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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같았던 7전8기 변호사 진승기님의 사시합격 썰
대성통곡을 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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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수기 조연수 – 네이버 블로그
조연수·제56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한성과학고·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경제학전공 2년. 1. 들어가며. 운 좋게 시험에 일찍 합격하여 수기를 쓰게 되어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5/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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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사법고시합격 수기 – 오르비
노무현 대통령 사법고시합격 수기. 히밍히밍 [607204] 쪽지. 15. 10. 27. 13:17:05 | 조회 28761. 뭐 아는분들은 보셨겠지만 다시올립니다. 고시 준비생은 아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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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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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 합격수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 (input) – 공부하자
예비법조인, 수험생들에게 선배로서 권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부탁에, 그는 “시험에만 합격하면, 연수원만 나오면 인생이 보장된다는 인식(수험생들도 …
Source: and-i.tistory.com
Date Published: 4/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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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만에 사법고시 합격했죠” 이윤규 변호사의 ‘합격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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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du.chosun.com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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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법 고시 합격 수기
- Author: 서울대 14년 서준석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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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2.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RVNNNQZBhnA
제56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수기 조연수
조연수·제56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한성과학고·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경제학전공 2년
1. 들어가며
운 좋게 시험에 일찍 합격하여 수기를 쓰게 되어 영광입니다. 단지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을 뿐 많이 부족한 제가 수기를 쓰게 되어 부끄럽지만, 부족한 정보로 인해 시험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계실 수험생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여 수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공부 방법을 말씀드리기 전에 저는 공부에 가장 주요한 것은 강력한 동기부여라고 생각합니다. 공부에 임할 수 있도록 강력한 동기를 찾으신다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가짐으로 합격하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2. 사법시험 공부의 시작
저는 어릴 때부터 법조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어느 시점부터 법조인이 꿈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로에 대한 고려 없이 수학과 과학에 대한 흥미로 과학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민 끝에 저는 좀 더 신중히 고민한 후에 전공을 선택하고자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문과와 이과가 통합된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하고 나니, 주변에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나, 준비하고자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법시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1년의 고민 끝에 너무 어려운 길이라 판단되어 사법시험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2학년 1학기 재학 중이던 2012년 4월 중에, 시도하지도 않은 채 포기한다면 후회할 것 이라는 생각이 들어 휴학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3. 1차 공부 방법
(1) 4월 ~ 6월
학원에서 기본강의가 진행되는 이 기간에는 기본 강의를 들으며 기본서를 1회독 하였습니다. 민법 강의가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학원 대신 인터넷으로 김동진 강사의 2011년도 민법 기본강의(지원림 저)를 들었고, 그와 동시에 형법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기 때문에 민법뿐 아니라 형법·헌법까지도 복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 기간에는 강의를 통해 기본서를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것만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으나 후에 혼자 책을 읽을 때에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또, 나중을 위해서 이 기간에는 연필로만 책에 필기하였습니다.
민법은 지원림 저로 김동진 강사의 강의를 들었고, 형법은 신체계 형법강의로 이용배 강사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헌법은 김유향 강사의 강의와 정회철 저를 선택했습니다.
(2) 6월 ~ 8월
학원에서 판례강의가 진행되는 기간입니다. 판례 강의 역시 김동진, 이용배, 김유향 강사의 강의를 들었고, 각 수업에서 택한 교재를 봤습니다. 이 기간 동안은 판례 강의를 들으면서 기본서를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1회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연한 분홍색의 색연필을 사용하여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역시 강의 진도를 따라가는 것이 버거워 결국 세 과목 모두 1회독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에 1회독을 끝내지 못한 점은 그 이후에도 굉장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강의는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고 어느 정도의 진도가 강제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준비하는 입장에서 반드시 들어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3) 9월 ~ 11월
9월에서 11월은 진도별 모의고사가 진행되는 기간입니다. 저는 지난 강의들과 마찬가지로 김동진, 이용배, 김유향 강사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때에는 공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데다 진도별 모의고사라고 하더라도 진도 범위에서만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매번 시험을 보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스트레스였습니다.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모의고사보다 제 공부에 치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의고사에 큰 부담을 갖지 않기로 마음먹은 후 다시 기본서 1회독에 집중했습니다. 기본서를 볼 때는 조금 더 진한 색의 색연필로 중요한 부분을 다시 밑줄 그었고, 기본서를 보면서 판례 교재를 함께 보면서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학원에서 진행되는 모의고사는 최대한 병행하고자 노력했으나 성적이 잘 안 나왔을 때의 압박 때문에 전부 응시하지는 못하였고, 응시한 경우에는 틀린 문제만 복습하고 그 시험지는 다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모의고사를 반복하면서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개수의 문제를 푸는 연습이 많이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기간 동안은 기본서 1회독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여 민법 지원림 저, 신체계 형법강의, 헌법 정회철 저를 보며 공부했고, 부가적으로 민법은 기출문제 분석의 종결(김동진 저), 형법은 신체계 판례 형법(이용배 저), 헌법은 판례 200(정회철 저)을 같이 공부했습니다. 객관식 문제 형식으로 되어 있는 모든 책은 공책에 답을 표시하며 풀었고, 틀린 문제의 번호에만 표시를 하였습니다. 진모는 그날 틀린 문제만 풀이를 확인하는 정도로만 공부했습니다.
