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삼 목사 학력 | 유명 목사님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낸 방법ㅣ만나교회 김병삼 목사ㅣ잘잘법 Ep.89 169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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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거죠
내가 원하는 자리에
내가 없었기 때문에
내 인생이
늘 실패한 거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만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굉장히
중요한 태도 가운데 하나는
내가 원했던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보다는
내가 원하지 않던 일들을
내 삶에서 어떻게 해석해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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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1964) – 나무위키:대문

분류 ; 김병삼 목사님 ; 성명. 김병삼(金炳三) ; 출생. 1964년 3월 8일(58세) ; 출생 · 서울특별시 중구 ; 학력. 성동고등학교 (졸업)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과 / 학사) 감리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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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0/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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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담임목사 |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에게 학력은 중요한 요건도, 자랑거리도 아닙니다. 그의 사무실에는 그 흔한 졸업장도 없고, 강단에서 박사가운도 입지 않지만, 그는 감리교신학대학 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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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nna.or.kr

Date Published: 9/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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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목사님 프로필 – 네이버 블로그

2014 ~ 국민문화재단 이사 · 2011 ~ 미국 개릿신학대학원 이사 · 2010 ~ 미국 유나이티드신학대학원 이사 · 2009 ~ 사단법인 월드휴먼브리지 대표 · 2008 C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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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7/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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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의 편견 깨고 모두의 교회 만들다 – 미래한국 Weekly

2004년 만나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할 당시 김병삼 목사의 각오다. 그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교인들과 비신앙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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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futurekorea.co.kr

Date Published: 6/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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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고의 명예, ‘만나교회 담임목사’” – 기독교포털뉴스

김병삼 목사(53, 만나교회)는 천상 목회자다. 이름은 불꽃 병(炳)에 석 삼(三)자를 쓴다. 김병삼 목사의 ‘삼자’에는 차남이 평생 목회자로서 삼위일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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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portalnews.co.kr

Date Published: 9/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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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목사, ‘사례비’와 ‘건물’에 대한 견해 피력 : 한인교회

김병삼 목사(분당만나교회)가 ‘사례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SNS를 통해 전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올해부터 교회에서 사례비 외에 어떤 ‘목회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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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r.christianitydaily.com

Date Published: 10/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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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김병삼 목사 학력

  • Author: 잘잘법 :잘 믿고 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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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최초 공개: 2021. 10. 2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SxRvQHcSefU

김병삼 담임목사

인사말

21세기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중 하나는 바로 인터넷 선교입니다.

새롭게 단장한 홈페이지는 그러한 목회 패러다임의 실현인 것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는 선교적 사명은 이제 눈에 보이는 공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 공간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소망을 전하는 만나교회는 인터넷 세상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소망을 전하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새롭게 거듭난 홈페이지를 통해 이 땅의 많은 사람이 위로와 평안, 진정한 복음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목회철학

‘탁월한 예배 지도자, 흡입력 있는 설교가,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리더’

김병삼 목사를 평가하는 많은 표현들이 있지만, PASTOR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소개하겠습니다.

PASSION

하나님에 대한 열정, 하나님 마음에 드는 교회를 만들고 성도를 건강하게 양육하려는 열정이 김병삼 목사를 목회의 길로 인도했고, 지금도 그의 가장 중요한 덕목 입니다

ACADEMIC

김병삼 목사에게 학력은 중요한 요건도, 자랑거리도 아닙니다. 그의 사무실에는 그 흔한 졸업장도 없고,

강단에서 박사가운도 입지 않지만, 그는 감리교신학대학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게렛신학교 (Garr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 Unit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다양한 학문과 경험을 바탕으로 교인들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SPEECH

만나교회 새신자들이 교회등록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김병삼 목사의 설교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성과 감성이 적절히 결합된 그의 설교는 삶을 변화 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예리한 신학적 견해를 탁월한 언변으로 풀어가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명설교가입니다.

TEAR

김병삼 목사는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눈물 이 고인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눈물이 마를 때 목회할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병삼 목사는 지금도 성도들의 아픔,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며 눈물을 닦는 목사입니다.

OBEDIENCE

조건과 타협하지 않는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김병삼 목사는 철저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자신의 비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을 때 바로 포기할 줄 알며,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실 때 과감하게 접는 종입니다.

