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를 믿는 이유 | 인간이 신을 믿는 이유는 알고보면 과학적이다? 종교를 믿는 과학적인 이유! / 전지적 관찰자 시점, 최재천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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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알고보면 과학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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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종교를 믿는 이유는? – 네이버 블로그

서구인들은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칠면조 요리가 먹고 싶을 것이다. 사회문화적 욕구가 발동하는 것이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욕구는 충족되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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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믿는 사람은 이유가 뭘까요?? ::: 82cook.com 자유게시판

제 목 : 종교를 믿는 사람은 이유가 뭘까요?? …. 조회수 : 3,358. 작성일 : 2020-08-24 16:41:40. 3066404. 하느님 예수.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존재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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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아하 토큰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문·예술 – 인류는 왜 보이지 않는 신에게 의존하며 종교를 만들까요? 종교때문에 시작된 전쟁이 끊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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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독교를 믿는 것보다 교회를 다니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사원에 가보기도 하고 불교 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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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종교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 뉴스파워

그들이 믿는 종교 창시자들이나 경전들은 모두 선한 행위를 권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종교인들의 위선적인 모습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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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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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나무위키

종교학, 신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에서 종교를 정의하고자 … 종교는 반드시 초자연적인(비과학적인)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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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내가 종교를 갖게 된 이유 < 나의 우울증 치유기 < 마음 ...

그는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해 자신이 무신론자에서 기독교 신자로 변화된 과정을 그렇게 밝혔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종교는 유의미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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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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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왜 종교가 필요한지 묻는다면 | 중앙일보

하지만 옛날에는 선한 사람 뿐 아니라 악한 사람도 신을 믿고 종교를 가졌다. 골리앗이 다윗과 싸울 때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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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믿는 생물학자의 모순된 삶의 이야기. – BRIC

어쨌든 많은 분들이 반감을 가지는 것 이유가 자칭 타칭 “””독실””””한 신자 부시나 MB같은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기독교를 자신의 믿음의 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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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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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최재천의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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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종교를 믿는 이유는?

이일야의 신해행증으로 본 백문백답

현불뉴스 승인 2019.01.18

인간은 무엇인가를 욕구하는 존재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다. 이런 개인적 욕구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형성된 욕구도 있다. 평소에는 생각이 안 나는데 설날이 되면 떡국이 먹고 싶고 추석이 다가오면 송편이, 동짓날엔 팥죽이 먹고 싶다. 서구인들은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칠면조 요리가 먹고 싶을 것이다. 사회문화적 욕구가 발동하는 것이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욕구는 충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배가 고픈데도 먹지 않으면 굶어죽고 설날인데도 떡국을 먹지 않으면 마음에 뭔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온다.

세속적인(俗) 삶에서 벗어나 거룩한(聖) 삶을 추구하는 종교적 욕구도 마찬가지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주말이면 교회와 성당, 사찰 등에 간다. 종교적 욕구도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종교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종교적 욕구 또한 개인적, 사회문화적 욕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욕구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아무리 건강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유한한 실존 앞에 무력감을 느끼지만,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여러 종교에서 영원한 삶, 즉 영생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교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종교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는 유형을 건강형(Healthy minded)과 병적인 형(Sicked minded)으로 구분하였다. 건강형이란 친구나 부모를 따라 교회나 성당에 가는 것처럼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종교란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에 속한다. 반면 병적인 형은 태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의 유한성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에 귀의하는 유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생사의 문제는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부를 차지한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종교가들은 대개 병적인 형에 속한다. 석가모니 붓다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왕자로 태어나 화려한 삶을 살다가 성문 밖에서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과 마주한다. 그리고 생로병사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실존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다. 그는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를 하고 6년간의 처절한 고행을 한다. 마침내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이 문제를 해결한다. 종교적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킨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처럼 생사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을 자력(自力)이라 부른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믿는 불교는 기본적으로 어느 누구의 힘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력신앙이다. 스스로 생사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 입장이다.

이와 달리 기독교에 의하면 인간은 결코 스스로 생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은 지음을 받은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사를 해결하는 주체도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이처럼 신의 절대적인 힘에 의지해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타력신앙(他力信仰)이라 한다.

자력이든 타력이든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나고 죽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력한 종교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타력신앙의 전통에서는 종교적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키고 영생을 얻는 것을 구원이라 한다. 반면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해결하는 불교와 같은 전통에서는 깨달음이나 열반 혹은 해탈이라 부른다.

