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의 언약 | [제 1과] 하나님의 언약, 아브라함과 계시록 ㅣ신천지 예수교회 7045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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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신약 장별 계시 증거
✅ 세미나 안내
* 제목 : [제 1과] 하나님의 언약, 아브라함과 계시록
* 본문 : 창 15장(출 12장), 요 19:30, 계 21:6
* 일시 : 2022. 4. 4. (월) AM 10:00 KST(GMT +9) 공개
✅ 세미나 전체 안내
* 세미나명 : ‘구약 신약 장별 계시 증거’
* 기간 : 2022. 3. 31. ~ 6. 27.
* 시간 : 매주 월, 목 / 오전 10시 공개
* 강사 : 이만희 총회장님, 12지파 지교회 담임 강사
* 강의 범위 : 시온기독교선교센터 중등 교육 25강 및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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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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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Shincheonji Church of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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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 新天地耶稣教证据帐幕圣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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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yue) 新天地耶稣教證據帳幕聖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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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新天地イエス教証しの幕屋聖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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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Shincheonji Kirche von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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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 Церковь Иисуса Синчонджи Храм Скинии Свидетельств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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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Shincheonji Église de Jé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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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Shincheonji, Igreja de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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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 Shincheonji – Ang Simbahan ni H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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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Shincheonji, církev Ježíš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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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covenant)은 모든 아브라함의 종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적 언약이다. 언약의 원어는 ‘베리트’인데 ‘바라'(자르다, 끊다, 새기다)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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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0/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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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언약들은 어떤 언약들인가요? – GotQuestions.org

성경은 일곱 개의 각기 다른 언약들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그 중 네 개의 언약은 (아브라함, 블레셋, 모세, 다윗의 언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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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tquestions.org

Date Published: 7/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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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사전/주석 – 두란노닷컴

구약성경에는 세 가지의 언약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양쪽이 동등한 입장에서 맺는 언약(삼상 18:3-4), 유력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맺는 언약(겔 17:13-14), 하나님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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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uranno.com

Date Published: 1/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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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다 – 낮은울타리

언약言約이란, 말로 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일방적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신실信實하고 성실誠實하게 이루어 내십니다. 신실은 말에 열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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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ooltari.com

Date Published: 5/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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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의미와 종류, 특징 – 다음블로그

하나님의 이 약속은 언약 체결의 양식을 통해 주어졌는데, 그것은 곧 희생 제물들의 몸을 둘로 쪼개어 놓고 하나님께서 그 사이를 지나가시는 방식이다(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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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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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의 언약(Covenants in the Bible ) – Pensées

언약은 히브리어로 ‘베리트’이며, 영어로는 covenant로 번역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다. 명령하지 않고 언약을 맺으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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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392766.tistory.com

Date Published: 9/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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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하나님의 언약 – 미문교회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언약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자주 반복하여 확언하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 속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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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eemoon.org

Date Published: 8/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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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원 목사 “하나님의 언약 – 창조언약과 구속언약” > 아멘넷 뉴스

사경회에서는 하나님의 언약 두 가지인 창조언약과 구속언약에 대해 말씀을 전했으며, 목회자 세미나에서는 “성경의 통일성: 하나님의 언약(눅22: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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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usaamen.net

Date Published: 11/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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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이란 무엇인가? < 시가서 < 성경과 오늘 < 기사본문 - 본헤럴드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을 때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십자가를 떠나서는 자신이 죄인인지 조차도 모른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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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nhd.net

Date Published: 11/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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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과] 하나님의 언약, 아브라함과 계시록 ㅣ신천지 예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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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하나님 의 언약

  • Author: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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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실시간 스트리밍 시작일: 2022. 4. 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QQfJph93AH4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covenant)은 모든 아브라함의 종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적 언약이다. 언약의 원어는 ‘베리트’인데 ‘바라'(자르다, 끊다, 새기다)에서 왔다. 주로 모세 오경 또는 율법 이나 모세 오경인 처음 다섯 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및 신명기에서 발견된다. 다른 언약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것에 반하여 노아언약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유일한 언약이다. 예레미아 31:30:33은 새 언약을 약속하는데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집을 세울것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약에서 언약 [ 편집 ]

또한 아브라함과 할례로서 언약을 맺었고(창 17:9-14), 노아와는 무지개로 언약을 맺으셨다(창 9:8-17). 이외에도 성경에는 이삭(창 26:24), 야곱(창 28:13,14)등과 맺은 언약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모두 구속사에 있어서 최고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구속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 하나님께서 노아 개인과 언약을 맺으셨으나 그로 인해 가족과 동물까지도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 원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아담의 타락으로 전인류와 피조계가 함께 저주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창 3:17) 노아의 의로움이 동물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 원리는 그리스도에게서 그 절정을 이루었는 데 곧 그분 한분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가 그 공로를 힘입어 속죄함을 받은 것이다(롬 5:17-19). 구약성경에는 세 가지의 언약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양쪽이 동등한 입장에서 맺는 언약(삼상 18:3-4), 유력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맺는 언약(겔 17:13-14),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 등이다. 이 중하나님과 사람 간에 맺는 언약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피로 맺은 은혜로운 약정이었다. 그 주도권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고 사람은 수혜자가 되는 형태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세우시는 약속이었다. 예레미야가 언급했던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되며(렘 31:33), 하나님의 용서에 기초한 언약이었다(렘 31:32). 신약에서 언약이란 말은 ‘디아데케'(diatheke)로 헬라 세계에서는 ‘의지, 뜻, 서약, 유언’이란 뜻으로 쓰였다.

신약의 새 언약 [ 편집 ]

구약의 베리트는 신약에서 ‘디아데케'(diatheke)로 번역었는데 신약시대에는 ‘의지, 뜻, 서약, 유언’이란 뜻으로 쓰였다. 새 언약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께서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고 하셨다. 새 언약은 예수를 통해 새롭게 시작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이었다. 이제 새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을 받고(행 10:43, 롬 11:27) 죄악이 기억되지 않으며 구원을 받는다(사 43:25, 요 5:24, 요일 1:9).

같이 보기 [ 편집 ]

언약신학

새로운 언약

각주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성경 속 언약들은 어떤 언약들인가요?