(4) 그 이후
진모 이후에는 강의는 듣지 않고 각 과목을 단권화하는 동시에 기출을 반복하여 푸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기출은 진도별로 정리된 문제집으로 여러 번 풀었고, 마지막에는 연도별로 기출 문제를 출력하여 푸는 식으로 하여 최근 5개년 기출은 전부 아는 것을 목표로 하여 공부하였습니다. 기출문제를 전부 풀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다면 1차 합격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진도별로 된 기출문제집의 경우에는 처음 두 번은 전체를 풀면서 틀린 문제나 어려웠던 문제 옆에 표시를 해놓았고, 그 이후에는 표시된 문제만 풀면서 어려운 문제에는 다른 표시를 또 했고, 그 표시된 문제만 다시 푸는 식으로 하여 각 과목마다 5번 이상 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민법은 지원림 저의 회독수를 늘렸고, 노트필기용 민법전을 구매하여 민법전에 단권화 하였습니다. 조문 옆에 관련된 내용 및 판례를 적고, 관련 조문이 없는 내용은 하얀색 포스트잇에 적어 붙였습니다. 또한 기출문제 등을 풀면서 반복해 틀리는 지문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문은 노란색 포스트잇에 적어 붙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지막에는 민법전만 보겠다는 목표로 민법전에 중요한 내용을 모두 정리하였고, 실제로 마지막 한 달 동안은 기본서를 보지 않고 단권화된 법전만 보며 공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민법전을 활용한 이런 공부 방법은, 1차 민법 시험 뿐 아니라 저의 민법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부가적으로 가족법의 이혼이나 입양에 관한 기간과 같이 지엽적인 암기가 필요한 경우 따로 A4 용지에 정리하여 코팅하였습니다. 코팅한 자료는 화장실 벽에 붙여 샤워할 때마다 반복해서 외웠습니다. 이 방법으로 매일 10분 이상씩 암기사항을 볼 수 있었고, 이는 실제 2012년도 1차 시험에 가족법의 기간 등을 묻는 문제가 많이 나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형법은 신체계 형법강의를 기본으로, 이용배 강사의 판례 교재와 기출문제 교재를 반복하여 풀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볼 책으로는 신체계 형법강의를 선택하여 회독수가 늘어날 때마다 조금씩 진한 색연필로 체크하여 공부했습니다.
헌법은 정회철 저를 기본으로 하였고, 마찬가지로 조금씩 진한 색연필로 체크하며 회독수를 늘렸습니다. 헌법은 판례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중요 판례 200을 꼼꼼히 공부했습니다. 헌법은 조문 개수가 적기 때문에 조문을 정확히 암기하기 위해서도 노력했습니다. 기출문제집으로는 김유향 강사의 기출지문 OX를 선택하여 반복하여 풀었습니다.
4. 2차 공부 방법
(1) 예비순환 기간
1차 시험이 끝난 후 동차 합격을 목표로 공부하고 싶었으나, 1차 시험 이후 많이 지쳐있었고 후4법 지식이 전혀 없어 재시로 목표를 변경하였습니다. 재시로 목표 변경 후 초시 기간 동안은 후4법 강의만 수강하면서 체력 관리 및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민소는 이창한, 형소는 정주형 강사의 1순환 강의를 인터넷으로 수강했고, 행정법은 류준세 강사의 예비순환 실강, 상법은 김혁붕 강사의 기본 강의를 인터넷으로 수강하였습니다. 복습은 따로 하지 못하였고 강의만 들었으나 후4법 전반에 대한 기초를 다질 수 있었고, 1순환 시작 이후 공부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2) 1순환 기간
1순환은 학원 강의를 전부 실강으로 수강하였습니다. 민법은 윤동환, 형법은 이재상, 헌법은 김유향, 민소법은 이창한, 형소법은 정주형, 상법은 김남훈, 행정법은 정선균 강사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상법은 김혁붕 강사가 강의를 진행하지 않아서 강사 변경이 불가피했고, 행정법은 류준세 강사 수업도 너무 좋았지만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 정선균 강사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서는 각 강사께서 주교재로 하셨던 민법의 맥, 새로 쓴 더 형법, 김유향 강사의 보조 교재와 사례 헌법 연습(정회철 저), 통합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강의안, 상법 신강, 행정법 엑기스를 선택했습니다.
1순환 기간에는 기본서 정리 및 답안 작성 연습을 가장 큰 목표로 하였습니다. 기본서는 학설과 일반론 등 판례 이외의 사항은 하늘색 형광펜, 판례는 연두색 형광펜을 이용하여 표시하여 구분하였고, 암기보다는 정확한 이해를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2순환부터는 이 두 색이 잘 구분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노란색 색연필과 빨간색 색연필을 이용하여 다시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처럼 판례를 따로 구분하실 분은 처음부터 구별이 잘 되도록 표시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답안 작성은 기초 지식도 부족하고 답안 작성 요령도 부족하여 매우 힘들었습니다. 내용도 엉망이었고 시간 내에 쓰는 것도 불가능하여 시간을 20분 정도씩 더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는 목차 구성 등 답안 작성의 기초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내용은 기본서 위주로 공부하고, 답안 작성을 통해서는 글씨를 빠르게 쓰는 것과 목차 구성하는 방법을 연습했습니다.