아무리 위대한 학문이라도 이러한 생사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종교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가리켜 ‘으뜸가는(宗) 가르침(敎)’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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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믿는 사람은 이유가 뭘까요?? ::: 82cook.com 자유게시판

3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ㅇㅇ ‘20.8.24 4:44 PM (211.193.xxx.134) 일단 그들은

종교를 모릅니다

이런 것을 일반인들이 알까요?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2965460&page=9&searchType=sear…

2. ㅇㅇ ‘20.8.24 4:46 PM (211.193.xxx.134) 그리고 합리적 과학적 이성적

이런 단어와 거리가 좀 먼 사람들

합리적인 분들은 뭔가

해결이 안되면 원인을 찾고

그것이 현재 불가능이면

포기를 하지

이상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죠

3. 에고 ‘20.8.24 4:47 PM (211.114.xxx.15) 요즘 울집 남편이랑 저랑 하는 이야기가 딱 님 생각입니다

저는 그냥 종교를 인정은 하는데 남편은 심하게 말해요 (남편은 정리고 교회고 성당이고 다 포함)

잠깐 아는 사람 통해 다녀본적이 있는데 믿음이 모든 일에 적용 되더라구요

이사가도 하느님뜻 애가 아파도 하느님뜻 등등 조용히 드는 생각이 하나님 바쁘시겠다 였어요

4. 하나님이 있다고 ‘20.8.24 4:48 PM (220.94.xxx.57) 믿는거죠

매일 성경읽고 모든 영광은 다 하나님 덕분이고

힘든일도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거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내 삶의 전부는 하나님인거고

어떤일이 생기더라도 다 하나님이 계획하신일이라

믿고

기도하고 교회다니고 십일조하고 헌금하고

심지어 목사는 전도해야지만이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매주 전도를 시키죠

돈생기면 감사헌금, 교회 증축해야되면 또 헌금

근데 교회다니시는분들은 다 모든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던데요

맞나요?

5. yje1 ‘20.8.24 4:48 PM (223.62.xxx.148) 저는 지구상이나 우주의 돌아가는 규칙들을 보며 신이 잇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 세상..

6. ㅇㅇ ‘20.8.24 4:48 PM (211.193.xxx.134)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님이 말씀하시는

사기꾼들에게

속은 겁니다

판사도 보이스피싱에 당한 사람도 있다더군요

그런 것과 비슷하죠

7. 원글이 ‘20.8.24 4:50 PM (211.248.xxx.187) 근데 만약 하느님이 있다고 믿어서 다니는거라면요…

그들이 그렇게 믿게되는 과정이랄까 계기랄까? 그런게 있는걸까요??

종교에 빠지기 전엔 당연히 “신이 있어????” 이랬을텐데,

저럤던 사람들이 저렇게 맹목적으로 종교에 빠져들게 되는 심리나 계기? 과정이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뭐..그걸 제가 듣는다고해도 납득되진 않겠지만요

8. ㅇㅇ ‘20.8.24 4:55 PM (211.248.xxx.59) 정신병의 일종 아닐까요?

소리도 들리고 느껴지고 그런다던데

조현병도 그렇잖아요

9. ㅇㅇ ‘20.8.24 4:55 PM (211.193.xxx.134) 이세상 모든 잘나가는 사기꾼은

상대방이 믿게 판을 만듭니다

10. 디- ‘20.8.24 4:56 PM (50.47.xxx.164) 자기는 종교 안 믿는다고 너무 우월감 가지지 말아요. 사람들을 보니 다른 대상에 그만한 신앙심을 가진 경우가 많더라고요.

11. 의문 ‘20.8.24 5:06 PM (118.36.xxx.97) 저도 항상 의문이에요.

세계 유명 석학들,우리나라의 지성인들 정치인들 종교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12. 저는 ‘20.8.24 5:07 PM (180.65.xxx.176) 이 세상이 우연히 생겨났다는게 더 안믿어져서요.

절대자가있고 창조가 있었다고 믿게됩니다.

그게 제 신앙의 시작이었어요.

13. 저는 ‘20.8.24 5:16 PM (203.251.xxx.221) 세상기준 훌륭한 사람들도 다 믿으니 그게 신기할 뿐이죠.

14. .. ‘20.8.24 5:16 PM (125.187.xxx.25) 예전에 불펜에서 전직 박수무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병원에는 몸이 아픈 사람이 가고 종교에는 마음이나 정신이 아픈 사람이 가는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15. ㅇㅇ ‘20.8.24 5:19 PM (115.93.xxx.230)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거대한 에너지? 영은 있다고 생각해요.근데 그게 우리가 두려워하고 신봉하고 주말마다 가서 예배하고 미사드리고 찬양해야 하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그건 인간의 불안심리를 이용해서 이해관계 있는 종교인들,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신화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16. . . ‘20.8.24 5:22 PM (203.170.xxx.178) 하나님이 있어도 개독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아닐껄요?

17. …… ‘20.8.24 5:23 PM (125.136.xxx.121) 만날 사람들이 교회에 다 있나봐요. 교회안가면 모든 인간관계가 끝나나??

18. .. ‘20.8.24 5:27 PM (218.235.xxx.25) 외로워서 그런거 같아요.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모일 수 있잖아요.