질문

성경 속 언약들은 어떤 언약들인가요?

답변

성경은 일곱 개의 각기 다른 언약들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그 중 네 개의 언약은 (아브라함, 블레셋, 모세, 다윗의 언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으로 무조건적인 특성을 가집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든 불순종하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이러한 언약을 변함없이 성취하실 것입니다. 이 중 하나인 모세의 언약은 성격상 조건적인 언약입니다. 즉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 불순종 여부에 따라 축복 아니면 저주가 내려질 것입니다. 나머지 세 개의 언약들 (아브라함, 노아, 새 언약)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아담의 언약은 두 개의 언약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에덴의 언약 (무죄), 그리고 아담의 언약 (은혜) (창세기 3:16-19)입니다. 에덴의 언약은 창세기 1:26-30, 2:16-17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에덴의 언약은 창조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한 하나님의 명령을 나타냅니다. 아담의 언약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에 인류에게 선고된 저주뿐만 아니라 그 죄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대책들을 포함합니다. (창세기 3:15).노아의 언약은 하나님과 노아 (특정적으로), 그리고 인류 (일반적으로) 사이에 맺어진 무조건적인 언약입니다. 대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다시는 홍수로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9장 참조).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다시는 홍수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과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실 수 있고, 또 심판하실 것임을 상기시키는 언약의 표적으로써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2:5).아브라함의 언약 (창세기 12:1-3, 6-7, 13:14-17, 15, 17:1-14, 22:15-18). 이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많은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이고 (창세기 12:2), 아브라함이 많은 육신의 후손들을 가지게 될 것이며 (창세기 13:16), 여러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국가와 관련하여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아브라함 언약의 지리적 경계는 창세기 속 여러 구절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12:7, 13:14-15, 15:18-21). 아브라함 언약에 담긴 또 다른 약속은 세상의 가족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해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3, 22:18). 이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라오시게 될 메시아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다.블레셋 언약 (신명기 30:1-10). 블레셋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에 담겨있는 땅에 대한 관점을 더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의 조항에 따르면, 백성이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전세계에 흩으실 것이지만 (신명기 30:3-4), 결국에는 그 나라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5절). 그 나라가 회복되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순종하면 (8절),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번영하게 하실 것입니다 (9절).모세의 언약 (신명기 11장 외). 모세의 언약은 조건적인 언약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축복이,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저주가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언약은 십계명 (출애굽기 20장)과 약 600개 (대략적으로 300개는 긍정적, 300개는 부정적인 율법) 이상의 명령을 포함한 그 외 율법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역사서들 (여호수아-에스더)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율법 순종에 성공했는지, 또는 어떻게 율법 순종에 비참하게 실패했는지를 자세히 보여줍니다. 신명기 11:25-28은 축복/저주에 대한 주제를 자세히 기술합니다.다윗의 언약 (사무엘하 7:8-16). 다윗의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의 “씨”와 관련한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에서 다윗이 받은 약속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혈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고, 그의 나라가 영원히 보전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16절). 명백하게, 다윗의 왕좌가 항상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윗의 혈통을 따라온 누군가가 다시 그 왕좌에 앉아 왕으로서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장차 오실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32-33).새 언약 (예레미야 31:31-34). 새 언약은 먼저 이스라엘 민족과 세워진 언약이며,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언약입니다. 새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죄 사함을 약속하시며 그로 말미암아 모두가 주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을 충족시키시고 (마태복음 5:17),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이에 새 언약을 세우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 언약 아래 있으며,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율법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구원이라는 거저 받는 선물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8-9).성경적인 언약에 대한 논의 안에 크리스천들이 동의하지 않는 몇 개의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일부 크리스천들은 모든 언약이 근본적으로 조건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약이 조건적인 것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을 성취하는 데 비참하게 실패한 것이 되고 맙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언약이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 여부와 상관없이 언젠가 미래에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언약들과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요? 일부 사람들은 교회가 이 언약들을 성취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두 번 다시 이스라엘을 다루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를 대체신학이라고 하며, 성경적 근거는 거의 없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교회가 먼저, 또는 부분적으로 이러한 언약들을 성취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많은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속한 것들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어떤 식으로든 언약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언약이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또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언약이며, 교회는 이러한 언약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믿습니다.

김광석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본문 및 주제 연구

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의미와 종류, 특징

강성열 호남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Th.D.). 저서로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장가들리라》 등이 있다.

