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 [성경동화]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함께 읽는 성경동화 리딩/부활절 특집 89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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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마가복음 15:1-47) – 다음블로그

다른 하나는 함께 있을 때는 잘 보이지만 함께 있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있어도 잘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조용히 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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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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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언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 Dios eter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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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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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십자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것은 천주교의 역사에 수반되는 신비 중 하나이며, 이 종교의시기에 전 세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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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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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본문 : 마 13: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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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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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사야 53:6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고 합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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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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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24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All Answers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막 15:24-28)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눅23:42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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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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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동화]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함께 읽는 성경동화 리딩/부활절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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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 Author: 염광아이(염광영유아부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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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4. 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tBDhPj_S19E

베델 바이블 하우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마가복음 15:1-47

세상에는 크게 나누어서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한 종류는 함께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함께 있지 않으면 잘 보이는 사람입니다 . 다른 하나는 함께 있을 때는 잘 보이지만 함께 있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함께 있어도 잘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 조용히 자기 일을 할 뿐 아니라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들까지도 묵묵히 대신 해줍니다 . 그래서 모든 일이 순조롭고 , 사람들 간에 다투는 일도 없습니다 .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 그래서 그 사람의 존재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 잘 보이지 않습니다 . 그 사람의 가치도 모릅니다 . 하지만 그 사람이 없어지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됩니다 . 갑자기 일은 엉망진창이 되고 사람들은 서로를 탓하며 싸웁니다 . 그제서야 그 “ 보이지 않던 사람 ” 을 기억하며 그를 다시 보게 됩니다 . 그를 그리워하며 찾게 됩니다 . 비로소 그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 어떤 이는 자기 일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늘 다른 사람을 탓하며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 그래서 제대로 되는 일이 없고 다투는 소리만 요란합니다 . 또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을 드러내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 이 요란함으로 인해 멀리서도 그 사람이 거기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 오직 그가 자리를 떠나야 조용해지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기조차 싫어합니다 . 우리들은 모두 후자의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전자의 경우 , 곧 함께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함께 있지 않으면 잘 보이는 사람이 될 것을 가르칩니다 .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런 경우의 “ 극단적인 본보기 (extreme model)” 가 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오늘 우리가 공부할 말씀은 “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 입니다 . 묵묵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예수님께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이사야 53:7)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 이사야 53:12b)

십자가는 “ 기독교 신앙의 중심 ” 입니다 . 고린도전서 1:22-24 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을 그냥 “ 그리스도 ” 라고 부르지 않고 “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 라고 부릅니다 . 그리고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 “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 ” 라고 합니다 . 유대인들에게는 저항하시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예수님께서 절대로 “ 하나님의 능력 ” 이 되실 리가 없었습니다 . 오늘 본문에서 이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기적을 행하여 능력을 보이라고 조롱합니다 . “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 (29,30) “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 (31,32). 헬라인 총독 빌라도 또한 유대인들의 거짓 고소에 잠잠하시며 자신을 위해 아무런 변명도 하시지 않는 예수님께서 미련하고 답답해 보여 채근했습니다 . “ 아무 대답도 없느냐 ?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소하는가 보라 !” (5)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는 무력하게 ,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였습니다 . 그래서 이 예수님은 이들에게 “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 ” 이 되셨습니다 ( 로마서 9:33; 베드로전서 2:8). “ 하나님의 능력 ” 이란 “ 사랑의 능력 ” 이며 , “ 하나님의 지혜 ” 란 “ 구원의 지혜 ” 를 말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오직 “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 을 통해서만 이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과 구원의 지혜를 깨닫고 누릴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십자가가 신앙의 중심이 되지 않을 때 ,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 오히려 우리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되시는 것입니다 .

