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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그리스어: Βασιλεία του Θεού 바실레이아 투 데우), 천국,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서에 근거하여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찾을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이며, 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현재 확장되어가는 미래적이고 현재적인 신의 통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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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원문]

결국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주권적인 나라,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자라면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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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osnlogos.com

Date Published: 9/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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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통하여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때로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정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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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6/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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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란? – 더크로스처치,한국기도의집

마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산상수훈의 가장 핵심이 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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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cc567.kr

Date Published: 7/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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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입니까? 왕국이나 영토는 정치적 시스템이고, 공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체계 잡힌 조직이며, 정의와 연대에 기초해 맺어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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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lough.com

Date Published: 7/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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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영성③]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현요한)

하나님 나라의 의미는 우선적으로 어떤 정태적인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동적인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저 하늘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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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emk.org

Date Published: 11/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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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 다음블로그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눅17:16~21, 롬14:17 출처보기 ※복음서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오늘날 그걸 우리는 ‘교회’라고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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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4/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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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 브런치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유대인에게 하나님 나라는 낯선 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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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0/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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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천국의 의미는 – 크리스찬 투데이

Q:성경에보면하나님나라혹은천국이라는표현이있습니다.예수님설교의핵심이라고해도과언이아닌것같은데그의미를좀더깊이알고싶습니다.A:하나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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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us

Date Published: 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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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하나님 의 나라

  • Author: Isaiah6tyOne (아이자야씩스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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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6.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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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하나님의 나라(그리스어: Βασιλεία του Θεού 바실레이아 투 데우), 천국,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서에 근거하여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찾을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이며, 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현재 확장되어가는 미래적이고 현재적인 신의 통치를 뜻한다.[1][2] 신약성서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 “(내) 아버지(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나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2] 영문성서에서는 “왕국”(Kingdom)으로 번역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아람어인 말쿠타 디스마이아(malkuta dis-mayya)라고 하는 문자적인 번역이 존재한다. 이 용어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하나님 성호에 대한 완곡 어법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태오는 유대-그리스도인 독자들의 감정을 존중하여 이 단어를 사용한 바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의 뜻 [ 편집 ]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 런던 에서 천국의 이미지는 세 개의 계급과 천사가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진 9 개의 계층을 보여 준다.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은 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현재 자라고 있는 미래적이고 현재적인 하나님의 다스림을 뜻한다.[3][4] 마태오의 복음서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천국(하늘나라)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마태오의 복음서의 저자와 독자 모두 유대인이라 하나님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나라와 천국은 같은 말이다.[5] 물론 이방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로 알려진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개념이어서, 예수는 공생애 동안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핵심으로 하는 설교를 하였다.[6][7] 하지만 유대인은 하나님 나라를 외세로부터 해방된 민족주의 국가로 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 실천으로 해석하던 그리스도는 거부되었다.[8]

하나님의 나라의 등장횟수 [ 편집 ]

하나님의 나라는 신약의 중심 테마이다. 마태오의 복음서에서는 단지 4회에 걸쳐서만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를 기록하고 있다. 그 대신에 ‘하늘 나라’로 34회가 사용되고 있다. 마르코의 복음에서는 14회, 루가의 복음에서는 22회, 요한의 복음에서는 2회, 사도행전에서 6회, 바울 서신서들에서 8회, 계시록에서 1회가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 [ 편집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는 밭에 뿌려진 씨앗(막 4:3-20), 겨자씨의 성장(마 13:31)에 비유되었다.

역사적 배경 [ 편집 ]

기원전부터 이스라엘 민중 가운데에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히브리 사상의 근원이 되는 구약성서에서 그 표현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역대기 상 29장 10~12절, 다니엘서 4장 3절 등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주로 하나님의 특별한 경영 대상,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국가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가 패망한 이후로 하나님의 나라는 매우 좁은 의미로서 ‘회복될 이상적인 이스라엘 국가’의 의미로도 쓰이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민중이 그리던 그 이상 국가의 모습은 구약성경의 이사야서 11장 1~9절에 묘사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하나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되는 ‘이새의 그루터기’는 다윗 왕의 후손을 나타내는 말이다(다윗의 아버지 이름이 이새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다윗의 후손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세력을 물리치고 왕위에 올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복지낙토를 건설할 것이라 바라보았고, 이러한 좁은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완수할 자를 메시아라고 불렀는데, 직역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이는 이스라엘에서 왕위에 오를 사람에게 기름을 부었던 전통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메시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 구체적 모습은 메시아가 옴으로써 수립될 것으로 여겨졌다.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은 이전에 있던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들만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당면한 정치적인 현실 사이에 큰 갈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인식을 재평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역사와 시간과는 구분되는 “마지막 때”(토 에스카톤)와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한 영역으로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고 있다.

바울의 해석 [ 편집 ]

바울의 서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살펴볼 수 있다. 바울 사도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내면적이고도 영적인 실제로 설명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롬 14:17). 그리고 미래 실현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관점도 있다. 실제로 믿는 자들의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롬 5:2)여기는 그의 강조는 이 세상의 박해와 고난 후에 실현할 미래를 의미한다.

기독교 해석 [ 편집 ]

기독교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위에서 서술한 바 유대교에서 발견되는 하나님 나라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가장 큰 것은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했다고 해석한다는 것이다.[9] 그러나 기독교 내에서도 종파에 따라 또는 신학사조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이 공간적인 것으로 그러니까 죽어서 가는 내세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스림이나 하나님의 질서로 표현한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하나님의 다스림이나 하나님의 질서가 하나님의 나라의 뜻을 잘 표현한 말이기 때문이다. 여성신학자들도 이 표현을 지지하는데, 하나님의 나라(Kingdom)가 남성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10] 원로 장로교 신학자 김영재 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뜻하는데도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죽어서 가는 내세로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11]

개혁주의/칼뱅주의 시각 [ 편집 ]

개혁주의는 위에서 서술된 광의에서의 하나님 나라와 협의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다 수용하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권능의 왕국 (Kingdom of Power): 광의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곳, 즉 우주 뿐만 아니라 내세의 모든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은 절대적 대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권능의 왕국’이라고 표현한다.