‘언약’(covenant) 또는 ‘계약’은 히브리어(구약)와 헬라어(신약)의 ‘브리트’와 ‘디아테케’를 번역한 것으로, 흔히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서로의 신뢰 관계를 확증하는 차원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약속을 일컫는다. 이러한 의미를 갖는 언약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수평적인 차원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 또는 국가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을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수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과 더불어 맺으시는 언약을 가리킨다. 성경에는 이 두 언약이 다 언급돼 있다. 전자가 쌍방 합의 하에 맺어지는 성격을 갖는다면, 후자는 사람의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맺어지는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수평적인 차원에 속한 언약의 예로는,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과 맺는 언약(창 21:27, 32)이나 라반이 야곱과 맺는 언약(창 31:44), 이스라엘 자손과 기브온 주민 사이에 맺어진 조약(수 9:6, 7, 11, 15, 16; 개역 개정판은 ‘브리트’를 “조약”으로 번역함),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사람들과 맺고자 했던 언약(삼상 11:1),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맺어진 언약(삼상 18:3; 20:16; 23:18), 다윗과 아브넬의 언약(삼하 3:12-13, 21), 다윗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 사이에 맺어진 언약(삼하 5:3; 대상 11:3), 솔로몬과 두로 왕 히람 사이에 맺어진 언약(왕상 5:26; 개역 개정판은 ‘브리트’를 “약조”로 번역함), 제사장 여호야다와 백부장들 및 온 회중 사이에 맺어진 언약(왕하 11:4; 대하 23:1, 3, 16), 요시야 왕과 유다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왕하 23:3), 예수를 팔기 위해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이 가룟 유다와 맺은 언약(눅 22:3-4), 그리고 한 번 정한 후에는 누구도 폐하거나 더하지 못하는 사람의 언약(갈 3:15)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수직적인 차원의 언약에는 하나님이 맨 처음 인간과 맺으신 언약(창 1:26-29; 2:15-17), 범죄한 인간과 맺으신 언약(창 3:15), 홍수의 주인공인 노아와 맺으신 언약(창 6:18-21; 9:1-17),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과 맺으신 횃불 언약(창 15장)과 할례 언약(창 17:1-14; 행 7:8), 출애굽 공동체인 이스라엘 자손과 맺으신 이른바 시내 산 언약(출 19-24장),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다윗과 맺으신 언약(삼하 7:5-16), 예레미야 31:31-34에 기초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새 언약(눅 22:20; 고전 11:25; 고후 3:6; 히 8:8, 13; 9:15; 12:24) 등이 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수평적인 차원의 언약이 아니라 수직적인 차원의 언약이기에, 이 글에서는 후자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맨 처음 인간: 하나님의 형상과 선악과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인간 창조에 대해 가장 많은 설명을 곁들인다. 이는 인간 창조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간 창조가 창조의 절정에 속한다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는 구별되는 복을 받았다는 사실에 의해 확인된다(1:26-28). 또한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 자신의 직접적인 공작(工作)에 의해 창조됐다(2:7, 22)는 점에서 창조의 정점에 속하는 존재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언약의 증거로 그에게 약속과 복을 주신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형상에 관해서 언급하는 창세기 1:26-28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26절과 28절의 반복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하나님의 형상이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인간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참조. 시 8:5-8).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해서 무제한의 지배권을 가지고 자연 세계를 마음껏 파괴하고 착취해도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소유물을 잘 관리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사람에게 식물로 주신다(29절).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단순히 사람을 비롯한 온갖 생명체를 만든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그들에게 식물을 마련해 주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생명을 계속 지탱해갈 수 있게 해 주셨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제약이 따른다. 이른바 선악과 언약이 그렇다. 피조 세계 다스림의 복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형상 언약은 온갖 식물을 인간에게 식량으로 허락했지만, 그들이 경작하며 지켜야 할 에덴 동산 중앙의 선악과 열매만큼은 예외로 삼았던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언약의 조건(2:16-17)이 그렇다.

이러한 선악과 금지의 조건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에게 무제한의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요,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이 넘어가서는 안 될 한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피조물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안 된다고 명령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 즉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 이것이야말로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바람직한 관계라는 말이다. 이것은 결국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명령하는 분이시요, 피조물인 사람은 그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임을 뜻한다.

이 점에서 본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결코 사람의 자유를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질서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피조물인 사람이 지켜야 할 삶의 질서인 동시에 참된 행복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리는 표지판과도 같다. 따라서 만일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잘 지킨다면,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자유를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할 경우에는 정반대의 결과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은 결국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맞서는 것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피조물이기를 중단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뱀의 유혹(3:4-5)이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범죄한 인간: 이른바 “원시 복음”

창세기 3장은 악의 시작과 인간의 범죄 및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심판 후에 있을 새로운 구원 은총 등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창세기 3장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어떻게 해서 훼손됐는가, 죄의 본질은 무엇인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불평등의 관계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인간 세상에 왜 고통과 수고가 계속되는가,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왜 생겨난 것인가 등등의 문제에 해답을 주고 있는 단락이기도 하다.

창세기 3장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의도를 염두에 두면서 이 단락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맨 먼저 간교한 뱀이 여자에게 나타나 여자를 유혹한다. 마침내 뱀의 유혹에 넘어간 여자는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을 자기 남편에게도 준다. 선악과를 따먹은 직후에 그들은 자기들의 벌거벗음을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기들의 벗은 몸을 가린다(6-7절). 이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사실을 아신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차례대로 심문하신 후에 뱀, 남자, 여자의 순서로 벌을 내리신다(8-19절). 여자의 이름이 남자에 의해 “하와”로 칭해진 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보시고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신다(20절). 아울러 하나님은 죽음의 벌을 받게 된 그들이 생명나무를 먹을 수 없게끔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신다(22-24절).

범죄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그가 뱀에게 벌을 내리시는 맥락에서 언급된다. 뱀을 향한 하나님의 형벌(14-15절)은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하나는 뱀이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저주를 받아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배로 다녀야 할 뿐만 아니라 또 평생토록 흙을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흙을 먹는다는 것은 벌을 받아 가장 비천한 자리에까지 낮아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시 72:9; 사 49:23; 65:25; 애 3:29; 미 7:17 등을 참조). 뱀에게 내린 이러한 저주의 말씀은 뱀을 신적인 존재로 떠받드는 뱀 숭배사상을 철저하게 배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뱀에게 내린 두 번째의 심판은 뱀이 여자와 원수가 되고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될 것인 바,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볼 때 인간과 뱀 사이의 관계, 즉 뱀을 혐오하는 인간 측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사 11:8 참조). 여기서 말하는 “후손”은 히브리어로 ‘제라’라는 낱말로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자손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의 보다 깊은 의미는 악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 영적인 싸움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영적인 싸움은 사탄에 대해 승리를 거두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개신교는, 이 심판의 말씀이 그리스도가 사탄에 대하여 거둘 승리를 가리킨다고 이해한 초대 교회의 이레네우스(Irenaeus) 이래로 이 말씀을 이른바 “원시 복음”(proto- evangelium)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이 말씀이 애초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있을 투쟁 관계만을 의도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과 악 사이의 오랜 싸움의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결말 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에 대해 거두시는 승리는 이 말씀이 함축하고 있는 오랜 싸움의 역사에 포함되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이 말씀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의미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 점에 비추어볼 때, 뱀에게 내린 이러한 저주의 말씀은 범죄한 인간을 향한 언약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수의 주인공 노아: 무지개 언약

창세기 4:16-24에 있는 가인의 족보는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셋에게로 이어지는 아담과 하와의 족보(5장)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기본 성격은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이들의 족보는 인간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코 인간의 선함과 신실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아담과 하와의 족보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죄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노아 시대 사람들의 부패하고 타락한 생활상이다(6:5, 11-12).