REALITY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그의 솔직한 설교는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오픈하는 것이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이라는 그의 이유있는 솔직함을 알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 교회가 이땅의 소망입니다. ”

저서소개

김병삼목사님 프로필

살아내는 약속

잃어버린 교회를 찾아서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하나님, 솔직히 돈이 좋아요

기대와 달라도 행복합니다

삶이 변하는 시간 25분

성품, 성도의 품격

하나님, 부자되고 싶어요

명품설교순례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이야기

행복한 여행

내 맘대로 안 되는 내 인생

성공의 7가지 장애

하나님을 눈물나게 하는 이야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성공을 가로막는 일곱가지 장애

하나님을 가슴뛰게 하는 이야기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교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성공 등 39권

목사님 설교 영상(보기)

세습의 편견 깨고 모두의 교회 만들다

[인터뷰]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

‘큰 교회 목사가 아닌 좋은 목사가 되고 싶다. 비신앙인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친숙한 교회를 만들고 싶다.’

2004년 만나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할 당시 김병삼 목사의 각오다. 그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교인들과 비신앙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진리를 벗어나는 것만 아니라면 교인들 마음에 드는 리더가 되고 싶었어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만나교회의 이미지에 대해 물었을 때 그저 분당에 있는 큰 교회, 선한목자상 그림이 있는 교회라는 정도였어요.”

당시 만나교회의 당면 과제는 ‘세습’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를 벗는 것이었다. 아버지 김우영 목사가 2002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사임 의사를 밝히자 2003년 만나교회는 차기 담임목사 선출을 위해 무기명 투표를 2번 실시했다. 투표 결과 김병삼 목사가 만장일치로 2대 담임목사에 선출됐다. 곧바로 세습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시 교인들에게 외부에서 우리 교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아니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교회 이미지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위해 노력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2004년 ‘부정적 혹은 아무런 이미지도 없는 교회’에서 출발한 만나교회의 현재 이미지는 어떻게 변했을까. 올해 초 만나교회는 컨설팅 전문가에게 의뢰해 교회 평가를 실시했다. 이미 결과 분석이 끝나고 ‘M-Vision 면담결과보고서’가 작성된 상태이다. 모든 통계는 내년 초 ‘만나교회 10년 후 비전’을 외부에 공표할 때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면담 결과 보고서에서 ‘10년간 만나교회의 변화’에 대한 항목을 살펴봤을 때 긍정적 92%, 부정적 5%, 기타 의견 3%를 차지했다. ‘리모델링과 같은 물리적 변화, 프로그램과 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 말씀과 영적인 부분’에서 높은 점수가 나왔다. ‘담임목사의 리더십’에 관한 질문에 긍정적 평가 76%, 대체로 긍정적 14%, 유보적 10%라는 결과가 나왔다. ‘리더십이 탁월하고 추진력이 강하다, 설교가 좋다, 디테일이 살아 있다, 솔직하고 용기 있다’는 것이 긍정적 평가의 이유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우리 교인들의 평가와 외부 평가가 다 좋아졌어요. 부임할 때 좋은 목사가 되고 싶었는데 결과가 좋아서 기쁩니다. 10년간 도덕성을 갖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만나교회 담임으로 있는 동안 돈 모으지 않고 집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외부 집회 사례비와 주례 사례비를 전부 헌금했어요. 그렇다고 청빈하게만 산다는 건 아니에요. 분당에 살고 있는 제 나이 또래의 중산층 수준 정도로 살고 있죠.”

스트레스로 공황장애 앓기도

김병삼 목사는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다가 2007년 공황장애를 앓기도 했다. 3개월간 설교를 못했고 그후로도 2년6개월 동안 설교를 하고 나면 앓아누워야 했다. 2012년까지 5년이 지나서야 서서히 치료가 됐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정신적인 부분보다 육체적인 부분이 더 커요.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오는 병입니다. 외부에서 ‘세습한 교회’로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잘해야겠다는 압박이 컸어요. 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긴장해서 너무 열심히 뛰다보니 병이 난 거죠. 교회가 정말정말 잘 될 때 아팠어요. 제 체력이 다 한 거죠. 옆에서 컨트롤해 주는 사람이 필요해 1년 동안 정신과 의사와 정기적으로 만났어요. 의사가 스케줄까지 검토해서 조절해줬어요. 지금은 제가 알아서 쉬지만요. 어느 정도 무리하면 공황장애가 온다는 걸 알아채죠.”

김병삼 목사의 아버지 김우영 목사는 2002년 감리교 감독회장 선출 직전에 쓰러져 2006년에 소천했다. 당시 만나교회의 출석교인은 3000여명 규모였다. 김우영 목사는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1981년 잠실 천막교회에서 개척을 시작한 녹록지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송파성전을 거쳐 1993년에 분당으로 이전했다.