(Kingdom of Power): 광의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곳, 즉 우주 뿐만 아니라 내세의 모든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은 절대적 대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권능의 왕국’이라고 표현한다. 은총의 왕국 (Kingdom of Grace): 협의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즉 권능의 왕국 내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경영 대상인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되는 사회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은총의 왕국의 영역은 이 땅뿐만 아니라 내세에까지 뻗쳐 있지만 그 주 무대는 지상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본래 죄인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은혜의 왕국이라는 말을 쓴다. 이 은총의 왕국을 가장 뚜렷하게 증시하는 것이 교회이다. 개혁주의 시각은 이 은총의 왕국이 역사의 가도 위에서 발전해 나감에 따라 궁극적으로 다다를 정점이 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는 날이 예수의 재림 때이며, 그 완성된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앞서 인용된 이사야서 11장 1~9절의 내용이라고 본다.

(Kingdom of Grace): 협의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즉 권능의 왕국 내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경영 대상인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되는 사회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은총의 왕국의 영역은 이 땅뿐만 아니라 내세에까지 뻗쳐 있지만 그 주 무대는 지상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본래 죄인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은혜의 왕국이라는 말을 쓴다. 이 은총의 왕국을 가장 뚜렷하게 증시하는 것이 교회이다. 개혁주의 시각은 이 은총의 왕국이 역사의 가도 위에서 발전해 나감에 따라 궁극적으로 다다를 정점이 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는 날이 예수의 재림 때이며, 그 완성된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앞서 인용된 이사야서 11장 1~9절의 내용이라고 본다. 영광의 왕국(Kingdom of Glory): 위에서 서술했듯이 예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은혜의 왕국을 지칭하는 말이다.

개혁주의는 이상의 모든 왕권을 부활한 예수가 현재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이상을 살펴볼 때, 과거 전통적인 유대교적 하나님 나라와의 차이는 개혁주의 시각은 첫째, 이스라엘 국가라는 특정 민족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이며, 둘째, 메시아의 도래와 함께 바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경과 기간이 있어 메시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며, 셋째, 외부적인 규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한 영혼의 다스림이라는 것이며, 넷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정신 속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실증을 드러내는 현실적인 통치권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로마 가톨릭과 개혁주의의 차이는 로마 가톨릭의 경우 예수의 왕권 행사의 지상 대리자로 교황을 인정하지만 개혁신학에서는 대리자를 부인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성공회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신약성서의 마태오 복음서 16장 19절에 대한 해석에 근거한다.

같이 보기 [ 편집 ]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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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나라연구(1) *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2014년 8월 26일 기사

1. 서론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성경의 중심 사상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뜻하는 나라이며,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복음의 핵심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마태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마 4:23 중)라고 기록했으며, 마가는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는 기록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예수님의 주된 사역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예수님도 직접적으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언급하셨다.

즉,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하늘과 이 땅을 직접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현재 세상 속에서, 특히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이면서도 궁극적인 소망이 되고 있다.

2.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시작은 구약이다. 조지 래드(George Eldon Ladd)는 하나님 나라의 출발점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그 분의 목적을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을 통해 이루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곧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이라는 소망이다. 이와 같은 소망은 하나님 자신이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구약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존 브라이트(John Bright)는 도래하는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사상은 구약성서의 신적 계시와 신앙의 대망 가운데 깊이 잠재해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이러한 대망은 곧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고백에 근거해 하나님은 좀 더 강하고 종말론적인 의미에서의 왕이 될 것이라는 대망 사상이 일어나게 된다.

신정왕국으로 말해지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하나님의 통치 사상에 의한 것으로써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장차 올 미래에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소망이 피력된 것이다. 결국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하는 나라,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그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메시아’라는 대망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메시아적 예언은 미래에 참다운 하나님의 왕국이 메시아 중심으로 설립되어질 것을 제시하는데,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는 평화의 통치자로 오시고(사 11:1~9), 그의 왕권은 초자연적이며 신적이고, 영원한 특징을 갖는 것이다(미 5:1~9).

특히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통치와 메시아 대망사상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근거를 형성하고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선포했다. 평화의 그 날이 오면 모든 인간적인 갈등이나 사회적인 문제가 없고, 악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화와 안전이 미래에 약속됐다고 믿은 것이다. 김회권도 구약성경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 선언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죄, 악, 고난, 질병과 죽음, 전쟁 패배와 포로살이로부터의 구출과 해방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복음은 우주의 통치자인 하나님의 왕적 칙령으로써 하나님 없는 상황이 종식되며, 하나님의 생명 통치가 작동할 것이라는 선포였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와 같은 묵시와 예언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성취됐다. 마태는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고 기록했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모양으로 임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도 다양한 사역과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특정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로마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며 하나님 나라를 현재 각자가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실체로까지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여되는 유업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영적 상태이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 때 얻을 수 있는 것으로써 ‘이미’라는 현재성과 ‘아직’이라는 미래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 래드는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실체이면서(마 12:28), 미래적 축복(고전 15:50), 다시 태어난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요 3:3) 영적인 내적 축복이면서(롬 14:17) 또한 이 세상 나라의 통치(계 11:15)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람들이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현재적 영역이면서 나중에 들어갈 수 있는 미래적 영역(마 8:11), 믿는 자에게 상속되는 미래적 축복의 나라이면서(눅 12:32), 현재에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나라(막 10:15)라고 강조한다.

3. 하나님 나라의 어원적 의미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다양성과 풍요로움은 하나님 나라를 섣불리 규정하고, 해석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어원적으로 해석할 경우에는 그 의미는 보다 명확해진다.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어로 기록된 하나님 나라는 ‘말쿠트’(malkeuth)다. 약 200회 정도 나타나는데,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인간 왕에게 적용될 경우, 주로 ‘통치’, ‘지배’, ‘왕권’ 등과 같은 추상적, 역동적 의미로 사용됐다. 하지만 지극히 부차적으로 왕이 통치하는 공간적 영역, 지역, 영토의 의미로도 쓰였다.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바실레이아’(basileia)’라로 표현한다. 히브리어인 ‘말쿠트’와 동일하게 추상적, 역동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지칭하는 구약의 ‘말쿠트’와 신약의 ‘바실레이아’가 갖고 있는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 또는 ‘주권’과 ‘왕권’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는 항상 통치, 다스림 또는 주권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구약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사상이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만물의 주인이시다. 눈에 보이는 세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이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 모든 민족도 복종해야 하는 만민의 주인이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만 주인이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에도 주인이신 것이다.