인간 세상의 이러한 극심한 죄악상을 보다 못한 하나님은 마침내 땅 위에 사는 모든 인간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신다. 이를 위해 그는 지상 세계에 큰 홍수가 나게 하시고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과 짐승들을 물로써 멸하신다. 그러나 의롭고 경건한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큼은 홍수 심판의 와중에서 방주를 통해 구원해 주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창세기 6장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구원을 언약의 맥락에서 언급한다. 18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노아와 함께 맺으신 언약을 “내 언약”이라고 칭하시면서, 그의 여덟 식구들과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방주로 들어가게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심판으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끝장 내지 않으시고 인류 역사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은 죄를 범한 인간을 벌하시지만 결코 인간 역사가 중단되게 하지는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부터 끊임없이 계속된 것으로써 자기가 만든 피조물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오래 참으심, 그리고 그의 자유로운 구원 은총에 속한 것이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노아 사이에 맺어진 언약에 근거한 것이다(18절).

홍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9장은 하나님의 이러한 언약 은총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 준다. 홍수가 끝난 후에 하나님은 다시는 인간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시면서, 노아의 모든 식구들과 그의 후손들 및 모든 생물들과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우주적인 언약(cosmic covenant)을 맺으신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죄→심판(홍수)’의 원리에서 인간에 대하여 무한한 인내심을 베푸시는 ‘심판→은혜’의 원리로 전환하셨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무지개”(rainbow)라는 히브리어 낱말(‘케쉐트’)이 갖는 본래적이고 일반적인 의미가 전쟁 무기로서의 활(bow)을 의미하며,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기 사용을 포기하셨음을 상징하는 표징이라고 볼 때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9:1-17의 노아 언약에 따르면, 하나님은 맨 먼저 창세기 1:28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갱신하심으로써, 홍수 심판 후 피조물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에 의해서 생육, 번성하는 것임을 선언하셨다. 둘째로 하나님은 사람과 동물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규정하시면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을 갱신함과 동시에 피를 제외한 육식을 허용하셨다. 그리고 셋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됐음을 재확인하심으로써, 인간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거듭 천명하셨다.

이상의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 언약 속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안전하고 확실한 인격적 관계가 함축돼 있는 바, 이는 신들과 인간 사이의 임의적이고 비인격적인 관계를 반영하는 고대 근동 지역의 홍수 설화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 횃불 언약과 할례 언약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에서 바벨론 사람이었던 아브라함을 하란 땅에서 부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게 하셨다. 그러고서는 그에게 두 가지 약속, 곧 자손의 약속과 땅의 약속을 주심으로써 그를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되게 하셨다(창 12:1-3). 그러나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오래도록 자식이 없는 비참한 현실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 있는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정해 놓고 있었다(15:2-3). 이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몸에서 날 아들이 상속자가 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아울러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며,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5:1, 4-21).

하나님의 이 약속은 언약 체결의 양식을 통해 주어졌는데, 그것은 곧 희생 제물들의 몸을 둘로 쪼개어 놓고 하나님께서 그 사이를 지나가시는 방식이다(9-17절). 이러한 언약 세움의 절차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언약”을 뜻하는 히브리어 ‘브리트’는 본래 “… 사이”(between)를 뜻하며, “자르다, 베다”(cut)를 뜻하는 ‘카라트’라는 동사와 결합하여 “언약을 맺다”는 뜻의 숙어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하여 “… 사이에(를) 베다”는 뜻이 “언약을 맺다”는 뜻으로 바뀐 것일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언약을 맺을 때 소나 양 또는 당나귀 등의 몸을 둘로 쪼개어 서로 마주보게 한 다음에, 언약 당사자들이 그 쪼갠 사이를 지나가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곧 언약 위반자가 언약 체결의 증인으로 나오는 신(神)에 의해 그 쪼개진 짐승의 몸처럼 쪼개어질 것이라는 저주 의식을 뜻했다.

하나님은 그러한 언약 체결 양식을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그것을 적용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암송아지와 암염소 및 숫양 등의 몸을 둘로 쪼개라고 명하신 것이다. 그러고서는 하나님이 친히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의 형상으로 그 쪼갠 사이를 지나가셨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그 언약을 성취하지 못할 경우에는 하나님 자신이 그처럼 두 쪽이 나도 좋다는, 하나님 자신의 굳은 약속이었던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 쪼갠 사이를 지나가지 않았다. 그는 그저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홀로 그 쪼갠 사이를 지나가시는 모습을 본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아무런 조건도 가지고 있지 않은 무조건적인 언약(unconditional covenant)이요, 하나님 한 편만이 의무를 지고 있는 편무적(片務的; unilateral)인 언약이었던 것이다.

이 언약을 보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때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다시금 그와 언약(“내 언약”; 17:2, 4, 7, 9, 10, 13, 14, 19, 21)을 맺으시면서, 그에게 언약에 순종하는 완전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셨다(창 17:1-2, 9). 이 언약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맨 먼저 이 언약은 아브라함이 크게 번성하여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요, 그에게서 나라들과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17:4-6). 아브람이라는 이름이 아브라함(“많은 무리의 아버지”)으로 바뀌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두 번째로 이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들과도 맺으시는 것으로 이해됐다. 따라서 이 언약은 “영원한 언약”(브리트 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그의 자손의 하나님도 되실 것이다(17:7-8).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언약은 태어난 지 8일 되는 모든 남자들의 포피를 베는 이른바 할례 의식을 통해 확실하게 보증되는 것이었다(17:10-14). 할례는 언약의 표징이면서 동시에 할례 받은 자를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인정하는 중요한 표시였던 것이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 시내 산 언약

출애굽 해방의 은총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 홍해에서 구원을 얻은 후, 하나님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경험하고(출 16장) 므리바에서 갈증을 해결한다(17:1-6).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워 승리를 거둔 다음(17:8-16), 출애굽한 지 3개월째 되던 때에 시내 산에 도착한다(19:1). 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중재자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 이후로 지속돼 온 하나님과의 관계를 공인하는 성격을 가진다. 즉 이스라엘이 정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은 때는 바로 이 시내 산 언약을 맺은 이후부터다.