김병삼 목사는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신학교에 진학해 갈등을 많이 느꼈다. 그러던 중 군목 시절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빨리 목회하고 싶어 4년반 만에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1998년 IMF 사태 때였어요. 교회를 짓고 나서 탈진하신 아버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세습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울 때라 파트타임 목사로 일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했죠. 절대 만나교회에 있을 생각이 없었어요. 2002년에 한동대 교수로 가기 위해 교회에 사임 의사를 밝혔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신 겁니다.”

40세에 담임목사가 됐을 때 48명의 장로들이 모두 연장자였다. 부임하자마자 강단을 바꾸고 수요 저녁예배 대신 수요 낮예배를 신설했다. 교회 내에서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교육과 설득으로 이겨나갔다.

“개척교회를 하기 위해 ‘우리가 꿈꾸는 교회’라는 책을 냈었어요. 부임하자마자 ‘우리가 꿈꾸는 교회’ ‘우리가 꿈꾸는 사역’이라는 주제로 12주씩 설교를 했고요. 워크숍도 열면서 계속적으로 설득해나갔죠. 남을 설득하려면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합니다. 목사가 바로 서면 반대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어요.

신학적으로, 교회 미래를 위해 왜 변화가 필요한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바뀌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일을 못하면 발전이 없겠죠. 비전 작업도 하고 리서치도 해가며 객관적인 증거를 마련하면 설득이 쉽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의견을 만들어 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민중을 따라가는 게 반드시 옳은 건 아닙니다. 대다수의 의견이 옳은 쪽으로 가도록 이끄는 게 중요합니다.”

김병삼 목사는 리더십 훈련의 필요성에 대해 피력했다.

“설교를 잘하는 것과 리더십이 있는 건 다릅니다. 담임목사는 선한 영향력을 갖고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리더십은 타고 나는 부분이 있지만 노력도 해야 합니다. 저는 리더십에 관심이 많아 경영, 마케팅, 리더십 관련 책을 많이 봤어요.”

김병삼 목사가 꿈꾼 목회는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교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교회’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 모든 공간을 아이들 중심으로 꾸몄다. 만나교회 카페 ‘파구스’는 교회 로비를 통하지 않고 들어와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따로 문을 만들었다. 카페에서 찬송가를 틀지 않고 십자가도 걸지 않았다. 그런 노력으로 일반인들이 더 많이 드나들고 있다. 교회를 리모델링한 후 성남시에 교회를 ‘사랑방 1호’로 등록했다. 동호인들에게 교회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실내체육관을 비롯한 교회 내 여러 공간을 시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카페를 외부에 계속 개설해나가고 있으며 수익금은 모두 공익을 위해 사용한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좋은 교회들을 다녀봤는데 대부분 커뮤니티 처치(community church)였어요. ‘교회가 세상 안에서 어떻게 설 수 있나’를 늘 생각했고, 10년이 지난 지금 지역민들에게 친숙한 교회가 됐습니다.”

NGO 활동과 미자립교회 돕기에 열심

교회는 초기부터 안정이 됐다. 하지만 외부에서 계속 “그 교회 어렵다더라, 시끄럽다더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척을 꼭 하고 싶었어요. 개척을 하고 나서 나중에 ‘한국 사회가 세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저는 아버님에 이어 담임이 된 걸 감사한다. 전통적인 목회를 하셨던 아버님과 다른 목회를 하지만 믿음의 유산을 받은 게 큰 축복이다. 큰 교회를 부의 세습으로 보면 부정적이지만 믿음의 영성과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아 목회를 한다는 건 훌륭한 일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교단에서 세습을 법으로 막아놓았는데 그거야말로 우리 사회의 편협성과 폐쇄성을 드러내는 일이죠. 자정 능력이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부작용이 있어서 법을 제정했지만 안타까운 일이죠.”

만나교회 장로의 아들이 장로가 됐을 때 무척 기뻤다는 김 목사는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교회 설교 중에 올드 앤 뉴(old & new) 편이 있어요. 아버님이 개척해서 목회하실 때 했던 옛날 설교 10편을 뽑았어요. 아버님이 하신 설교를 요약한 뒤 이제 저의 해석을 추가로 전했을 때 교인들이 아주 좋아했죠.”

만나교회는 10년간 다양한 사역을 해왔다. 앞으로는 이번 리서치 결과에서 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난 2가지 사역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한다. 첫 번째가 5년 전 시작한 NGO 월드휴먼브리지 사역이고 두 번째가 MMP(만나미션플랜) 프로그램이다. 아프리카 우물 파기, 미혼모 돕기 등 국내외에서 구호사업을 하는 월드휴먼브리지는 사단법인으로 출발했다.