구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구약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나타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를 통해 당신의 열방을 드러내려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거역하고 하나님이 끊임없이 이들을 돌이키시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북 이스라엘, 남 유다에 이른다. 이러한 심판과 바빌론 포로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그 선지자’, 또는 ‘다윗의 자손’, ‘여호와의 종’을 간절히 기다린다. 바로 ‘주의 날’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부르시며 악인들과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의인들과 그의 나라를 회복하실 것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서 깨어졌던 만물이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다. 구약은 이렇게 메시아를 대망하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신약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의 이러한 대망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선언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지 끊임없이 가르치셨다. 복음서는 단지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도래시킨 메시아가 어떻게, 그리고 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에 대한 증언임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다고 반복적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사복음서는 거의 ‘하나님 나라’로 표기하고 일부는 ‘천국’으로 표시하고 있다.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로 기록됐고, 마태복음에서는 네 곳(12:28, 19:24, 21:31, 43)을 제외하고 ‘천국’이라고 기록됐다.

결국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대망했던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임했으며, 현재 하나님의 통치가 그의 백성들을 통해 이루어지심을 통해 자라가고 있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또는 어원적 의미는 ‘왕 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통치, 주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는 하나님이 영원한 왕이시며 만물을 다스린다는 단순한 추상적 개념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역동적 개념이기도 하며, 단순히 영역으로 제한할 수도 없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주권적인 나라,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자라면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복을 누리는 곳, 마지막 날 예수님의 재림 후에 들어가게 되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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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가 모두 104번 사용되고 있는데, 거의 전폭적으로 예수 자신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다. 그렇다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었을까.

예수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즉 아직 기다려야 하는 미래적인 나라인 것이 반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한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가 요단강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종이라는 소명을 받은 후 고향 땅에 돌아가 제일 먼저 한 것이 “그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막 1:14~15, 마 4:17)는 선포였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예수의 선언은 하나님의 나라의 임박한 도래에 대한 기대나 준비를 위한 선언이 아니라 선포하는 예수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도착했다는 선언이며, 지금 예수 안에서 도착한 그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단의 요청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예수는 유대교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 물었다(눅 17:20). 그때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답변하시며 당대 유대인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의 때와 장소에 관한 두 가지 사상-하나님의 나라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속해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나라라는 사상-에 동의하지 않음을 지적하셨다.

물론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정의의 구현 및 윤리를 표방하는 등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포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라고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주적이며, 전 세계적이며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수는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속적인 나라가 아니며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이미 도래했음을 선언하시기도 하셨다(“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8, 눅 11:20).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에 의해 주도되는 인간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위로부터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며(마 5:2), 구하는 자의 것이며(마 6:33), 어린아이처럼 겸손히 받드는 자의 것이며(마 18:3, 19:14, 막 10:14, 눅 18:17), 거듭난 자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요 3:5).

그러나 미래에 완성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야 하며(마 5:10),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 하며(마 5:10),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고 선언하셨다(마 7:21).

결국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그 분의 왕권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5. 하나님 나라와 교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맡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말씀하셨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6~18).

특히 예수님께서는 ‘에클레시아(ekklesia)’, 곧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규정하셨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내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줘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에 기초해 있다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신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불가분의 관계는 ‘하나님 나라가 교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있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통해 확장된다. 따라서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 할 수 있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에 따르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올바로 일치시키려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증표로, 하나님 나라의 봉사자로, 하나님 나라의 ‘선 경험’이 돼야 한다.

양용의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제자들의 현재적 삶은 그 자체로서 최종적인 목표가 아니라 장차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경성된 삶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지극히 강조하시면서도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도 매우 확고하게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를 한 순간도 소홀히 하거나 잊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완전한 그 때의 도래를 늘 기다리며 하나님의 통치에 더욱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실존하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면서 예수님의 재림 이후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할 때까지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다양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6. 교회의 궁극적 사명

교회,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공동체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비록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는 완전한 축복의 상태로 실현되어지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역사하고 있으며, 악과의 무서운 싸움 속에서 보증되어지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투쟁을 감당하는 기구인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됐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세상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게 됐다. 사단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강요하고, 그 지은 죄의 결과로 죽음을 가져다줬다(롬 6:23). 결국 하나님 나라는 인간에게 창조자이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가장 큰 이유이다. 죄인들로 하여금 사단의 나라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불러내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막 2:17). ‘회개’와 ‘믿음’으로 죄인인 인생이 사단의 나라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라고 선포하셨고, 친히 십자가에서 그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을 왕으로 섬기는 삶의 방식, 곧 타락한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았던 삶의 모습을 회개하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즉, 피조물로서의 인생이 가진 궁핍함에서 창조주의 부요함으로 들어가며, 인생의 유한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고통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함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교회, 즉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며, 앞으로 임하시게 될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과 환경,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시켜야 하는 청지기의 사명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제대로 누리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에 기초해 하나님의 법을 찾고 따라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나님은 항상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시고 항생 행동하실 것이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존재하고 항상 존재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에 산다는 것은 결국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삶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다.

김형국은 “교회는 단지 수동적으로 하나님을 수용하고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살아내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세상 사람들의 빛이 되고(마 5:14~16, 엡 5:8~9, 빌 2:15, 골 1:12, 살전 5:5), 우리 가운데 있는 소망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적극적인 사명을 갖고 있다(벧전 3:15)”고 강조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온전한 회심을 이루어야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다는 값싼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인 복음,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섬기는 사역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나라답게 하기 위해 교회에 소속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며 그 분을 닮아갈 것인지 고민하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살아내야 한다.

7. 결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주권적인 나라,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에게 주어진 나라다. 그 나라는 이미 임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최종적으로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를 갈망해야 한다. 그 때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속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백성공동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표지인 교회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공동체로서 예수님의 삶을 뒤따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개할 수 있는 힘과 능력, 촉매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속에 들어왔다고 선언해야 한다.

교회는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현재적이면서도 종말론적인 공동체다. 예수님의 부활부터 고대하는 재림, 곧 종말 사이에 위치한 이 마지막 때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끌어야 한다.