모세 언약으로도 불리는 시내 산 언약은 사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구원 은총(출애굽 해방)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를 규정하고 있는 자발적인 순종과 응답의 체계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출애굽기 19:5-6이 이 점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이스라엘이 시내 산 언약을 잘 지킴으로써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등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렇다(참조, 벧전 2:9). 이것은 시내 산 언약이 하나님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라거나, 사람들을 강제하고 속박하는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마치 제사장이 일반인들로부터 구별되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시내 산 언약에 의해 다른 민족들로부터 구별되는 존재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본다면 시내 산 언약은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 은총에 힘입어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삶의 규범이 아닐 수 없다. 달리 말해서 시내 산 언약은 어디까지나 이미 조건 없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함으로 응답해야 할 성격의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 됨을 증명하는 매우 중요한 표지가 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경험한 오늘의 신자들이, 감사함으로 그의 법을 지킴으로써 생활 속에서 그가 원하시는 행위의 열매를 맺는 것과도 같은 이치에 속한다.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나타나심, 곧 그의 현현(顯現, theophany)에 대한 준비를 해야만 했다. 이에는 성결한 생활, 의복을 청결하게 하는 일, 하나님이 나타나실 장소를 성역화하고 그곳을 침범치 못하게 하는 일 등의 세 가지가 포함된다(19:10-15). 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 화산 폭발과도 같은 자연 현상을 통해 시내 산에 강림(19:16-18)하신 하나님은 십계명을 비롯한 많은 언약 규정들을 주시고 희생 동물의 피로써 그 언약을 확정하신다(24:3-8). 언약 체결 절차를 모두 마친 후 모세와 70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른바 언약의 식사를 나눈다(24:9-11). 이 식사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생명을 보전했음을 축하하는 행위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몇몇 선택된 증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언약을 축하하는 감사제(感謝祭)의 성격을 갖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은 크게 십계명(20:1-17)과 언약서(20:22-23:33)로 나뉘며, 이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으로 성막 건축과 레위기 제사법 규정이 뒤따른다. 모세는 이 부분에서 철저하게 언약의 중재자(mediator)로 나타나며, 십계명은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다른 계명들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 시내 산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과는 달리 조건적인 것이었다. 예레미야 34:18-20은 이것을 창세기 15장에 언급돼 있는 언약 체결 의식을 빌어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 바, 이것은 시내 산 언약이 아브라함 언약과는 달리 조건적인(conditional) 언약이요, 쌍무적(雙務的)인 언약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 다윗 언약

사울의 뒤를 이어 통일왕국의 왕위에 오른 다윗은 남북의 중간 지대(지역 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님)에 있는 여부스 족의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해 정치적인 수도로 삼았다(삼하 5:1-10). 그리고 지파 동맹체의 모세 전승을 확보함으로써 종교적인 승인을 받기 위해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했다(삼하 6:1-19). 이로써 예루살렘은 다윗 왕국의 종교적인 수도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왕권을 견고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사울 때와는 달리 중앙 집권 정부를 구성하여 안정되게 나라를 통치했다(삼하 8:15-18; 20:23-26). 그 결과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다윗의 통치에 아무런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첫째로 그가 수도로 삼은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의 영향이 상존해 있는, 따라서 종교 혼합주의의 온상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제 도시화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동의 위험성을 안고 있기도 했다. 둘째로 가나안 원주민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긴장 관계가 그의 통치 기간 내내 계속됐다. 셋째로 가정 문제가 심각했다. 배다른 자녀들(삼하 3:2-5) 사이의 권력 투쟁이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밧세바 사건(삼하 11장), 다말을 강간하는 암논(삼하 13장), 압살롬의 반란(삼하 15-18장) 등이 그렇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의 통치 후반부에는 시므이의 저주(삼하 16:5-6)와 세바의 반란(삼하 20장) 등이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선택하시고 그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다. 나단 예언자를 통해 전달된 그 언약은 사무엘하 7장(시 89편과 132편도 마찬가지임)에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그래서인지 나단 신탁(Nathan’s Oracle)으로도 불리는 다윗 언약(Davidic Covenant)은 두 가지 중심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사람(다윗)의 선택이요, 다른 하나는 장소(시온)의 선택이다. 전자는 다윗 왕조의 연속성을 보증함으로써 세습 왕조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하며, 후자는 통일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다윗 왕조의 통치 거점으로 항구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두 가지 내용을 가지고 있는 다윗 언약은 앞에서 소개한 아브라함 언약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언약이요, 편무적인 언약임에 틀림이 없다. 설령 다윗과 그의 후손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실지언정 버리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신 바가 있기 때문이다(삼하 7:14-16; 시 89:30-37). 그리고 하나님이 노아와 더불어 맺으신 언약이 영원한 언약인 것(창 9:16)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아브라함 언약 역시 영원한 언약인 것(창 17:7, 13, 19)과 마찬가지로, 다윗 언약 역시 영원한 언약으로 불린다(삼하 23:5).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조건적인 언약은 당연히 항구적인 효력을 갖는 편무적인 언약의 성격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 및 다윗 언약 등은 조건적인 언약이면서 쌍무적인 언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시내 산 언약(또는 모세 언약)의 맞은편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두 개의 언약 전승이야말로 이스라엘 역사를 떠받치고 있는 양대 축에 해당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달리 말해서 무조건적이고 편무적인 성격을 갖는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 및 다윗 언약 등의 세 언약 전승과 조건적이고 쌍무적인 성격을 갖는 시내 산 언약 전승은 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어가는 수레의 두 바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

신약성경은 “새 언약”에 대해서 모두 일곱 번 언급한다(눅 22:20; 고전 11:25; 고후 3:6; 히 8:8, 13; 9:15; 12:24). 그런데 흥미롭게도 일곱 번의 용례 중에서 네 번이나 히브리서에 “새 언약”이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을 매우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히브리서는 그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히브리 사람들, 곧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쓴 편지인 까닭에, 구약성경을 자주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 시대의 주요 인물들보다 위대하신 분이요, 구약 시대의 옛 언약(또는 첫 언약, 히 9:15)을 새 언약으로 대체하신 이면서 동시에 새 언약의 중보자시라는 점을 여러 군데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떡과 잔을 나누시는 중에 포도주 잔을 일컬어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신다(눅 22:20). 이 말씀은 인류를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야말로 새 언약의 핵심임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5에서 누가복음의 이 말씀을 그대로 성찬 예식의 말씀으로 사용한다. 그는 또한 자신을 비롯한 복음의 사역자들을 일컬어 “새 언약의 일꾼”으로 칭함으로써, 율법 조문에 매이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활동하는 사람들임을 강조한다(고후 3:6).