작은 교회 돕기에도 앞장 서

“그동안 교회들이 NGO를 후원하는 것에 그쳤는데 월드휴먼브리지는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NGO의 이름으로 일을 하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NGO를 설립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 협조가 잘 되고 기업 후원도 받기가 쉽습니다. 교회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시작했고 10여개의 지부가 생겼습니다. 참여하는 교회들도 월드휴먼브리지 이름을 사용하여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다들 안 된다고 말렸지만 여러 교회가 연합해서 잘 하고 있습니다. 재단을 만들 때 교회에서 자금을 많이 출연하면 교인들이 소유권을 주장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3000만원으로 시작했고 올해 50억 원의 후원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MMP는 미자립교회 돕기 활동이다. 교인이 10~50명 정도인 작은 교회 20곳을 선정해 각각의 교회에 매달 100만원씩 2년간 돕는다. 현재 2기가 진행 중이다.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작은 교회들에 만나교회 프로그램 20여개를 이식했고 지난 10년 간 설교한 내용을 다 오픈했다. 김병삼 목사가 두 달에 한 번씩 작은 교회 담임목사를 만나 코칭을 하고, 교인들이 정기적으로 작은 교회를 방문해 제자훈련, 성가대, 여름성경학교 등의 사역을 돕는다. 김 목사는 앞으로 작은 교회를 돌며 일일부흥회를 할 예정이다.

“모집할 때마다 150개 교회가 신청을 했는데 20개씩만 뽑은 건 우리 교회가 실제로 가서 도울 수 있는 여력이 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들이 원서를 제출하면 평신도들이 교회 실사를 하고 프레젠테이션까지 다 한 다음 뽑습니다. 우리의 꿈은 MMP로 성장한 교회들이 다른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주일에 우리 교인들이 작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그쪽에서 우리 교회로 오기도 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에게 우리 교인들이 가면 잘 설득해서 그쪽 교인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1기에 후원받은 교회 가운데 70%가 자립을 했다. 성남, 수지 같이 가까운 곳을 비롯해 안동, 태백, 여수 등 전국적으로 연결돼 있다.

올해 만 50세인 김병삼 목사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 2만여 명과 소통하고 있다. 만나교회는 미디어 관련 풀타임 직원이 13명이 이를 정도로 미디어 선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인력이 최상의 예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매주 1만여 명이 출석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예배드리는 사람이 평균 2만여 명에 이른다. 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스마트폰 서비스를 시작한 만나교회는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통한 선교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병삼 목사는 올 연말 마지막 주일에 10년 비전 발표회를 한 뒤 교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월드휴먼브리지와 MMP 활동을 더 열심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 이근미 선임기자 www.rootlee.com

사진/정연호 객원기자 [email protected]

“내 최고의 명예, ‘만나교회 담임목사’”

[신년 인터뷰] 김병삼 목사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

▲ 최고의 명예는 ‘만나교회 담임목사’라고 강조하는 김병삼 목사(사진 Look&Link 김한수 PD)

김병삼 목사(53, 만나교회)는 천상 목회자다. 이름은 불꽃 병(炳)에 석 삼(三)자를 쓴다. 김병삼 목사의 ‘삼자’에는 차남이 평생 목회자로서 삼위일체되신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갈망했던 아버지 김우영 목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부친의 염원대로 김 목사는 경기도 분당에서 불꽃처럼 자신을 사르며 목회하고 있었다. 기자(기독교포털뉴스)는 2016년 1월 22일(금) 만나교회 7층 목양실에서 김 목사를 만났다. 그는 진회색 콤비와 체크 무늬 셔츠를 입고 기자를 맞았다. 김 목사와의 대화는 한편의 감동적인 강연을 듣는 거 같았다. 때론 웃었고, 때론 울었다. 아직 소장파에 속하는 목회자이지만, 소위 ‘목회 세습’을 했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그였지만 12년째 만나교회를 담임하며 쌓은 목회의 내공은 만만찮아 보였다.

‘세습목회’라는 꼬리표와 공황 장애

김병삼 목사의 선친, 김우영 목사도 천상 목회자였다. 김우영 목사는 2002년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다가 2004년 별세했다. 당시 3천여명이 출석하는 교회였지만 선친은 이렇다 할 재산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교회의 빚만 100억원을 상회했다. 아버지의 통장에는 잔액 2만 4천원 밖에 없었다.