교회는 이미 설립된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증거자로서 곧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것에 대한 증거자로서 세상 속에 보내어졌다. 따라서 교회는 이미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실한 승리와 성취된 승리를 믿고, 아직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

특히 인간사회가 이미 세워놓은 모든 장벽들을 초월하는 신앙공동체를 세상 앞에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그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공동체의 흔적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교회는 지체를 넘어서서 세상 속에 선행과 형제사랑을 확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 복음을 교회 안에 담아둘 수 없는 것처럼 그 아가페(사랑)를 더 이상 교회 안에 가두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기 위해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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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erhardus Vos(게할더스 보스) & George Eldon Ladd(조지 E. 래드), 「하나님의 나라, 제대로 알고 믿는가?」, 정정숙&신성수 역, 서울:개혁주의신행협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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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Eldon Ladd(조지 E. 래드),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이태훈 역, 서울:도서출판 엠마오, 2001.

George Eldon Ladd(조지 앨든 레드), 「하나님 나라의 복음」, 박미가 역, 서울:서로사랑, 2001.

John Bright(존 브라이트), 「하나님 나라」, 김철손 역, 서울:컨콜디아사, 1990.

Klaas Runia&John R. W. Srott, 「하나님 나라의 신학」, 정일웅 역, 서울:한국로고스연구원, 1992.

피터 쿠즈믹, 「교회와 하나님의 왕국」, 명종남 역, 서울:새순출판사, 1994.

김세윤ㆍ김회권ㆍ정현구, 「하나님 나라 복음」, 서울:새물결플러스, 2013.

김진동, 「하나님 나라의 복음신학 연구」, 서울:도서출판 포이멘, 2006.

양용의, 「하나님 나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서울:성서유니온선교회, 2005.

이형기, 「하나님 나라의 공적신학」, 서울:한국학술정보(주), 2009.

정일웅, 「우리 시대의 하나님 나라」, 서울:총신대학부설 한국교회문제연구소, 1990.

* 기사의 원활한 게재를 위해 각주는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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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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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통하여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때로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뜻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찾기 힘듭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하여,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원래 의미를 찾아 보고,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문구들을 찾아 보고자 합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을 의미하는지도 살펴 보려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기원과 그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부터 그분의 왕국이 시작되기까지의 내용은 복음서를 통하여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의 전체 이야기와 교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하여 우리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 전체에 여러 방식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6장 33절, 마가복음 1장 14절-15절, 그리고 누가복음 4장 43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왕국'(마 13:41, 20:21)과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천국(막 11:10)과 같이 조금씩 다른 표현을 쓰고 있지만, 모든 성경에서는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각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의미하는 세 가지 개념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나라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흘러 넘치고 누리는 축복과 유익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백성들 혹은 교회

로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할까요?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외쳤습니다(마 3:2).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믿으라”(마 4:17)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바라던) 나라가 임하오시며'(마 6:10)라고 말씀하시며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또 팔복의 말씀을 선언하실 때에도 “천국이 저희의 것이다”(마 5:3, 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최후의 만찬장에서는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막 14:25)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는 왜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천국”이라는 말을 사용했는가

마태복음의 내용 전체를 돌아보면, 마태는 예수님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해 언급하며 그분의 사역에 대해 기록하면서 “천국”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 예민한 유대인들의 규례를 존중하였기에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천국”이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향해 쓰여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마태가 전하려고 하는 내용은 동일한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나 천국이나 그 개념은 똑같습니다. 마태는 수신자인 유대인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천국이라는 용어를 즐겨 썼을 뿐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요절은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날을 위한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땅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계시며 이 땅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로서,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은 미래에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우리는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7장 21절을 통하여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을 때,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실 때,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어떤 규칙과 규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게 되는 의와 화평과 기쁨을 통하여(롬 14:17)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자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흔히 우리가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이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뜻 뿐만이 아니라, 온 땅에 퍼져나가야 하는 구원의 복음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죽으심을 믿고 인정하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먼저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부름 받아,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온 땅에 예수께서 우리를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의 삶과 말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가치 있는 삶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땅에 전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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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란?

마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산상수훈의 가장 핵심이 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산상수 훈의 “원수를 사랑하라”,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돌려 대라”, “주기도문”,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등의 이 모든 얘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 다. 이 주제는 더크로스처치의 가장 핵심적인 신학과 신앙입니다.

2020년의 키워드 “부흥” 저희는 지금 코로나19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2020년 올해를 시작하는 송구영신 메시지에서 우리는 하박국 3장 2절 의 “부흥”을 선포했습니다. 그 메시지의 포인트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부흥이 아닐 것이다.’였습니다.

하박국이 그 본문을 선포하게 된 배경은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주여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합 3:2).”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는 것을 목도하고 다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일으키는 환상을 보면서 했던

예언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30년 가까이 사역하면 서 교회 프로그램이 다 없어지고 모든 프로그램이 기도회로

바뀐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게 부흥 아니겠습니까? 이때 선포되는 산상수훈 의 메시지를 통해 뉴 노멀 시대,

흔들리고 답이 없는 것 같은 이 시대에 분명한 기준을 붙들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가 뭘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 4:17).”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 나님의 나라가 ‘이미(벌써)’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또 이 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막 4:26).”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15).” 겨자씨 비유, 누룩의 비유(눅 13:18~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 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이 본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정 의는 ‘항상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already, but not yet(이미, 그러나 아직)’이라고 표현합니다. 항상 우리 안에 있고 이 미 존재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 “나라가 임하시오며(마 6:10).”하나님의나라는가루서말속의누룩과같이세상속에이미 존재하지만, 완성된 게 아닙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십시오.” 이것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나라(국가)의 3요소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적 개념 이전에 위치적 개념을 뜻합니다. 하나님 의 나라는 그의 통치와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곳 입니다. 국가의 3요소는 주권, 국민, 영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권, 왕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 리스도이죠. 그리고 우 리가 국민, 백성입니다. 영토는 어디일까요?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이 미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영토입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 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주님이 산상수훈을 왜 쓰셨을까 요? 산상수훈의 진짜 주인공인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서 있는 그 위치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보이는 하나님 나라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는 나라와 보이지 않는 나라, 두 나라가 존재합니 다. 보이지 않는 나라, 그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마음속에 왕으로 모셨지만 안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백 속에 분명히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나타나고 보이는 나라로 공존합니다. 소금은 녹아서 없어져서 안보여야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구나’ 하지만, 빛은 그렇게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권세와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4장 23~25 절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이어지는것은“백성중의모든병과모든약한것을고치시니각종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 라.” 보이지 않는 나라로서 예수가 왕 되시며, 동시에 권세와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표현되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왕 되신 예수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보이는 나라로서 귀 신들을 깨뜨리고 저주 를 꺾고 어둠 속에 빛을 비추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십자가와 성령으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나라 또한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나라가 십자가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 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 라폐하러온것이아니요완전하게하려함이라.너희의가서기관과바 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17~20)” 절대적인 의, 완전한 의를 요청합니다. 그런가 하면 5장은 이렇게 끝 납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이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이 산상수훈을 살 아낼 수 있을까요? 바로 십자가와 성령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어 떠함을 표현하게 됩니다. 우리 는 계속해서 이 산상수훈이 우리를 십자 가와 성령으로 내몰아가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 분이있 는 모든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것, 그것이 부흥입니다. 왜 우리는 부흥이 벌써 시작됐다고 말할까요?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고더위험이오는것같기도한데,뭘보고부흥이왔다고하는것일 까요? 바로 이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 가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머무르기 시작할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움직이기 시작했음 을 선포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는 나라 로 일어나기 시작할 때 오늘 우리는 부흥의 실제를 맞이하게