예배말고도 소모임도 많고 같이 찬양하면서

동질감 느낄 수 있는 모임이잖아요.

우주를 보고 신을 믿는다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던데

성경에서 쓰여진 천지창조는 신화와 같은 얘기 아닌가요..

우주는 과학의 영역인데 ..

우주가 너무 정교해서 신이 있다니.. ㅜㅜ

19. 무엇보다 ‘20.8.24 5:29 PM (121.134.xxx.37) 본인을 위해서예요. 대부분 이기적으로 본인 편한대로 믿어서 욕먹는거구요.

제주위에 정말 열심히 이기적으로 사는 분들이 하나같이 교인이예요. 주위는 눈쌀찌푸리지만 본인은 얼마나 행복한줄 몰라요.

한분은 그러더라구요. 하나님 빽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데, 어디가서도 기죽지 않는다고요.

20. ㅇㅇ ‘20.8.24 5:33 PM (175.114.xxx.36) 자신의 부조리를 반성하고 직시하기 두려워서 신에게 떠맡기는 거죠.

내가 부족한건 신에게 기대고 용서해줄거라고…

그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목사가 되고.

전 무신론자입니다.

자연의 법칙이 신 자체일 수도 있그건 그겠다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건 그냥 자연의 원리라고 생각해요.

21. … ‘20.8.24 5:33 PM (27.100.xxx.149) 영적 체험이 있어서요..

22. 60 넘어 ‘20.8.24 5:47 PM (211.206.xxx.180) 가는 사람들은 뻔하죠.

사후 세계 두려워서.

23. ᆢ ‘20.8.24 5:53 PM (211.243.xxx.238) 많이 어이없는 글이네요

신앙이 실체가 없는걸로 아시나봐요

하긴 체험이 없으니 그러겠지만요

다른 사람들 바보 아닙니다

혼자만의 판단으로 남의 종교 신앙

판단하심 오판이에요

언제나 도움 받고 의지하고 맡길수있으니

믿는겁니다

체험 안했으면 알수없는일이겠지요

24. 왜냐면요 ‘20.8.24 5:54 PM (61.84.xxx.134)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믿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살아서 역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에요..

내눈에 안보인다고 안계신게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수 있게 해놨다구요….대자연을 보면서도 안느껴지나요?

믿지 않는 자는 보여줘도 믿지 않을 거고

그것자체로 이미 심판을 받은겁니다.

부디 보이지않는 세상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래서 단 한명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알게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25. ㅇㅇ ‘20.8.24 6:03 PM (119.149.xxx.122) 인간은 나약한 존재죠

죽음과 그밖의 많은 일들이 인간의 힘으로만은

안된다는걸 아니까요

인간이 가장 낮은 순간에 닥치게 될때

과연 어떨까 생각해 보세요

믿건 안믿건 자유지만

부디 신은 없다 라고 말하는 모든분들

죽는날까지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는 일이 없게 되길 바랠게요

26. … ‘20.8.24 6:13 PM (203.170.xxx.178) 예수쟁이들 설교 꼴뵈기 싫어

잘난척 오진다

남한테 피해나 주지마라

27. 6살아이 ‘20.8.24 6:15 PM (106.197.xxx.20) 어린아이가 친족에게 성폭행 당하는 일도 하나님의 뜻인가요? 당할때 왜? 도와주지 않는거죠? 대답 좀 해주세요.

28. ㅇㅇ ‘20.8.24 6:16 PM (211.193.xxx.134) 아인슈타인 ‘자필 편지’ 경매에서 32억원 낙찰…”종교·철학적 견해 드러나

“http://m.viva100.com/view.php?key=20181205010001667

독일어로 작성된 편지에는 “나에게 ‘신’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나약함을 나타내는 표현이자 그 결과로 여겨진다. 성경은 신성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시적인 전설의 모음일 뿐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29. 신이라는 망상 ‘20.8.24 6:23 PM (116.41.xxx.141) 이기적 유전자 라는 책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원제 The God Delusion)은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종교라는 집단의 행위를 망상이라고

까지 해요 ..

특히 우리나라 개신교는 서북청년단이라는 극우집단에서 비롯된 영락교회모델이 퍼진거라서

나치즘 파시즘에 일주일에 몇번 수금까지 가능하니 올매나 짭잘한 장사인지 ㅜ

30. .. ‘20.8.24 6:25 PM (125.187.xxx.25)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영적 체험을 해요. 다만 말을 안 하고 열심히 살 뿐이죠.

종교인들만 영적 체험을 한다? 신이 사랑한다? 뭔넘의 신이 그래요. 일진이나 조폭 수준이죠.

31. 음 ‘20.8.24 6:31 PM (223.62.xxx.153) 종교는 없지만

신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나 부처를 말하는게 아니구요

광활한 이 우주 자체가 곧 신이라고 생각해요

신의 심판이란 니가 잘했고 못 했고를 따지는게 아니라

인간은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정화 작용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공동체규칙, 국가제도, 그 외 문화라고 하는 것들이 생기지 않았겠죠.