(3) 2순환 기간
2순환부터는 강의를 듣지 않고 모의고사 반을 신청했습니다. 1차 시험 공부를 통해 강의를 많이 듣는 것은 저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순환 기간 역시 기본서를 통해 학설 및 판례 등을 꼼꼼히 공부했고, 답안 작성을 통해서는 답안 작성 시간을 줄이고 깔끔한 문장으로 정치하게 서술하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이 기간에 반복된 답안 연습을 통해서 답안 작성할 때의 글씨 크기나 모양, 들여쓰기 방법, 목차 구성 방법 등 전체적인 답안 구성 방식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2순환 기간에는 기본서와 사례집을 같이 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공부 양이 너무 많아져 힘들었기 때문에 사례집은 목차 위주로만 보고 넘어갔습니다. 3순환 시작 이후에는 사례집을 많이 못 본 것이 후회되었기 때문에 이 기간에 사례집에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례집은 민법의 맥(윤동환 저), 형법 case의 바이블(이재상 저), 헌법연습(정회철 저), 핵심정리 민사소송법(이창한 저), 사례강의안(정주형 저), 상법 사례연습(김혁붕 저), 행정법 엑기스 연습(정선균 저)을 선택하였고, 모의고사는 각 윤동환, 이재상, 김유향, 이창한, 정주형, 김남훈, 정선균 강사의 모의고사를 응시했습니다.
(4) 3순환 기간
3순환 기간 역시 모의고사 반을 등록하여 모의고사만 응시했습니다. 이 기간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매일 모의고사를 응시하는 것도 힘들었고, 꾸준히 공부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만 않으면 붙는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매일 조금이라도 공부하려고 노력했고, 모의고사를 응시하지 못한 경우나 공부를 많이 하지 못 한 날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이 기간에는 모든 수험생들이 시험에 대한 부담감에 많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3순환 기간에는 마무리 교재를 선택하여 단권화하는 것을 가장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1차 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마지막까지 보면서 공부할 책을 한권씩 골라 그 책에 제가 중요하다고 여긴 모든 것을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색연필로 미리 칠해 놓은 부분 중에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검정색 볼펜으로 X자를 치는 방식으로 지워버리기도 하였습니다. 헌법은 핵심정리 300(김유향 저)을 선택하여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포스트잇을 이용하여 보충하였고, 민사소송법은 핵심정리 민사소송법(이창한 저), 형사소송법은 최종정리 형사소송법(정주형 저)을 선택했습니다. 행정법 역시 행정법 엑기스 핸드북(정선균 저)을 선택하여 부족한 부분을 포스트잇 등으로 보충하였고, 나머지 과목은 기본서를 마무리 교재로 선택하였습니다.
단권화 과정에서 저는 판례 부분을 빨간색 색연필로 표시하여 더 집중적으로 외웠고 키워드에는 동그라미를 쳐서 빠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답안을 작성할 때 가장 눈에 띠는 부분이 판례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키워드 위주로 문구를 살려서 외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형사소송법의 경우에는 판례연구 형사소송법(노명선 저)을 같이 보면서 중요한 판례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답안 작성을 연습할 때에는 시간에 맞추어서 쓰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습니다. 글씨가 느린 편은 아니었으나 답안지에 최대한 내용을 많이 담고자 했기 때문에 항상 시간이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장 구조에 있어 비록 문장 간 연결이 매끄럽지 않더라도 접속사를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노력하는 등의 방식으로 답안지 작성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답안 작성과 관련해서는 뒤에서 더 상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례집의 경우에는 그동안 소홀히 본 탓에 책에 밑줄도 많이 그어져있지 않았고 쉽게 읽히지 않아서 공부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사례집은 목차를 익히는 것만 목표로 하여 빠르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3순환에 비해서 시간 여유가 있는 2순환부터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사례집을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5) 그 이후
3순환 끝난 이후에는 7-4-2-1을 볼 시간이 부족하여 3순환이 끝나기 전에 약간의 여유 날짜를 가지고 7-4-2-1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공부가 많이 부족하여 1독을 7일씩 끝낼 수 없었고, 그래서 1독 이후 남은 날짜를 계산하여 3-2-1로 보는 것으로 목표를 변경하였습니다. 하루라도 밀릴 여유 기간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부족하더라도 어떻게든 정해진 날짜 안에 끝내고 다음 과목으로 넘어갔습니다.
3일에 한 과목을 보던 때에는 2일은 마무리 교재, 1일은 사례집을 보는 것으로 계획했습니다. 3순환 때와 마찬가지로 사례집은 목차 위주로만 빠르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2-1에는 사례집은 보지 않고 마무리 교재를 보며 더 정확히, 빠짐없이 암기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5. 답안 작성 요령
답안 작성 요령에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들여쓰기로 확실하게 큰 목차와 작은 목차를 구분하여 가독성을 높이려고 했고, 판례에 대해 서술할 때는 判例라고 표기하여 눈에 더 잘 들어오게 했습니다. 너무 굵은 펜을 사용하면 글씨체가 더 흩어지고 가독성도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제트스트림 0.5를 사용했습니다.