될 것 입니 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입니까? 왕국이나 영토는 정치적 시스템이고, 공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체계 잡힌 조직이며, 정의와 연대에 기초해 맺어지는 국가 공동체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했을 때 머리 속에 이런 영토를 그렸습니다.(이사야 9:6-7) 이 왕국은 사람들이 정의로운 질서 속에 살아 갈 때에만,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새로운 질서가 모든 관계에 적용되고, 지속 될 때에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이 우리에게 보여준 남다른 점은 오직 하나님만이 권위를 지니며, 그분의 권위에 반대할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통치하는 나라, 그분만이 왕인 나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934. 7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존재한다면 믿는 사람들은 지금 이곳에서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삶과 같은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영원에 걸쳐 변함이 없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나라를 따라, 미래에 구현될 그 길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하나님의 미래, 하나님의 삶과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하겠습니다.

1935. 9

하나님의 나라가 마치 회심한 일부 사람들만을 위해 준비된 것인 냥 생각하고, 실제 인류 역사의 바깥 어딘가에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오늘의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언어를 새겨 듣고, 새로운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시대의 엄중한 현실은 진리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성경을 더욱더 파고 들어서 하나님 나라의 조건이 무엇인지, 그 나라가 오면 어떤 일이 있을 지를 찾고, 물으라고 강권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진실이 무엇인지 파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징후를 깨어서 살피고, 그분이 오실 때 깨어있는 우리를 발견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마 16:3)

1915. 7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가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하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요한일서 1:1-3 일부. 새번역)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통치가 선포되는 곳에는 실제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세례 요한도 그 때문에 이런 도전을 받았습니다. “왜 묻는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아라.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 (마태복음 11:5)

예수님은 우리가 실제 일어나는 일을 믿을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드러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우리의 의문도 풀릴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세례 요한이 미처 이런 믿음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마태복음 11:11. 새번역) 하나님 나라에 있는 가장 작은 사람도, 교회의 가장 단순한 이조차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이런 믿음으로 이해합니다….

사도들은 나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예언자들의 말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지금 이뤄지고 있다.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 보아라!” 그때 예루살렘에서는 벌어지고 있던 일 중에 하나는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주어진 치유와 회복이 그 사실을 증거합니다.

사도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을 “사도들의 행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책이 사도들이 했던 일과 그들을 통해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드러난 기적의 힘, 그리고 그때 행하신 일과 사건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선포라는 결정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그것을 상징하는 수많은 징후와 경이로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1935. 6

[하나님 나라와 영성③]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현요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는 것은 지상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달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 완성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요, 하나님 나라 자체입니다. 그 나라의 도래는 오로지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고, 지상에서 그 나라의 완성 역시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본문 중)

현요한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

지난번 글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제한된 영토 개념보다도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로 오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잘 새겨보면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죽은 후에 영혼이 육체를 떠나 ‘요단강을 건너서’ 들어가는 어떤 특별한 공간을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가르쳐 주는 하나님 나라는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오는 것처럼,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후 세계의 무시무시한 여행 과정을 통해 들어가게 되는 천상 세계와는 매우 다릅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 혹은 ‘이미 왔다’고 말합니다.

물론, 성경이 우리가 육체의 죽음 저편에서 들어가는 어떤 영적 세계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 중 하나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청하였고,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눅 23:42-43). 또, 예수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음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눅 16:22-23). 또한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 그런데 성경은 이런 것을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한 세계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계이니까요.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만을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은 후에 비로소 들어가는 어떤 공간이 아니라, 우리에게로 왔고, 또 지금도 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우리에게로 왔고, 또 지금도 오고 있으며,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 세상에 완성될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육체의 죽음 저편 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 이 땅으로 진군해 오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이 나라에 들어가 살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결단 말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천국’이라는 말이 많이(39회) 나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죽음 저편에 있는 ‘하늘나라’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들과 같은 내용을 말해주는 평행 구절들을 보면, 다른 복음서들이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마태복음은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태는 다른 복음서들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을 ‘천국’이라고 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많지는 않지만, 마태도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4회). 그중의 한 구절에서는 이 둘을 동일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9:23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라고 하였는데, 24절에서는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동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과 동의어인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죽음 저편에 있는 하늘나라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3:2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4:17에서는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셨으며, 마태복음 10:7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이 죽음 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어떤 공간이라면 그것이 “가까이 왔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의 천국도 역시 우리가 죽어서 가는 저 하늘의 어떤 공간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 오는 하나님의 나라, 즉 이 세상에 침투하여 실현되는 하나님의 통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바로 그 나라의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물론, 하늘에 있는 나라,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이 땅으로 와서 이 땅에도 있으며 이 땅에서 실현되고 구체화되기를 원하는 나라입니다. 천국은 세상 저편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나라는 저세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으로 와서, 이 세상에도 있는 나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한결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라고 서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간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으로 여행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래서 이것은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 자체가 우리에게 오는 나라요, 온 나라요, 또 계속해서 올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죽음 저편 저 하늘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정태적 공간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미는 우선적으로 어떤 정태적인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동적인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저 하늘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우리에게 도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사후 세계의 어떤 공간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온다’ 혹은 ‘왔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는 것은 지상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달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 완성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요, 하나님 나라 자체입니다. 그 나라의 도래는 오로지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고, 지상에서 그 나라의 완성 역시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물론 먼저 하나님 나라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증언하며 섬겨야 할 책무가 있지만, 지상의 하나님 나라는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능력과 은혜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희생으로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죄악과 불의와 어두움과 고통 속에 있는 세상에 희망이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암울하고, 고통스럽고, 슬퍼도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로 왔고, 또 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그 실현을 위해 섬겨야 할 교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부패하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능력이 많으셔서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 영성은 불굴의 희망의 영성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세상으로 침투하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세상 속에서 진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완전히 이루어질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말은 하나님의 관심이 이 세상과 이 땅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그 뜻이, 그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는 이 세상의 종말론적 비전은 “새 하늘” 뿐만 아니라 “ 새 땅 ”이기도 합니다. 그때에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라고 합니다(계 21:2). 하나님의 관심은 이 땅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늘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늘에서는 그 뜻이 온전히 이루어졌으므로 그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영성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체념한 채, 저 하늘만 바라보는 현실도피적인 영성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바라보며 기도하는 영성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영성은 이 세상에 절망하고 혐오하는 염세적 영성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원하는 변혁적 영성입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의 영성은 죽음 이후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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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 한 그릇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눅17:16~21, 롬14:17 출 처보기