그런데 구석기시대를 지나, 신석기시대 말기, 지금부터 1만년 전, BC6,000년전쯤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습니다.

농경사회는 더 이상 자연채집활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목축은 더 이상 수렵활동이 필요 없어졌죠.

인간에게는 신체적으로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없으니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채집과 수렵을 해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농경과 목축은 인류가 더 이상 확률이 낮은 먹거리를 얻는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농경과 목축은 지속적으로 잉여노동과 잉여생산물을 발생시킵니다.

누군가는 일하지 않는 부류가 생겨나게 되죠.

무노동계급의 탄생은 반대로 과노동계급을 종으로 부릴 수 있는 권력을 확대하게 됩니다.

더 많은 무노동 생산물을 얻기 위해 부족간 전쟁을 일으켜 노예제도도 만들죠.

공동체가 다 먹고도 남는 잉여생산물은 권력과 전쟁을 더욱 부추깁니다.

노예제도만 아니라, 농기구와 무기도 발달하게 되죠.

그래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대부분 청동칼, 청동화살촉이죠.

그런데 종교는 뭘 믿는 것일까요?

구석기시대의 종교는 불확실성때문에 거주지에서 멀리 채집이나 수렵을 나갈 때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신석기시대에는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주었을 것입니다.

부족전쟁이 일어나면서, 전쟁의 결과에 대한 종교적 기대감이 커졌을 것입니다.

인류는 승전한 집단과 패전한 집단간 구분이 되었을 것이고,

거기에 종교는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 같습니다.

승전한 집단의 신은 패전한 집단의 신보다 강하고 높은 신으로 인식되었겠죠.

사실은 공동체 안에서 무노동계급이 자기들이 놀고 먹는 정당성을 확보하기위해,

하늘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신의 신탁을 받았기때문이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과노동계급의 생산물을 무노동으로 차지하고 노동하지 않는 시간을 권력과 종교를 발전시키는 데에 사용했겠지요.

전쟁도 불사하며 자국의 권력과 종교를 다른 나라에게 인정하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 뻔합니다.

이렇게 전쟁 역시 신탁에 의한 것이고,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권력자인 척 하면서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에게 신탁이라며 전쟁의 명분을 삼았을 것입니다.

상대 부족도 동일하게 전쟁에 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승전한 부족의 신은 패전 부족의 신보다 높은 신이라고 인정하게 되었겠지요.

인류 최초의 토판 문자가 기록된, 지금의 터키와 시리아지역에서는,

달과 별을 신으로 모셨습니다.

이집트가 숭배했던 태양은 인간과 생명을 태워 죽이는 파괴의 신이지만, 달과 별은 밤길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했다는 군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신들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제우스같은 그들의 신은 사실은 전쟁 영웅을 형상화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사실 그리스문화에서 신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숭배하게 된 이유는 전쟁영웅을 칭송하기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로 불리는 유태인들에게 신은 하나님(우리말 번역으로)이고,

그들의 신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설화와 이집트의 신전으로의 항해, 그리스신화의 전쟁영웅이 모두 합쳐진 개념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자님이 종교때문에 시작된 전쟁을 언급하셨기에, 혹시나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전쟁을 염두에 두셨나 생각해 보고 설명해 봅니다.

유대교의 신에 대한 히브리어식 발음은 ‘야훼’, 이슬람교는 ‘알라’, 한반도 고조선의 신은 한자로는 ‘환인(桓因)’이며, 한민족에게는 ‘알’로 발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 신의 이름은 모두 근원, 시작, ‘I am who I am’, ‘최초 근원으로서 스스로 있는 자’의 개념입니다.

기원전 2,500년경, 세계 최대의 삼각주 평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메소포타미아에 제국화가 시작됩니다.

인류 최초의 제국화를 위한 이 끝도 없는 전쟁을 피해 현재 팔레스타인지역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장남, 이스마엘을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던 이집트여인에게서 낳았습니다.

이후에 사라는 이삭을 낳았다고 합니다.

한 조상, 아브라함 아래 태어난 첫째 아들은 이슬람교의 근원이 되고,

둘째는 유대교의 조상이 됩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유일신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하나님, 이슬람교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그러나 한반도의 환인은 하늘님으로 유일신이라기보다는 모든 신의 통칭, 범신론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이 두 개의 종교,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나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인 이유로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전쟁은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더 일하지 않고도 더 많은 소유를 갖게 되고, 가진 소유의 가치를 더 높이려는 의도이지요.

제국들이 식민지를 만들고 플렌테이션을 통해 부를 쌓은 것이나,

일본이 2차대전에 뛰어들어 아시아를 일본제품 소비자로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종교는 평화를 지향하고, 불의에 저항하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

이런 정의로움이 없다면, 누가 종교를 관심이나 갖겠습니까?