작은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 탓에 쓰고자 하는 내용을 하나라도 빠트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목차 사이나 문단 사이에도 줄을 비우지 않았고, 학설이나 판례를 따로 목차로 잡을 때에도 “학설” 뒤에 바로 “ : ”을 써서 이어가는 등으로 여백을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답안지 전체 구성을 고려하면서 너무 빽빽하지 않게 보이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는 정도의 차이이기 때문에 글로써 설명 드리기 어렵지만 답안지 연습을 거치면서 조화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답안 작성 시간을 줄이는 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의식적으로 접속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문장이 연결되지 않는 것 같아 어색했지만 계속 연습하다보니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접속사를 빼는 것이 쉬워졌습니다. 또 목차 작성 시간을 줄이기 위해 목차 세우는 방식도 정형화했습니다. 세부목차는 미리 세워놓더라도 답안을 쓸 때는 참고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큰 목차 위주로만 목차 작성 후 빠지면 안 될 내용을 간단히 표시해 놓았습니다. 특히 중요한 판례가 있는 경우에는 그 부분에 V자로 표시하여 답안을 작성하며 빠뜨리지 않게 주의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처음에는 목차에 判으로 표시했으나, 이렇게 표시하는 데에도 시간에 많이 걸려서 V자로 표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외에는, 지식이 점점 늘어날수록 생각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답안 작성을 여러 번 해볼수록 자연스럽게 시간이 단축되었던 것 같습니다.
답안 작성 시간 분배는 50점 기준으로 목차 구성에는 10분~15분을 배정하였고, 답안 작성에는 45~50분을 배정하였습니다. 답안지를 쓰는 데만 최소 45분은 걸린다고 생각하여 15분이 넘어가면 목차를 완성하지 못했더라도 답안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예 목차를 잡지 않고 글을 쓰면 체계가 엉망이 되는 것 같아서 목차 작성을 생략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쉼표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문법상 쉼표를 쓸 수 있는 위치가 정해져 있고, 일반적으로 쉼표가 많은 글은 좋은 글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 답안의 경우에는 읽기 편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채점하시는 교수님들께서 복잡한 문장을 여러 번 읽으실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웠고, 여러 번 읽고 채점해주신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장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한 문장에도 쉼표를 2개 이상씩 써서 여러 번 끊기도 하였고, 강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행정행위는, …”과 같은 식으로 주어 뒤에 쉼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좋은 답안 작성 요령도 아니고, 저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사용한 방법이므로 좋은 답안 작성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히 생각하신 후 결정하시는 것을 추천하며, 이런 방식을 택하시더라도 쉼표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게 주의하셔야 합니다.
6. 마치며
사법시험은 제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합격한 것 자체도 당연히 큰 전환을 가져왔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수험 기간을 거치면서 여러 면에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고, 정말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듯이, 고통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글이었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수험생 여러분께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7. 감사 인사
사법시험은 혼자만 하는 공부가 아닌 만큼 주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가장 먼저 정말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게 모두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더 마음고생 많이 하신 어머니, 아버지께 가장 많이 감사드리고, 합격을 자기 일보다 더 기뻐해준 우리 언니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손녀딸 믿고 응원해주신 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늘에서 많이 도와주신 할아버지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딸처럼 아껴주시는 이모, 고모도 너무 감사드리고, 체력 약한 조카 응원하느라 매주 고생해주신 작은 외숙모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못난 친구 하소연 들어주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신림동 왔다 갔다 하면서 응원해준 애리, 다흰이 정말 고맙고, 같이 공부하면서 응원해준 고은언니, 성령언니, 광범오빠, 일화언니, 기남오빠, 선화언니, 희진언니, 현준오빠, 병훈오빠, 채영오빠, 보배언니, 임규정 팀장님도 너무 감사하고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쓸 데 없는 질문만 하는 후배 살뜰히 챙겨주신 종욱오빠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동안 잊지 않고 연락 해 준 자유전공 친구들, 한성과고 친구들 다 감사합니다. 혹여나 감사한 이름 하나라도 빠뜨릴까봐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정말 모두에게 너무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 개인적으로 모두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같이 면접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면접 스터디원분들 모두 감사하고, 축하드립니다.
감사 인사를 쓰고 나니 저는 인복도 많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하고 저도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법고시합격 수기
뭐 아는분들은 보셨겠지만 다시올립니다.
고시 준비생은 아니지만, 정말 잘 쓴 글이라 읽어 보기를 권유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어떻게 그 힘들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했냐고 묻곤 한다.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좀더 구체적으로 ‘공부를 어떤 식으로 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1975년 내가 제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당시는 물론이고, 20년이 거의 다된 지금까지도 내게 묻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칭찬도 반인 것 같고 호기심도 반인 것 같다.
그런데 그때마다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고 또한 조금은 쑥스럽기도 해서였다. 그러나 혼자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흐뭇해진다. 남들보다 많이 힘든 상황에서 공부를 했고 시험에 합격해서 그런지,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 사법 고시에 합격했던 그 순간만큼 행복했고 성취감을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수험 잡지인 [고시계] 75년 7월호에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었다’라는 제목으로 고시 합격기를 쓴 적이 있다. 이번에 책을 내기 위해 [고시계] 75년 7월호를 어렵게 구해 오랜 만에 내 합격기를 읽어보았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참으로 절망도 깊었고 일도 많았던 고시 공부 시절…..
어릴 때 쓴 것이라 여기저기 어색한 데도 많고 유치하게 느껴지는데도 있지만, 그 당시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어 손보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그 동안 나의 고시 공부 시절에 대해 물어 보았던 분들께 만족스런 대답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 * *
1. 머리에
지나간 일은 언제나 아름답게만 보인다지요? 산꼭대기에서는 힘겹게 올라온 가파른 산길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듯이 말입니다. 또 승자의 과거는 그것이 자서전이든 타인의 작품이든 가끔 신화적으로 수식되어 있음을 봅니다.