로마 시대에 십자가 형은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형벌로서, 주로 중대한 죄를 지은 노예나 전쟁 포로들에 대해서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 이 사형법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 경고 ” 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나 광장에서 시행되었습니다 . 죄수는 자신이 못박힐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으며 ,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채찍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 여러 가닥으로 된 채찍에는 쇠나 뼈 조각들이 달려있어서 몸을 휘감으며 살을 찢었다고 합니다 . 그리고 옷을 벗긴 후 두 발을 포개어 세로 기둥에 못박고 양 손목을 가로 들보에 못박아 고정시켰습니다 . 죄수는 십자가에 못박힌 채 수시간 길게는 수십 시간 고통을 당하면서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 삼시 곧 아침 아홉 시에 못박히셔서 제 구시 곧 오후 세 시가 넘어서 운명하셨습니다 .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 또 예수님의 좌우에 강도 둘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 이는 예수님을 이런 강도들과 같은 흉악한 죄인들 중 하나로 취급하여 더욱 수치를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예수님의 고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 아직 가장 큰 괴로움이 남아있었습니다 .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버림받는 것이었습니다 .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잠잠히 고통을 참으시던 주님은 마지막 때가 되어 큰 소리를 지르십니다 .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이것은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하시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도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 사실은 이것이 진정한 죽음의 의미입니다 . 예수님께 육체의 고난과 죽음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 영적인 죽음 곧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분리 ” 였습니다 . 아버지께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얼마나 큰 고통일까요 ? 그 고통의 크기는 예수님의 “ 아버지께 대한 사랑의 크기 ” 만큼 클 것입니다 . 그러니 오직 예수님만이 아시겠지만 , 그것은 아마도 천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도 수억 배 더 크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고난은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고난을 피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향하여 똑바로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 빌라도가 예수님께 “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 네 말이 옳도다 ”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 이 대답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 죄 ” 를 인정하시는 것이었습니다 . 누가복음 말씀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렇게 고소했습니다 : “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 ( 누가복음 23:2). 유대인들은 로마 총독인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로마 황제 가이사에 저항하여 사람들을 선동하는 반역자로 거짓 고소한 것입니다 . 빌라도는 이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자 “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심문에 대해서 “ 아니 그게 그런 뜻이 아니고 ……” 하시며 자신의 무죄함을 설명을 하셔야 했지만 , 순순히 “ 네 말이 옳도다 ” 하셨습니다 . 그리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 이런 예수님을 보고 빌라도는 기이히 여겼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로마 군병들로부터 많은 희롱을 당하시고 , 또 십자가 위에 계시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부터 , 그리고 심지어 자신과 함께 좌우에 못박힌 강도들로부터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 사람들은 예수님께 “ 자신을 구원하여 그리스도임을 증명해 보이라 ” 고 했습니다 . 이것은 정말 부인하기 힘든 시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마저도 참으시고 계속 십자가 고통가운데 머물러 계셨습니다 .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형수가 겪는 극심한 육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최소한의 자비로 , 마취제 역할을 하는 “ 몰약을 탄 포도주 ” 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23).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마저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손에 고난은 당하셨지만 , 그 고난을 덜기 위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정말 100% 정금보다 더 순결한 “The Cross” 였습니다 .

38 절 이후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된 것입니다 . 성소의 휘장이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성소 (Holy Place) 와 지성소 (Holy of Holies) 사이에 드리워진 커튼을 말합니다 .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으로 , 이곳은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번만 몸에 희생의 피를 바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 이곳을 막고 있는 커튼이 둘로 찢어졌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 여기서 “ 찢어졌다 ” 를 의미하는 단어는 마가복음 1:10 절에서도 쓰였는데 그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 “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 ( 마가복음 1:9,10). 여기서 “ 하늘이 갈라졌다 ” 는 표현이 “ 휘장이 찢어졌다 ” 는 말과 서로 상응합니다 . 곧 예수님의 세례 곧 십자가 죽으심으로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게 된 것입니다 .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주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심으로 ,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으신 고통의 크기는 예수님의 “ 아버지께 대한 사랑의 크기 ” 만큼 크다고 했습니다 . 왜 예수님께서 이런 고통을 당하신 것일까요 ? 이는 주님께서 또한 “ 그만큼 ”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 그런데 사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 오랜 동안 ” 이 형용 못할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죄 때문에 , 마치 문둥병자와 같이 그것이 고통인줄도 모른 채 , 하나님을 떠난 그 무서운 죽음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 이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 이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 딸로 회복되고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어둠에서 빛으로 ,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 영원한 저주에서 영원한 축복으로 , 지옥의 나락에서 은혜의 천국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 예수님의 한없는 은혜가 바다 같이 우리의 모든 죄를 덮어버린 것입니다 .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 잠잠히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 ” 처럼 묵묵히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기 때문입니다 . 또 주님의 능력과 지혜로 우리를 평안한 생명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우리가 매 순간 공기를 호흡하며 , 물을 마시고 , 음식을 먹는 것처럼 , 또 매일 해가 뜨고 , 철을 따라 비가 내리고 , 초목이 자라는 것처럼 ,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 영혼의 생명이 되며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 만일 이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떠난다면 , 우리의 삶은 차라리 죽음보다 못할 것입니다 . 그때라면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였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 바로 지금 , 아직 주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때에 , 우리가 주님을 그리스도로 ,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 주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이루신 이 놀라운 구원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 우리 가운데 이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예수님은 언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 제삼시(아침 9시), 요한복음은 제 육시(아침 11시부터 낮 12시까지)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는 이른바 짧은 채찍(여러 개의 단순하거나 서로 얽힌 길이의 가죽 스트립으로, 작은 쇠 공이나 양 뼈 조각이 다양한 간격으로 묶여 있음)으로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형벌은 가혹하여 깊은 열상과 상당한 출혈을 초래했습니다.