그럼, 왜 종교때문에 전쟁이 일어날까요?

종교도 역시 경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은 검소하고 박애를 강조하지만,

종교 역시 경제공동체이기때문에, 권력과 전쟁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지도자들이 부를 쌓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들이 누리는 무노동으로 잉여자본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과연 그들이 가진 종교 경전이나, 진리라는 개념에 맞지 않는다고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공동체와 공동체간 전쟁, 부족간 전쟁, 국가간 전쟁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영역다툼이 생기겠죠.

한반도에는 단군신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는 동학의 인내천사상으로 이어집니다.

이 사상은 고려의 몽골제국 침략때문에 형성되어진 사상이라고 볼 수 있고,

단군신화는 한반도 시민들이 제국을 형성하기위한 침략전쟁을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지금 전세계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너무나 이상한 인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국가가 수천년간 평화를 사랑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웃 국가를 침략하려 하지 않고,

상생하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한반도의 지정학적 영향도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민족의 종교, 단군신화 속 철학과 사상을 생각해봅니다.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평화와 정의를 표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종교적 신념보다 권력과 전쟁을 선호하기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 민족처럼, 평화와 정의라는 신념을 위하여 권력자들의 전쟁욕망을 거부할 용기가 있다면,

인류의 종교는 그 종교가 가진 참됨을 실천할 것입니다.

결국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이죠.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녔던 교회. 그곳에서 저는 당연히 종교를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임원 활동을 하고.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했습니다. 전도상을 받고 전도에 힘쓰며. 다른 사람을 위해 매일 일어나 중보기도를 했으며. 성경 통독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결혼 후 의문이 들었습니다.

믿음은 조직 안에서만 가능한가 였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믿는 것보다 교회를 다니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사원에 가보기도 하고 불교 사원과 법당에 가보기도 했습니다. 브라만교 스님을 만나기도 하고 점을 치는 사람과 만나 인생에 대해 논하기도 했습니다. 길에서 도를 아십니까 아주머니와 한시간 동안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삶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 돈에 대한 문제 그리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결핍된 모습이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부분은 다양한 관점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종교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으로 인해서 수천년동안 각 종교는 지금까지 존재했습니다.

종교는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목적에 모순이 생기게 되면 어떤 종교도 그 생명이 영원히 지속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들도 대부분 그 당시엔 매우 파격적인 종교였습니다.

믿음과 의심 사이.

종교를 믿게 되면 무엇보다 믿음의 대상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완전한 믿음이 아닌 경우엔 믿음이 아닌 의심이 생기게 됩니다. 의심은 믿음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믿는다고 하더라도 늘 불안에 흔들리게 됩니다.

물질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어떤 종교에서나 가르치는 것입니다. 물질 자체는 어떤 것이든 영원할 수 없고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에서 사랑을 가르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삶 가운데 사랑의 중요성을 가장 잘 가르치는 것도 종교입니다.

믿음은 변하기도 합니다. 믿음에 대한 대상이 변하거나 내가 변하게 되면 그 믿음은 깨지곤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한번의 믿음으로 족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해야합니다. 종교 자체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 지혜로운 변화가 필요하며. 믿는 사람도 세상이 변하더라도 종교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정말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것은 늘 큰 감동이 있습니다. 다른 말보다 그 삶 자체가 믿음이라면 누구나 그 종교를 믿고 싶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마케팅을 할 필요도 없고.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고민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수한 믿음에 대한 모습만으로도 종교가 존재해야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최근들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청년 이하 세대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청년 세대가 물질만을 사랑해서 혹은 현실 자체가 힘들어서 믿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답은 틀렸습니다. 단지 기존에 믿는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삶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원인입니다.

종교의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을 이야기 하지 않는 종교는 없습니다. 모두가 세상사가 힘들고 희망이 없을 때. 처세술이 득세하고 불신이 가득한 시대에 진정한 사랑을 보여줌으로 인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종교들은 수천년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간혹 종교 생활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공통된 사항은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핵심 가운데 사랑이 비어 있음이 실망 원인이었습니다. 물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사랑이 없는 종교 단체라면 이미 그 목적은 다한 것으로 존재의 이유는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개인에 대한 죄책감.

종교를 믿지 않는다면 정죄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죄에 대한 판단은 오직 신이 할 수 있음에도 각 사람들의 잣대로 인한 오해와 편견은 사람들을 지치게 합니다. 각종 규범은 사람이 진정 해방되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 자체에서 모순됩니다.

믿음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믿음이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 믿음이 무엇인지 오해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은 절대적으로 그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믿음은 강해지기도 깨지기도 하는 것이기에 어느 순간만 보며 완벽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스스로 믿음에 대한 의심이 든다면 그것은 분명 자신이 해결해야 할 부분입니다. 덮어두고 세월을 보내게 되면 해소되지 않은 것은 결국 불신이 싹트는 계기가 됩니다. 믿음에서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강제로 믿게 할 수 없습니다. 믿기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각 종교보다 중요한 것.