사 법시험의 합격, 이것이 긴 여정에서 하나의 중간 목적지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성취와 조그마한 승리로 평가될 수도 있기에, 막상 합격기라는 것을 쓰려 하니 자칫 어떤 승리감에 도취되거나 과거를 돌아보는 낭만적인 기분에 도취되어 힘겹고 괴로웠던 긴 수험 과정의 체험을 스스로 미화시켜 얘기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까 여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졸 합격자라는 다소 특이한 제 입장이 독학도들에게 어떤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둔한 솜씨나마 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억을 더듬고 그때의 생생한 감정들을 살려서 몇 자 쓰고자 합니다.
2. 동기 – 꿈을 키우던 시절
나 는 경남 진영이라는 읍에서 약 10리나 떨어진 산골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형님이 두 분으로, 큰형님은 부산 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를 준비하였으나, 본래 가난한 살림에 벅찬 대학 공부 때문에 가세는 더욱 기울어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쯤 끝내 응시도 해보지 못한 채 그만두고 말았다.
당시 나는 형님을 따라 마을 뒤에 있는 봉화사라는 절에 가서 그곳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형님 친구들의 법이론이나 시국에 대한 토론을 자주 듣곤 했으며, 또 형님은 자신의 좌절에서 오는 울적한 심정을 털어놓기를 좋아했던 모양으로 가끔 상기된 어조로 나에게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물론 나는 그때의 얘기들이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으나, 그들의 엄숙한 표정과 격한 어조의 토론은 만만한 젊음의 패기와 이상을, 그리고 격렬한 논쟁의 뒤에 주고받는 소탈한 웃음은 사나이들의 인간미와 호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느꼈고, 이것들이 고시 학도들의 속성이요 또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으로까지 생각했다. 결국 이런 분위기는 나에게 고시를 해보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살림은 더욱 기울어 작은형님은 학업을 중단했다. 부모님의 노동 능력은 차츰 줄어갔고, 마침내 최후의 명줄로 남아 있던 조그만 과수원마저 빚에 쪼들려 처분해야 했다.
나 는 3학년이 되면서 일찌감치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5급 공무원 시험을 거쳐 독학으로 고등고시에까지 밀고 나가 보겠다는 결심으로 옛날 형님께서 보시던 누렇게 바랜 [법제 대의]와 [헌법의 기초 이론(유진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해 10월에는 일자리를 찾아 나갔던 형님께서 돌아와 내가 하는 꼴을 보고 크게 나무라시며 진학을 권하셨다. 나도 가정 사정을 들어 고집을 부려 보긴 했으나 끝내 강권에 못 이겨 부산 상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순이 넘으신 부모님들의 생활은 아무런 토지의 근거도 없이 자신들의 노동으로 해결하시도록 내버려 둔 채 작은형님이 어렵고 힘든 직장을 전전하며 벌은 돈으로 내 숙식비를 부담해야 했으니, 대학 진학은 아예 엄두도 내어 보지도 못하고 취직반에 들어갔다.
그래도 역시 막연하게나마 길러 오던 고시에의 꿈을 버릴 수는 없었던지 3학년 말 농협에 취직시험을 치른 후 발표도 나기 전에 65년도 11월호 [고시계]를 한 권 샀다. 고시의 냄새를 알기 위하여…..
3. 출범, 그리고 표류
농 협에의 낙방에 이어 개인 회사에 취직했으나 생각보다 급료가 박했고 근무 시간이 많았던 것은 고시로 향한 출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야산 돌밭을 개간하여 심은 고구마와 영세민 취로 사업장에서 내주는 밀가루로 연명하시는 부모님들의 실망을 모른 체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 달 반의 급료 6천원으로 몇 권의 책을 사고 마을 건너편 산기슭에 토담집을 손수 지어 ‘마옥당(磨玉堂)’이라 이름 붙인 후, ‘사법 및 행 정 요원 예비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당시에는 학력 제한이 있었다). 책값을 벌겠다고 울산 한국비료 공장 건설 공사장에 막노동을 하러 갔다가 이빨이 3개나 부러지고 턱이 찢어지는 불운을 겪으면서도, 용케 11월에는 제7회 예시에 합격하였다.
4개월 정도의 준비로 예시에 합격하는 행운과 함께 이제까지의 나의 처절한 투쟁은 막을 내렸다. 나의 예시 합격에 자극받아 큰형님은 67년에, 작은형님은 68년에 각각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67년에는 법률 서적을 살 형편이 못되어 예비 시험 과목을 새로 공부하고 있다가 68년에는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있는 동안에도 공부를 해 보려고 애썼으나 영어 단어 하나 암기를 못하고 3년을 표류하고 말았다.
4. 열풍에 돛을 달고 – 그리고 좌초
71 년 제대를 하고 집에 오니 집안 사정은 상당히 호전되어 있었다. 4월부터 옛날의 ‘마옥당’을 수리하여 공부를 시작, 5월 2일에 3급 1차에 합격, 그리고 사법시험으로 전환. 처음 법률 책을 대하니 다소 흥분되기도 했으나 과연 이 어려운 것을 해낼 수 있을지 더럭 겁부터 났다. 그러나 소설을 읽듯이 마구 읽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겉만 슬슬 핥으니 그럴 수밖에……. 전 과목을 무질서하게 읽었다. 행정법과 상법이 좀 어려운 듯했다. 민법을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소송법은 전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실체법을 전혀 모르니 그럴 수밖에……. 4개월에 걸쳐 오리무중을 헤매면서 전 과목 3회독을 마쳤다.