※복음서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오늘날 그걸 우리는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세상’이라고, 아래 설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평화로운 날이 올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열방을 판단하시고 다스리시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이 열방가운데 으뜸으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샬롬,

그 평화로운 안전한 시대가 분명히 올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그럼 그때가 언제인지 빨리 말씀해 주세요..’

그런 질문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동안 예수님께서 3년간 공생애 동안 가르치셨던 그 내용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처음에 오실 때부터 일관성 있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4:17절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그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가까이 왔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온갖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런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에 대한,

그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 어떻게 지금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사역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나라의 그 위대함, 그 힘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가,

지금 예수님께 이렇게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겁니다.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겠습니까?’

자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을 우리가 한 번 살펴봅시다.

본문 눅17:20~21절에 이렇게 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라고도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 라는 질문에

두 가지 , 아주 중요한 교리적인 답을 해 드리려고 합니다 .

◑1. 주님께서 답을 하시는데, 뭐라고 하시냐면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저기에 있는 저 국경선을 중심으로 해서,

저기에 있는 저 지역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여기는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가 통치”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시느냐?” 이것이 핵심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에게 낯선 개념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나라’, ‘국가’를 말할 때, 항상 영토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 간에 분쟁이 일어나면, 결국은 영토의 분쟁입니다.

자 우리가 국가 간의 분쟁을 말할 때, 영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라는 개념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겁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 그런 영토, 그런 땅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지금 누가 통치하고 있느냐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느냐, 누구의 주권 아래서 생활하고 있느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자 여기서 ‘나라’라는 말, 헬라어로 바실레이아 인데,

이 개념은 ‘영토’라는 개념보다는, ‘주권’이라는 그 개념이 굉장히 강합니다.

한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 거기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서, 그 넓은 그 전체를 다 장악했던 나라가 로마제국입니다.

그런데 그 넓은 터를 어떻게 다 국경선을 긋겠습니까?

어떻게 거기 사이사이에 보초를 세우고, 여기는 로마 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여기가 로마 제국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여기에서 로마의 통치가 인정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긴 로마의 주권이 통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거기가 로마 제국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라는 그 개념을 생각할 때,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가서.. 그런 장소/영역 개념보다는

누가 통치를 하고 있느냐, 누구의 주권/통치권 아래에서 살아가느냐?

이렇게 우리가 이해를 할 때, 훨씬 더 다가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임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눅17장의 바로 전에 일어난 사건을 한 번 보시죠.

눅17:11~19절에, 예수님께서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 보면, 10명을 고쳐주셨는데,

다 이제 병고침을 받고 기뻐서 다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딱 한 사람, 그것도 이방인 사마리아인은 너무 고마워서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무릎 꿇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 이 내용이, 바로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 바로 직전에 들어가 있는 ,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

왜냐하면, 10명이 병고침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정말 경험한 사람은,

이 중에 아이러니하게 이방인인 사마리아인 한 사람 뿐이라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고침을 받게 된 것에 대한 감사를 느끼고,

내가 이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느끼는

그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이런 땅의 개념,

영토의 개념으로 이해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그런 영역으로 이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라고 선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주권 아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일컬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설교를 이렇게 잡은 이유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신학을

한국교회가 그 동안에 좀 잘못 이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릇된 생각 중에 하나가, 마치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안이라는,

교회의 테두리라는 그 영토 안에서 성장하고, 확장된다 라고

잘못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아마 지금 ‘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그게 그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왜냐면 이 가르침이 굉장히 혼란스럽게 지금까지 진행되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라는 영토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킨다는 것은,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고

교회의 테두리를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교회성장이었습니다.

교회성장을 아무리 시켜도, 세상은 정화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건 많은 교인들의 생각에는, 교회가 할 일이 있고, 교회와 신자들이 할 일이 있고,

또 국가가 할 일이 있고, 또 믿지 않는 일반 세상 사람들이 할 일이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교회와 신자들이 할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저기에 있는 저 심령들을 교회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고,

그리고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의 가는 길대로 가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신앙에 아주 심각한 이원화 현상이 생겨버렸습니다.

세상과 나는 상관할 바가 없다는, 일종의 도피의식이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무관심해져 버렸습니다.

그럼 그 에너지를 어디다 쏟아내느냐?

그 모든 에너지를, 교회 건축에, 교회 성장에

교회 안에 복지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만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회가 성장되면

그 다음에 더 이상 더 갈데가 없으면, 교회를 더 크게 짓고, 더 이상 지을 수 없게 되었을 때는,

그 다음에는 지교회를 짓고, 여기 저기에 지교회를 지어서, 영토를 확장시키고,

그래서 ‘교회의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에 매서운 눈초리로 비판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교회는 성장했는데, 사회에 대해서 너무 외면했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

주권의 개념으로만 제대로 이해했다면 ,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서든지 보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세상에 나가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있는 어느 곳에, 그곳이 직장이든, 학교이든, 일터이든, 이웃이든, 내 가정이든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가 인정되는 그곳이라면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분의 주권 아래서 내가 생활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볼 때, ‘아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구나!’ 하고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성도가 해야 할 의무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일부 교인들이 먹고 마시는 문제로 꽤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7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십시오.” :19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 반드시 일어나야 되는 것이 마땅한데,

그러나 여러분, 싸우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서로 다투고, 서로 마음을 하나가 될 수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화평과 덕을 세울 때,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아무리 성장하고 대단한 조직과 건물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 진정한 하나님의 권위와 통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를 보여주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즘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이란 강좌도 열었습니다.