▲ 만나교회 교인들에게 선물하는 나무 십자가(사진 Look&Link 김한수 PD)

김병삼 목사는 선친의 장례식 조의금으로 들어온 1억원을 교회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강원도 원주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놓은 토지가 하나 있었다. 그것을 팔자 2억 5천만원이 됐다. 그 돈은 전교인들 가정에 달아 놓을 십자가를 제작해 선물했다. 십자가는 검은색 나무로 정갈하게 만들었다. 만나교회 성도들 집에 가면 이 십자가가 달려 있다. 김 목사의 사택은 만나교회내에 있다. 교인 1만여명에 육박하는 대형교회지만 김 목사는 사택을 교회 안에 뒀다. 그는 아버지처럼 살려고 노력한다.

김 목사가 어떤 철학을 갖고 목회를 하든, 사람들은 그에게 ‘꼬리표’ 하나를 붙여 준다. ‘교회 세습’이다. 그러나 만나교회 성도들의 생각은 다르다. 만나교회에서 인사구역위원회(감리사가 와서 사회를 진행하는 가운데 개교회 목회자의 이·취임을 진행하는 위원회)가 있었다. 감리사가 ‘세습목회’라는 말을 꺼내자 장로 한명이 발언했다. “감리사님, 우리가 세습목회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취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습이 아니라 교인들이 무기명으로 투표를 해서 현 담임목사님을 세운 겁니다!”

만나교회 내부적으로 김병삼 목사의 담임 승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외부에서의 지적과 시선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김 목사의 부친이 갑작스레 쓰러졌을 당시 김병삼 목사는 만나교회에서 기획목사로 사역했다. 이때부터 1년간 김 목사는 설교를 담당했고 2004년, 부친이 별세한 후 담임목사가 된다. 그후로 김 목사의 마음에는 늘 개척해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세습’이란 딱지를 김 목사 스스로 떼어내고 싶었다. 2004년, 3천명이던 교인들은 1년마다 1천명씩 늘었다. 3년이 지나자 3천명이 더 증가하며 급성장을 했다. 그 때 김 목사의 마음엔 ‘이제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007년, 덜컥 공황장애가 왔다. 힘들고 아팠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휴가 한번 가지 못하고 하얗게 태우듯 모든 걸 걸고 목회를 해왔다. 교회 개척이 눈 앞에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나 아프면서 모든 걸 접게 됐다. 그때 비로소 김 목사는 마음으로 깊게 자문했다. ‘너는 왜 개척을 하려는가?’ ‘나는 아버지가 아니어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교회 개척을 계획하면서도 참된 목자로서 주님의 양들을 목양하겠다는 생각이 먼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아니어도 잘할 수 있다는 자만심,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내가 목자인데, 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교회를 개척하려 했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때 정말 많이 회개했습니다.”

공황 장애가 오기전까지 그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부담이 있었다. ‘목회를 잘 해야 한다’, ‘내분이 없어야 한다’, ‘잡음없이 부흥시켜야 한다’는 갖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 한가지는 죄책감이었다. 선친도 김 목사도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부친과 김 목사간에는 목회적 갈등이 있었다. 예를 들면 고전적인 형태의 강단을 현대적으로 다 뜯어 고치는 등의 행동이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그 때 김병삼 목사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라는 책을 냈다. 출판사에서 “담임목사면 모르겠는데 부목사가 이런 책을 내면 교회에서 짤린다”고 염려했다. 김 목사는 교회를 나갈 생각으로 책 출판을 강행했다. 그러는 과정에 김우영 목사가 소천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너무 소신껏 밀어붙이기만 했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떠나지 않는 죄책감에 김 목사의 마음이 무거웠다.

공황장애를 벗어나기까지 5년여의 세월이 필요했다. 지금도 그는 건강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일주일에 4일 정도는 7km 정도를 걷고,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한의사가 ‘산보다는 바다를 보며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는 게 좋다’고 해서 바닷길 걷기를 참 좋아하게 됐다. 그는 “정말 바닷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치유를 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몸이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아프고 나니까 걷기가 좋다는 게 정말 느껴집니다.”

그의 가장 기쁜 일은 선친이 임명한 장로의 아들이 신앙의 대를 이어 만나교회에서 장로로 세움 받았을 때다. 마찬가지로 선친이 주례해서 결혼한 성도의 자제가 김병삼 목사의 주례로 또 결혼할 때다. 그는 이를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부의 세습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김 목사는 아버지에 이어 담임목사가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믿음과 영성을 유산으로 이어받아 목회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4대, 5대가 지속적으로 목회자로 헌신하는 가정이 있다는 건,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중의 하나로 보는 또다른 시각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을 교단에서 법으로 막아 놓는다는 건 사회의 편협성과 폐쇄성이라고 지적했다.