그렇다면 신약성경은 대체 무엇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사건을 “새 언약”이라고 칭하는가? 우리는 그 이유와 배경을 예레미야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에 활동했던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요,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망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됐음을 알고 있던 그는 바벨론에 항복해야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선포하기도 했다(렘 21:9; 38:2, 17-18). 새 언약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예레미야가 선포한 새 언약은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와 속박의 땅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시던 날에 세우셨던 옛 언약, 곧 모세를 중재자로 하여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렘 31:31-32). 시내 산 언약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편으로 그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셨지만, 왕이나 제사장, 예언자, 일반 백성들 중에서 그 누구도 하나님의 그러한 사랑에 바로 응답하지 못했다. 언약 위반의 범죄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렘 7:23-26). 그 결과 그들은 시내 산 언약의 저주 규정에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요, 그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알게 만드실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으로 인도할 이 새로운 언약은 이제 더 이상 죄인인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근거할 것이다(렘 31:33-34).

이 새 언약은 궁극적으로 다윗 언약의 성취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됐다. 이 점은 예레미야 31:31-34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히브리서 8:8-13에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가 주신 새 언약(고전 11:25)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됐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성찬 예식은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성도들에게 항상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예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넓게 보면 신약성경(New Testament) 전체는 그러한 새 언약의 결정체인 셈이다.

:: 필자 정보 – 강성열

호남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Th.D.). 저서로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장가들리라》 등이 있다.

성경 속의 언약(Covenants in the Bi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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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의 언약(c ovenant)

성경은 언약(言約-covenant)이다.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에서 ‘약(約)’은 ‘약속’ ‘계약’을 의미한다. 성경 속에서는 약속과 계약보다 심화된 ‘언약’의 의미로 사용된다. 언약은 히브리어로 ‘베리트’이며, 영어로는 covenant로 번역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다. 명령하지 않고 언약을 맺으심으로 사람을 기계나 동물처럼 여기지 않으시고, 자유의지를 통해 자발적으로 순종하다록 이끄신다.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약’을 맺은 사람은 노아(창 6:18)와 아브라함(창 15:18), 이스라엘(출 24:8), 그리고 다윗(시 89:3)과 예레미야(렘 31:31)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최후 만찬을 통해 새 언약을 맺으신다.

언약에 관련된 많은 논문과 서적들이 있다. 가장 기초적인 책으로는 팔머 로벗슨의 <계약신학과 그리스도>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 언약을 ‘계약’으로 번역함으로 언약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오류는 범하고 말았다. 의미상 크게 지장이 없다고 하겠지만 계약보다는 ‘언약’이 더 정확한 번역이다. 윌리엄 J. 덤브렐의 <새 언약과 창조>도 좋은 책이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피터 J. 젠트리와 스티븐 J. 웰럼이 공저한 <언약과 하나님의 나라>도 좋은 책이다. 더 많은 책은 [언약 신학 관련 도서와 논문들]을 참고 바람.

필자는 언약을 해석함에 있어서 새 언약 그늘에서 구약을 바라볼 것이며, 구속사적 관점으로 해석할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구속사적 성경 해석은 구약의 의미를 호도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에 성경 자체가 말하고자는 의도에 충실할 것이다. 필자는 팔머 로벗슨의 언약 이론에 동의하며, 그의 주장을 따라 성경의 언약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담-노아-아브라함-모세-다윗-새언약 순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 글은 완성된 글이 아닙니다. 계속하여 수정 증보 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각 제목을 클릭하시면 링크된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의 순서는 아래와 같이 서론에서 언약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 후로는 아담과 맺은 창조 언약과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와 다윗 언약을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예레미야의 새 언약은 다윗 언약 안에서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옳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새 언약이 무엇이지 살펴 보고자 한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서론: 언약이란 무엇인가?

언약은 평등한 관계에서 맺은 약속이나 계약의 범주를 넘어서는 반 강제적인 개념이다. 언약은 지키지 않을 경우 죽음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봉주언약에 속하는 것이다. 언약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베리트는 ‘반으로 가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죽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언약은 반드시 지켜져야할 의무이자 강제적인 약속이다.

1. 창조 언약창조언약(The Creation Covenant, 창 1-3)

아담과 맺은 언약으로 창조된 피조물을 관리하는 대리자로서 맺은 언약이다. 창조 언약이 과연 존재하는가는 학자들의 논쟁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엄밀한다. ‘언약을 맺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덤브렐과 로벗슨은 노아 언약과 예레미야 새 언약과 비교할 때 충분히 언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덤브렐과 로벗슨의 주장에 동의하면 아담과의 언약을 창조언약으로 규정하며 해석할 것이다.

2. 노아 언약노아 언약 (The Noachic Covenant, 창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8).

노아 언약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단과 함께 노아와 맺어진 언약이다. 언약의 내용은 홍수가 끝난 후 드려진 번제 후에 주어진다.(창 9:9-17) 다시는 이전처럼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들을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3. 아브라함 언약 (The Abrahamic Covenant)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이전 언약들과는 사뭇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철저히 은혜에 근거하며 하나님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다.

4. 모세 언약 (The Sinaitic Covenant)

모세 언약은 대상이 모세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이다. 은혜로 구원 받은 백성들이 살아가야할 법칙들을 제시한다.

5. 다윗 언약(삼하 7:12-16)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말씀하신다. 다윗이 여호와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다윗의 집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 위가 영원하리라 약속하신다. 다윗 언약은 새언약의 근거가 되며, 연장된다.

*예레미야와의 언약(렘 31:31)

예레미야 31:31-37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6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의 언약은 ‘새 언약’으로 부른다. 하나님은 직접 ‘새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예레미야의 언약을 다윗 언약 아래 두어야 할지는 논쟁 중이지만 새 언약에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 한다.