선교적 교회의 성도들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를 reality를

자기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중요한 교리를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나라의 중요한 교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이라고 했고요, 두 번째로 조금 더 나아가면,

◑2.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부터 임합니다. Here and Now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시작되어서

이제 주님 오실 때 완벽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터인데,

영생이라는 것과 같이 연결되는 겁니다.

영생은, 지금 내가 죽고 난 다음부터가 영생이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영생은 내가 하나님을 나의 삶에 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는 그 순간부터

영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나라에 중요한 교리적인 진리는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이미)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already이죠.

즉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일어날 그런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그 당시 유대인들은 종말론적인 사고를 갖고,

다가올 메시야 왕국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참자, 메시야가 오실 것이다. 그러면 우리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실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모든 체제가 다 무너지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샬롬이 오게 될 것이다.’

라는 미래적 기대 를 갖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었던 이 종말에 대한 개념은, 순식간에 세상이 뒤집혀지는

대 격변적인 미래관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구조와 질서가 다 무너지고,

메시야를 중심으로 한 왕국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눈에 거슬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지고, 정의가 없어지고, 부정부패가 가득하다 할지라도,

조금만 참자, 조금만 기다리자.. 이런 생각을 가졌던 겁니다.

그들의 사고는 대단히 미래지향적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완전히 다른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지금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앞으로 다가올 것만 기대하지 말고,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즐기라는 것입니다. 있다는 것입니다.

here and now입니다. 지금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이 부분에 있어서도, 한국교회는

그동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많은 오류를 범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는 것으로만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본의 아니게 현실을 자꾸 부인하고, 미래에만 소망을 두는,

그런 편향적인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영적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분이 요한계시록을 1만번 읽은 분입니다.

그러니까 그 내용을 완전히 머리에 꿰 차고 살았던 분입니다.

그리고 전국을 다니시면서 집회를 인도하셨는데,

그때마다 요한계시록에 나와있는 종말론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뭐냐면 우리 한국교회가,

길선주 목사님의 이 종말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 종말론은 매우 미래지향적이고,

그리고 현실을 부정하는, 그런 종말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부흥회는 물론 성도들을 많이 위로하는 데는 좋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일제치하에서 온갖 고통을 받고 있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이제 하나님의 마지막 때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기다리십시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고통에 집중하지 말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자’ 라는 말씀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고,

우리 신앙이 현실도피적 신앙이 되는데 영향을 주었다는

일부의 분석도 있습니다.

꼭 길선주 목사님의 종말론 뿐만 아니라, 대부분 우리 한국교회의 종말론이 미래적입니다 .

편향되었다는 뜻이죠.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천국’이라는 말을 쓰는데,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금방 떠오릅니까?

미래적인 천국이 금방 떠오릅니다.

물론 미래적인 요소가 있지만, 동시에 현재적입니다.

그런데 ‘천국’이란 단어가 마태복음에 수도 없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걸 미래적으로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천당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막상 우리가 찬송가를 뒤지면서,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땅의 개념이 아니라, 주권적 개념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마지막 때가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되었다’는

이런 개념의 찬송가를 한 번 불러보려고 눈을 비비고 봐도,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 이제 찬송가 앞에 목차가 나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의 찬송가를 묶어놓았습니다. 하나씩 열어보면 실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와 동일시 시켰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찬송을, 정상적인 교리로 부를 게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최근에 복음성가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노래를 신학적으로 조금 더 가깝게,

올바르게 작사해서 부르는 노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좋은 씨앗’이라는 CCM그룹이 부른 ‘하나님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노래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시작된 나라

주님이 오시는 날, 영원히 완성되는 나라

수많은 나라와 백성들, 기다렸던 그 나라

수많은 세월 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땅

미움도 분쟁도 슬픔도 고통도 없는 나라

사자와 어린 양이 다함께 뛰어놀 거룩한 땅♪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시작한 나라,

주님이 오시는 날에 완성되는 나라 라고 가사를 붙였습니다.

여기에도 100% 신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일부 들어 있지만,

그래도 찬송가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 찬송보다는 백 배 낫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에 일어날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만 생각한 겁니다.

지금 돌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될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중심,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 안으로만 들어오게 만들면 되는 것처럼..

이것은 교회가 하나의 도피적인 신앙센터가 되어버린 겁니다.

▲저는 그래서 교회를 방주라고 표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노아의 방주에 나오는 그런 이미지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방주 바깥을 너무 무시해 버리니까요.

자꾸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안 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가 인정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그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참 우리가 저도 그랬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할 때만 해도 별 생각없이 말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 표현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합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합시다.’

자 이런 표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다, 확장한다.. 이런 표현은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습니다. 매우 비성경적인 표현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는 건 마치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순종해서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발전되고 확장된다는 그런 어마어마한 오류를 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확장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해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럼 성경에는 어떤 표현을 사용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들어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받으라’고 되어있고, ‘들어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을 받고 인정하라고 , 하나님의 주권 아래 들어가서 살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개념에 확장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모아지고 커져서,

어디를 가든지 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는 것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에 너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런 두 가지 오류를 범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교리가 건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올바로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영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토가 없습니다. 왜요?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하나님의 통치가 인정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쳐 주셨는데,

그 10명 중에서 9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인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 사이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 이방인, 사마리아인은 다시 주님께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마음에 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

교회라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싸움을 일으키고, 서로 다투고, 분쟁이 일어나고, 누가 더 머리냐,

이런 계속 싸움이 일어난다고 하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마5~7장에 산상수훈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귀한 설교를 하신 그 배후에는, 바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도덕관과 세계관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에서 가장 중심되는 메시지가 6:33절인데,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인정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것 걱정하지 말고,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의를 너희 삶 가운데서 구하면,

이 모든 것이 다 자연스럽게 너희에게 더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삶을, 이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보여줄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걸 보면서 ‘아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구나!’ 라고 감탄하며

주께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밖혀 돌아가시고,

나의 구세주가 되었다고 믿으신다면,

이제는 예수님이 나의 삶에 주인 Lord가 되신 다는 것도 믿으셔야 합니다.