▲ 김병삼 목사(사진 Look&Link 김한수 PD)

“‘우리 목사님’으로 기억하면 된다”

김병삼 목사는 자신을 순종형이었다고 소개한다. 목회자가 되기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신학교에 갔고 목회자가 됐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많은 방황을 했다. 그가 목사 아들, 게다가 유명한 부흥사의 아들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았다.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모범생이었지만 뒤에서는 신나게 놀았다. 신학대생 1학년 때 이미 당구가 300이었다. 내기 당구를 좋아해 ‘노름’에도 빠져 있었다. 신학교 3학년 때까지 그룹 사운드에 소속해 기타치며 노래를 불렀다. 소명이 없었음에도 군목시험을 봐서 만 25살에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군목 2년차가 돼서야 일주일간 기도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비로소 갖게 됐다. 그 이후로는 공부에 전념해 미국 시카고의 Garrett신학교에서 M.Div와 United신학 연구원에서 박사 과정까지 5년만에 마쳤다.

김 목사는 자신이 ‘딴따라’를 했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의 목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 목사는 “‘놀았던 경험’이 없었다면 내 목회는 바리새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열린 마음은 아들(웅기)을 향해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아들이 중 2때였다. 소위 ‘중2병’으로 유명한 시기다. 갑자기 말했다. “아빠, 나 공부하기 싫어!” 서울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아들을 데리고 갔다. 종로 낙원상가쪽에 포장마차가 즐비했다. 그곳을 지나며 “공부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놀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줬다. 이후 상위권을 달리던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김 목사는 염려치 않았다. 담임선생님에게 아들이 불려갔다. 그러나 아들도 당당히 말했다. “우리 아빠가 놀아도 괜찮다고 했어요!” 김 목사는 말한다. “저도 놀다가 사명 받았어요. 아이들이 방황하는 거, 노는 거에 조바심 내지 않아요. 저도 소명 받으면서 뭐든지 해냈는데, 우리 아이들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공부가 인생의 전부도 아니구요.”

그는 어떤 목사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교인들이 나를 ‘우리 목사님’으로 기억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 말은 짧지만 강렬했다. 끝까지, 교인들을 품고 사랑하는 목자,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목자여야 한다는 생각이 진하게 우러나왔다. 김 목사는 자신의 최고의 명예는 ‘만나교회 담임목사’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김 목사는 종종 10년 전에 했던 설교를 들춰본다. 처음 담임목회를 했던 때의 마음과 결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처음 목회자가 됐을 때 품었던 그 마음, 10년이 지나도 20년을 목회해도 동일한 그 마음을 품겠다는 것이다.

▲ 설교하는 김병삼 목사(사진 만나교회 제공)

2005년 만나교회를 담임한 지 1년이 지나던 해 송구영신 예배였다. 김 목사는 성도들에게 가정의 기도제목과 가족 사진을 함께 제출하라고 했다. 교인이 3천명 이상이 되자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 김 목사는 교인들의 가족 사진을 보며 기도하고 싶었다. 당시 “개인사를 공개하기 싫어하는 가정들이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렸다. 그러나 김 목사는 실천에 옮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교인 1천여명이 가족 사진을 제출했다. 다음 해부터 김 목사는 기도제목을 제출한 1천 가정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일일이 자필로 답장을 보냈다. 답장을 보내는 데만 9개월이 걸렸다. 김 목사는 이를 계기로 성도들이 자신을 진정한 목자로 생각하게 된 거 같다고 평가했다.

또 한가지 귀중한 경험도 한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과일 나누기를 시작했다. 교인들이 과일 박스를 갖고 오면 그 과일을 지역 사회의 독거 노인이나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는 행사다. 이것을 하면서 지역 가게들에 과일이 동나는 일도 생겼고 교회 현관앞에 과일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도 있었다. 이게 만나교회의 전통이 되면서 2015년 추수감사절에 모인 과일 박스만 800박스였다. 김 목사는 “교인들이 모두 개인적인 생활에 바쁘다고는 한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동기부여만 제대로 시켜 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성도들에겐 몸으로 실천하는 저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교회의 목적은 ‘크리스천 만들기’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개혁과제를 말하며 급진적인 제안을 한다. 인터뷰를 하며 ‘교단이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까지 했다. 교단의 존재 이유는 선교와 개교회를 돕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은 교단이 개교회를 돕는다기 보다 개교회들이 교단을 돕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교권 싸움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교단이 권력 기구가 되면서 부패가 생겨났다”며 “한국교회에 교단과 교권이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단이 예전엔 힘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교단에 권력과 돈이 생겼다. 돈과 권력이 생기면 타락한다. 그래서 돈과 권력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많이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전통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교단이 하나님은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크리스천을 만드는 것이지 감리교인을 만드는 건 아니다. 교단이 싸우고 서로 비난하고··· 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인가.”