누가 예수의 죽음에 마리아와 동행합니까?

매우 자주(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성모 마리아와 연결된 요한 복음사가의 존재가 포함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 언제였습니까?

그들은 오후 3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금요일, 힘든 여정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은 후, 그들은 마침내 골고다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투옥된 후에 예수는 재판을 받았고 그곳에서 비정상적인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십자가 아래에 누가 있었습니까?

거의 만장일치로 전통에 따르면 세베대의 아들인 사도 요한이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마리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노라». – Amen dico tibi hodie mecum eris in paradiso (누가복음 23:43). “여보, 거기 당신의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 거기 당신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빌라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디오 빌라도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빌라도는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시신을 맷돌에 묶인 채 테베레 강에 던졌으나 바닷물이 거슬려서 빈으로 끌려가 론 강에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마리아에게 말한 천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발표한 순간을 기억하십시오.

천사는 무덤에 있는 여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그러나 천사가 대답하여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는 줄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 누가에 따르면 여자들은 열린 무덤을 발견했고 빛나는 옷을 입은 두 남자가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두 여인에게 누가 나타났습니까?

마태복음 28,1장: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16,1). 마르코스 23,55인 경우: 마리아 막달레나, 산티아고와 살로메의 아내 마리아(XNUMX). 그리고 누가는 갈릴리에서 그를 따랐던 한 무리의 여자들이었다(XNUMX).

예수를 죽인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는 날은?

-예수님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즉 유월절 전날에 돌아가시고 그 토요일에 무덤에 계셨다가 이튿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을 일요일이라 하지 않고 토요일 다음 날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전통과 니고데모의 복음서(경외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오른쪽에는 착한 도둑이 십자가에 달리고 왼쪽에는 게스타스라고 하는 나쁜 도둑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림은 종종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인 예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합니까?

아리마대의 요셉은 제임스 티소가 그린 흑연에 불투명한 수채화, 예수의 시신을 제거할 수 있는 허가를 빌라도에게 요청합니다(1886년에서 1894년 사이). 브루클린 박물관. Juan de Juni의 그리스도의 매장에 있는 호세 데 아리마테아.

바라바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한복음은 “바라바는 강도였다”(18:40)고 말합니다. 마가복음(15:7)은 바라바가 “그 반역을 일으켜 살인한 자들과 함께 결박하였”다고 단언한다. 누가복음(23:19-25)은 “그가 그 성에서 일어난 소동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혔더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골고다라고도 알려진 갈보리는 예루살렘 성벽 바깥쪽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복음에 따르면 이곳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 말 씀 : 예레미야 39:17-18, 로마서 6:6-10

서론

유명한 유대인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는 ‘죄로 인한 결과(Whatever Become of Sin?)’라는 책에서 현대인에게 죄의 개념이 사라진 것을 개탄하였습니다. 그는 “나도 괜찮고, 너도 괜찮다”, “다 그럴 수 있지”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반대한다고 하였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죄의 개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죄에 대하여 무뎌진 우리의 사고를 반성하고 죄에 대하여 더 민감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죄란 어떤 것입니까? 작지만 큰 죄도 많고, 사람들이 악해지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탈법이나 편법을 너무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도 매일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도 예사로 여겨 안전을 위협합니다. 최근 불거진 원자력발전소 불순부품 문제를 보세요. 그들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악한 일을 했는지 ‘원전 마피아’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이런 악을 조장하는 일이 이제는 교회에까지 들어와서 교회도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윗은 죄에 대하여 무딜 때에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그 후에 나단 선지자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을 듣고 그는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되어 회개합니다. 다윗은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하는지 베벼개를 적시며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죄로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그 죄의 짐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너무 고통스럽고 죄의 압박 때문에 기절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죄에 대한 민감성이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시편 78:38에는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한 긍휼하심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보이셨고 해결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조문은 사람에 대한 두 번째 조문이기도 합니다. 이 기도는 누구에게나 가장 절실한 기도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암송문이 아니라 실천문입니다. 암송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실천해야 참 기도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의 의미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죄’라는 말을 마태는 ‘빚’으로, 누가는 ‘죄’로 표현하였습니다. 마태의 표현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을 탕감하여 주시고”라는 말입니다. 죄란 빚입니다. 내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갚아줘야 하는 큰 빚입니다. 이 빚을 예수님은 갚을 수 있고, 십자가에서 갚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무자비한 종의 비유’가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주인에게 탕감을 받았습니다. 그가 나오는 길에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이 종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일만 달란트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요즘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조 원 정도 됩니다. 일백 데나리온이란 조금만 노력하면 갚을 수 있는 빚입니다. 요즘 돈으로는 500만 원 정도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갚을 수 없는 빚을 용서받고 산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당시 유대 전역에서 로마에 낸 세금이 일 년에 800달란트라고 합니다. 그러니 일만 달란트가 얼마나 큰돈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3:23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죄 사함이 필요합니다. 모두에게 십자가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죄는 인간에게 필연입니다. 누구나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도 필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묵상하는 이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죄의 몸이 죽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6절에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까? 우리의 옛사람을 죽이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우리가 십자가에 스스로 못 박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옛 사람이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비결은 십자가에서 옛 사람인 죄의 몸이 죽어 죄의 종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옛 사람이 죽습니다. ‘십자가’에 박혀야 죄의 몸이 죽어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건은 반복적인 사건이 아니라 단일회적인(once for all)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번으로 영원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의 한 번의 십자가 사건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죄 사함의 사건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면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이 삶이 구원받은 자의 삶이며 자유입니다.