각 종교의 이름과 단체, 규모 등. 외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전과 달리 불교와 이슬람등 타 종교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사랑과 존중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었습니다. 각자 믿는 것에 대한 존중은 필요합니다. 자신이 믿는 것만이 진리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정죄와 다름없습니다.

만약 내가 믿는 믿음을 상대에게 권하고 싶다면 그저 자신이 받는 믿음의 대상으로부터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면 됩니다. 그것이 아닌 요란한 방법은 결국 빛이 언젠가 사라집니다. 본질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각자의 삶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염원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비대해지기 시작하면서 본질이 흐려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 종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종교 안에 생명이 사라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는 곧 사랑.

사랑을 하게 되면 마음엔 충만함이 생깁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오직 그 둘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 역시 그 존재만으로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어떠한 행위를 해야만 받는 사랑이라면 진정한 사랑은 아닙니다. 이런 사랑은 주고서 돌아오길 기대기 마련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우리 존재 이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다고 모든 종교는 말합니다. 그 목적은 각자 중요한 위치를 갖습니다. 그렇기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태어났다면 그 순간 모든 것은 준비가 됩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일하는 것 등. 자신이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탄생합니다.

단지 준비된 것들을 믿지 못하는 우리들이 불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 뿐입니다. 삶 속에서 모두가 깨닫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될일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로운 종교급 믿음의 탄생 내로남불

특히 완벽만을 추구하고 싶은 우리는 이 목적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세상에 준비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경쟁에서 뺏어야만 내것이 된다는 반대로의 믿음입니다. 그 반대로의 믿음은 강력한 힘을 지녔고 실재로 힘을 발휘했습니다. 세계에서 유래없는 경쟁사회를 만들었고. 힘이 있는 사람들만 더 갖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나의 자녀만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근본적인 문제의 접근 보다는 내로남불 식으로 모든 것들이 처리되었습니다. 남은 몰라도 나만 잘되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 분위기였고. 모두가 경쟁밖에 모르게 되었습니다. 90 프로가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10만을 위한 세상을 90프로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믿어주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무엇인가는 중요합니다. 모두가 사회에 대한 믿음과 종교 안에서의 사랑이 충만했다면 이런 현재 상황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회도 종교도 목적을 상실한채 다른 믿음을 함께 추구했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했고 그곳에 사람들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결론.

종교에 대한 고민은 30년을 생활하고 나서야 뚜렷한 관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종교를 떠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종교를 믿고 싶었지만 믿지 못하는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단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종교가 존재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과 행복추구를 위해서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으면서도 그 안에서 불행과 불신이 만연하면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각자에게 맞는 종교는 따로 있을 수 있습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진리 역시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종교는 모두 사랑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종굔는 삶을 구속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유를 전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안에서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좁은 곳이 아닌 트여있는 시각에서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해소가 됩니다.

종교가 있거나 없거나 결국 세상엔 사랑과 믿음은 필요합니다. 돈만으로 추구할 수 없는 것들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를 통해서 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면 좀더 따듯한 세상이 되리라 기대해봅니다.

이상 양평 김한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이 종교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한국 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newsp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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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내가 종교를 갖게 된 이유 < 나의 우울증 치유기 < 마음 < 기사본문

지성에서 영성으로, 종교가 주는 위안

무신론자로 있다가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는 대개 두 타입이다.

첫째, 자기 힘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시련에 휘말렸을 때다. 자기 자신, 또는 가까운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신을 찾는 경우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축복’, ‘은혜’라고 말한다.

둘째, 스스로 자기 고민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자각하고 절대자에게 의존을 선택한 경우다. 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나 존재론적 자각의 해답을 신에게 구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교만을 포기하고 겸손을 선택한 것이다.

내 경우는 두 번째에 가깝다고 할까.

평생을 작가, 평론가, 교수로 활동해온 ‘무신론자’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몇 년 전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된 계기는 위의 두 가지 경우를 다 포함하고 있다. 사랑하는 딸의 지병과 20대 때부터 느낀 근원적 고독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해 자신이 무신론자에서 기독교 신자로 변화된 과정을 그렇게 밝혔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종교는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생과 사, 살아온 인생의 의미, 사후 세계, 절대자 등 생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의 중압감 내지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 우리는 종교를 생각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절대자와 대화를 나누고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평화와 구원을 갈망한다.