세상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로 가고 있다. 대통령도 권위가 잃은 탈 권위의 시대다. 그런데 교회는 전근대적 권위주의에 빠져 교권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답답하다고 한다. 교단에서 정치싸움하는 사람들 보면 가슴이 터질 듯 아프고, ‘지금 저런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가 ‘개독교’라는 말을 듣기까지 20~3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그기간 동안 끊임없이 한국교회가 사회속에서 가치를 잃어왔다는 것이다. 회복하려면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아들 웅기가 목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펼쳤다. 김 목사는 말했다고 한다. “너 잘 생각해 봐라. 네가 목사돼서 은퇴할 때까지 너는 정말 힘든 시간을 지낼 것이고, 그 시간을 잘 지내면 너의 다음 세대가 혜택을 볼 거다.”

▲ 김병삼 목사와 인터뷰하는 정윤석 대표기자((사진 Look&Link 김한수 PD)

김 목사의 세대는 전 세대의 공로와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으로 혜택을 보는 세대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살아간다.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라는 설명이다. 기독교가 회복하기 위해 많은 헌신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가난했을 때는 영향력이 컸는데, 오히려 많은 것을 가진 뒤에는 영향력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김 목사는 교회의 잘못된 것이 눈에 띌 때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다’는 생각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김 목사가 감리교신학대학을 다니던 시절 읽었던 책이 있다. 이현주 목사의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며 김 목사는 생각했다고 한다. ‘교회는 어머니 같은 존재구나!’ 우리의 삶의 가장 고달픈 곳에서 생각나는, 그래서 결국은 돌아가고 싶은 곳, 아무리 못나고, 누군가 욕해도 나의 어머니라 내가 감싸야 하는 곳. 언제부터인가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 곳이 되어 마음이 아프지만,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곳. 부족함으로 가득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곳···.

문제를 덮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크리스천이라면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고 건전한 비판으로 교회를 다시 회복하고 세워가는 바른 지향점을 잃지 말자는 의견이었다. 안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하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밖에서만큼은 극단적으로 교회 문제를 드러내놓고 폭로하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만나교회

만나교회는?

1981년 10월 4일 김병삼 목사의 선친 김우영 목사가 잠실의 천막건물에서 개척하며 1993년에 경기도 분당으로 이사했다. 1998년 IMF가 터지면서 교회를 짓고 나서 탈진한 김우영 목사를 도와 김병삼 목사가 기획 목사로 부임한다. 이때 김 목사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주로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2002년에 한동대 교수로 가기 위해 교회에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갑자기 부친이 쓰러졌고 2004년에 별세한다. 이후 담임목사직을 승계한 김병삼 목사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라는 주제로 12주씩 설교하며 워크숍을 열고 교회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해 간다.

지금 만나교회 1층 현관 앞에는 흡연실이 있다. 지역 사회에도 열려 있음을, 어떤 신자들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교회라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실제로 이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방송 예배를 드리던 유명 개그맨과 가수도 영성훈련까지 마치게 돼 화제가 됐다. 교회 1층 현관을 들어서면 ‘M. KIDZ’라는 어린이 놀이 공간과 카페 ‘파구스’가 보인다. 모두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요즘 김병삼 목사의 관심은 미디어처치에 꽂혀 있다. 작년 10월 교회 설립 기념일에 미디어처치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미디어팀에만 18명의 풀타임 직원을 배치했다. 사람들은 교회에 상처를 받거나 희망을 갖지 못하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가나안 성도’(교회를 안 나가는 성도를 일컫는 신조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시대다. 김 목사는 이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우선 미디어처치를 만들고 온라인 상에서 교인으로 등록하도록 했다. 이미 온라인으로 설교 방송으로 접속해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숫자가 실제 예배참석 숫자보다 많다고 한다. 한주에 5만명에 이른다고.