에베소서 4:22에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옛 사람을 벗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야 새 사람을 입습니다.

파충류나 곤충을 보면 허물을 벗고 새 단장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허물을 벗어야 비로소 새로운 것으로 태어납니다. 사람은 허물을 벗는 것은 아니지만 헌 옷을 벗어야 새 옷을 입습니다. 밤에 잘 때 입는 잠옷을 벗어야 아침에 일하는 새 옷을 입습니다. 헌 옷을 그대로 입고 새 옷을 입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 옷을 입기 위하여 헌 옷을 벗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4에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어디서 만들어집니까? 바로 십자가상에서 만들어집니다. 무엇으로 만들어집니까?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로 만들어집니다.

죄란 히브리어로 ‘아본’입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는 ‘하마르티아’입니다.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사야 53:6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고 합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길을 가지 못하고 각자 자기 길로 갑니다. 과녁에서 한참 빗나가 살고 있는 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죄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는 죄가 없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아직 죄가 드러나지 않은 경우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아직 죄를 지을 기회가 없었던 경우입니다. 세상에는 죄와 무관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이 “죄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하는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죄인이라고 인정해야 사함도 받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을 의인이라고 말하는 죄인과 죄인이라고 말하는 의인이 있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죄를 더 깊이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영성의 최대 역설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죄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치유 받지도 못합니다.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치유도 받지 못합니다. 용서함을 받는 것은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죄를 알고 용서함을 받아야 진정한 자유도 있습니다.

어떤 소녀가 자신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교회는 술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교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살아 있는 성자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세 번째 면담이 끝나자 주교는 진짜 소녀가 예수님과 대화를 하였는지 검사해보자고 하였습니다. “네가 다음번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눌 때, 내가 지난번 고해성사에서 무엇을 고백했는지 그분께 물어봐 주었으면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주교는 소녀를 만났습니다. “얘야, 예수님을 만나서 내가 뭐라고 고해성사를 했는지 여쭤봤니?”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잊어버렸다고 하시던데요”. 주님의 죄 사함이란 죄를 기억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예수님과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옛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죽고 나도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용서입니다. 아무리 큰 죄라도 다 용서하시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십자가는 잊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옛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 박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7절에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는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면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의입니다. 이것이 죄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가 의롭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죄의식은 아담 이후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보다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일에 열심이었고 책임감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니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특별한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초대교회 교인들은 “형제들아, 어찌할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죄의식과 죄의 고백은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죄의식을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이며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죄의식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윤리적인 면에서 죄의식을 많이 가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의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전투기의 항법사 폴 버거만은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유의 죄의식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유대교는 죄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하나님에 대한 죄와 인간에 대한 죄입니다. 성경의 율법인 토라에는 56종류의 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여러 종류로 나누지만 그러나 근원적으로 죄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파괴입니다.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져 있으면 무슨 죄든 다 범할 수 있습니다.

죄란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 상태입니다.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기 위해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인격적 세력이 있습니다. 틈새를 만드는 재주꾼인 마귀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틈새를 벌어지게 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틈새를 다시 없애고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인간 사회는 개선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재창조하십니다. 이 재창조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세로를 잇는 긴 막대기와 가로를 잇는 막대기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을 주시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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