6. 새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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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원 목사 “하나님의 언약 – 창조언약과 구속언약” > 뉴스

김의원 목사를 강사로 뉴욕만나교회(담임 정관호 목사)와 조나단에드워즈아카데미(대표 정부홍 목사)가 공동주최하고, 미동부 총신대 신대원 총동문회(회장 박성원 목사)가 후원한 부흥사경회와 목회자세미나가 뉴욕만나교회에서 열렸다.

김의원 목사는 뉴욕중부교회(현 뉴욕센트럴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하다 한국으로 들어가 30년 반을 교수로 사역하며 총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3년 전에 은퇴하고 미국 워싱톤DC에 다시 역이민을 온 후 전세계를 다니면서 신학교 교육을 돕고 있다.

5월 4일 금요일부터 주일까지는 부흥사경회가 열렸으며, 7일에는 목회자 세미나가 열린다. 이번 집회의 주제는 “하나님의 언약(창조언약과 구속언약)”이다. 사경회에서는 하나님의 언약 두 가지인 창조언약과 구속언약에 대해 말씀을 전했으며, 목회자 세미나에서는 “성경의 통일성: 하나님의 언약(눅22:19-20)”이라는 주제로 인도한다.

뉴욕만나교회에서 열린 사경회 첫날 김의원 목사는 창세기 1:26~28을 본문으로 “하나님의 언약 (1) 창조언약”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말씀은 신학교 강의처럼 진행됐다.

1.

김의원 목사는 강의를 시작하며 한 사진을 소개했다. 어떻게 보면 젊은 여인이 보이고 어떻게 보면 노파가 보이는 유명한 사진이다. 그리고 설교를 통해 성경을 보는 시각을 여러 번 소개했다.

“많은 사람은 1개밖에 못 본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계속 올라가면 지구전체가 하나가 보인다. 조금 내려오면 태평양이 보이고 미국대륙이 보이고 뉴욕이 보이고 좀 더 내려오면 교회가 보인다. 우리가 배우는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전체로 보면 신구약은 하나이다. 조금 밑으로 내려오면 구약 속에 오경 역사서 선지서, 신약에 복음서 행전 서신서 계시록 등이 보인다.”

“작은 쉼의 이야기가 있는 안식, 안식일, 안식년, 희년,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영원한 안식처 등 성경이 발전되어 가는 내용이 이어지면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서로 엮어져있다. 예전에는 어머니들이 털실로 스웨터를 자주 짰다. 그런데 털실 하나 삐져나왔다고 쭉~ 잡아 빼면 실이 다 풀어져 버린다. 성경도 하나의 스웨터처럼 독립되어 있지 않고 전부 연결되어 있다. 어느 말씀을 해석할 때 앞과 뒤의 말씀과 연결된다. 그래서 큰 틀에서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면 자칫 해석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성경연구의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통시적인 방법과 동시적인 방법이다. 첫째, 통시적인 방법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어떻게 발전되어 가는가를 시간과 역사 속에서 연구한다. 창세기와 계시록에 주어진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처음부터 보이신 것 아니다. 창세기때 조금 보이시고, 계속 더 보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하시고 재림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성경신학이라는 것은 성경속의 이야기들과 함께 연구하는 학문이다. 둘째, 동시적인 방법이다. 성경전체를 하나로 보는 것이다. 시간으로 구분하지 않는 논리적인 연구이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 연구는 논리적인 연구보다 역사적인 시간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가는가를 보는 시각이다.”

2.

다음은 집회의 주제인 언약에 대한 말씀 내용이다.

성경에 주어진 언약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신 언약이다. 창조와 마지막 계시록 같은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도성이 있었고 하나님의 도성이 마지막에 임한다. 그 속에 사건 2가지가 생겼다. 하나는 인간이 타락하고 하나는 주님이 우리를 구속해 주신다. 성경의 렌즈, 3개의 관으로 성경을 바라보때 4개의 축으로 보아야 한다.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연결된다.

언약이 처음 나온 것은 노야 때이다. 그러면 아브라함 이전에 약속은 없었는가? 노야 이전에 언약은 있었는가 없었는가 논란이 거듭한다. 연구자들은 성경 2구절에 언약이 있었다 말한다. 예레미야 33:2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를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실 때 이미 세상과 우주와 더불어 언약을 체결하셨다. 이미 창조때 주어진 언약이 성경에 언급되어 암시한 부분이 호세아 6: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이다.

아담이 이미 체결된 언약이 어겼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언약을 어겼다. 창세때 하나님이 언약을 체결하시고 아담때 언약을 깨트려졌다고 보는 것이다. 창조 때부터 완성 즉 종말까지 있는 것이 창조언약이며, 인간범죄후 주어진 것이 구속언약이다. 성경은 언약을 창조와 구속 언약 두 가지를 말한다. 마치 우리 우리의 몸이 외모가 있고 속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 창조 언약은 옛날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원리로 세상이 종결될 때까지 계속 살아있다. 창세기 1-2장이 참 중요하다.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고 노동과 안식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옛날만 아니라 계속 존속되는 것이다.

창조때 주어진 언약은 살아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인간의 구속 이야기가 함께 다루어져 있다. 창조 이야기는 옛날부터 주인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이야기해주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메세지가 담겨있다. 문제는 세상을 관리하게 만들어 놓은 인간이 죄를 범해버린다. 그래서 범죄한 인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과정이 구속언약이다. 구속언약에는 6개의 언약이 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수그리스도의 새언약이다.

크게보면 창조언약과 구속언약이 있다. 창조언약은 세상과 관련된 이야기이고 구속언약은 인간과 관계된 부분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복귀하시고 재창조하시는가 하는 과정이 성경에 긴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 어디를 읽어나가도 먼저 그 안에 메세지를 담을 때는 항상 창조이야기와 연결시키는 것이 본래 부분들이다. 창조 이야기를 담고 그리고 인간들의 이야기를 꺼집어내는 것이 적절한 본문들로 보여진다.

3.