작은교회 세우기도 그의 관심 영역의 하나다. MMP(Manna Mission Plan)를 통해 개척교회들을 20교회씩 선발해서 매달 100만원씩을 후원하고 만나교회의 모든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오픈하며 2년씩 돕는다. 물질 후원뿐 아니라 교인들까지 파송해 돕는다. MMP의 후원을 받은 미자립교회들이 2년이 지나면 70~80%는 자립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에겐 아픔, 그리고 간증거리가 하나 있다. 딸 예진이다. 딸은 태어나면서부터 아팠다. 약을 먹고 나서 생긴 부작용으로 지적장애를 얻었다. 김 목사는 딸 때문에 NGO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대표로 있는 월드휴먼브리지는 아프리카 우물파기, 미혼모 돕기 등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3천만원으로 시작했지만 2014년에 이미 50억원의 후원금을 운용할 정도로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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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목사, ‘사례비’와 ‘건물’에 대한 견해 피력

김병삼 목사(분당만나교회)가 ‘사례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SNS를 통해 전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올해부터 교회에서 사례비 외에 어떤 ‘목회비’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근 부산 호산나교회 새 담임 최종 후보가 된 유진소 목사(ANC온누리교회)가 미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례비를 공개하면서, 이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나왔었다.

김병삼 목사는 “자랑스럽게 재정을 공개하거나 깨끗함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일견 좋아 보인다. 또한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재정들을 공개하지 못하고 감추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며 “그런데 만일 우리가 주장하는 경건함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일들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독선이고, 우리가 주장하는 경건함이나 깨끗함이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면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독선적이 될 수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선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렇게 비판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역시 의도적으로 위선적이나 독선적이 된 것이 아니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는 “문제가 되는 대형교회 사례비와 어려 가지 목회비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 단선적이고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며 “물론 기본적 합리성과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상황과 형편을 무시하는 자기중심적 생각들도 문제”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예를 들어, 저는 올해부터 교회에서 사례비 외에 어떤 ‘목회비’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공적으로 ‘나는 목회비를 받지 않는 목사’라고 말했다 해도, 이 말은 외적으로 굉장한 선언인 것 같지만 속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요즘 같은 세상에서 목회비·판공비가 자꾸 문제가 되니 그 문제를 없애기 위해, 그리고 모든 돈의 흐름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교회 법인카드’로 사용하고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목회비를 여전히 쓰고 있다”고 했다.

김병삼 목사는 “사실 사례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교회들을 보면서 이런 ‘목회비’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교회는 일정 규모가 되면 목회적 차원에서 베풀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와야 하는 경우들이 참 많고, 상황마다 달라지는 것도 있다. 또 어떤 교회는 예산의 얼마를 ‘구제비’에 쓴다고 내세우기도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커다란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치 죄인인 것처럼 생각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미 한국교회는 ‘성장과 부흥의 시대’를 지나면서 지나치게 많은 건물 중심의 교회가 되어 버렸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건물이 커지면 그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헌금이 사용된다. 교회 헌금을 가지고 이렇게 건물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래서 한때는 저도 건물 없는 교회에서 목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윗세대 분들의 생각과 유산이 또한 건물이라는 것”이라며 “이제 한국교회는 세워진 건물을 잘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 사역이다. 그리고 더 이상 건물 중심의 교회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김병삼 목사는 “몇 년 전 교회를 새롭게 리모델링해 음향과 영상장비를 갖췄는데, 문제는 새로운 기술과 장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영할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예를 들면 저희 교회는 그렇게 큰 교회가 아니지만 목회자와 직원들까지 100명 넘는 사람들에게 급여를 줘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헌금이 그렇게 쓰여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헌금으로 건물이 아닌 구제와 선교로 쓰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100명 넘는 사람과 가족까지 생각하면 참 많은 사람들이 사역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 목사는 “좀… 서로 격려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며 “‘나는 이런 목회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때문에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들이 필요하고, 그 마음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주장도 조금은 사려 깊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요즘 교회에 문제가 되는 일들은 ‘관계’에 대한 것들이다. 교회 내부의 갈등에, 더욱 심각한 것은 부적절한 관계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을 한다.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들이 아닌가 하는 것”이라며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절,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생각,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이성적인 판단들 말이다. 목회자가 지녀야 하는 예절과 매너, 상대방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예의.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김병삼 목사는 “다양한 현장 가운데 참 좋은 일도 좋지 않은 일도 많겠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들이 많아지도록 노력하면 좋겠다”며 “혹 우리의 주장과 경건이, 위선이나 독선이 되지 않도록…” 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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