는 구절이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을 때, 정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니 지금 이 팬데믹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도 하나님이 분명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통해서 선을 이루실까 고민하고 깨달으며 선을 이루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크리스천들 굉장히 힘듭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믿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하고, 그 하나님을 믿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기도와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한 시간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만나교회 웹사이트 https://www.manna.or.kr

대담 및 편집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김재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부회장, 명활대표이사)·정리 이주은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간사, 칼빈대학교 신학과)

키워드에 대한 정보 김병삼 목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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