종교가 인간의 삶, 특히 노년층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대부분의 연구 결과가 종교를 갖고 있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총체적 삶의 질의 수준, 삶의 만족도, 행복도가 모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내세를 강조하는 종교적 가치관을 통해서 죽음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노년기 인간관계망을 형성하는 등 노후 생활을 잘 하고 있으며 사망률, 유병률, 소외감 측면에서도 무신론자보다 훨씬 나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미숙과 박민정의 논문 ‘종교가 노인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종교는 대개 건강, 소속감, 사고방식, 위기 극복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2012년 10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례적으로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의 ‘사후세계 체험기’를 표지기사로 실어 집중 조명했다.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이자 신경외과 전문의인 이븐 알렉산더(Even Alexander) 박사가 희귀한 뇌수막염에 걸려 완벽한 뇌사 상태에 빠진 채로 죽음 후의 영적인 세계를 여행했다는 내용이었다.

2008년 11월 그는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뇌 부위가 완전히 정지돼버렸다. 의사들이 뇌사 상태를 선언한 뒤 생물학적 사망 판정을 하려던 차에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더 극적인 것은, 뇌사 상태에 빠져 있던 7일간 알렉산더 박사는 현세를 넘어 천사 같은 존재를 만나고, 그의 안내로 더 깊은 곳으로 날아가 우주의 신성한 근원(신)을 만나 대화를 했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상황에서 의식이 활동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주류 과학자들에게는 생각, 감정, 영혼을 포함해 ‘의식이란 뇌의 생화학적 기능에 의해 발생하는 산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사 체험이나 사후 세계는 뇌의 환각 작용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더 박사의 경우 뇌가 완전히 꺼진 상태에서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의식은 뇌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이 영혼인가? 사후 세계와 신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알렉산더 박사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나는 천국, 신, 영혼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의학적인 지식과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과 영혼이 실재하며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기사 직후 출간된 책 《나는 천국을 보았다》는 곧바로 미국 아마존 종합 1위, 뉴욕타임스 1위, 퍼블리셔스위클리 2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간되었다.

인격적 겸손함과 신앙적 이정표를 선사해주다

종교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죽음 앞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 따르면 믿음이 깊은 신자들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반면, 무신론자 중에는 죽는 순간이 불행한 이들이 많다.

무신론자였던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나 영국의 시인 바이런,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임종과 말년을 비참하게 맞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은 죽었다’의 니체는 생의 마지막 10여 년간 정신병원에 들어가 끊임없는 우울증, 죄책감, 발작, 기괴한 행동 등을 보이며 고통을 받다가 세상을 하직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던 그가 반(反)종교, 반도덕의 선봉에 서게 된 이유는 기존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당시 전통적인 도덕규범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혁신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를 평생 지배해온 죄책감과 말년의 정신착란은 그의 불신앙과 관련이 없을 수 없다.

출처 : 조선일보 매거진

니체와 반대의 삶을 산 사람이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다.

그는 초년 시절 화려한 문학계 명성과 함께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41세 때 딸 레오폴딘이 아버지의 타락을 통렬히 비판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적힌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자, 완전히 사람이 바뀌었다.

“나의 타락한 삶이 딸을 죽였다. 이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이제 하나님의 품에 거하리라.”

그 이후 위고는 헌신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으며 말년에는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됐다. 독실한 신앙생활 속에 그의 문학도 깊어가 《레미제라블》 같은 대작을 잇달아 탄생시켰다.

1885년 그가 죽자 국민적인 대시인으로 추앙되어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결론적으로 나의 신앙심은 우울증을 통해 강화됐다. 나는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우울증의 치유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느껴졌다. 종교적으로 볼 때 우울증은 내게 고통을 주었지만 결국 신에게 다가가는 은혜도 선사한 것이다. 더불어 내가 부족하고 약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었다. 바로 그런 생각이 인격적 겸손함과 함께 신앙적 이정표인 셈이다.

<계속>

[삶과 믿음] 왜 종교가 필요한지 묻는다면

고대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희한하게 생각하는 것은 등장인물이 거의 다 신을 믿고 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다. 신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옛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종교를 가졌고 신을 믿고 기도했다. 이것이 희한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 가진 사람보다 더 많다. 세속주의는 증가하는 추세다. 기독교를 포함해 거의 모든 종교는 수세에 몰려있다. 그러기 때문에 누가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면 일단 반갑고, 누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한다. 신앙인은 일단 그 사실로서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옛날에는 선한 사람 뿐 아니라 악한 사람도 신을 믿고 종교를 가졌다. 골리앗이 다윗과 싸울 때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의 관점에서는 다윗이 선한 사람이고 골리앗이 악당임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던 이집트의 파라오도 믿던 신이 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옛날엔 신앙의 유무를 가지고 사람의 좋고 나쁘고를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종교를 가졌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나는 오히려 오늘날이 옛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신앙이 선택사항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요구되는 사회에서는 신앙의 신실함을 확인할 수 없다. 믿고 싶어서 믿는 게 아니고 믿어야 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짜 신앙인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인간의 윤리도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있을 때에야 선행이 귀중한 것과 마찬가지다. 신앙의 강요는 위선을 낳는다.