「고시 계」를 66년도부터 소급해서 샀다. 그러나 합격기 말고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 동안의 체험과「고시계」합격기에서 읽은 것을 정리하여 얻은 것은 책을 읽는 순서 정도였다. 이리하여 민법을 먼저 읽고 상법과 행정법에 들어가고 실체법을 먼저 읽고 소송법에 들어 간다는 순서를 정하여 9월부터 시작했다. 새로 읽으니 과거의 3회독은 간 곳 없고 전혀 새로 읽는 기분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시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10월에 14회 공고가 났다. 외면하려 했으나 자꾸만 들떴고 마침내는 고시 사상 최단기 기록을 목표로 하여 무작정 덤볐다. 문제 집을 샀다. 1차의 합격은 나의 이러한 만용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젠 문제집마저도 내 나름대로 밑줄을 긋고 그 부분만 골라 읽었다. 8개월 정도의 준비로 2차 시험에 응했다.
시 험장에서 고향의 중학교 후배를 만났다. 사법시험 준비는 나보다 훨씬 선배였다. 나의 공부 기간을 듣고는 “전 과목을 한 번 다 보지도 못했겠네요?” 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에 저으기 분개하면서 우습게 받아 넘겼다. “두고 보라지……. ”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는 막강한 뱃심이었다. 이런 뱃심으로 시험에 응했다. 기막히게 더 잘 썼다. 내가 아는 건 다 썼고 또 아는 건 그 뿐이었으며 집에 와서 책을 대조해 보지도 않았으니, 기막히게 잘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점수는 50점 얼마였다.
뒤에 읽어보니 문제집에 밑줄을 그어 두었던 부분이 모두 엉터리였다. 다른 색깔로 새로 밑줄을 고쳐야 할 형편이었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응시자를 젖히고(?) 과락 없이 300명 선 안에 들어갔으니 다음에는 틀림없을 거라고 또 한 번 낙관했다.
그러나 발표 후 5-6개월을 이유 없이 허송했다. 제대 후 공부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을 처녀에게 마음을 뺏기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단호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열을 올리게 되고 8개월에 걸쳐 집요하게 추근거려 1차 시험 직전에야 겨우 처녀의 마음을 함락시키고는 안도했는데, 이제 그녀가 결혼 적령을 넘었다는 사실과 고시와 연애는 양립할 수 없다는 중론 사이에서 그녀와 나는 고민의 연쇄반응을 일으켰고, 또 이틀이 멀다 하고 만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애정의 열도에 비례하여 공부를 위한 시간에의 집착이 강하여 심리적 갈등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9월에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장유암이라는 절에 들어갔다. 국사의 추가로 부담이 늘었지만 시험이 연기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73년 1월에는 예년의 시험 대신에 그녀와 결혼했고 5월에는 아들도 낳았으나 나는 여전히 절에서 계속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 그런데…… 글쎄 정말 이럴 수가! 그렇게 끔찍이도 나를 아껴주시며 자신의 못 다한 소망을 나에게 걸어 꿈을 키워 주시던 큰형님이 5월 14일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리셨다. 한 줌 잿가루로 화해 버린 형님의 유해를 고향에 묻고 절로 올라 올 때는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이제부터 전혀 공부도 되지 않았다. 단지 타성에 의하여 책장을 넘기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과 고시와 출세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론은 하나, 형님의 꿈 그리고 나의 꿈, 어떻든 고시는 필연적이었다. 15회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40여일 뿐,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책을 읽기만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며 답답해지는 알지 못할 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시험을 한 달 앞두고 보따리를 싸 들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아직 산고가 풀리지 않아 부자유스러운 아내와 핏덩이 신걸이,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비탄……. 공부가 될 리 없으니 병은 점점 더해지고……. 수석 합격이라는 화려한 표어와는 달리 응시조차 포기하고 싶은 것을 부모님의 시선이 두려워 마지 못해 상경하였으나, 시험 첫 날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에 무엇이 치밀어 올라 우유와 계란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그래도 기를 쓰고 책을 볼라치면 몸에서 식은 땀이 배어 나왔다.
「고시계」의 통계란에 따르면 결과는 90위 정도, 정리만 잘하면…… 하는 자신을 얻은 셈이었다.
5. 새로운 좌표 – 직업 의식
그 러나 좀 쉬어야 했다. 책을 잡기만 하면 예의 증세가 나를 괴롭혔다. 고시를 그만둘까도 싶었다. 학교 성적이 우수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고시를 해야 할 필연적 이유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고,법을 공부하면서 차츰 정의의 이념을 배워 가는 동안 ‘고시=권력=출세’라는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등식이 우스운 것임을 느끼게 될 무렵 형님의 뜻 아닌 타계는 예시 과목의 철학 개론을 공부하면서부터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해 오던 삶의 의미를 보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맹목적 출세주의와 ‘ 그 수단으로서의 고시’라는 과거의 생각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상고를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어 새로운 진로를 찾기는 어렵고 하여 고시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다만 이제는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배수의 진은 거두어 버리고, 하나의 직업인이 자기의 생각에 충실히 종사하듯이 고시 공부도 평범한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려 했다.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 대신에 ‘천직 =소명’이라 써붙이고, 숙소를 마옥당에서 집으로 철수하여 직장에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낮에는 마옥당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여유가 있을 때만 공부하기로 하였다.