김의원 목사는 설교를 시작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믿지 아니하는 농사꾼이 농사짓는 것은 죄일까 아닐까요? 믿지 아니하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죄일까 아닐까? 믿지 아니하는 비지니스맨이 사업을 하는 것은 죄일까 아닐까? 일부는 죄라는 답이 금세 나오고 일부는 죄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설교 도중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인간타락의 좋은 비유가 있다. 먹이를 물고 집으로 가는 개미의 잡아서 안테나를 떼어도 금세 안 죽는다. 계속 먹이도 물고 가지만 집을 못 찾는다. 믿지 않는 농사꾼이 죄인가? 안테나가 사라졌기에 죄 속에 살다가 죄 속에 농사를 짓는 것이다. 왜 자신이 농사를 짓는지 이유를 모른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관계개념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되면 의라고 하고 관계가 되지 않으면 죄라고 한다. 그리고 2차 개념이 행위 개념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기에 행함이 악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악한 것과 선한 것을 전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본다. 믿지 않는 농사꾼이 농사를 짓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농사를 짓는 것이다. 죄 중에 살면서 죄 중에 농사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 준 본래 부분이 있지만 죄 속에 살다보니 노동하는 일이 하나님에 영광일 되지 못한다. 믿지 않는 농사꾼은 결국 죄 중에 살다가 죄 중에 하나님과 관계없이 산다. 여기서 묻는 질문은 농사 자체를 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회복했다. 성경에 가장 중요한 명령중 하나가 마태복음 28:19-20의 지상명령이다. 우리들은 모든 사람에게 예수를 가르친다. 가르치다 보니 알고 보니 우리들의 어깨위에 이 땅을 관리할 명령이 있다. 예전에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땅을 관리하다 보니 남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보니 우리들의 어깨위에 가정을 주셨고 직장을 주셨고 건강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이 땅을 관리하게 하신다. 좋은 기독교는 예수를 잘 믿는다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과 더불어 이 땅을 관리해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녀 중에 좋은 정치인. 좋은 기술자, 좋은 비즈니스맨이 필요하다. 복합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교회당 내로만 가져가고 밖에 관심이 없는 것은 좋은 기독교가 아니다. 교회답게 그리고 말씀을 가지고 삶의 현장에 들어가서 직장에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것이 선교이고 구제이다.

4.

김의원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교를 마무리하며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나누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과 중국과 여자배구 결승전이 열렸는데 우승하고 선수들이 모여 기도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타종교의 항의를 받기에 카메라맨은 화면을 감독에게 돌렸다. 그런데 감독은 우승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우승 소감을 말했다. 진정한 기독교 스포츠맨 말 한마디는 많은 목사보다 위력을 발휘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이 바로 사는 그 자리에서 내가 기독교인을 드러내고 기도교인처럼 살면 하나님나라가 성장하게 된다. 문제는 친한 친구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너나 잘 믿으라”고 한다. 우리 모습이 예수를 믿는 둥 마는 둥 하니 생기는 현상이다. 가까이 있는 친구들이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 네가 믿는 예수를 믿으면 나도 너처럼 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선교적 기능이다.

여러분들의 비지니스에 손님을 모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혼을 붙여주시는 것이다. 출퇴근때 늘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것은 전도 대상을 붙여 주시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도하는 것도 있지만 더 좋은 방법은 자주 만나면서 기독교 향기가 풍겨가면서 하나님께서 어느 날 그의 마음을 열 때 전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 여러분들의 삶의 모습에 여러분의 인격이 드러난다. 누구든지 뉴욕만나교회 교인들은 진짜 교인들이라고 말하는 교회가 되라. 여러분의 사업이 하나님의 영광의 귀한 통로가 되기 바란다. 안믿는 친구가 방문하여 살아있는 하나님의 현장을 발견하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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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이란 무엇인가?

성경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언약 중심이다. 하나님은 언약대로만 일하신다. 언약이 없이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다. 언약은 창조 때부터 시작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창2:16-17) 하나님의 언약은 노아 때부터 시작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노아언약이라고 부르는 이 언약은 노아하고 하나님하고 맺은 언약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과 언약이 맺은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선택하시기때문이다. 그 선택된 사람의 이름을 빌어 “노아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언약” “다윗언약” 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약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언약들은 신약에 나타난 새 언약을 지향하는 언약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모든 언약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언약을 알기 위해서는 새 언약으로부터 역추적 해야 그 언약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새언약이 전제되지 않는 성경 해석은 전부 엉터리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새 언약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이다.(요5:39,46)

그렇다면 언약이란 도데체 무엇인가?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이 약속하는 것이 언약이 아니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가 만나 하나가 될 때 성립된다. 그러니까 언약은 죄와 의의 만남이다. 둘이 떨어지면 언약이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죄의 본질과 하나님의 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기서 죄인의 구원이 발생한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시다.(막10:45)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인인지 의인인지 조차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딪힐 때 비로소 자신이 지옥에 들어가도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 그 때부터 죄인은 십자가 안의 삶이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더럽고 악한 상태에서 부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을 때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십자가를 떠나서는 자신이 죄인인지 조차도 모른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을 죄인으로 드러내고 하나님만 의롭다 하시는 언약이다.

언약 안에 있다고 하면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언약을 모르는 사람이다.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깨끗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인간은 의로운 옷으로 덮어 주었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피로 덮인바 된 사람은 자기의 죄를 덮어주신 분을 끊임없이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죄악 중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 분을 증거하게 된다.

노아는 죄악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창6:5-8) 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120년 동안 산 위에서 방주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이것이 노아언약이다. 아브라함도 죄악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롬4:1-5) 모세도 죄악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롬9:15-16) 다윗도 죄 중에 잉태된 자로서(시51:5)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롬4:6-8) 구약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언약 안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죄악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된 자를 반드시 고난의 길 희생의 길 십자가의 길로 인도한다. 왜냐하면 언약 밖에 있는 자들에게 심판과 구원의 기준 역할을 하기 위해서이다.

언약 안에 있는 자를 보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언약 안에 있는 자를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언약은 십자가를 증거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십자가는 모든 인간의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완벽한 기준이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이제는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다(요15:29)

새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이고 생명이시다.(요14:6) 하나님은 마지막에 예수로 말씀 하셨다.(히1:1-2) 하나님은 이제 다른 방법으로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언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요19:30)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새 언약인 십자가를 증거 하는 언약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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