또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수 없고 자연이 두려운 탓에 절대적인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시절보다는, 우주와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음에도 신앙을 가지는 것이 더 의미있고 귀중하다고 본다. 과거엔 신앙이 무지함의 결과요 미신적일 가능성이 많았다. 천둥이 치면 신이 노했다고 생각하고, 바다에 풍랑이 일면 바다의 신이 노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인간은 미신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종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는 것은 심리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성숙한 믿음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생존에 대해 매일 염려하던 시대에 필연적으로 신에게 매달리던 때보다 생존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과거보다 더 생활이 편안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 성숙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더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살기가 어려웠던 2000년 전에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생존의 문제가 반드시 신앙의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떡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떡만으로는 살 수 없기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근대시대에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면 포스트 모던 사회는 세상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 시대가 낳는 문제들은 이전엔 없었던 문제들이요, 과거의 문제보다 더 어려운 것들이다. 우리는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하는 해답을 위에서 얻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김영준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종교를 믿는 생물학자의 모순된 삶의 이야기.

칼도님,

님의 말씀대로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니 몇가지만 묻겠습니다.

1. 신의 존재에 대한 종교에서의 합리적인 설명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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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과학적 합리성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그 절대적 신비와 경이가 신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같고”, 그 신의 은총에 힘입어 인간이 빠져있는 타락, 죄, 불행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을 믿기 위한 필요조건(충분조건이 아니라)은

존재에 대해 경이감과 신비감을 가질것, 자신을 포함한 인간존재 일반의 타락, 죄, 불행을 자각할 것입니다. 하이드님이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 한, 절대 종교의 합리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가지고 자각해도 신의 존재에 대한 느낌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신의 존재의 합리적 이유는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두 조건을 곰곰히 두고 볼때 많은 이들에게 그런 느낌이 생길법도 하다/ 말이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다/나름 센스를 메이크한다는 의미에서의 합리성입니다. 그리고 물론, 다시 말하지만, 모든 문제가 과학적 합리성의 기준을 충족하는 해결만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영역에서의 문제해결들이 평화롭게 양립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2. 님은 종교인인 동시에 과학자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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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쟁점과 무관합니다. 제가 뭐하는 사람이든 독실한 종교인(기독교인)인 동시에 성실하고 훌륭하기까지 한 과학자는 찾아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겠다는데, 그들이 그 두 지향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안느끼는데, 그들의 그런 삶이 다른이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안주는데, 하이드님같은 분이 자꾸 ”왜 그렇게 사느냐”, ”나는 그 두 지향이 어떻게 상충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된다” 등등의 말로 갸웃거리고 따져드는 것이야말로 비합리적인 것입니다.

3. 합리성의 기준이 분야에 따라 여러가지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인간의 지식은 극히 제한적이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중에서 가장 낫다고 믿는 방법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과학적인 방법론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 이외의 분야에도 과학적인 방법론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독 종교에서만 과학적인 방법론이 사용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종교에서의 합리성이 무엇인지, 신의 존재와 관련하여 설명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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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성의 기준은 여러가지 입니다. 예를 들어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고를 수 있는 과학적 검증절차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고름, 즉 예술비평이라는 것에 어떤 합리성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예를 들어 왜 많은 사람들이 석양을 아릅답게 느끼고 높은 산봉우리에서 압도되면서도 커다란 즐거움을 느끼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에도 어떤 과학적 검증절차가 동원되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끝내 말이 전혀 안되는것 같지는 않은 ”사변적인” 가설들이 있을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미적 경험은 너무나도 중요한 인간적 현상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그런 사변적인 설명이라도 만들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 ”도리없음”이 바로 그 사변적 설명을 합리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왜 세상만물이 차라리 존재하지 않기보다는 오히려 존재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절차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설명을 요구합니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다면 신의 존재를 요청하고 믿어서라도 말입니다. 과학은 끝내 설명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리고 궁극적 문제에 대한 궁극적 설명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인간 본성 차원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기에, 종교라는 궁극적 설명 역시 나름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제도화되고 역사가 깊고 신학과 교학에 의해 무장한 소위 세계종교들이라면 말할것도 없습니다. 그 종교들은 부단하게 합리적인 신앙과 광신을 구별하는 자체내적 기준을 구성하고 또 구성해냅니다. 예를들어 왜 민주주의가 독재나 왕정이나 귀족정이나 전체주의보다 나은 정치체제인지를 설명하거나 검증하는 ”과학적” 절차따위는 없습니다. 플라톤, 니체 등 엄청나게 머리좋은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가장 합리적인 정치체제라는 식으로 우리 모두, 적어도 많은 식자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다시 말하게 됩니다. 과학적 절차는 가장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접근가능한 영역 – 데이터의 성격 및 양이 수학적 모델링,실험, 추상화, 인과기제 추정을 상대적으로 더 가능하게 하는 영역 – 에서만 가장 합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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