아기가 울면 달래기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 채우고 밤이 늦도록 아내와 정담을 나누며 잠을 덜 자면 이튿날 낮잠을 잤다. 그러나 가슴과 목의 증세는 쉽게 낫질 않아 16회 시험까지는 부담 없이 쉬었다. 16회 시험도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응시한 정도였고 성적은 15회보다 내려 130위 안팎으로 생각되었다. 17회 준비 1년간은 정말 순조로웠다. 절에 있을 때 만들었던 독서대의 실용 신안 특허 출원 관계로 9-10월에 조금 쉰 것 말고는 가금 아내와의 대판으로 선풍기 목이 부러지거나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활극이 연출되기도 하는 가운데에도 예전과 같이 재미있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10월 하순부터는 풀었던 긴장을 바짝 조여 이때부터는 아내가 들 건너 마옥당까지 점심을 날라다 주었고 잠은 여전히 집에서 잤으나 신걸이가 잠들기 전에는 우리 방에 못 오게 하고 책을 보았다.
그러나 17회 때에도 역시 정리가 다 되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어느 때보다 정리 기간이 착실했으니 훨씬 낫겠지…….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신문 기자들이 수석 합격자 인터뷰하러 올 테니 당신도 피력할 소감 한 마디 준비해 두지 그래.”하고 허풍을 쳤다. 건강은 좋았고 시험은 순조로웠다. 집에 와서도 역시 출발 전의 호언장담을 되풀이했다. 3월 27일 아침 먹고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진작부터 낮잠에 들어갔다. 꿈결에 “무현아! 무현아!”하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 그도 뒷말을 잇지 못했고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아내는 내 무릎에 엎드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형님! 지하에서도 신문을 보십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형님 생각에 자꾸만 우십니다.”
6. 더하고 싶은 이야기
공부 방법, 책의 선택, 공부 장소, 독서 방법 등에 관한 문제는 각각 제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반론이 있다면 이미 많은 선배님들의 합격기가 말한 것과 나도 같습니다.
그 래서 제 특이한 입장에 관한 것과 또 제가 따로 하고 싶은 얘기만 골라서 제 경험을 예로 들어 쓰렵니다. 다만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얘기하는 것은 객관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마는, 어느 정도 참고는 되리라 믿습니다.
1) 독학에 대하여
응 시자 중에 4년제는 물론 초급대학에도 안 간 사람들만을 독학도로 계산해도 그 수는 600명을 넘는데, 이 수는 서울대 출신 응시자 800명에 거의 육박하는 수임에도 합격자 수는 수년만에 하나씩 나올 뿐으로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 이런 점을 보면 대학교에는 꼭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로 경제 사정과 연령이 문제인 것 같으나, 경제 문제라면 요즘 일부 사립 대학에서 고시반을 편성하여 학비는 물론 숙식 일체까지 밀어 준다고 하니 오히려 독학보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벼울 것이다. 연령 문제도 생각 나름이 아닐까?
2) 그래도 구태여 독학을 하겠다면 독학도들의 고시 합격률이 지극히 저조한데 반하여 대학 출신자 중에는 법대 출신이 아니고도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고 17회에는 수석 합격자가 공대 출신이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연유하는 것이겠으나 나는 이 점을 대학에서 얻게 되는 일반 교양 과정의 지식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과거 예비 고시에 합격한 후에도 법서를 살 형편이 못되어 군에 입대하기까지 1년간을 예시 과목의 책을 그대로 읽었고 이것이 제대 후 법서를 공부할 때 상당한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학력 제한이 철폐된 오늘의 제도보다 과거의 예비 시험 제도가 보다 합리적인 제도가 아닐까?
흔히 독학도들은 소위 공부 방법이나 수험 정보, 고시 기술론, 고시 분위기 등에 생소함을 걱정하게 되나 그런 점은 고시 잡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험 기간 중 많은 사람들과 많은 얘기들을 나누어 보았으나, 수험 잡지의 합격기나 좌담회, 통계 기타 안내편에 나오는 이상의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3) 병역 문제
군 에서 공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한다면 일찍 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현역 복무 중 가는 세월을 한없이 초조하게 생각했으나, 마치고 나니 부담이 없어 좋았고 또 졸병 생활 자체가 하나의 수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험 과정 중에 필요했던 끈기 있는 자세는 군에서 몸에 익힌 바 큰 것이었다.
4) 연애와 결혼
처음 8개월에 걸친 일방적 구애 작전은 시간과 정력의 손실이 너무 컸다. 그러나 일단 결혼한 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가지고 올 때면 언제나 따라오는 개구장이 신걸이의 재롱은 식사시간을 즐겁게 해 주었다. 붉은 낙조를 바라보며 집에 건너오면 또 반겨 주는 신걸이의 고사리 손이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깨끗이 잊게 해 주어, 나는 침체기를 몰랐고 따로 휴식이나 기분 전환 거리가 필요 없었다.
애타는 애인들 있으면 결혼들 합시다.