▲골프 치시는 분들이 늘 그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골프라는게, 골프를 통해서 인생을 배웁니다.

어깨에 힘 좀 줘 보세요. 이게 안 됩니다. 누가 내 스윙을 보고 있으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해 가지고,

‘그래 한 번 너희들 보는 앞에서 내 비거리를 보여주겠다’ 하고,

힘을 꽉 주고 쳐 보면, 공이 휘어서 엉뚱한 데로 가든지,

아니면 아주 낮게 깔려서 멀리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다음 홀에 가서, 회개하고, 어깨에 힘을 다 빼고,

내 모습 이대로,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고, 겸손하게 힘을 다 빼고

적당히 몸에 힘을 주고 치면, 생각했던 것보다 멀리 간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깨에 힘주면서 살면 안 됩니다.

살아가면서 ‘이건 다 내꺼야.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들,

뭐 다 내꺼야.. 이건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여러분 이런 생각 가지면 안 됩니다.

주님이 하루 아침에 다 가져가실 수도 있으십니다.

어깨 힘을 빼고, 내 모습 이대로, 오늘도 주님, 나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선교적 교회의 성도로서, 이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를 보여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유대인에게 하나님 나라는 낯선 말이 아니다. 구약 선지자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만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기 욕심만 차리고 백성을 돌보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그들을 책망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정의로운 나라를 선포하였다. (사9:7, 렘23:5, 33:15, 슥8:8) 결국 나라가 바벨론에 망하고 헬라와 로마에 유린당하자, 유대 백성은 하나님께서 정의롭고 공평하게 다스리는 나라를 꿈꾸었다. 그러나 덧없이 세월만 흘러가고 소망은 점점 헛된 망상처럼 바뀌어져갔다.

유대인 말고 헬라 사람이나 이방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알아들었을까?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였다.

만일 하나님 나라를 말로 설명하려 했다면, 그게 얼마나 가능했을까? 이방인은 고사하고 유대인조차도 비웃었을지 모른다. 나라가 망한 이후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세울 메시아라고 선언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가짜였다. 말뿐이었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

“말로는 뭘 못하겠어!”

만일 예수님께서 말로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면,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을까? 설교를 아무리 잘한다 할지라도 말 뿐인 설교는 힘이 없기 마련이다. 예수님은 가르치고 깨닫게 하므로 사람들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말로만 전파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통치는 단지 기도하며 소망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는 보게 해주고 만지게 해주어야 했다. 그러면에서 예수님은 곧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통치)였다. 신학적 용어로 예수님의 오심은 곧 ‘그 나라의 현존’(現存 –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이루어짐)이다.

처음 그리스도인들이 헌신했던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이루어짐을 보았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해 이야기했던 분이고, 동시에 그 나라를 이루신 분이시다.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었다.

복음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세례 요한은 그 나라를 이렇게 묘사한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눅3:4-6 새번역)

세례요한은 구약 선지자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 나라는 지금까지 존재하던 나라와 전혀 다른 나라다. 높은 산과 골짜기가 있듯이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차별이 있었다. 돈 때문에, 신분 때문에, 지식 때문에, 권력 때문에, 인종 때문에, 남녀로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런 차별이 메꾸어져 공평하게 될 것이다. 굽은 것은 곧게 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될 것이다. 그 나라는 힘센 사람, 가진 사람만 구원받는 나라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보게 될 것이다.

마리아는 좀더 과격하게 하나님 나라를 말하였다.

“그는(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눅1:51-53, 새번역)

마리아가 노래한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나라다. 무소불위 권력을 자랑하던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비천한 자를 앉게 하신다. 이건 완전 반역이다. 굶주린 사람은 배부르게 될 것이고 부유하고 불뚝 나온 배를 두드리던 사람은 빈손이 될 것이다.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눅4:18-20, 새번역)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고 실현되는 나라다. 가난한 사람, 포로 된 사람,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나라다. 하나님 나라는 이론도 아니고, 말뿐인 나라도 아니다. 교회 의자에 앉아서 기도만 하면 어느 날 갑자기 임하는 나라가 아니다. 말씀을 읽고 큐티만 열심히 하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실천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듀크 대학의 기독교 윤리학 교수인 알렌 버히(Allen Verhey, 1945~2014)는 말했다. “나라가 사람들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라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사건들의 상태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하며 기다렸다. 세상이 썩어 돌아가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영성 생활만 힘을 쏟고, 개인 신앙을 유지하면서,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오셔서 저들을 멸하시고 자신들은 구원하실 나라를 소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는 자에게 곧 그 나라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마11:12)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승천 하시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해보자.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다. 이제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 그런데 내가 떠나고 나면, 너희들이 나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이제부터는 조용히 모여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어라.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룰 능력이 없으니 그저 개인 신앙생활만 힘을 쏟고 영성에만 관심을 가져라!”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한 후 제자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저 말로만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을까? 산속이나 동굴 속으로 들어가 기도만 하고 영성 수련만 했을까? 그들은 세상으로 흩어져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를 실현하도록 힘썼다. 비록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들은 사람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이 어떤 나라인지 이방에 보여주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든, 계시지 않든 계속해서 이루어야 할 나라다.

‘하나님 나라’는 말과 혀로 이루는 나라가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이루는 나라다. 이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를 이방에 보여주어야 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자로서 자의식을 분명히 가졌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확증하고자 성찬 예식을 거행하였다. 비록 이 땅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 땅에 존재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함을 알았다.

세상 나라를 전복하는 하나님 나라,

차별과 억압과 착취가 없는 정의와 공의가 강수같이 흐르는 하나님의 공동체

마음 터놓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누구 하나 뒷이야기 하지 않고 품어주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이방인과 외국인과 나그네를 거리낌 없이 환대하고 받아주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

말로만 사랑하고 설교로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힘쓰고 애쓰는 공동체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 나라다.

참고도서

1. 레슬리 뉴비긴, 오픈 시크릿, 홍병룡 옮김 (복있는 사람;서울) 2017년

2. 도널드 크레이빌, ‘예수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 김기철 옮김 (복있는 사람;서울) 2017년

3. 알렌 버히, 신약 성경 윤리, 김경진 옮김 (솔로몬;서울)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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