5) 건강
절 대적 조건임은 두말 할 것 없고 다만 공부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보다 초조, 불안 등의 심리적 파탄에서 오는 손실이 훨씬 더 심각하고 장기적인 것이다.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생각이나 출세에의 지나친 집착, ‘최단기’ ‘수석합격’ 등의 욕심은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하나의 직업인이 성실하게 직장에 임하듯 수험 생활에 임했더니 장기에 걸쳐 장소를 옮기지도 않고 공백 기간도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바꾸고도 곧잘 대성하더라. 일정시까지 안되면 직업을 바꾸면 그만이다. 여하튼 다소간의 긴장은 필요하겠으나 지나친 긴장 불안 초조는 금물이다.
또 며칠을 허송했다 하여 갑자기 초조해지고 그를 보상하겠다고 급하게 열을 올리고 무리를 하는 것은 잇달아서 또다시 며칠의 침체와 시간의 낭비를 강요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아까워도 깨끗이 잊는 것이 좋다. 장기전에서의 며칠의 허송은 그리 문제되 지 않는다. 나는 최종 정리 기간에도 부부 관계는 억지로 금욕하지는 않았다.
여하튼 나는 이런 느슨한 자세로 공부했다. 그러나 결코 남보다 노력을 덜하지는 않았다. 보통 10시간은 넘게 공부했고 일단 책상에 앉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구사했다. 머리가 혼란해지고 잡념이 생길 때에는 책을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단 책을 떠나면 고시는 깨끗이 잊었다. 이런 느슨하면서도 투철한 자세는 확고한 직업관에서 왔다고 생각되지만, 또 합격에의 신념으로 보완될 때 더욱 안정적이라 생각된다
사법고시 합격수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 (input)
인생=시간.
인생을 열심히 산다 = 시간을 한 점에 모아서 뚫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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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수 변호사 예비법조인, 수험생들에게 선배로서 권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부탁에, 그는 “시험에만 합격하면, 연수원만 나오면 인생이 보장된다는 인식(수험생들도 이것을 바라고 있겠지만)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현실적으로 그렇지가 못하다. 판사가 되더라도 언제 부장이 되는지, 로펌에 가서도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면서 인식의 변화를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는 말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그래도 이만한 직업은 없을 걸요. 생각보다 보람도 큽니다.” “법학은 결코 쉬운 공부가 아닙니다. 지금 각종 고시제도도 바뀌고 있지만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 아닌가요. 자신의 인생을 다 불살라서라도 열심히 한번 해본다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한다면, 승패여부를 떠나, 그 떳떳함은 또 다른 자산이 되지 않을까요. 양심에 꿀리지 않게 열심히 한다면 성공은 보장될 것이며 그것이 인지상정이겠죠.” 거듭 강조했다. “돈, 명예 다 좋지만 억울한 자를 구제해보면 그 보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정말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취선을 다했다고 자신한다면 정말 합격할 겁니다. 다만 상당한 준비기간을 필요로 하는 시험인 만큼, 그에 따른 인내심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민영 변호사 (이윤규 변호사 아버님) 고시에 있어 ‘하면 된다’는 신념은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문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고시 자체, 아니, 합격의 영광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무슨 일에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집념, 소기의 목표에 도전해서 뜻을 이루었다는 성취감 그 자체에 고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현재의 어려운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굳센 전진을 계속할 때 승리는 반드시 자신의 것이 되리라 믿는다. 인간적인 최선 앞에 신인들 외면할 수 있겠는가?
김진수 김앤장 변호사 – 연수원 수석 ―CPA를 휴학 없이 한 번에 합격한 게 화제였다. “2학년 때 공부 시작해서 3학년 1학기 때 1차 붙고, 2학기 때 2차에 붙었다. 휴학을 안 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덕분에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어떻게 공부했나. “스톱워치 공부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공부할 준비 다 해놓고 책상 위에 책 펴놓고 집중해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할 때 스톱워치를 켠다. 그리고 잠시 어떠한 이유로든 집중을 안 할 때 끈다. 그러면 딱 공부한 시간만 카운트 된다. 처음엔 내가 온종일 공부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하루 4~5시간밖에 안 하더라. 그래서 그 시간을 좀 더 많이 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차츰 요령도 생겨 스톱워치 시간으로 하루에 10시간까지 찍을 수 있었다.” ―내가 집중을 안 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나. “같은 줄을 반복해서 읽거나, 졸거나. 목이 마렵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그런데 공부가 재미있었다.” ―공부가 재미있다니. “내게 CPA 공부는 안 해도 상관없는 공부였다. 그런 공부를 한 이유는 재밌었기 때문이다. 물론 놀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뭔가 쌓여 가는 느낌도 들고, 충실하게 산다는 느낌도 들었다.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공대 수업이 끝난 오후부터 새벽 내내 혼자 공부하면 새벽 3시쯤 문 여는 식당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다. 학점이 잘 안 나오기도 하고, ‘과연 붙을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슬럼프가 와 울면서 꾸역꾸역 공부하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을 때 하니 정말 재밌었다.” ―새로운 길에 도전할 때마다 고민된 적은 없나. “지나고 나니 미화가 되는 것 같은데, 모든 수험생은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한다. 그런데 고민을 하든 안 하든, 시험 날짜는 다가오고 있고, 공부를 때려치울 게 아니라면 계속 해야 하는 거니깐, 고민 자체를 안 하려고 했다. 안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평소 성격도 긍정적인가. “그렇지 않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합격한 사람들 수기도 읽어 보고, 계획도 세워보고, 될 것 같으니깐 만반의 준비를 한 거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사법 고시 합격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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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드라마 같았던 사법고시 합격 이야기(feat. 대성통곡) EP.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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